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졸업식 노래> 작곡가 정순철 선생 평전을 쓰느라 넉 달
가까이 전화기를 꺼 놓고 지냈습니다. 자치 단체는 회계 연도가
정해져서 마감 일을 넘기면 안 되는데, 1차 마감 일을 넘기고 다시
연장한 시간 안에 집필을 끝내야 하는 지라 전화기를 꺼 놓고 작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에도 스십 통씩 걸려 오는 전화를 받지 않고
여러달을 지냈습니다. 여기저기서 원성이 들려 왔습니다. 어떤분은 "나한테
서운한 거 있어요?" 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자기 전화만 안 받는다고
생각 한 것 같습니다.
산방에 유선 전화가 있지만 그것도 낙뢰를 맞아 불통이 되었는데, 고쳐 놓으면
몇 달 못 가 또 낙뢰를 맞는지라 그냥 두었습니다. 그러니 산방에 있으면
어느 곳과도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이침에 더 오래 전화기를 꺼놓고 지내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강의할 때는 물론, 아침에 명상하는 시간에도 전화기를
꺼 놓고, 글을 쓸때도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시 쓰다 전화받으면 생각이 흩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에 몰입할 때도 전화기를 꺼야 합니다. 집중해서 생각하고 작업할 때도
전화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슴을 후벼 파는 음악에 빠질 때,
자두같은 저녁해가 지면서 만들어 내는 찬란한 노을을 마주할때 전화기를
꺼야하지 않습니까? 황홀한 풍경을 접하는 순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거나
사진을 찍어 전송하는 부지런한 이도 많습니다. 가슴 벅찬 순간을 만나면 바로
누군가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도 많습니다. 수천 수만 명의 팔로어와
수시로 소통하는 이가 많은 세상입이다.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고립되고
도태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스스로 고립의 한가운데를 향해 걷는 시간도 있어야 합니다. 고독한 순간을
향해 몰입하는 이도 있어야 합니다. 거기서 더 넓은 자유, 더 깊은 사유와
창조를 만나는 이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자주 전화기를 끕니다.
참으로 죄송한 일인 줄 알지만.
____산방일기_____
( 강헌 선집 1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