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착취물’이 범죄인 줄 모르는 자 없다
- 대통령의 디지털 성범죄 대응 주문에 부쳐
22만 명에 달하는 ‘딥페이크 성착취물’ 제작 텔레그램 대화방의 존재에 시민들이 공분하고 있는 가운데, 지역·학교·직군별로 나뉜 텔레그램 대화방들이 대규모로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연이어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오늘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딥페이크 영상물은 명백한 범죄 행위”라며, “우리 누구나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관계 당국에서는 철저한 실태 파악과 수사를 통해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아 달라”고 발언했다. 2022년, 임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디지털 성범죄를 5대 폭력에 포함하고 피해자 보호·지원 강화를 국정과제로 삼은 대통령의 발언이라 하기엔 참 앞뒤가 없다.
소라넷, 텔레그렘 N번방 등의 사건을 거치며 디지털성범죄가 그 이름 말마따나 범죄라는 사실, 그리고 이를 근절하기 위해 정부가 애써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상식이 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오늘의 발언에 담겨야 했던 것은 그간 정부의 노력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앞으로 정부가 집중적으로 추진해야 할 구체적인 과제, 그리고 강력한 실행 의지의 표명이었어야 했다.
본 사태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정당과 국회도 바빠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원내대책회의에서 현행법을 개정하여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이용한 성범죄 처벌 강화를 추진하고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겠다고 밝혔고, 국민의힘 또한 당 대표 주재 긴급 현안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임을 알렸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도 기자회견을 열어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현황을 점검하기 위한 여성가족부 등을 대상으로 긴급 현안 질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정부, 국회, 정당 모두 이 사태를 제대로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당연하게도 본 사태의 핵심이 성차별에 있기 때문이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대통령이, 성평등 정책 총괄 부처인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던 대통령이, 부처 폐지에 실패하자 장관을 공석으로 두고 있는 대통령이, ‘남성’ 유권자의 표심을 잡겠다며 성평등 정책 및 입법은 뒷전이었던 국회와 정당이 과연 이 문제의 본질을 꿰뚫으며 해결해 나갈 수 있겠는가.
우리는 작년, 논란이 되었던 2024년 여성가족부 예산안을 기억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제작된 홍보물을 사용하면 된다며 ‘디지털성범죄 예방교육 콘텐츠 제작’ 예산을 전년 대비 대폭 삭감한 예산안을 제출했고, 여성폭력 예방의 기본이 되는 교육예산의 삭감은 절대 안 된다는 현장의 수많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 예산은 국회의 심의를 거치면서도 확보되지 않았다.
작금의 사태는 여성을 동료 시민이 아닌, 유희거리로 ‘취급’하고, 성적 대상으로만 소비하는 성차별적 문화, 이를 통해 돈을 버는 산업구조의 확대·양산, 그리고 이 산업을 규제하지 않는, 그리하여 누구를 ‘보호’할 것인지를 직·간접적으로 명확히 하는 정부, 가해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수사·사법기관, 관련 정책 감시에 소홀하며, 입법 공백을 방관한 국회의 합작품이다.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뿌리 뽑겠다고 했는가. 정부는 범정부종합대책 마련하고 즉각 실행하라. 수사·사법기관은 해외 SNS는 수사 협조가 어렵다는 변명을 중단하고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수사하고, 가해자를 분명히 처벌하라. 국회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법·제도를 정비하라.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뿌리 뽑겠다고 했는가. 무엇보다 피해자의 목소리, 분노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피해자 중 한 명은 ‘나 말고도 이런 피해자들이 더 많은 것도 알고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봐야겠다’라고 생각하며 1년여간 텔레그램방에 접속해 자료를 모았다고 한다. 국가는 더이상 피해자 개인이 스스로를 구원하게 하지 말라. 국가가 존재함을 증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