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대강절 둘째주간 화요일 – 폭력은 폭력을 낳고
말씀제목
폭력은 폭력을 낳고
성경말씀 요한복음 14장 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에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묵상본문
작년에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올해도 지속되었습니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국지전이야 종종 있었지만, 러시아 기동병력의 95%가 동원된 국가차원의 전면전은 생각도 못했던 일입니다. 실시간 SNS가 활발한 시절이다 보니 공식보도는 물론 개인적 차원에서 실어 나르는 이야기들이 우리를 전장으로 데려가는 듯 했습니다. 우리는 경악하고 분노하고 애도했지만, 현장에서 전쟁을 직접 겪는 것은 분명 다른 차원입니다. 어제까지 평범한 직장인, 학생이던 사람들이 갑자기 살상 무기를 들고 죽음과 죽임의 참혹한 현장을 경험한 겁니다. 20세기 초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에 수많은 사상가와 신학자가 나온 것은 그 시절에 유난히 천재가 많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이 처한 극한 상황을 대규모로, 전면적으로 겪은 시절이기에 처절하고 치열하게 인간 실존에 관해 묻고 또 물었던 것이지요.
인간성이 상실되는 극한의 현장인 전쟁은 그 과정을 통과하여 살아남은 사람들의 인성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전쟁은 내 남편을 괴물로 만들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 사는 옥사나는 남편을 피해 보호시설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16년의 결혼생활 내내 큰 소리 한번 내지 않던 살가운 남편이 징집되어 전쟁을 치르고 살아 돌아온 뒤로는 자신을 자꾸 해치려 했기 때문입니다. 전쟁 트라우마로 가족을 때리는 참전 군인의 수가 전쟁 직전보다 무려 50% 급증했다고 합니다. 모든 전쟁은 가혹하지만, 약자에게, 살아남은 자에게 더 가혹합니다.
평화의 왕이 오신 지, 2,000년이 훌쩍 넘었건만, 그분을 ‘주님’이라 부르는 나라들이 이렇게나 많아졌건만, 전쟁을 일으키는 ‘소위’ 기독교 국가의 지도자들은 무슨 마음으로 주일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걸까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평화의 나라는 물리적, 군사적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이 분명한 사실을 입으로는 고백하면서 이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삶은 그쳐야겠습니다. 이웃에게 위증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율법학자들과 서기관들아, 너희의 거짓됨이 마치 회칠한 무덤 같구나!”
말은 유창하게 하면서 속은 편 가르고 죽일 생각으로 가득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엄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신앙을 가진 세계의 지도자들이 새겨 들어야할 말씀입니다. 국가 이익과 권력을 위한 전쟁을 정당화하는데, 기독교 신앙을 이용해서는 안되는 일이니까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서는 안되니까요.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의 것과 다릅니다. 그 평화를 기다리고, 그 평화를 완성해가야 합니다.
묵상기도
하나님, 예수님께서 주시는 차원이 다른 평화를 위해 싸우되, 세상의 방식이 아닌, 당신의 비폭력 저항의 방식을 따르게 하옵소서. 어떤 모양으로의 전쟁을 그치게 하소서. 화투, 꽃으로도 사람을 때리지 않는 우리로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