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을 찾는 큰 이유는 몸이 허약해서이거나, 어딘가 아파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몸이 약한 경우는 허증이라고 하고, 어디가 아픈 것은 실증이라고 본다. 실증은 불편한 느낌이나 통증을 수반하는게 보통이다. 이럴 때 우리가 한의사로부터 흔히 듣는 설명의 하나가 ‘담’이다.
[환자] ‘이렇게 결리는 것을 보니 담이 맞지요?’,
[한의사] ‘예, 기침과 가래도 나오고, 손발이 찬걸 보니, 한담이 들었군요.’
한의원에 자주 드나들다보면, 담(痰)이 예사로 들린다. 이것도 ‘담’이고, 저것도 ‘담’이다. ‘담’은 코에도 걸 수 있고, 귀에도 걸 수 있는 병명이라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어디가 아프면 흔히 ‘담 결린다’, ‘담이 들었다’고 표현한다. ‘담’이 어디있기에 결리고, ‘담’이 무엇이기에 들었단 말인가?
담이 들다
담은 크게 눈에 보이는 담과 보이지 않는 담으로 나눈다. 보이는 담은 우리 말로 가래라고 표현하는데, 호흡기도에서 만들어져서 우리의 입으로부터 토해나오는 것으로 폐하고 관련이 있다. 우리는 매일 갖가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등을 들이마신다. 이러한 균들은 대부분 코와 목에서 분비되는 리소자임이라는 강력한 살균물질에 의해 죽는데, 가래는 이들의 시체와 호흡기도에서 분비된 점액들이다. 이 가래는 우리 몸안으로 깊숙히 들어오지도 않고, 우리를 결리게 하지도 않는다.
우리의 눈에 띄지 않는 내담(內痰)은 몸안 여기저기에서 전선없는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 게릴라처럼 얼굴없는 전사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을 가래처럼 밖으로 쫒아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가래는 그 모양이 일정치 않지만, 몸안의 담은 혹과 같은 덩어리를 형성하기도 하는데, 신경절의 융기, 림프선이나 갑상선의 종대, 피하 지방 형성체, 심지어는 담결석과 신장결석 등도 한의학에서는 담이라고 본다. 담이 경락에 들어가면 마치 부어 오르듯이 경락의 흐름을 가로막아 경락의 순환기능을 저해한다. 저리고 마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그 구체적 나타남이다.
담은 그 성질이 미끄러워서 인체의 기와 혈의 흐름을 따라 오르내리며 온몸 구석구석까지 이르러 다양한 질병들을 일으킨다. 예를 들자면, 폐에 들어가면 기침과 가래를, 위장에 들어가면 오심구토, 가슴앓이, 속이 더부룸함, 설사 등을; 머리에 들어가면 두통, 두중, 어지럼증, 정신혼미; 가슴에 들어가면 가슴 두근거림, 불안, 우울증, 정신분열증, 불면증, 유방혹; 팔다리에 들어가면 사지마비, 저림, 사지궐냉, 동통; 등등을 일으킨다.
현대의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급-만성 기관지염, 기관지 천식, 인후염, 신경성 구토, 식도염, 이원성 현훈, 고혈압, 신경성 두통, 심혈관계질환, 뇌혈관병후유증, 정신분열증, 갑상선종대, 임파선결핵, 종창, 피하결절, 각종피부질환, 만성 궤양성질환, 불임증, 종양, 암 등등이 담과 관련이 있다.
담은 왜 생기나
우리 몸은 기혈의 순환이 잘 되고, 세포에 영양공급이 충분히 되어, 세포가 생명력이 충만한 진액으로 채워져 신진대사가 원만히 이루어지고 있을 때를 건강체라고 본다. 우리 몸은 이러한 생명활동을 위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만약 우리 몸안에 있으면서 이와같은 생명활동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물질이 있다면 마땅히 제거와 배설의 대상이다. 한의학에서는 이와같은 비정상적인 체액을 통틀어 습 또는 담이라고 한다. 습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외습과 몸안에서 생산되는 내습으로 나누지만, 담은 순전히 몸안에서 생산되는 노폐물이다.
습은 노폐물의 무거운 찌거기와 같다면, 담은 노폐물의 가벼운 거품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습은 담보다 그 성질이 무거운 편이어서 인체의 하부에 머물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대신, 담은 주로 인체의 상부에 영향을 미친다. 습은 장부나 관절과 같은 일정한 장소에서 병변을 이루며 병적 증상을 나타내는데, 담은 피부 밑과 경락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문제를 일으키는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갑자기 가슴·허리·등·다리·사타구니 등지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아플 때도 있으며 쑤시는 등의 다양한 증상을 나타낸다. 습은 바람이나 추위, 열과 어울려 풍습, 한습과 습열 등을 일으키지만, 담은 풍, 汗寒), 열, 습, 화(火), 기(氣), 음식 등과 쉽게 결합하여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 몸에서 체액을 만들어내고 관리하는 장부는 폐와 비위, 그리고 신장이다. 폐는 산소를 공급하여 세포로 하여금 비장으로부터 흡수한 곡기(탄수화물)와 반응시켜 물을 만들어 내고, 이 물을 온몸으로 확산시킨다. 비장도 우리 몸에 필요한 대부분의 수분을 섭취하여 온몸으로 보내는 일을 하는데, 물을 뿜어 필요한 곳에 보내려면 모터가 좋아야 하듯이 비장의 기운이 좋아야 이 일을 잘 할 수 있다. 비장이 약해지면 이 수분대사 기능이 떨어져 몸안에 습이 쌓이게 된다. 습은 세포의 신진대사 작용으로 신장에 보내지는데, 신장은 이 노폐물을 소변으로 내보내고, 체액을 다시 재활용하는 일을 하고 있다. 담은 이들 폐-비-신 3기관의 기능이 떨어져 수분대사 작용에 차질을 빚어 수분이 몸안에 지체되었을 때 생긴다. 습은 담으로 변할 수 있지만, 담이 습으로 변하는 경우는 없다. 담이 습보다 더 고질적이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