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건축가/ 최상대
음악가는 소리로 화가는 그림으로
무용가는 몸으로 시인은 글로서 말을 한다
시인은 말로서 절을 짓고
사진작가는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본다
건축가는 말한다. 건축에 대하여
도시에 대하여 공간에 대하여 조형에 대하여
예술을 문화를 사회를 국가를 말한다
건축주를 향하여 시공자와 공무원을 향하여
법규 민원 경제 윤리를 향해 가래를 끓인다
건축가의 말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건축가의 말은 가물가물 되돌아오지 않고
항암에 지친 건축가의 쉰 목소리는 점점 쇠락해져서
수십 년 먼지 쌓인 건축 모형으로
스케치 스케치 스케치의 그림자로만 남았다
겨울 광화문 일민미술관 하얀 플랜카드
‘감응-풍토 풍경과의 대화’
죽음의 철학으로 봉한 말을 조감도에 가두고
2011년 햇볕 차가운 삼월 어느 날
건축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 다음 카페『최상대의 건축공간 산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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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동구문화체육회관>에서는 대구예술제의 한 프로그램으로 건축가협회에서 시민을 위해 마련한 ‘말하는 건축가’란 영화가 촉촉한 분위기 가운데 상영되었다. '말하는 건축가'는 작년 3월 대장암으로 타계한 건축가 정기용의 마지막 행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 시는 시인이 아닌 최상대 건축가(대구예총 수석부회장)가 정기용이 전하는 마지막 감동의 여정을 지켜본 뒤 같은 건축가로서 짙은 공감을 표하면서 쓴 ‘감응’의 글이다.
이 영화는 정기용이 타계 후 꼭 1년 뒤 지난 3월 개봉하여 뜨거운 관심과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평생토록 건축을 통해 나눔과 사랑을 전했던 고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며 눈시울을 붉혔고, 나도 ‘바람. 햇살. 나무가 있어 감사합니다.’란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찔끔 나온 눈물을 닦아내면서 잠시 ‘철학’을 생각했다. 영화가 끝나고서도 긴 울림의 여운 때문에 솟아오르는 자막을 다 지켜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건축가 정기용은 무주 공공프로젝트. 기적의 도서관 등 나눔의 미덕을 아는 공공건축의 대가이자 건축계의 이단아로서 마지막까지 사람과 자연을 향하는 건축을 알리고자 애를 썼으나 건축주와 시공사와 공무원의 몰이해로 인한 마찰도 적지 않았다. 그의 저서『감응의 건축』중의 한 구절을 옮기면서 건축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도 교정되어야할 부분이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건축가는 해결사가 아니라 변화하는 다양한 현재적 삶을 더 잘 조직하기 위해 여러 분야를 이해하고, 매개하고, 조절하고, 조합하고, 그러면서 판단하고, 번역하고, 해석하고, 형태화하는 사람이다. 즉, 끊임없이 자기 혼자만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 이외의 수많은 전문가, 수많은 사람, 기술, 경향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하는 독특한 전문가이고 조절자다. 한마디로, 건축가는 여러 곳에 감응하는 열린 사람인 것이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