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후 디지털자료실에 들렀더니 내 앞에 할머니 한 분이 먼저 기다렸다. 디지털자료실은 좌석을 배정받아야 활용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차례가 되자 검색대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손수 입력했다. 어깨 너머로 얼핏 보니 41로 시작하는 번호였기에 놀랐다. 내 나이보다 열여덟 살이나 많은 분이었다. 이 할머니는 일반자료실에서도 가끔 뵙는 분으로 영혼이 참 맑고 꼿꼿한 분이었다.
앞 문단은 내가 작년여름 비가 오던 날 창원시립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고 남긴 글의 일부다. 내가 뽑은 글제는 ‘청보우독(晴步雨讀)’이었다. 맑은 날은 산과 들로 쏘다니다가 비가 오는 날엔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였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하더니만 꼭 일 년 뒤 비가 오는 날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냈다. 나는 도서관 문이 열리는 아침 9시에 맞추어 갔다가 저녁 6시에 빠져나왔다.
그간 며칠 동안 창원근교 산자락을 부지런히 오르내렸다. 남들이 잘 다니지 않는 숲속을 걷다보니 묵은 참나무등걸 아래 돋은 영지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 영지를 고향 큰형님 앞으로 택배를 먼저 보냈다만, 어제는 울산 작은형님한테도 좀 보내 드렸다. 영지 채집한다고 기회비용은 지출했다. 남들은 잘 타지 않는 옻이 올라 병원을 두 차례 다녔다.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비가 흩날리기에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은 정해졌다. 간단한 메모지 정도 챙겨 우산을 받쳐 쓰고 휑하니 도서관으로 갔다. 나는 신착도서 코너에서 읽을거리를 몇 권 뽑았다. 이어 건강과 자연에 관한 책을 주섬주섬 가렸다. 2층 일반자료실 열람석에는 내가 제일 먼저 앉았다. 휴대폰은 아예 전원을 꺼 버렸다. 오전에는 의사들이 쓴 마음의 건강과 성인병에 관한 책을 읽어 내렸다.
점심은 지하 구내식당에서 비빔밥으로 해결했다. 커피나 다른 음료는 한 잔 들지 않고 곧바로 자료실로 올라 건강식에 관한 책을 읽었다. 이어 자연과 생태에 관한 책으로 옮아갔다. 강원도 산골로 들어간 방송프로듀스가 쓴 숲에 관한 책과 조류학자가 쓴 습지와 새에 관한 책이었다. 4층의 열람실과 연속간행물실은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만 2층 일반자료실은 저녁 6시에 마감했다.
아침에 뽑은 책 가운데 ‘나무와 숲에 숨져진 비밀, 역사와 한자’는 읽지 못하고 서가에 다시 꽂아두었다. 다음날 언제 들려서 가장 먼저 펼칠 책으로 남겨 놓았다. 도서관에서 나올 때면 으레 대출실로 가서 책을 빌렸다만 그냥 나섰다. 서가의 책을 정리한다고 당분간 대출업무는 쉬고 있었다. 나는 시민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는 창원시의 공공도서관 정책에 높은 평점을 보낸다.
금년 여름 마산과 진해가 합쳐 통합 창원시가 되었다. 마산과 진해에도 도서관이 잘 운영되는 것으로 안다. 창원의 시립도서관 중심은 용지호수 뒤 산자락에 있다. 내가 사는 동네 근처기에 자주 들려 이용한다. 이밖에도 아파트나 주택단지 곳곳 작은 마을도서관도 있다. 근래 시립도서관 분원이 세 곳이나 더 생겼다. 규모 면으로는 종갓집서 분가한 작은집이 더 크고 시설이 좋다.
시내 중심에 상남도서관이 있고 창원역 가까운 곳에 아동문학가 이원수선생을 기리는 ‘고향의 봄 도서관’이 있다. 최근 대방동과 성주동 일대 대단지 아파트 주민들이 이용에 편리하도록 성주도서관이 개관했다. 나는 이 세 곳을 모두 찾아가 보았다. 시민들의 문화 향유 욕구와 수준에 맞는 시설이었다. 그래도 내가 익숙하고 자주 이용하는 곳은 사는 동네에서 가까운 시립도서관이다.
그동안 시립도서관 휴관일은 아주 적었다. 1월 1일, 설날, 추석날. 3일만 공식 휴관이고 다른 날은 연중무휴 개관이다시피 했다. 도서 대출과 반납 업무는 밤 10시까지 해주기에 직장인이 퇴근 후에도 마음 놓고 들려 좋았다. 그런데 통합 창원시가 되면서 도서관 휴관일이 주 1회로 늘어났다. 내가 사는 동네 가까운 시립도서관은 금요일이 쉬는 날이다. 그날 비가 오면 나는 어떡하지. 10.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