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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1-40, 집회자료 07/03/11
참고 자료로 읽을 말씀//행13:48, 골3:16. 삼하12장, 시32편, 시51편
시119:1-5-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실로 저희는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주께서 주의 법도로 명하사 우리로 근실히 지키게 하셨나이다 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성경 전권 중에서 가장 많은 구절들로 이루어진 시편 119편은 하나님의 말씀이 유일한 진리요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하나님의 증거임을 인정하는 시인의 자백과 진리의 길로 행하도록 도움을 요청하는 호소와 말씀을 찬송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가는 다윗이 삶의 현장에서 체험적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육체로 행한 범죄에서 벗어난 생명의 체험에 바탕을 둔 산 증거입니다.
실제 하나님은 말씀이요 말씀을 진리의 도, 구원의 도라고 인정하고 그 말씀께 자신을 의뢰하고 맡기며 항상 그 말씀을 찬송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신자의 마땅한 신앙의 기준이며 말씀을 찬송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찬송하고 섬기는 자에 믿음의 표현입니다(행13:48).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임하여 말씀하신 그 영광의 복음말씀을 좇아(창12:1-4, 과 갈3:8-대조) 지시하시는 땅으로 들어갔고 그 후로 전 인생을 말씀의 인도를 따라 살므로 모든 믿는 자의 시조(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히//테미메 다레크 하홀킴 베토라트 예화)- 직역하면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 길에 완전한 자이니 길에 완전한 자란 인생을 사는 동안 여호와의 말씀을 법으로 알고 따르며 지켜 행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길에 완전한 자란 인생의 행로에 있어서 완전한 자인데 완전한(히//타밈) 사람으로서 비난받을 것이 없는, 오염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이니 인생을 살면서 비난받을 혹은 정죄(定罪)받을 죄악 된 행실에 떨어지지 않는 자를 의미합니다.
완전한 자가 되는 것은 그 자신의 노력이나 수양으로만은 불가능하며 먼저 말씀을 신뢰하고 믿는 마음이 선행되고 믿음으로 자신의 속에 말씀이 항상 살아서 운행되어 자신의 행실을 말씀의 거울로 비추어보며 여호와의 법에 복종시키기 위하여 육신의 마음의 생각들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는 것이 본 시편 119편의 중심내용입니다.
법(히//토라트)은 던지다, 가르치다 등을 뜻하는 (히//야다)에서 나온 명사로 길을 보임, 방향을 제시함, 지침, 지시 등의 뜻인데 좀 더 세부적으로는 특정한 경우에 어떻게 행하여야 할 바를 가르쳐 주는 지침의 의미까지 담고 있는 법조문 문서를 의미합니다.
물론 이 지침은 왕이나 제사장 혹은 선지자(잠 13:14) 들을 통해서 모든 백성들에게 전달되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에 삶의 지침인 (히//토라트)의 근원은 여호와 자신이시며 근원적으로는 모든 인류에게 양심과 마음을 지어주시고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을 넣어주심으로 창조자의 선하시고 의로우신 뜻과 의지를 사람 속에 넣어주셨으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리고 사단에게 미혹당하여 법을 지킬 생명력이 없이 육신의 마음에 이끌리게 되었습니다.
먼 후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토라의 율법을 추가로 더하시니 토라는 여호와의 인간을 향한 지침, 가르침으로서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다스리는 법도와 규레와 율례가 되어 이스라엘의 법전과 같은 형태로 성문화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모세 오경이 여호와의 법인 (히//토라트)는 흔히 알고 있는 (히//토라)의 복수형입니다.
모세 오경을 요약하여 십계명으로 대변되는 하나님의 법을 행하는 자, 그가 길에 완전한 자가 될 수 있고 그러한 자만이 진정 행복한 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시 119편에서는 몇몇 절을(84, 90, 122, 132절 등) 제외하고는 각 절마다 율법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등장하며 율법이라는 의미로 나오는 동의어들은 9가지로서 이들의 의미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엄격히 구별 짓는 데에는 다소 어려움이 따르지만 의미상 대동소이합니다.
증거(히//에두트) - 알다, 라는 뜻의 (히//야다)에서 나온 단어로 추정되는 본 용어는 하나님의 증거와 선포를 통해서 만들어진 두 돌비 즉 십계명을 기록한 돌 판을 가리킬 때(출31:18) 혹은 여호와의 법궤를 가리킬 때도(출25:21, 렘 3:16)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편 시25:10, 시132:12- 등에서는 하나님의 입으로 선포하신 것을 강조하는 의미의 언약들로 본 용어(히//에두트)가 사용되고 있으니 1절과 본절은 동일하게 여호와의 율법을 강조하지만 1절은 법의 존재 형태, 즉 성문화된 여호와의 법조문들을 강조하는 반면 본문은 여호와께서 친히 선포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전심으로 -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간절히 여호와를 찾는 신명기적 표현으로서(신 4:29, 렘 29:13) 본 시편의 중요한 특성의 일부를 형성하는 용어입니다(10, 34, 58, 69, 145절)
불의(히//아웰라) - 본 용어는 일반적인 잘못, 악 혹은 법정적인 의미의 불의를 의미하나(시64:6, 대하 19:7, 미 3:10) 성경의 용례들을 중시할 때 세상에 만연해 있는 모든 죄악들을 의미합니다.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직역하면 그의 길들 가운데로 걸어가도다, 이니 이것은 습관적으로-계속적으로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며 진정 여호와의 법을 따라 사는 자는 이론상으로만 정직하거나 곧은 자가 아니라 실제 삶에 있어서 여호와의 계명을 항상 자연스럽게 지키며 사는 경건한 자의 삶을 의미합니다.
주의 법도(히//피쿠데카) - 시편에서만 나오는 용어로서 시 103:18-에서는 언약으로 번역되어 있고 시111:7-에서는 하나님의 손의 일들(말하자면 그의 자기 계시)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근실히(히//메오드) - 문자적인 뜻은 매우, 라는 뜻이나 문맥상 신실하게, 끊이지 않고, 로 번역되거나 주의하여, 로 번역될 수 있는데(신 24:8) 여호와의 법은 날마다 주의 깊게 묵상하고 살펴서 그 깨달은 바를 자신의 마음에 새겨야 하며 인생길에서 어떤 상황을 만날 때마다 깨닫고 새겨둔 바를 신실하게 지속적으로 행하되 자연스럽게 그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내 길을 굳이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 직역하면 오! 나의 길들은 당신의 법을 지키도록 설정되었습니다, 이니 자신에 인생의 방향이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일에 표적을 삼도록 규정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율례(히//후케카) - 어근(히//호크)에서 기인한 단어인데 이 용어는 여호와의 특별 포고령(시2:7) 혹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시148:6) 등의 의미로 번역되었으며 어떤 조건과 그에 따르는 약속의 언약(시 50:16, 시105:10)과 동의어입니다.
시119:6-10- 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주의 모든 계명 - 계명(히//미츠오트)은 솔로몬이 시므이에게 내렸던 명령과 같이 권위 있는 자가 내린 명령들이나 포고령 따위를 의미하며(왕상2:43) 유사한 의미로 꼭 준수해야 하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들 혹은 금지령 등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시편 119편에는 여호와의 법, 주의 도, 주의 법도, 율례, 계명, 모든 규례, 주의 증거의 도, 주의 법, 율례의 도, 등등 그 의미가 비슷한 용어들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그 중에서 주의 모든 계명이라고 번역된 단어의 원형은 (히//미츠와)로서 신명기에서는 율법을 지칭하는 용어 중의 하나로 번역됩니다.
주의할 때에는 - 문자적인 뜻은 주시, 혹은 주목하다, 인데 이 말은 계명을 삶의 법칙으로 삼기 위하여 그것을 주의 깊게 묵상하고 계속적으로 의식한다는 뜻이니 사실은 삶에서 자연스럽게 주의 모든 계명에 따라 인도를 받을 때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즉 하늘에 두고 떳떳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판단(히//미쉬페테)은 시편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 자체를 인간에게 주신 것을 의미하고 있는데 출 21:1, 출24:3, 레 18:4-5.- 등에서 그 사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레18:4-5-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배운다는 말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날 때 말씀으로 훈계를 받고 깨우친다는 뜻이며 그 배움은 삶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감동을 통하여 되어 진다는 뜻이며 주의 말씀을 응하게 하는 징계적인 체험으로 깨달을 때는 거슬리지 않고 감사로 받겠다는 뜻입니다(시119:73).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 - 시인이 내가 주의 율례를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는 표현은 주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서 빗나갔을 때 엄중한 징계적인 채찍을 가하여 깨닫게 하실 때 감사함으로 받고 돌이켜 주의 율례를 지킬 것이니 혹시 내가 그릇 행할 때 그대로 놔두지 말아 달라는 뜻입니다.
시인은 인간의 그릇 됨과 하나님의 말씀의 공변됨을 체험적으로 아는 사람이며 사람이 자기 주관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그릇 행할 때 이미 주신 그 말씀이 응하기까지는 삶에서 엄한 징벌을 가하여 깨닫고 돌이켜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시는 것이 곧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시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전12:1- 너는 청년의 때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시인이 본문에서 청년을 언급하는 것은 육적인 힘이 가장 강한 청년의 때는 하나님의 징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행하여 그릇행하기 쉬운 유혹의 때라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인간으로서 꿈도 많고 무언가를 계획하면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힘이 있는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복을 받은 것인데 예수님도 사도들을 청년의 때 부르셨으니 특히 요한이나 바울과 디모데도 청년 때에 하나님께 얻어진바 된 것은 육신적으로도 청년의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를 보여줍니다.
물론 성경에서 청년의 때는 신앙적인 청년의 때를 의미하는데 청년의 때는 생식의 능력이 왕성할 때이니 영적으로도 청년의 신앙단계에 이른 성도가 전도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육신의 일이나 마찬가지이니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육신적인 청년의 때에는 자신에게서 올라오는 기운을 말씀으로 제어하고 조절할 수 있는 생명력을 의지해야 할 때입니다.
청년의 때를 함부로 지나쳐버리면 그의 노년이 힘들게 되고 후회를 할 수밖에 없듯이 영적인 청년의 때에도 얻어진 말씀의 지식에 의하여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진다면 그가 온전한 자로 길들임을 받고 원숙하고 노련한 장로로 세움을 입어 주님의 교회에서 쓰임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떠나지 말게 하소서(히//알 타쉬게니) 직역하면 나로 방황하지 말게 하소서, 이니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이 응하기 까지 연단들을 통해서 가르치실 때 순종하고 겸손하게 배우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삶은 흔들리고 방황하게 마련이므로 말씀을 이루는 삶의 현장에서 가르치실 때 불순종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잠 19:27).
시119:11-16-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모든 규례를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다는 것은 자신의 사상과 의도, 목적 따위를 숨기거나 지혜나 지식 따위를 보물처럼 마음에 쌓아두는 것을 의미하는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라는 표현은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 말씀을 그 마음에 항상 보물처럼 쌓아두었다는 뜻입니다.
주의 말씀(히//에메르)은 9절에 나오는 (히//다바르)와 시적 동의어로서 본 시편에서 이 용어는 보편적 의미의 하나님의 법 혹은 특별한 의미의 그분의 약속들도 포함하는 용어입니다.
우리의 속에 항상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할 때 그 말씀이 살아 운동력을 발휘함으로 구속받은 양심과 온전케 된 마음을 지켜서 항상 하나님 앞에 살 수 있게 해주실 수 있으며 복음을 증거하여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줄 수 있습니다.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히//바루크 아타 예화) 직역하면 여호와 당신은 경배를 받으소서, 인데 인생을 선하고 거룩하게 지도하고 인도하기에 적절한 율법에 대한 깨달음에서 흘러나온 중심의 표현이며 딤후 3:15-17-에 시인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말씀이 다시 나옵니다.
딤후3:15-17-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모든 규례를 (히//콜 미쉬페테) - 직역하면 모든 판결들이지만 문맥의 흐름대로 이해하면 성문화된 법전 혹은 율법 전체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주의 도에 주의하며 - 인생길에서 항상 지속적으로 말씀-도-율법의 명령들을 인생의 안내자로 마음에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119:17-24-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를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니 훼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방백들도 앉아 나를 훼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나이다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후대하여(히//게몰)- 이 단어는 누가 행한 선악 간에 대하여 상을 주거나 벌을 내릴 때 사용하는 동사인데 시인은 본문에서 혹시 내가 주의 법도를 범할지라도 아주 버려서 내버려두지 말고 징벌을 가해서라도 깨닫고 돌아서게 해 달라는 호소로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후대하신다는 뜻은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께 득죄할지라도 시시 때때로 생활의 환경들을 통해서 간섭하시고 징계의 채찍을 보내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육신에 속한 것들만 보던 시야로부터 하나님 안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경륜을 깨닫게 해달라는 요청으로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의 비밀을과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의 비밀을 깨닫게 해달라는 요청과 같습니다.
왜냐면 주의 법인 말씀의 비밀은 결국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이상이 가장 기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땅에서 객이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객이란 고향이 다른 곳에 있고 일시적으로 이방 땅에 체류하는 자를 가리키는데 모든 인생은 영원한 참 본향인 그리스도 예수 안에 돌아가야 하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은 나그네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나그네로서 이 세상에 잠시 잠간 살아가는 기간 보호를 받고 쉼을 얻기 위해서는 주의 계명을 체험적으로 배워야 하고 주의 계명에게 인도를 받아야만 영원한 본향아신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감추어두신 비밀의 경륜인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이상을 깨닫지 못할 때는 인생을 도적맞게 마련입니다.
주의 규례를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상하나이다(히//가르사)는 계속 문지르거나 두들겨서 결국에는 조각조각이 나거나 부서지는 모습을 가리키는 용어이니 본문에서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거의 기진한 상태에 놓였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규례를 좀 더 깊이 분명하게 알기를 사모하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를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직역하면 당신은 당신의 계명들로부터 떠나 방황하는 저주를 받은 교만한 자를 꾸짖으셨나이다, 이니 시인의 체험으로는 자신이 주의 계명들로부터 떠나 저주를 받은 교만한 자로 일식간 지내본 경험을 상기하며 주님께서 이런 자신을 아주 버리지 않고 상활의 환경을 통해서 징책하시므로 꾸짖어주신 것을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니 훼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님의 꾸짖음을 받고 돌이킨 시인은 이제 내가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니 더 이상 하나님의 징벌로 임하는 사단의 송사로 오는 내적 고통에서 시달리지 않도록 건져달라는 호소입니다.
떠나게 하소서(히//갈) - 문자적인 뜻은 벗기소서, 인데 악마의 훼방과 멸시로 말미암는 고통의 옷은 영적인 수치로서 대적의 억압으로 말미암는 참소에 따른 수치는 더러운 옷을 입은 상태로 비유되며 더럽고 갈기갈기 찢어진 옷의 사단의 송사를 벗어나는 의미입니다(수 5:9, 슥3:3-4).
방백들도 앉아 나를 훼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를 묵상하였나이다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방백들(히//사림) - 통치자들 혹은 지도자들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용어 중의 하나로서 이 용어는 족장들(스 8:29), 장로들(욥 29:9) 혹은 지휘관들이나(왕상 9:22, 왕하 1:14) 왕의 관리들(시105:22, 왕상 4:2, 렘 26:10) 등을 의미하는데 실제로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사단의 앞잡이들이기 때문에 자기들의 율법에 따라 주님의 사자들을 훼방하고 핍박하면서 의문의 율법으로 함부로 정죄하고 죽는데 까지 넘깁니다.
훼방하였사오나(히//니드바루) - 대적하는 말을 하였다, 인데 그들이 서로 서로 시인을 대적하고 핍박하기 위해 공모하여 말꼬리를 물고 늘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 나의 모사(히//아차티) 문자적인 뜻은 나의 조언자이니 주께서 그분의 말씀을 주어 마땅히 할 말들을 주셨다는 뜻이며 대적들의 훼방과 억지스런 송사들을 좌절시킬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의 말씀들을 하게 해주셨다는 뜻입니다.
시119:25-32-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내가 나의 행위를 고하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으니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나로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로 수치를 당케 마소서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다, 라는 표현은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의 양심과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며 이런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안타깝게 여겨 구원을 호소하는 말인데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라는 탄원은 영과 마음을 새롭게 해서 새 영과 새 마음을 달라는 기도입니다.
내가 나의 행위를 고하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으니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본문에서 나의 행위란 시인이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육신의 생각대로 살면서 행한 범죄행위를 자백하며 죄과들을 토설하는 내용이며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서 범죄한 다윗의 고백 시가인 시편32편과 51편에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주의 법도의 길을 깨닫게 하소서 - 현재의 고통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깨닫게 하여 죄악으로 인한 사단의 송사와 그 아픔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깨닫게 해달라는 탄원입니다.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사를 묵상하리이다 - 본문에서 기사란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도구인 사단의 송사로 말미암는 영혼의 아픔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구원사역을 의미합니다.
묵상하리이다(아시하)는 많은 사람 앞에서 육체대로 행한 범죄로 인한 영혼의 고통을 체험하고 나서 그 깨달은 바를 선포하고 알린다는 뜻이니 시인은 사람의 범죄와 그 결과로 임하는 하나님의 엄한 징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구원을 얻으면 많은 사람 앞에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사역을 증거하고 알림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겠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눌림을 인하여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눌림(히//투가) - 이곳과 잠 10:1, 14:13, 17:21- 등에서만 발견되는 용어인데 대체로 비통, 슬픔, 고통 등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자신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말미암는 고통으로 인한 영혼의 압박을 의미하며 사단에게 영혼이 짓눌리는 상태입니다.
녹사오니(히//달르파)의 어근인 (히//달라프)는 원래 촛밀이 녹아내리는 것과 같은 의미이며 빗물 방울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모습과 같이 물방울이 스며 나오다, 방울방울 떨어지다, 라는 뜻인데(시22:14, 전10:18) 욥16:20-에서는 울다, 로 번역되기도 했으니 본문의 뜻은 그 마음이 녹아내린다는 뜻입니다.
나를 세우소서(히//카이메니) - 직역하면 나를 다시 힘있게 하소서이니 이것은 본 시편에서 자주 반복되는 말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와 그 의미가 거의 같습니다.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 거짓 행위는 일반적인 인간사에서의 속임수 따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위선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자신의 외식적인 행위를 끝내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법을 자신의 양심과 마음에 공평하게 적용해 달라는 정직한 기도입니다.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 성실한 길(히//데레크 에무나)-문자적인 뜻은 신실한 길이니 이는 하나님이 행하라고 명하신 길이며(시25:12) 또 믿고 따라가기에 합당한 길이며 안심하고 따라갈 생명 길입니다.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 하나님의 법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이며 혹은 하나님의 법을 자신의 인생사의 안내자로 삼겠다는 뜻입니다.
내가 주의 증거에 밀접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로 수치를 당케 마소서 - 본문에서 밀접하다는 용어는 자기의 영혼이 진토에 붙었다고 묘사한 25절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동사 (히//다바크)가 사용되었는데 시인이 하나님의 징벌을 통해서 빛을 받은 양심과 뉘우치는 마음으로 주님의 가르침에 밀착되었다 혹은 딱 달라붙었다는 뜻입니다.
이런 표현은 뉘우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연합 된 자신의 영과 혼의 상태를 증거하면서 더 이상 사단의 참소를 받도록 내버려두지 마시고 용서해주셔서 사단의 참소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내 마음을 넓히시오면 -직역하면 내 마음을 넓히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니 이런 표현에서 넓은 마음은 사단의 참소로부터 벗어나 영과 혼의 압박과 아픔에서 해방되어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상태의 마음으로 회복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사 60:5, 고후 6:11-13).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 달려간다는 말은 목표를 앞에 둔 자가 그것을 향하여 민첩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표현인데 사단의 압박과 참소로 인한 고통에서 풀어 넓은 마음을 주시면 기쁨과 환희에 찬 마음으로 주님에 계명의 길로 신속히 달려가겠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시119:33-40-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나의 두려워하는 훼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는 선하심이니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히//에츠레나 에케브) - (히//에케브)는 문자 그대로 종말인데 이 의미를 취할 경우 본 구절은 인생의 종말을 맞을 때까지 주의 법을 지키겠다는 고백이 됩니다.
다른 뜻으로는 상급인데 이 의미를 취할 경우 본문은 상급으로서의 주의 법을 지키겠다는 고백이 되어 시19:11, 시40:15, 시70:3- 등에서는 주의 법을 지키는 것과 상급을 받는 것은 밀접한 관계성을 암시하고 있으며 주의 법을 준수하는 것은 그 자체가 상급이라고도 이해해 볼 수 있지만 본문의 흐름으로 봐서는 시인의 남은 인생을 사는 날 동안 마지막 순간까지 주의 율례의 도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깨닫게 하소서(히//하비네니) - 직역하면 이해시켜 주소서, 이니 율법의 특성 및 율법을 주시는 목적과 주신 법의 의미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갖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전심으로 -나뉜 두 마음이 아닌 하나의 마음으로, 라는 뜻이니 하나님의 가르침-법도 율례 주의 도-주의 말씀의증거만을 인생의 안내자로 삼겠다는 고백입니다.
주의 계명의 첩경(히//빈티브 미초테카) - 문자적인 의미는 당신의 계명들의 길이니 구불구불하지 않은 곧바른 길을 말하는데 이 올곧은 길을 다시 한 번 언급한 것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만을 따라 남은 인생을 헌신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말입니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 하나님의 가르침을 지켜 올곧은 인생을 산다는 것은 자신의 중죄를 사하신 구원의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필요됩니다(신5:29).
탐욕(히//바차) -부당히 얻은 소득이라는 뜻인데 70인역(LXX)은 이 용어를(헬//플레오녀시안)으로 번역하여 우상숭배 때 동반되었던 음란, 호색 행위를 뜻하는 (헬//플레오녀시아)와 그 철자가 거의 유사한 사실에 근거하여 (히//바차)를 우상 숭배, 혹은 음란, 호색으로 번역합니다.
본문의 탐욕은 다윗의 체험으로는 gpt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부당한 방법으로 취한 것과 관련되고 고전 5:10-에서는 음란한 자들과 우상숭배자들의 연관성을 암시하고 있으며 (히//바차)는 강제로 빼앗다, 부당하게 얻다 등의 의미를 갖는 용어입니다.
허탄한 것(히//솨우) - 이 용어는 도덕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것을 가리키므로 시인은 남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은 사실이 도덕적으로 심히 부당한 악행을 저지른 중죄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를 경외케 하는 주의 말씀(히//아쉐르 레이르아테카) -문자적인 뜻은 당신을 경외케 하는 (약속의 말씀)이니 이 구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구원을 약속하신 말씀에 강조가 두어진 표현입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훼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 시인이 앞의 22절과 본문에서 연거푸 훼방을 떠나게 해달라는 청원을 하는 것은 다윗이 중죄를 범하여 사단에게 훼방거리를 제공하므로 사단의 참소, 질책, 비웃음, 모욕, 조롱, 능욕, 치욕적인 비방을 떠나게 해달라는 간절한 호소입니다.
삼하 12:14-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 범죄자가 사단의 훼방을 받아 죽을 지경에 몰렸을 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고 피의 중재를 부탁할 수밖에 없는데 현장에서 간음 중에 잡힌 한 여자를 에워싼 자들의 돌에 맞아 죽을 처지에서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자신의 죄과는 너무도 당연한 결과를 불러왔다고 인정하는 도리 밖에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로 덮어주실 분은 오직 유일하신 구원자(중보자-대제사장) 예수님 밖에 없으니 주 예수여 당신의 옷자락으로 이 불쌍한 죄인의 영혼을 덮어주소서, 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훼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는 선하심이니이다- 사단의 훼방으로 인한 혼의 극심한 고통이 그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므로 본문에서 법도로 번역된 (히//피쿠데카)는 하나님의 지엄한 명령보다는 고통당하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의 말씀을 강조합니다.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 본문에서 시인은 주님의 구원의 말씀을 의식하면서 내가 주의 법도를 사모하오니, 라고 호소하였으며 주의 의에 나를 소성시켜달라고 청원한 것은 비록 중범죄를 저지를 자이지만 인간의 성정과 티끌로 조성된 연약함을 아시는 창조자께서 사단의 훼방을 견디지 못하고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자라도 돌이켜 주를 향할 때 저의 죄과를 사하시고 사단의 송사대로 판결하지 않고 은혜의 날개로 덮고 가려서 영혼을 소성시켜 주시는 하나님께 향한 간절한 호소입니다. 시편 119편 집회자료 첫 단락 끝.
(베다니의 아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