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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 15:1-8)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그중에도, 사과나 딸기를 비롯하여, 과일값이 너무 올랐습니다. 과일을 사려고 하다가도,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이 가장 비싼 때인가? 다음에 왔을 때, 더 비싸지는 것은 아닌가?” 당장 가격이 떨어질 것 같지가 않아, 과일을 사게 됩니다. 과일뿐만이 아닙니다. 채소 가격도 많이 올랐습니다.
가격 걱정할 것 없이, 마음 편하게 과일이나 채소를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월, 대전 외곽의 포도 농장 일대에서, 한 달 사이 포도나무 백 그루가, 밑동만 잘린 채 사라지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져,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고 하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피해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포도나무마다 가지치기까지 한 뒤, 톱으로 예리하게 잘려 나간 흔적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었습니다. 포도나무는 뿌리 없이 몸통만 심으면, 다시 살아나지 않는데도, 밑동만 남긴 채, 훔쳐 갔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하는 농장주들의 주장이었습니다. 아직 범인을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누가 그리했을까요? 왜 밑동은 캐가지 않고, 몸통만 베어갔을까요?
요즘, 가로수의 나무들을 가지치기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잘려진 가지들은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요? 그 잘려진 가지들이 어딘가에서, 원래의 나무처럼, 다시 자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겨울 내내 말라비틀어져 다 죽은 것처럼 보였던 나뭇가지들에서 새로운 잎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새로운 잎이 피어나는 것일까요? 결론은, 그 나뭇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튼튼한 가지일지라도, 잘려진 후에는 새로운 잎이 피어나지 않습니다.
한겨울 내내 죽은 것 같던 앙상한 나뭇가지라도,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봄이 오면, 파란 잎이 나오고, 꽃도 피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올해에는 꽃들이 예년에 비하여, 빨리 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데, 들판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들을 따스한 햇살 아래에서, 많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고 보니, 작년에 갔다왔던 구례 산수유꽃 축제가 어제(9일)부터 열리고 있습니다. 새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봄꽃 축제들이 여기저기서, 벌써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날씨는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우리의 얼어붙었던 마음들이 봄꽃처럼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햇살 찬란한 봄날을 기대하고, 기다려봅니다.
1절 말씀입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셨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우리는 어떻게 얻을 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 합니다. 나뭇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을 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 생명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새봄의 정치를 맘껏 누릴 수 있는 산수유가 피어나는 것은 가지들이 나무에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떨어진 가지에서는 파란 새싹도, 아름다운 꽃도 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살아 있다고는 하나, 사는 것 같지 않는 그런 불행한 삶이 아니라, 살아 있음으로, 정말 사는 것 같이 사는, 그런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활력있는 삶을 살려면, 예수님 곁에 달라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지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참 포도나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참포도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떨어지면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잎이 피어나지도 않고, 아름다운 꽃도 피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는 “나는 생명의 떡이니”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그 다음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그들의 영적인 양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관심사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하였고,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라고 말하면서, 예수님 곁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돌아서서, 뒤도 안보고 가버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훗날, 그 자리에 있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예수님을 팔아먹은 자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고, 붙어 있음으로 인해, 예수님의 사도로 길이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누구나 잘못할 수 있습니다. 실수하고, 잘못을 했을지라도, 예수님 곁에 붙어 있으면, 실수와 잘못을 만회할 수 있지만, 떠나버리면, 영원히 죄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름다운 믿음의 꽃도, 열매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왜, 자신이 요한복음을 기록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그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놓았습니다. 요한복음 20:31절 말씀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히 4:12)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활력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선행이나 공로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생명있는 말씀이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욥기 22:22절을 보면,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욥에게, “너는 하나님의 입에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있는 말씀은 영원히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 40:8)라고 말했습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합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 8:4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요일 2:24)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을 사모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포도나무이신 주님에게 붙어 있는 사람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 “생명의 떡”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후에는 “세상의 빛”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후에는 “부활이요 생명”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그리고, “참포도나무”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육신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들처럼,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라며 수군거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곁을 떠나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을 떠났을지라도, 끝까지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은 믿음의 열매를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예수님 곁을 떠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 곁을 떠나면, 더 잘 살 수 있고, 더 자유로울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아, 떠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후회하게 될 일만 있을 것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배고픈 자요,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둠 속을 헤매는 자요, 예수님은 우리의 빛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앞날을 제대로 분간 못하는 양이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선한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자이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떠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떠나,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곁을 떠나, 자유를 외치며,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그들이 지혜로운 것 같고, 훌륭한 것 같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도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적으로 보았을 때,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는 것이 어리석고 미련한 것 같아보일지라도, 끝까지, 예수님 곁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생명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교회력으로,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사순절 기간 동안, 요한복음을 다시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요한복음을 읽어보면 볼수록, 요한복음의 주제는 “생명”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살아 있으나, 사는 것 같지 않는 삶을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생명 주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때에 따라, 잎도 피고, 꽃도 피고, 열매 맺으라고 생명 주신 것입니다.
1절을 보면,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라고 말씀하셨고, 5절을 보면,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우리에게서,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팔복의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이나,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 것은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듯 합니다. 특별히 헌신된 사람들이나, 그런 팔복의 삶을 살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는 것이지, 나 같은 사람들은 그저 예수님 믿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무난하게, 평안하게 살다가, 천국만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목회자로, 선교사로 헌신하는 사람들만, 특출나게 헌신하는 사람들만, 팔복의 삶을 살아야 한다거나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나,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열리는 것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붙어 있기만 하면, 열매는 맺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열매 맺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5절 말씀을 자세히 들여다 보십시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에게 붙어 있기만 하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지만, 예수님에게 붙어 있기만 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떡을 먹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는 것처럼,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어둠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는 것처럼,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4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 길만이 생명력있고, 활력있고, 생동감 넘치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다른 데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다른 데에 머물려고, 이상한 것에 관심을 갖고, 기웃거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은 오직 예수님에게 고정하고,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에게 전부 쏟아야 합니다.
우리는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열매 맺기 위해서 애쓸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 애써야 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머무는 시간을 갖고자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3:20절 말씀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는 예수님을 문밖에 세워두어서는 아니됩니다. 문을 열어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예수님을 내 마음 안으로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5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7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4절)
여기저기서, 꽃 축제를 한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꽃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 축제 자리에 가기만 하면 됩니다. 향긋한 꽃내음새와, 아름다운 꽃잎과 말로 다할 수 없는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꽃밭 한 가운데 있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에게로 달려가서, 하나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그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음으로 인하여, 때에 따라, 새 잎도 피우고, 아름다운 꽃도 피우고, 풍성한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만 의지합니다.
주님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 안에 항상 계시옵소서.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나와 항상 동행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