◆2009년 9월21일 월요일-여덟째 날 <그라나다-코르도바-마드리드>
오늘은 여유롭게 9시에 호텔을 나서 그라나다를 출발하여 이슬람 왕궁의 수도였던 코르도바로 향한다.
창밖을 내다보니 오늘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여전히 올리브나무가 들판(밭)에도 구릉지에도 낮은 산에도 끝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이를 올리브 나무 밭(농원)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올리브 나무 (과수)원?, 이것도 아니면 올리브 나무숲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가이드가 올리브 이야기를 해 준다. 올리브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2월에 열매를 수확하는데 올리브유를 짜려면 열매가 녹색일 때, 식용은 열매가 다갈색으로 다 익었을 때 딴단다. 올리브유는 3번 짜는데 첫 번째 짜는 것은 그대로 먹지 아니하고 일반적으로 2번째 짜는 것을 식용으로 한단다.스페인 사람들은 올리브유를 먹을 때 기름을 튀겨(*튀겨 먹는 올리브유는 별도로 있다고 한다) 먹지 아니하고(*튀길 경우 코레스테롤이 높아진다고 한다) 생으로 올리브유를 부어 먹거나 빵에 찍어 먹는다고 한다. 올리브 열매를 딸 때는 올리브가 다 익으면 톡 건드리기만 해도 뚝뚝 떨어져 나무아래 천을 깔고 주로 기계로 나무를 흔들거나 사람이 긴 막대기로 나무를 쳐서 따고 이를 주어서 깬단다. 스페인에서 올리브, 오랜지, 포도 등을 수확할 때는 대부분 이웃 모로코 아줌마들이 선ㆍ후진국간에 흔히 발생하는 고소득 일거리, 일당 그리고 제2의 인센티브(*장기간 머물면서 돈 벌이도하고 또는 제2의 기회도 찿고 등)를 얻고자 서로 다투어 입국하여 거둬드린단다.
또 이곳에서 흔히 볼수 있는 돼지 넓적다리를 소금에 절여 대기중에 말린 것(*하몽)인데 한 개가 보통 200~300유로(*약 45만원)나 한단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중에 도토리를 먹여 키운 검은 돼지로 만든 약간 붉은 색을 띠는 하몽이 제일 고가로 치는데 한 개가 무려 700~800유로(*약 135만원)나 한다나!(*우리나라 제주산 통 X돼지 한 마리 값보다 비싸지 아니한가?!)
약 2시간 15분경과 후 드디어 11시 15분경에 코르도바에 도착하였다.
코르도바는 우리가 여행 셋째 날에 거쳐 온 세비아 그리고 어제 관광한 그라나다와 더불어 스페인 남쪽 끝에 있는 안달루시아 자치지역에 있으며 그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이슬람화한 북아프리카 무어인 이슬람교도들은 711년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단숨에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해서 1492년 까지 약 800년간 사는 동안 코르도바(*711~1010), 세비아(*1010~1248), 그라나다(*1248~1492)가 차례로 이슬람 왕국의 수도로 이슬람교도들의 중심도시가 되었고 이슬람 문화가 꽃을 피웠다. 따라서 “가톨릭교도들의 스페인 역사가 똘레도에 담겨 있다면 이베리아 반도내의 이슬람교도들의 800년 역사는 여기 안달루시아에 담겨있다.” 안달루시아에서 제일 먼저 이슬람교도들의 왕국이 된 곳이 ‘코르도바’이다. 이슬람 교도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고 있을 때 아랍 본토에서는 바그다드의 ‘아바스 가문’이 ‘옴미아드 가문’을 몰아내고 칼리프(*이슬람통치자)의 지위를 빼앗았다. 이때‘옴미아드’ 마지막 군주의 손자인 ‘압브드 알라흐만’은 아바스의 학살을 피하여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와 코르도바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고 자신을 “압브드 알라흐만 1세”라 칭하였다. 이 나라가 ‘알 안달루스'로 수도를 ‘코르도바’로 정했다. 이후 알라흐만 2세를 거쳐 알라흐만 3세 때에는 100만이 넘는 유럽 최대의 대도시였단다. 그러나 이베리아 반도 북쪽서 내려오는 가톨릭교도와의 전쟁으로 똘레도를 뺏기자 북아프리카의 알모라비데족에게 도움을 청하였다가 그들에 정복당하여 코르도바의 영광은 막을 내렸단다.
코르도바에 들어와 구아달키비르 강변을 따라 걷는다. 표드로 광장을 지나 이슬람의 모스크(*사원)와 가톨릭의 성당이 한 공간에 함께 있는 아주 특이한 건축물과 문화가 혼합된 ‘메스키다’ 회교사원이 있는 중세도시로 가는 길에 구아달키비르 강 줄기의 강물은 석회암(?)으로 회갈색의 뿌연 흙탕물이라 정감이 안가나 강을 가로 지르는 그 위의 오랜 역사를 지닌 230m의 ‘로마교’와 칼라오라의 탑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리중인 그 지역 성당, 그 시대를 묵묵히 지켜봤다고 말하듯 설익은 오랜지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 사이에 우뚝 홀로 솟은 큰 대추야자수 등에 매력을 느껴 이것들을 사진에 담으며 앞서 가는 일행들이 보일 듯 말듯 꽁무니를 가까스로 따라갔다.
메스키타와 그 주변의 유대인 거리를 비롯한 구시가 전체가 ‘코르도바 역사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단다.
메스키다는 “압브드 알라흐만 1세”의 명령에 따라 서코트 왕국 시대의 교회 터에 모스크(*사원)건설을 시작하여 약 2세기 걸쳐 총 3회 증축으로 10세기 후반에 지금과 같은 거대한 모스크로 되었단다. 13세기 레콩키스타 후 도시가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넘어가면서 모스크는 기독교 성당으로, 16세기 중앙부분에 카테드랄을 건립해 오늘에 이른 종교적인 이기주의로 인해 기독교 성당이 이슬람교 사원안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듯한 이 독특한 건축물은 세계 유일무이한 이슬람과 기독교가 혼재하고 있는 거대한 모스크이다.
카테드랄을 완성하기까지 약 240년이 걸렸기 때문에 공사 중에 훼손된 부분도 많고 건축양식도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으로 변해 갔단다.
‘메스키다’ 회교사원에 도착하여 입구의 문과 오랜지가 주렁주렁 열린 안뜰 정원을 지나 메스키다 건물 안으로 11시 30분경에 들어서니 창문이 벽화 등으로 가려져 없는데다 시설을 보호하려는 듯 조명이 너무 어두어 한동안 눈을 껌뻑거리다 눈이 주위조명에 익숙해지자 보이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적백벽돌로 조화된 문양의 말발굽 아치와 이를 받치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기둥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당초 1천개가 넘었으나 개축과정에서 현재 850개 현존) 꽉 찬 느낌이다.
건물 안의 거대한 돔과 화려한 장식들 그리고 성체현시대(*똘레도의 성체현시대를 만든 엔리코의 작품)와 그림들이 웅장하고 장엄하다. 그런데 이슬람 모스크의 내부 일부를 부수고 그 자리에 들어선 고딕식 성당이 이상하고 좀 안쓰럽다. 카를로스 5세도 이 성당을 보고 ‘이렇게 고칠 줄 알았다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을, 그대가 만든 것은 세상에 볼 수 없는 것을 부수고(*이곳만 있는 모스크 일부)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것(*성당 내부 장식 등)을 만들었다’고 통탄 했다는데 상당 일리가 있고, 사람이 보는 눈은 모두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메스키다에서 나와 유대인 마을로 갔다. 유대인 거리의 특징은 좁은 골목길을 이룬 양쪽의 2~3층집의 하얀 벽과 베란다에 예쁜 꽃 화분이 걸려있고 집집마다 예쁜 나무와 꽃 등으로 꾸며놓은 ‘파티오’라는 안뜰이 아름답다. 꽃피는 5월이 오면 코르도바에서 2주에 걸쳐 파티오축제와 콩쿠르가 있으며 콩쿠르에 참가한 집의 안뜰은 대중에게 개방되고 최종적으로 가장아름다운 6집에 상을 준단다. 아름다운 풍습이라 생각이 들면서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정월 대보름 쥐불 불꽃놀이, 단오날의 그네타기, 추석날의 강강수월래, 새집 지을 때와 새해에 지신 밞기, 추수 후 고사와 농악대의 풍악풍물놀이, 산신제 등등을 지내고 즐기면서 마을의 안녕과 조상들에게 감사하며 자손대대 무사안일과 번성을 기원하던 멋을 알던 우리가 아니던가?
이제는 지방자치제가 점점 활성화 되면서 마을마다 고장마다 지역마다 그 지방의 독특한 생산물이나 지방문화의 축제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으나, 전통적인 문화의 멋과 맛 그리고 흥을 살리는 것이라기보다 왠지 행사 위주의 다른 것을 느끼게 하여 씁쓸한 맛이 있는 것이 나만의 생각일까? 라고 하면서 우리의 멋과 맛 그리고 흥 등의 문화를 재점검하고 다듬어 발전적으로 다시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로 같은 유대인의 거리도 감상(?)하고 또 기념품점에서 아이쇼핑도 한 후 13시 10분에 예약된 중국집에서 포도주와 맛있는 요리 및 밥 그리고 후식으로 메론을 먹고 다음 일정상 부리나케 코르도바에서 전용버스를 타고 14시 10분에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Madrid)로 향하였다. 마드리드까지는 약 5시간 40분 소요되는 거리란다.
한참 버스가 달리고 있는 가운데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니 이번에 버스가 오르는 산은 의외로 약간 험하면서 모처럼 회갈색의 바위가 쭉쭉 하늘로 치솟고 뻗은 모양새가 보여 마치 우리의 관악산 산자락을 보는 듯하며 친근감이 가면서 여행 일정이 후반에 들어서인지 집 생각이 오랜만에 스쳐간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스페인 남부는 평야인 벌판이 많아 여성스럽고 북부는 산악지대가 많아 남성스럽단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산등성과 터널같이 깍아 내린 듯한 도로 골목길을 통과하여 넘어서니 언제 그랬다는 듯 회갈색의 구릉지와 간간이 올리브 같은 낮고 푸른 나무가 줄지어 있는 허허 벌판 들녘이 끝이 안 보인다. 계속되는 가이드 말에 의하면 중남부의 민둥산 또는 구릉지의 회갈색의 황무지 같은 벌판은 연 강수량이 400mm 정도로 아주 적어 사막이 많고 해바라기 밭이나 밀밭이고 지금은 건조기이고 이미 추수한 후라 더더욱 황무지처럼 삭막하단다. 다만, 해바라기 재배도 우리나라와 다른 것은 이 나라 기후 및 박토인 토질의 특성상 놀랍게도 속성 약 1개월로 모든 재배가 끝나고 나머지 11개월은 대부분 놀린(*休土) 단다. 그래서 그런지 간간이 도로가 등에는 우리나라 증기기관차 시절에 큰 역과 중간 중간 적정 거리역마다 크고 높은 시멘트로 된 물탱크와 같은 물탱크 시설과 수로가 있는가하면 꼭 물 항아리 또는 볼링 핀 모양의 대형저수조와 대형 스프링쿨러가 보인다.
그런데도 이런 자연적 악조건을 극복하고 평화스럽게 잘살고(?) 있으니(*‘09.1현재: 세계 GNP 순위 25위 $32,067.- , 한국 34위 $19,751.-)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어떤 나라보다도 천혜의 기후를 가진 자연의 멋과 맛이 흠뻑 젖어 있는 사계절의 금수강산이 있는 우리나라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더더욱 살만하지 아니한가!? 라고 자부해 본다.
어언 코르도바를 출발한지 5시간 20분경과 후 19시 30분경에 마드리드에 도착하니 우리가 있는 시가지가 신시가지라 그런지 이 나라 수도답게 크고 높은 수십 층 빌딩은 보이지 않지만 도로는 널찍널찍하고 주택은 단독ㆍ2~3층 연립 또는 5층 아파트이고, 상가는 5~8층, 정부 종합청사는 7층으로 깨끗하다 못해 청결할 정도로 깔끔하고 오늘이 월요일이고 퇴근시간 무렵인데도 도로는 한가롭게 보인다.
오늘 오후는 긴 5시간 이상의 버스여행도 있었고 해서 저녁은 이곳 마드리드에서 유명하다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고려정이라는 음식점에서 특별메뉴 한식으로 한단다.
고려정은 그 입구부터 기와집 처마처럼 석가레와 기와로 꾸미고 분위가 그럴 듯하였다. 그런데 처음에 불고기와 김치, 두부조림, 오이김치, 고추/마늘장아치, 그리고 주 메뉴는 육개장이 나왔는데 오랜만에 한국식 음식을 참 맛있게 배불리 먹었다.
이제 저녁을 배불리 먹고 20시 35분경 호텔에 들어오니 호텔도 깨끗함은 물론 주위환경도 조용하고 시내 야경도 아름다워 사진에 담은 후 피로가 서서히 몰리는 듯하여 오늘은 다른날에 비하여 일찍 샤워를 하고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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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코르도바간 '올리브 밭(농원)'>
<코르도바-구아달키비르강위의 '로마교'와 뒤로 '메스키다 첨탑'>
<메스키다인근 기념품점내 '아줄레주 장식 접시'>
<코르도바-메스키다가는길목 오랜지나무속에서 우뚝선 '대추야자수'>
<코르도바-메스키다내부 '말발굽아치'와 '기둥850개'>
<코르도바-메스키다 내부의 '미랍'-사우디 메카향한 문같은 구조물>
<메스키다내부 말발굽아치위의 '적백색(벽)돌문양'>
<메스키다 내부의 '성체현시대'>
<메스키다 건설자들의 '실명패'-(*진즉 본 받을 사항)>
<메스키다안의 십자가모양(*사진은 전면만 보임) 성당부분-'주제단'>
*메스키다안의 "소기도실"10여개 이상 중 일부임(3개)
<메스키다안의 '소기도실'일부 3개>
<유대인거리 '꽃골목'과 안쪽의 중앙 멀리에 '메스키타탑' >
<코르도바-마드리드 간 이동중 버스창밖 '바위산'>
<마드리드-'정부종합청사(정면)'>
<마드리드-'정부종합청사(측면)'>
<마드리드-시내 '신시가지' 빌딩건물>
< 마드리드-교포경영 유명한식식당 '고려정' 영문입간판>
<마드리드-호텔서 본 시내 '신시가지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