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름 없는 꽃들을 보아왔다. 봄부터 눈물 한 방울 없이 꽃을 보아왔다. 꽃이 보이지 않아 하늘만 보다가 갑자기 보이는 꽃을 보고선 가슴이 떨리지 않았다. 풀 속에 여러 꽃들은 보이지만 단 하나의 꽃은 보이지 않는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이름 모를 꽃을 보고 나도 이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수많은 사람이 이름을 지었기에 이름 모를 꽃은 그 자체가 이름이다. 9월이 오기 위하여 먹구름이 요동친다. 모든 이름이 빗물에 젖는다. 그래야 푸른 하늘 아래 예쁜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겠어. 꽃은 계절을 이야기하고 길을 건너 누구를 만날 것이다. 이름 없는 꽃들은 자기 이름으로 살지 않는다. 그저 삶의 내용을 이야기할 뿐이다. 여러 꽃이 모여 하나의 이름이 되듯이 삶도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지구가 매일 나를 태우고 한 바퀴씩 돈다. 덕분에 계절의 속사정이 보인다. 지구와 여행하는 동안 천상을 그리워하는 날개를 지닌다. 세월이 굳어지기 전에 예쁜 풀 이름을 이야기 하자. 바람이 북에서 불어오면 남에서 넘어오는 예쁜 구름이 되자. 바람의 풀씨가 봄에 이르면 이름 없는 예쁜 풀꽃이 되자. 태양이 푸른 잎으로 펼쳐진 여름에 더 큰 이름이 되어 그리움을 이야기 하자. 9월이 오면 풍성하게 영글지는 열매들이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이름이 되자. 가시여뀌, 쑥부쟁이, 고마리, 싸리꽃, 이질풀은 9월의 풀꽃들이다. 봄에 작은 새싹에서 피어 있는 것처럼 9월에도 있는데 바로 이질풀이다. 이질풀은 한방에서 많이 쓰이지 않으나 민간에서 이질, 복통, 변비, 피부염, 위궤양에 쓰인다고 한다. 이슬에 맺혀있는 이름들은 정이 많다. 세상에 이미 있었던 것들 속에서 눈물이 맺혀 있는 현재의 순간들이 아름답다. 이름 없는 많은 꽃들 중에 한 송이에 맺혀 있는 눈물이 아름답다. 풀숲 속에 아주 작은 이질풀이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아가의 얼굴처럼 귀엽다. 지난 세월 속에 스쳐 지나가는 이름들이 많았다. 그런데 몇 사람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도 스쳐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 오늘만 생각하고 있겠지. 시간의 관성은 점차 지난 세월을 잊게 한다. 이제 이름 없는 풀꽃과 내 이름만 이야기할 때다. 이름으로 불리는 음가가 아니라 그 속에 채워있는 아름다운 얘기다. 9월의 풀 속에서 가늘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는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슬프게 노래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이름값을 하기 위해선 작게나마 눈물이 필요하다. 계절 따라 흘러가는 별빛 아래 그냥 스쳐 지나버렸던 풀꽃을 보자. 풀꽃들이 모이면 서로 정을 주고 이야기를 듣겠다. 삶은 정답이 없서 말할 수 없는 정을 이름 없는 풀꽃 잎에 눈물로 달아놓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