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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신18:13-19)-2017.8.20
불완전한 인간에게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는 말씀처럼 힘들고 어려운 말씀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말도 안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이 되는 말씀만 하십니다. 말도 안되는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되어집니다. 비록 인간이 불완전할지라도 하나님이 완전하라 하시면 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완전을 명령하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13절)고 말씀하시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완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염두 해 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시키시는 하나님이 아니시오, 이룰 수 없는 일을 무리하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당신이 친히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로 서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로 설 수 있을까요? 어떤 인간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길고 짧은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장단점이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천하 인간에 완전한 자는 없습니다. 완전한 인간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단의 사술에 빠진 사람들은 그들의 교주를 완전하다고 믿고 추종을 합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지요. 그것을 믿는 자체가 인간이 그만큼 불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모순덩어리요, 불완전한 덩어리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한 치 앞도 모릅니다. 흠과 점과 티가 많고, 허물과 실수투성입니다. 때문에 완전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그래야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완벽하고 완전한 것처럼 살아갑니다. 온갖 추태를 부리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럴지라도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마저도 자신들이 완전한 것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말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자신들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그런 자들은 자신들이 완벽한 것처럼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완전한 자처럼 군림하기도 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불완전함을 자신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상쇄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불완전한 인간들의 광기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을 요구하십니다. 만일 인간이 완전하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완전을 요구하실 리가 없습니다.
(1) 불완전한 인간에게 완전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인간의 불완전함을 아시면서도 완전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완전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완전은 이방 사람들이 말하는 완전과는 다릅니다. 이방인들은 자기들의 눈으로 볼 때 흠이 없는 상태를 완전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완전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완전은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본성에 따른 완전을 의미합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말입니다(사43:21).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입니다. 그래서 소요리 문답 제1문1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모든 일에나 말에나 어떤 행동에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고전10:3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을 삶의 전부로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마지못해 억지로 하거나, 의무감에 매이게 되면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즐겁게 해야 합니다.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은 어떤 일이나 상황에서든지 만족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만족은 우리 안에 당신의 영광이 드러날 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영광과 존귀함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완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범죄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우리가 노력하고 수고해도 안됩니다. 경건하게 살아가려고 몸부림을 쳐도 안됩니다. 금식하고 철야기도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해주시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련하신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오셔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직접 우리 안에 오셔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다만 영이신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직접 오실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자기 안에 있는 독생자를 우리에게 나타내주신 것입니다(요1:18). 그리고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영접하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안에서 일하시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이루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의 만족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만족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모든 뜻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안에서 당신의 뜻을 보이시고 당신의 뜻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내 안에서 일하시는 주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그분의 마음을 구하고 그분이 말씀하신대로 행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만족하십니다. 하나님의 만족은 나를 하나님의 완전한 자로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것이 완전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보는 완전과 하나님이 보시는 완전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완전은 불완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완전하신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완전케 하시면 우리는 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려는 것은 죄악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선행을 통해서 완전해지려는 무모한 시도를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으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지려는 어떤 시도도 가증스런 죄악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고 버림당한 율법주의자들을 기억하십시오.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의 열심을 과연 어떤 사람이 추종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선행을 감히 어떤 자가 모방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스스로의 종교적인 열심과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처럼 군림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님은 없었습니다. 주님 없는 율법의 열심이 그들을 버림받게 한 것입니다. 결코 어떤 사람도 율법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는 말씀을 말입니다(신30:11).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11:45)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게 하시므로 충분히 우리도 거룩하게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완전을 요구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완전한 자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완전한 자로 설 수는 없지만 완전하신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완전한 자로 세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완전하신 하나님만 신뢰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섭리가 완전합니다. 율법도 완전하고 복음도 완전합니다. 사랑도 완전하고 은혜도 완전합니다. 그분의 축복이 완전하고 구원도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이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 어떤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자존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며, 시작과 끝이십니다. 못하실 것도 없고, 못하실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완전하라고 말씀하심은 분명한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2)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완전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면 누구든지 의로운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의의 기준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으면 어떤 인간도 의로워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듯이, 하나님의 완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의 완전을 맛볼 수 없고, 이룰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완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완전을 나타내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완전을 드러내고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 자는 하나님의 완전을 맛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어디서도 하나님의 완전을 구경할 수 없고, 맛 볼 수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완전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본문 15절을 읽어 보십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그 선지자는 장차 우리 가운데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그 선지자는 선지자 모세와 같이 선지자의 성격과 역할은 같을지라도, 사역의 방향과 방법은 전혀 다르십니다. 물론 본문은 선지자 제도에 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출애굽한 모세가 하나님의 언약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광야로 소집하였습니다(출19:7).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하나님의 산에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합니다. 백성들은 산 밑에서 모세를 기다립니다. 물론 그들도 하나님의 현현하심을 먼발치에서 목도합니다. 비록 멀리서지만 우레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보면서 그들은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그 때 백성들이 모세에게 중대한 제안을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말고 모세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듣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대언자를 세워달라는 것이지요. 공식적으로 선지자 제도를 요청한 것입니다(출20:19). 드디어 이스라엘은 선지자 제도가 합법적으로 세워집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모세입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옛 언약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을 모세를 통해서만 전달하셨습니다. 모세는 옛 언약의 중보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십니다(히9:15). 예수님은 선지자요, 제사장이시며, 왕이십니다. 그런데 선지자 제도는 같아보일지라도 사명이 다르고, 사명을 이루시는 방법이 다릅니다. 모세는 의문에 새겨진 율법을 가지고 사람을 통해서 배우고 가르쳐서 지키라고 요구하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직접 우리 가운데 오셔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지키도록 우리 마음을 주관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케 하시려고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마5:17).
모세는 기록된 말씀만 가지고 말씀하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이 곧 말씀이 됩니다. 그분은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완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하나님의 완전을 찾아볼 수 없고, 구경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완전이 모든 만물 위에 충만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완전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완전은 율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율법이 불완전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완전한 법이지만, 그 완전한 율법을 지키는 우리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어떤 인간도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완전을 이루어드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율법으로 안되기 때문에 다른 선지자를 일으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새 언약의 중보자를 보내주신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누구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완전에 이르려면 반드시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왕, 나의 머리, 나의 전부로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행하실 것을 전적으로 믿고, 그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그분이 주시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완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하심으로 완전하신 그분의 처소가 된 나는 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어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그분의 성전이 되기 때문에 완전하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너희가 하나님의 거룩한 전 인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불완전한 장막에는 거하시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것은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완전해진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에서 사람들이 많은 공격을 받습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자기를 공격합니다. 감히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완전할 수 있냐고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속을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분명히 우리는 완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완전하시다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완전합니다. 사람의 완전과 불완전함의 판결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자를 완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생명은 예수 안에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성전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믿는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완전한 자로 부르심을 입은 자요, 하나님의 완전한 자로 세우심을 입은 자입니다. 때문에 누가 무어라고 할지라도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머리 삼고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살고 계시다면 당신은 분명히 하나님의 완전한 자입니다.
(3)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의 완전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완전은 믿음의 완전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완전한 자는 완전한 믿음을 가진 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6:9). 노아가 완전하다는 말씀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 때문입니다. 또한 다윗은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완전했다고 고백합니다(시18:23, 26:11). 이는 그가 교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기 믿음이 하나님 앞에서 그만큼 진실하고 정결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믿음의 완전함은 이룰 수 있습니다. 믿음의 완전은 성숙한 믿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6장1-2절은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완전한데 나아가라’는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초보적인 교리를 벗어버리고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완전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이것입니다. ‘완전한 믿음은 없을지라도, 믿음의 완전은 충분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믿음의 완전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주님이 내안에서 사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유는 육신을 입고 사는 인간은 완전치 못하나 믿음의 완전함은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으로는 아무도 완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율법의 완전함을 추구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율법과 복음의 경계선을 드나들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처음부터 믿음으로 산 사람이 아닙니다. 이방인인 그는 당연히 율법 밖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율법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율법을 통해서 복음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것만이 그가 의로워지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율법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후손의 복을 주신다는 말씀과 함께 후사를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월은 흘러가는데 그 약속이 지켜질 기미가 안보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지켜드려야겠다는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육신의 생각으로 말입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단은 우리가 조급할 때 장난을 칩니다.
사라가 자기 몸종 하갈의 몸을 빌려 후사를 생산해 보라고 귀띔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들을 때 참으로 솔깃한 제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지만 세월은 지나고 육체는 노쇠해져가고 그들의 마음이 매우 다급해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체면을 조금이라도 세워드리고 싶은 꼼수가 떠올랐던 것입니다. 때문에 아브라함은 사라의 율법적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드립니다. 드디어 그들로부터 이스마엘이라는 율법의 자녀가 탄생합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3년 동안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모든 교제를 단절하십니다.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이 우리에게 져주십니다. 하나님이 먼저 아브라함에게 손을 내미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더 급하십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고 말입니다. 이 말씀의 의도는 네가 무엇이든지 하지 말고 내가 너로 하여금 하게 하도록 잠잠 하라는 충고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까 나의 전능을 믿고 신뢰하라는 말입니다. 나는 완전한 하나님이니까 나의 완전을 믿고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전적으로 믿으라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의 완전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의 완전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갑자기 완벽하고 완전해지는 것을 원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갖고 있는 믿음의 완전을 원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완전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완전은 하나님만 믿고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율법으로 넘어졌다가 복음으로 일어섰습니다. 자기 의로 넘어졌다가 믿음으로 일어섰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율법으로 철저히 무너지고 깨어지고 부서져야만 복음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만나야만 복음의 은혜를 맛볼 수 있습니다. 복음의 은혜를 경험한 자는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완전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의 옷을 벗고, 율법의 때를 벗겨야 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완전을 부정하고 자기의 완전을 드러내려는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으로 완전하려 하는 자는 율법으로 망합니다. 검을 든 자가 검으로 망하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완전에 이르려면 반드시 복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복음의 옷이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사람만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람입니다.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완전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완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지요. 그것도 완전한 믿음의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완전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완전한 믿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를 내 심령 성전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사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믿음입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완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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