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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신인 지명회의에서 8개 구단의 1라운드에 지명된 유망주들. (사진 왼쪽부터) 넥센 윤지웅, SK 김민식(1차 지명자 서진용은 불참, 김민식은 2라운드 지명자), 롯데 김명성, LG 임찬규, KIA 한승혁, 삼성 심창민, 한화 유창식, 두산 최현진 |
야구 유망주들엔 꿈을 펼치려고 내딛는 첫발이자 구단엔 미래를 좌우할 재목을 뽑는 자리. ‘2011 프로야구 신인 지명회의’가 8월 1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렸다.
“1라운드 지명자는 지난해보다 낫다”는 평가 속에 8개 구단은 치밀한 전략과 지략으로 더욱 나은 선수를 지명하려고 애썼다. 최현진(충암고), 유창식(광주일고), 한승혁(덕수고), 임찬규(휘문고) 등 고교야구 유망주들과 윤지웅(동의대), 김명성(중앙대) 등 대학야구 선수들도 8개 구단의 부름을 받으려고 지명 현장에 나타났다.
결국, 10라운드까지 진행된 ‘2011 신인 지명회의’에서는 총 78명이 프로구단의 지명을 받았다. 지원자 708명 가운데 11% 만이 프로의 ‘좁은 문’을 통과한 것이다.
8개 구단의 신인 지명 전·후를 비교 분석했다. 덧붙여 8개 구단 스카우트들의 리포트와 객관적 자료를 종합해 이번에 지명된 78명의 간략한 스카우팅 리포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해당 팀의 전시성 시각이 아닌 더욱 객관적인 시각으로 지명 선수들을 살펴보자는 의도다.
(+해당 선수의 신체조건과 구속은 지명팀이 아닌 타팀의 스카우트 리포트를 참고했다. 신체조건과 구속을 과장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히든카드를 집어든’ SK 고교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나온 김민식(사진 윗줄 맨 왼쪽). 외모만큼이나 무척 진중한 선수다
SK는 2007, 2008시즌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2007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4년 연속 정규 시즌 1, 2위를 다투고 있다. 2000년대 KBO 리그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팀인 것이다. 그러나 2군 인프라는 강팀과는 거리가 멀다. 모그룹 SK와 구단 고위층이 2군 연습장을 확보하려 노력했지만, 각종 행정규제에 묶여 건립이 늦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SK는 스카우트팀의 저력과 1, 2군 코칭스태프의 노력에도 유망주 성장이 더딘 팀으로 꼽힌다.
신인지명 전(前)
지난해 투수 5명, 포수 1명, 내야수 3명 등 총 9명을 지명한 SK는 올 시즌도 투수 중심으로 지명할 뜻임을 밝혔다.
그러나 1라운드에 누굴 지명할지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SK 허정욱 스카우트는 “1라운드 7순위 지명이라, 우리가 원하는 선수를 과연 지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과거 현대 시절 송신영, 조용준, 신철인, 배힘찬, 이현승, 김수경, 손승락(이상 현 넥센), 장원삼(삼성)을 실질적으로 뽑고, SK에서 정우람, 김광현을 선발했던 투수출신의 허 스카우트는 뭔가 묘수가 있는 듯했다.
지난해까지 1군 배터리코치였다가 올 시즌부터 스카우트팀에 합류한 박철영 스카우트는 “최정, 나주환의 부상 혹은 입대를 대비하려면 내야 유망주도 뽑아야 한다”며 “노장 박경완과 정상호, 이재원의 부상을 대비해 백업 포수가 필요한 만큼 포수 유망주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SK 스카우트팀은 김성근 감독의 성향도 고려했다. 김 감독은 실력이 부족해도 야구 열정이 높은 선수를 선호한다. 그러니까 신인 지명 시 인성을 중시한다는 이야기. 투수 출신과 포수 출신 스카우트로 절묘하게 구성된 SK 스카우트팀은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유망주를 찾으려고 전국을 누볐다.
신인지명 후(後)
1라운드 7순위 지명권을 행사한 SK는 뜻밖의 선수를 지명했다. 경남고 오른손 투수 서진용이었다. ‘뜻밖’이란 표현에 걸맞게 서진용은 8개 구단 스카우트 사이에서 “1라운드는 뽑히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를 받았었다. SK 스카우트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SK 스카우트팀이 내심 바랐던 투수들이 앞선 6개 구단의 지명을 받으며 결국 서진용 카드를 집어들었다.
허 스카우트는 “지난해만 해도 1라운드 지명 예상자 가운데 다른 팀의 지명을 받지 못해 우리에게까지 기회가 온 경우가 있었으나, 올 지명회의에선 그런 변수 없이 6명의 투수 모두 다른 팀의 지명을 받았다”며 “이에 대비해 준비했던 서진용 카드를 자연스럽게 들었다”고 설명했다.
허 스카우트의 말대로 SK는 서진용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내색하면 ‘다른 팀에서 지명할까’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허 스카우트는 “지금의 실력만 놓고 보면 서진용보다 좋은 투수들이 있었지만, (서진용이) 성장 가능성이 가장 풍부한 선수라는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SK는 2라운드 10순위에서 왼손 투수들인 이현호(제물포고)와 김민식(부산 개성고)을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눈에 보이는 성과는 이현호가 앞섰다. 게다가 이현호는 연고지 선수였다. 그러나 SK 스카우트팀은 향후 발전 가능성에서 김민식이 앞선다고 판단했다.
3라운드 23순위로 지명한 외야수 정진기(화순고)는 운이 좋은 경우였다. ‘설마 3라운드까지 남을까’ 할 정도로 주목받았던 고교 야수였기 때문이다.
만족도 (조성우 스카우트팀장) ★★★★
전면 드래프트제로 바뀐 이래 2년 연속 1라운드 8, 7순위 지명권을 행사하면서 대어급 선수들을 번번이 놓쳤다. 올 신인 지명회의에서도 잡고 싶은 선수를 눈앞에서 놓쳤다. 하지만, ‘꼭 지명하자’고 계획했던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어 만족도는 높다. 별 네 개 정도를 주고 싶다.
아쉬움
1라운드 1순위부터 6순위까지의 투수 가운데 한 명은 남을지 알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다른 팀에서 모두 지명하면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 내야수 허일(광주일고)를 놓친 것도 아쉽다. 9라운드에서 지명을 마감한 이유는 1, 2군 선수들과 올해 제대 예정자 7명을 합친 선수단 규모를 고려할 때 10명 지명 시 선수단 규모가 정해진 범위보다 초과하기 때문이었다.
SK 스카우팅 리포트
서진용은 자신이 지명될 줄 몰랐다. 그래서 신인 지명회의장에도 나오지 않았다. 사진은 2라운드 지명자 김민식(사진 왼쪽)이 SK 민경삼 단장과 악수하는 장면 |
투구 밸런스가 좋다. 부드러운 투구동작에 손목 활용이 뛰어나 공 끝이 좋다는 평가다. 변화구로는 스플리터가 돋보인다.
그러나 마운드 위에서의 경기 운영능력은 1라운드에 지명된 다른 투수들보다 떨어진다. 이유가 있다. 원래 서진용은 내야수였다. 올 초, 투수로 전향했다. 마운드에 오른 지 10개월이 채 되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SK 허정욱 스카우트는 “투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기 운영능력이 미숙하고, 구종이 단조롭긴 하지만, 나쁜 투구 버릇이 몸에 배지 않았다는 장점도 있다”며 “2군에서 체계적인 투수수업을 받으면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투수”라고 평했다.
덧붙여 허 스카우트는 “타자를 압도하는 강력한 구위의 파워 피처가 됐으면 한다”며 “서진용이라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고교 감독은 “1라운드 투수 가운데 이름이 덜 알려졌지만, 성장가능성은 가장 큰 선수”라며 “눈을 보면 독기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2. 김민식, 포지션 : 투수, 좌투·좌타, 투구 스타일 : 오버핸드 스로우, 약력 : 부산 개성고, 신체조건 : 188cm/90kg, 올 시즌 최고구속 시속 144km
왼손 강속구 투수다. 허 스카우트는 “‘왼손 강속구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잡아오라’는 야구계의 격언을 그대로 따랐다”며 “이현호가 뛰어나긴 했지만, 김민식의 발전 가능성을 조금 더 크게 평가했다”고 말했다.
188cm, 90kg로 체격 조건이 뛰어나다. 속구 평균구속이 시속 140km 중반대를 유지한다. 특히나 릴리스 포인트가 높아 타자들이 공략하는데 애를 먹는다. 변화구 구사능력도 뛰어나다.
모 스카우트는 “기량발전이 빠른 선수”라며 “투구 밸런스가 좋아 프로에서 1, 2년 다듬으면 좋은 선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제구가 흔들리는 게 흠이다. 경기운영능력에 의문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2군에서 경험을 쌓는다면 제구와 경기운영능력 모두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
신인 지명회의장에 고교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양복을 빼입고 나왔다. 말투도 고교생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진중하다. 성격 역시 대범하고 화통해 프로에 잘 적응할 선수로 꼽힌다.
제대로 성장하면 권혁(삼성)의 뒤를 잇거나 뛰어넘을 투수다.
3. 정진기, 포지션 : 중견수, 우투·좌타, 약력 : 화순고, 신체조건 : 180cm/72kg
공수주 3박자를 갖춘 선수다. 특히나 수준급 주루가 돋보인다. 매사 성실하고 근성 있는 플레이로 “싹수가 보인다”는 평을 들었다.
허 스카우트는 지난 7월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정진기의 성실함에 반했다. “어린 나이지만, 주변의 상황에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했다. 훈련도 다른 선수들보다 몇 배는 열심히 하는 듯했다.”
외야 수비도 수준급이다. 발이 빨라 좌우 수비범위가 넓고, 어깨가 강해 송구도 일품이다.
단점은 타격이다. 선구안이 다소 떨어지고, 콘택트 능력과 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허 스카우트는 “프로에서 3, 4년 정도 경험을 쌓고, 체계적인 훈련으로 몸을 만든다면 백업요원 정도가 아니라 주전급으로 성장할 선수”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4. 임정우, 포지션 : 투수, 우투·우타, 투구 스타일 : 오버핸드 스로우, 약력 : 서울고, 신체조건 : 185cm/75kg, 올 시즌 최고구속 시속 143km
지난해까지 전국고교 유망주 투수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들었다. 시속 140km 초 중반대의 위력적인 속구를 던진다. 여기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적절히 섞어 던지며 타자를 쉽게 처리한다.
하지만, 올 시즌 허리가 좋지 않으면서 기복이 심했다. 허리가 아파선지 릴리스 포인트가 낮아졌다. 속구 구위도 이전 같지 않았다. 그 통에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저평가됐다. 그러나 임정우의 허리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SK는 지명 후 메디컬 체크를 통해 임정우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했다. SK의 한 관계자는 “허리에 어떤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허리 보강운동을 꾸준히 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고 말했다.
완투능력이 뛰어나다. 전형적인 선발 투숫감이다. 허리만 완벽해지면 KBO 리그를 지배할 유망주다.
5. 강석훈, 포지션 : 투수, 우투·우타, 투구 스타일 : 오버핸드 스로우, 약력 : 마산 용마고-고려대, 신체조건 : 185cm/77kg, 올 시즌 최고구속 시속 143km
제구력이 돋보인다. 한 대학감독은 “낮게 제구되는 투수로만 따진다면 국내 대학투수 가운데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SK가 고교 때부터 지켜봤던 선수다. 허 스카우트는 “당시 프로에 오기엔 약간 실력이 떨어지나, 대학에 입학하면 충분히 성장 가능한 투수라고 판단했다”며 “예상대로 고려대에서 잘 성장했다”라고 말했다.
사실 강석훈은 프로 지명확률이 희박한 투수였다. 5라운드에서 SK가 지명했을 때 다른 팀 스카우트들이 깜짝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유가 뭘까.
강석훈은 지난해 어깨수술을 받았다. 부활확률이 높은 팔꿈치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재기확률이 낮은 어깨인지라, 스카우트들은 강석훈의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
올 시즌 초반 좋지 않은 투구 내용을 선보이자, 몇몇 스카우트는 강석훈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하지만, 시즌 중반부터 서서히 경기 감각이 되살아나며 호투를 거듭하고 있다. SK 스카우트팀이 강석훈에게 집중한 건 수술 후 꾸준히 좋아지는 투구 내용이었다.
허 스카우트는 “대졸 투수답게 프로 적응이 빠를 것으로 예상한다”며 “1, 2년 내 1군 진입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6. 박계현, 포지션 : 유격수, 우투·좌타, 약력 : 군산상고, 신체조건 : 178cm/68kg
5라운드까지 투수만 4명을 선택한 SK는 6라운드가 되자 “무조건 내야수를 잡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때 SK의 레이더망에 잡힌 이가 박계현이다.
군산상고 주전 유격수인 박계현은 좌우 수비 폭이 넓고 어깨가 강하기로 정평이 났다. 우투좌타라는 이점도 있다. 빠른 발 덕분에 도
루에도 일가견이 있다. 특히나 한 베이스 더 가려는 적극적인 주루가 돋보인다.
최정, 나주환의 공백을 대비해 지명한 선수다.
7. 이윤재, 포지션 : 포수, 우투·좌타, 약력 : 경남대, 신체조건 : 178cm/78kg
SK는 시즌 중 LG와의 트레이드로 포수 윤상균을 잃었다. 1군엔 박경완, 정상호, 이재원 등 좋은 포수가 많지만, 2군엔 눈에 띄는 포수가 없었다.
허 스카우트는 “어차피 백업 포수라면 성장기간이 짧은 대졸 포수가 유리하리라 판단했다”며 이윤재의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라는 평이다. 야수 전체를 챙겨야 하는 포수는 눈에 보이는 실력만큼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리더십이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이윤재는 합격점이다.
그러나 타격은 개선돼야 할 게 많다.
8. 신정익, 포지션 : 투수, 우투·우타, 투구 스타일 : 오버핸드 스로우, 약력 : 경주고-한민대, 신체조건 : 190cm/96kg, 올 시즌 최고구속 시속 141km
체격 조건이 뛰어나다. 타자들이 위압감을 느낄 정도다. 속구 평균구속은 시속 130km 초 중반대다. 그러나 팔 스윙이 느리면서도 공을 자연스럽게 던지는 통에 타자들 사이에서 “타격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운 투수”로 불린다.
허 스카우트는 “주변에서 ‘덩치는 산만한 게 공을 저렇게 느릿느릿 던져서야 되느냐’고 비판하지만, 어차피 투수와 타자 간의 싸움은 타이밍”이라며 “타이밍 싸움에서 좋은 효과를 내는 만큼 신정익의 단점은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프로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쌓는다면 시속 140km 중반대까지 구속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9. 최진호, 포지션 : 투수, 우투·우타, 투구 스타일 : 오버핸드 스로우, 약력 : 중앙고, 신체조건 : 184cm/81kg, 올 시즌 최고구속 시속 140km
낯선 선수다. 현직 고교감독도 “중앙고 최진호?” 하며 고개를 갸웃한다. SK가 순전히 가능성을 보고 뽑은 선수다. 투구 밸런스가 좋아 2군에서 3, 4년 정도 경험을 쌓으면 1군 진입도 가능할 수 있는 선수다.
신인 지명회의가 막 시작했을 때도 한승혁(사진 윗줄 맨 왼쪽)은 나타나지 않았다. 호텔에서 초조하게 자신의 이름을 불리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KIA가 자신의 이름을 호명한 뒤에야 신인 지명회의장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
‘한승혁에 승부수를 던진’ KIA
전통적으로 타이거즈는 스카우트의 덕을 ‘톡톡히’ 본 팀이었다. 해마다 광주 전남지역에서 우수 자원이 배출되며 강한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전면 드래프트제가 시행되며 큰 손해를 봤다. 과거처럼 연고지 선수를 1차 지명했다면 유창식(광주일고)은 한화가 아니라 지금쯤 KIA 유니폼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간 신인 지명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KIA 스카우트팀은 폭넓은 정보와 치밀한 전략으로 20011 신인 지명회의에 대비했다.
신인지명 전(前)
지난해 신인 지명회의에서 KIA 스카우트팀은 단 3명의 투수만 뽑았다. 2군에 투수 유망주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론, 고만고만한 투수들을 영입하느니 차라리 야수 유망주를 충원하는 게 낫다는 판단도 있었다. KIA가 내야 유망주 이인행, 임한용을 지명한 건 그래서 놀랄 일도 아니었다.
올 시즌도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KIA 조찬관 스카우트 팀장은 “1, 2라운드는 무조건 투수를 잡겠지만, 3라운드부터는 야수 유망주를 지명할 계획”이라며 “야수는 외야수보단 내야수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포수 지명 계획은 없는 듯했다. 조 팀장은 “올해보다 내년 포수 자원이 풍부하다”며 “설령 (포수를) 지명해도 1명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고교 최고 강속구 투수인 한승혁(덕수고)에 대해선 “두산이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안다”며 “우리는 1라운드 지명자로 최현진(충암고), 안규영(경희대), 이현호(제물포고), 홍건희(화순고) 등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인지명 후(後)
신인 지명회의장에 한승혁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명회의가 시작하고 나서도 한승혁은 없었다. 미 메이저리그 진출과 국내 잔류 사이에서 고민하던 한승혁이 미국 진출로 마음을 굳힌 듯했다.
지명 전 몇몇 스카우트는 “한승혁이 신인 지명회의에 참가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팀의 지명을 받거나 계약액이 낮으면 다시 미국행을 추진할 수 있다”며 “한승혁을 지명하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모 스카우트는 “지명회의 전까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메이저리그와 한국프로야구 사이에서 간을 보는 한승혁의 태도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며 “선량한 학생 선수의 취업기회가 사라지는 걸 방지하려면 한승혁의 신인 지명회의 참가를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선 7개 팀이 1라운드를 지명을 끝내자 KIA 권윤민 스카우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KIA는…”
이때만 해도 이현호와 홍건희 둘 가운데 한 명을 지명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권 스카우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우리 KIA는 1라운드 지명자로 덕수고 강속구 투수 한승혁을 지명하겠습니다.”
"깜짝 놀랐다고요? 글쎄요. 우리는 앞순위에서 다른 팀들이 한승혁을 지명할 줄 알았습니다." 조 팀장은 한승혁의 지명이 깜짝 이벤트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지명회의 전날 한승혁의 미국 진출이 완전히 결렬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에게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그날 바로 조범현 감독께 한승혁의 메이저리그 진출 좌절 소식을 전했다. 감독께서 '시속 150km의 강속구 투수는 무조건 잡아야 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김조호 단장과 상의해 결국 1라운드에 한승혁을 지명하기로 했다." 조 팀장의 설명이다.
물론 우려가 없던 것도 아니다. 팔꿈치가 좋지 않은 한승혁이 입단 후, 바로 수술대에 누울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KIA 스카우트팀은 지금보다 향후 발전가능성에 주목해 한승혁 카드를 뒤집지 않았다.
조 팀장은 두산의 한승혁 지명에 대비해 1라운드 홍건희, 2라운드 왼손 투수 지명이라는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그러나 두산이 1라운드에서 최현진을 지명하며 한승혁, 홍건희 두 오른손 강속구 투수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다.
만족도 (조찬관 스카우트 팀장) ★★★★
만족도는 90% 이상이다. 예상대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고교 최고 강속구 투수인 한승혁과 홍건희를 동시에 확보해 매우 기쁘다. 지난해처럼 9명만 지명한 건 선수단 적정 규모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신인 선수들이 많이 들어올수록 기존 2군 선수들이 그만큼 나가야 한다. 현재 2군 투수들이 새로 들어올 하위라운드 지명 투수들보다 낫다는 판단 아래 마지막 10라운드는 지명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아쉬움
수비와 타격을 겸비한 수준급 유격수를 영입하지 못해 아쉽다. 애초 강경학(광주 동성고), 천상웅(제주고) 가운데 한 명을 3라운드에서 지명하려 했으나, 한화와 두산이 두 선수를 지명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나마 수비가 뛰어난 정상교(대구고)를 영입해 다행이라 생각한다.
KIA 스카우팅 리포트
한승혁은 KIA와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
1. 한승혁, 포지션 : 투수, 우투·우타, 투구 스타일 : 오버핸드 스로우, 약력 : 덕수고, 신체조건 : 186cm/84kg, 올 시즌 최고구속 시속 150km
올 시즌 고교투수 가운데 최고 구속인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졌다. 속구 구위와 변화구 구사능력도 뛰어나다. 특히나 슬라이더의 위력이 수준급이다. 투구 밸런스가 좋고, 근성이 있다. 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한승혁에 높은 관심을 나타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승혁도 미 메이저리그 진출을 목표로 ‘슈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한때 “계약금 100만 달러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팔꿈치 부상과 부진이 이어지며 “계약금으로 50만 달러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야구계 일부에선 “메이저리그 진출이 현실적으로 어렵자, 마지못해 국내 잔류를 선택한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한승혁 측은 “메이저리그 진출은 모든 고교투수의 꿈”이라며 “꿈을 이루려고 미국행을 타진한 게 그렇듯 비난받을 일이냐”며 항변한다. 세간에 떠도는 “돈 때문에 메이저리그행을 노렸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가슴을 친다.
한승혁의 부모는 “순식간에 돈 때문에 아들을 미국으로 파는 부모가 됐다”며 “어째서 그런 오해들이 눈덩이처럼 쌓였는지 모르겠다”고 아쉬움을 토해냈다. 한승혁의 아버지는 1980년대 한국배구계를 주름잡았던 한장석 전 대한항공 감독이다.
KIA 조찬관 스카우트 팀장은 “한승혁을 둘러싼 소문들이 좋지 않아 걱정했으나, 직접 한승혁과 부모를 만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며 “계약액을 논의하면서 한 번도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만 되풀이해 되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KIA는 한승혁과 예상보다 적은 계약금으로 계약서에 사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승혁 측이 “처음부터 돈에 연연하지 않았다. 실력으로 가치를 증명하겠다”고 다짐했고, KIA 스카우트팀이 한승혁을 잘 설득했기 때문이다.
지명 후 메디컬 테스트 결과, 팔꿈치에 조금 이상이 있으나 재활로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성장 여하에 따라 한기주 이상이 기대되는 투수다.
2. 홍건희, 포지션 : 투수, 우투·우타, 투구 스타일 : 오버핸드 스로우, 약력 : 화순고, 신체조건 : 182cm/70kg, 올 시즌 최고구속 시속 146km
고교 투수치고는 ‘투구 메커니즘’이 어느 정도 완성된 투수다. 투구 시 몸을 최대한 앞으로 끌고 가 던지는 통에 실제 구속보다 체감 구속이 더 빠르다. 몸쪽 승부를 즐기며 슬라이더의 각도 뛰어나다.
조 팀장은 “윤석민을 연상케 할 만큼 투구 밸런스가 좋아 부상 위험이 적다”며 “지금보다 몇 배 더 성장할 투수”라고 치켜세웠다.
다른 팀의 모 스카우트는 “KIA가 2라운드에서 지명하지 않았으면 우리가 뽑았을 선수”라며 “프로에서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낼 선수”라고 평했다.
3. 윤정우, 포지션 : 좌익수, 우투·우타, 약력 : 광주일고-원광대, 신체조건 : 188cm/85kg
지난해까지 투수였다. 그러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지난해 말부터 야수로 전향했다. 그래서인지 송구가 부정확하고 타격에서도 변화구에 약점을 보인다.
그러나 말 근육 같은 탄탄한 근력으로 주력이 좋다. 조 팀장은 “여느 선수들처럼 잔발로 도루하는 게 아니라 육상선수처럼 큰 보폭으로 도루하는 선수”라며 “뛸 때 보면 메이저리거 알폰소 소리아노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올 시즌 대학춘계리그에서 도루 16개로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투수 출신답게 어깨가 좋다. 힘도 좋아 프로 입단 후, 장타자가 예상된다.
4. 우병걸, 포지션 : 투수, 우투·우타, 투구 스타일 : 오버핸드 스로우, 약력 : 세광고-제주산업대, 신체조건 : 183cm/73kg, 올 시즌 최고구속 시속 147km
조범현 감독이 투구 동영상을 보자마자 “꼭 잡아달라”로 요청한 선수다. 시속 140km 초 중반대의 속구를 던지며 제구력을 갖췄다. 프로 입단 후, 체중을 늘리면 원체 손목힘이 강해 시속 150km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조 팀장은 “선발보다 1, 2이닝을 깔끔하게 막는 불펜이 적격인 선수”라며 “우병걸이 생각보다 일찍 성장하면 곽정철, 손영민, 안영명 등으로 구성된 불펜진에 새로운 공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KIA가 4라운드 25순위로 지명하지 않았으면 다른 팀에서 지명했을 선수다.
5. 정상교, 포지션 : 유격수, 우투·우타, 약력 : 대구고, 신체조건 : 176cm/70kg
공수주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나 화려하지 않지만, 기본에 충실한 수비가 돋보였다. 포구와 송구 모두 수준급이다. 대구에선 “김상수(삼성)와 키스톤 콤비를 이뤄 10년 이상 삼성 내야진을 이끌 선수”란 소릴 들었다.
수비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타격도 지명 이후 자신감이 생겼는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KIA가 취약 포지션 보강차원에서 어렵게 지명한 선수다.
6. 유재혁, 포지션 : 2루수, 우투·우타, 약력 : 제물포고, 신체조건 : 181cm/70kg
KBO가 발간한 자료에는 ‘외야수’로 표기돼 있다. 실제론 내야수다. 빠른 발이 돋보이는 오른손 타자로, 도루와 타격정확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프로 입단 후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힘을 보강한다면 1군에서 좋은 활약이 기대되는 선수다.
7. 박기철, 포지션 : 투수, 우투·우타, 투구 스타일 : 오버핸드 스로우, 약력 : 광주일고, 신체조건 : 193cm/95kg, 올 시즌 최고구속 시속 142km
193cm의 장신이다. 큰 키에서 ‘뚝’ 떨어지는 변화구가 일품이다. 투구 밸런스가 좋아 프로에서 잘 다듬으면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질 것으로 예상한다. 조 팀장은 “투구할 때 아직 ‘공을 채는’ 느낌이 뭔지 모르는 것 같다”며 “1, 2군 코칭스태프의 지도로 투구의 참맛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고려대 입학이 유력했다. 그러나 신인 지명회의가 다가오면서 “프로에 가고 싶다”는 뜻을 나타냈다. KIA 지명 후, 고려대의 양해를 얻어 프로 입단을 준비 중이다.
8. 박세준, 포지션 : 내야수, 우투·우타, 약력 : 부산 개성고, 신체조건 : 190cm/92kg
부산 개성고에서 줄곧 투수로 뛰었다. 그러나 마운드에서 내려왔을 땐 팀의 중심타자이자 3루수로 변신했다. 체격 조건이 뛰어나고 손목 힘이 강해 타구 질이 다른 선수들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평이다. KIA에서 거포로 키우려는 선수다. 단, 수비와 타격 시 콘택트 능력은 반드시 개선해야 할 점이다.
9. 박태원, 포지션 : 내야수, 우투·좌타, 약력 : 휘문고, 신체조건 : 186cm/78kg
지난 5월 3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대통령배대회 광주일고와의 4강전에서 휘문고가 승리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당시 박태원은 6타수 3안타 4타점의 맹타를 터트리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공교롭게 3안타 모두 ‘고교 최대어’ 유창식을 상대로 뽑아내며 이름을 전국에 알렸다. 이때부터 박태원은 ‘유창식 킬러’로 불렸다.
하지만, 프로 대신 연세대로 진학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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