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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스님 自警文 7강
●其二는 自財를 不悋하고 他物을 莫求어다.
자기의 재물을 아끼지 말고 다른 이의 재물을 구하지 말지어다, 그랬는데...
其一은 “맛있는 음식. 좋은 의복. 그것을 수용하지 말라”고 그랬고, 여기는 “재물을 아끼지 말고, 자기의 것을 아끼지 말고 남의 것을 구하지 말라” 이랬는데 이것은 그것과 상관이 있잖아. 맛있게 잘 먹고 잘 입으려고 하니까 재물이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돈이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더 좋은 것을 구하려니까 자꾸 아껴야 되고, 아끼는 것은 인색해지는 것이거든. 자꾸 아끼니까 인색해지고, 인색한 것 하고 알뜰한 것 하고는 좀 차이가 있지. ▮인색한 것은 대개 욕심이라는 것이 붙어있고, ▮알뜰한 것은 선용하기 위한 것이고요. 욕심이라기보다도 잘 쓰기 위해서 알뜰하게 가꾸는 것이니까 인색하고는 다르지.
그래서 도 닦는 사람은 잘 먹으려고도 하지도 말고, 잘 입으려고도 하지도 말아라. 오직 도만을 닦는 사람이니까, 돈이라고 하는 것은 멀리해라! 이 말입니다.
왜 그러냐? 돈이라고 하는 것은 탐욕심을 갖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지. 탐욕 심은 無明心을 키웁니다. 무명심이라는 것은 정신이 흐리해진다! 이 말입니다. 그 무명심이라고 하는 것이 명예욕이나 재물 욕이나 색욕이나 5욕이 다 무명심을 만드는 근본입니다. 무명심은 생사번뇌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판단이 흐리다 그 말이지. “판단이 흐리다” 소리는 무명이라는 말이거든. 캄캄 어둡다는 말보다도 그냥 무명이라고 그랬거든.
黑暗이라기보다도 아주 흑암은 아니고, 보이기는 보이는데 어림덤덤하니 판단이 흐린 것입니다. 그것이 무명입니다. 엄밀하게 생각하면 아닌데... 그 생각이 엄밀하게 안 되니까 욕심에 가려가지고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기 때문에 그래서 판단이 흐려지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이 무명심으로 말미암아서 탐욕심으로 말미암아서 ‘내 것을 만들어야 되겠다’ 하는 소유욕이 생긴다 이 말입니다. 내 것을 만들기만 해도 괜찮을 텐데 거기에 자꾸 쌓고 모으는 저축본능이라는 것... 사람이 부엉이 집 모양으로 저축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 이 말입니다. 부엉이가 어쨌든 자꾸 쌓기만 하거든요.
나도 바랑 걸머지고 훌훌 다니면 하나도 없을 텐데 지족암에 20년 살면서 오물딱지가 이렇게 많이 생겼는데 사실 이거 뭐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이니까 주워 모은 것 뿐이지, 애착스러운 것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아. 내일이라도 이것 다 내버리고 떠나지 다 가지고 떠납니까? 하나도 가지고 떠날 것 없습니다. 다 좋으니까 하나하나 주워 모아서 진열해 놓은 것뿐이지. 이것 뿐이 아니고 모든 것이 다 그렇지. 그리고 제가 어디 안 떠나고 지족암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 이렇게 생기는 것이지. 바랑 짊어지고 훌훌 다니면 다 내버리고 다니지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중생세계에서는 그 소유욕으로 말미암아 저축본능으로 말미암아서 그 탐욕 심으로 말미암아가지고, 그래서 어쨌든지 간에 자꾸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다가 보니까, 생존경쟁... 강한자라야 살아남는다 해가지고 지금이 세계경제전쟁중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가 경제전쟁중입니다. 수출ㆍ수입. 이것이 전부 난리입니다. 그래서 어쨌든지 최상의 기계를 개발해야만, 컴퓨터 가운데도 컴퓨터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를 자꾸 개발해야 된다는 겁니다. 거기다가 사뭇 투자를 하고... 이래서 생존경쟁 이라고 하는 그 미명하에 서로 수틀리면 이 나라하고 저 나라하고 대포를 겨루고 전쟁을 치루잖아. 그로 말미암아서 피를 흘린걸 칠 것 같으면 유사 이래로 아마 낙동강 만치 흘렸을 겁니다. 역사이래로 탐욕심으로 말미암아가지고, 생존경쟁으로 말미암아가지고 전쟁을 치루고 어쨌든지 간에 피를 흘리고 한 것이 무궁무진하더라 이 말이거든요.
우리는 무명을 깨쳐가지고 正覺을 성취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해하려면 도 닦는 사람은 진리를 探究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물건을 아끼지 말고. 남의 물건을 자꾸 貪求하지 말라. 자기의 재물을 아끼지 말고 다른 이의 재물을 구하지 말지어다. 누가 꼭 필요해서 달라고 하면 내가 뭐든지 줍니다. 꼭 필요하다고 하면 주지 아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필요치 않으면서 달라고 하는 사람은 잘 안 주지만, 필요한 사람은 제가 준다 이 말입니다. 안 필요한 사람을 뭐하려고 주노?
●三途苦上에 貪業이 在初요,
三惡道... 지옥 아귀 축생이 3악도 아닙니까? 3악도는 다 괴로운 세상인데 그 3악도의 고통... 거기에서는 탐 진 치인데 ▮탐업으로 말미암아 지옥이 생기고, ▮진업으로 말미암아서 아귀가 생기고, ▮치업으로 말미암아서 축생이 생긴다고 그랬지요. 지옥이 바로 탐심으로 말미암아서 지옥이 생긴다 이 말입니다.
業이라고 하는 것은 범어로 “카르마” 라고 하는데, 身口意 3업이거든요. 몸으로 짓는 업. 입으로 짓는 업. 말로 짓는 업이라는 말입니다. 생각으로 짓는 업.
▮몸으로: 殺(살)ㆍ盜(도)ㆍ淫(음)
▮입으로: 妄語(망어)ㆍ綺語(기어)ㆍ兩舌(양설)ㆍ惡口(악구)
▮생각으로: 貪(탐)ㆍ嗔(진)ㆍ痴(치)
10 惡業입니다. 10 惡業을 짓지 않으면 10 善業이 되는 것이지요.
10 善業. 10 惡業 이것이 바로 그냥 그대로 10 惡業을 지으면 10 악업그대로 因果가 나타나지. 10 善業을 짓는 사람은 그대로 복을 받잖아.
탐업이 바로 지옥을 만들기 때문에 지옥ㆍ아귀ㆍ축생의 3악도의 고통에는
貪業이 在初다. 가장 강한 것이다 이 말이지.
●六度門中에 行檀이 居首니라.
六度... 여섯 가지 바라밀이라는 말입니다. 바라밀을 度라고 번역합니다.
度라는 소리는 해탈을 한다 이 말입니다. 건너간다. 육바라밀이 六度거든요.
▮단바라밀은 ‘준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자꾸 받을 줄만 알지 줄 줄을 모르기 때문에, 거둬들일 줄만 알지 내게 있는 것을 줄 줄을 모르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그걸 많이 써 먹잖아요. “주라” 그랬다고... 예수님이 뭐든지 “주라” 그랬다 그 말이지. 그래서 지금 불교에서도 “주는 불교가 돼야 된다” 받기만 하는 불교가 되지 말고 주는 불교가 돼야 된다”고 하지. 지금 남방불교에서는 “받기만 하지 주는 불교가 아니다” 이렇게 하는데 북방불교에서도 시주를 받으니까 받는 불교지 주는 불교라고 하기보다도...
법력이 있어가지고 法施를, 법을 주면, 재물을 받고 법을 주면, 재물보다 법이 엄청, 말하자면 더 복되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財施를 받고 法施를하면 되는 것이지
그래서 많이 견성한 도인으로서 無礙施를 준다고 하면 더 말할 것도 없고, 육바라밀 가운데 行檀 = 단바라밀은 ‘준다’는 뜻이니까, 단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그러니까 신도들한테 檀越이라고 그러지요.
檀越. ▮檀 보시한다는 말이고, ▮越 越度苦海라. 고해바다를 월도한다. 넘어
간다는 뜻입니다. 단바라밀을 함으로서 복을 지어가지고 고해를 넘어간다. 사바세계를 넘어서 극락세계로 간다는 뜻이 檀越입니다.
보시를 행하는 것이 가장 머리에 居하느니라. 제일 으뜸이다 이런 말이지요.
●慳貪은 能防善道요.
간탐 심을 내는 것은 능히 선도를 막는 것이고,
●慈施는 必禦惡徑이니라.
자비로 보시하는 것은 반드시 악한 길을 막게 되는 것이니라. 악한 길을 막게 되고 선한 길을 가게 된다 이 말이지요. 역시 반대말입니다. ▮간탐은 선도를 막는 것이니까 악도의 길이 열리는 것이고, ▮자비 보시는 악한 길을 막으니까 선한 길이 열리는 것이고요. 말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如有貧人이 來求乞이어든,
만일 가난한 사람이 와서 구걸하거든, 如有할 적에는 如자를 “만일”그래요.
만일 가난한 사람이 와서 구걸함이 있거든 하는데 有자는 안 새겨도 상관없어요. 如有라는 것을 “만일” 해도 되는 겁니다.
●雖在窮乏이라도 無悋惜하리라.
비록 궁핍함에 있더라도, 내가 가난하더라도 無悋惜... 아끼고 아까워함이 없어야 하리라. 지장보살은 옷 한 벌 뿐이지만, 脫衣入地號地藏이라. 옷을 벗어서 남 주고 자기는 땅 속에다가, 움집 속에다가 몸을 간직했다고 그래요 지장보살이라는 뜻이. 脫衣: 옷을 벗고. 入地라, 땅에 들어갔다. 두 부부가 사는데 옷이 한 벌 뿐이거든요. 밥 얻으러 나갈 적에는 걸치고 나가고, 들어와서는 옷 한 벌 가지고 벗고 차리고 그랬다잖아. 아끼고 아까워하지 말라! 말입니다.
궁핍함이 있더라도 주라 이 말입니다.
●來無一物來요 去亦空手去라.
올 적에 한 물건도 없이 왔고, 갈 적에 또한 빈손으로 가느니라.
空手來空手去라고 않습니까? 바로 그 소리가 여기서 나온 소리입니다.
올 적에 한 물건도 없이 왔고, 갈 적에 또한 빈손으로 가는지라.
돈 쥐고 나는 놈도 있기는 있다고 하데. 아이를 낳는데 주먹을 안 펴더래. 죽어라고 주먹을 안 펴서 그녀석의 한쪽 손이 병신입니다. 건드리고 펴려고 하면 애가 죽는 소리를 하니까 놔두고 한 100일이나 지내서 기분 되게 좋을 때 살~ 만지고 있다가 펴보니까 거기에 글이 써져 있더래. 무슨 글이 써졌는지 제가 잊어버렸어. 전생얘기라. 자기 이름이 전생 아무개라는 이름이 써 있다든가 뭐라고 써져 있더래. 한 사람도 이 세상에 올 적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고... 가지고가는 사람 있습니까?
대구 경산에 돈이 되게 많은 만석꾼이 생전 돈을 안 써!!! 집안 식구들에게 쌀밥만 해 먹으면 집안 망한다고 보리밥 안 해 먹는다고 고래고래 고함지르니 식구들이 할 수 있나? 떡하니~~~ 보리쌀을 따로 끓여서 영감쟁이는 보리밥만 주고, 식구들은 쌀밥만 먹지. 식구들 쌀밥 먹는 걸 아나요?
돈을 많이 거머쥐고서도 써 먹지를 못하거든... 하도 돈을 안 주니까 마누라가 저 장독에다 물 떠놓고 “우리영감 돈 좀 주게 해주소, 돈 좀 주게 해주소” 하고 빌어도 소용없대. 영검 없대. 맨날 다니면서 입으로 중얼중얼, 중얼중얼 지껄이고 다녀. ‘뭘 저렇게 중얼거리며 다닐까? 염불 하는가?’ 가만히 가서 들으니까, “저 건너 대추 나무 골 김생원에게 쌀을 한 가마니 빌려 줬으니까 추수에는 한 가마니 반은 받을 것이고...” 전부 계산 하느라고 맨날 그러는 겁니다. 어디에는 얼마가 있고, 어디에는 얼마가 있고 안 잊어버리려고 계속 그렇게 외우고 다녀요. 글은 무식하고요.
일정시대에 돈100원짜리는 좀처럼 본 사람 없어. 누~런 돈인데 포대화상이 포대를 둘러매고 있는 그런 돈이 있었어. 보통 사람은 구경 못해. 10원짜리뿐이지. 지금 우리 한국 사람이 100달러짜리 만지지 미국 사람은 100달러짜리 구경 잘 못해. 전부다 크레디 카드로 쓰고 수표로 끊어주지 현찰은 잘, 잔돈 말고는 없어.
그 만석꾼이 죽을 적에는 100원짜리를 세 뭉치를 만들어가지고 가져간다고 두 뭉치는 양쪽 손에 쥐고, 한 뭉치는 입에 꽉 물고 죽었답니다. 그래가지고는 아들들이 와가지고 “아버지 돈 주이소 돈 줘야 장사를 치루지요 돈 주이소” 죽은 사람이 뭐 아나? 그 때는 보통 9일장 보름 장 지내거든. 그냥 갖다 묻을 수는 없는 것이고 할 수 없이 돈을 뺏어야지. 뺏으려니 순순히 놓나? 그것이 다 굳어가지고 아무리 펴려고 해도 어떻게 거머쥐었는지 아무래도 안 되거든. 할 수 없이 뺀치로 손가락 전부다 문지르고 뺏었답니다. 이빨로 꽉 물었서 소용 있나? 이빨도 뺀치로 제껴 버리고 뺏었단다.
▮食客三千孟嘗君이라고 하면... 중국에 옛날에 밥이 귀할 때, 아침마다 국밥을 해가지고 식객을 삼천명을 치러. 자기 집에 식당을 만들어 놓고 아침마다 누구든지 하루에 한 끼는 와서 먹으라는 겁니다. 자기 집에 와서 밥 먹으라는 겁니다. 큰 식당을 차려 놓고서는, 노비들이 수백명 이니까. 그 삼천 명이 밥 먹는 소리가 20리 바깥에까지 들렸대. 그런 부자로서 쉽게 말해서 자선사업가지. 중국같은 나라는 나라가 크니까 그렇지, 우리 한국 같으면 삼천 명이 와서 밥 먹을 사람 어디 있겠나? 옛날에 밥이 귀할 때니까 와서 먹고 그랬는데,
그이가 환갑잔치를 치르는데 얼마나 호화스럽게 환갑잔치를 차리고 막 그냥 풍악을 잽히고 선녀같은 여자들이 와서 춤추고 꽃다발이 온 집안을 덮고, 이래가지고 노는데 맹상군이 기분이 되게 좋아가지고 한잔 먹고, “좋다. 기분 참 좋다. 이렇게 좋은데 누가 나를 슬프게 해 줄 사람이 있으면 나와 봐라” 내가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나를 슬프게 할 사람이 있겠는가? 하니까...
그 식객들 가운데 눈 먼 봉사 한사람이 앵금이라는 요새 기타 같은 것을 가지고 떡 하니 나오더라는 겁니다. 봉사니까 먹고 살 길이 없으니까 사람들 있는데 가서 그걸 뜯으면 한 푼 씩 주면 먹고사는 봉사가 나오더니
“제가 한 번 재주를 피워서 대감 눈에 눈물 나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래 네가 무슨 재주가 있거든 한 번 해봐라”
앵금을 켜는데 아주 솜씨가 기가 막힙니다. 고비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베토벤 월광곡 이상으로 어쨌든지 간에 참 아주 그 좋고 좋은 천상의 음악을 타다가 지옥의 음악을 타다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더니 떡 하니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 소리가 아주 기가 막힌 겁니다. 그 노래의 내용이
▮空手來空手去하니 世上事 如浮雲이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니 세상사는 뜬 구름과 같구나. 내용이 그런 내용입니다. 그래 놓고 또 얼마를 음악을 켜놓고 또 노래를 부르는데,
▮成墳墓人散後에는, 무덤을 잘 다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다 흩어지고 나면, 산속에 와서 무덤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흩어지고 나면,
▮山寂寂月黃昏이라. 산은 적적하고 달은 황혼에 깃들고,
깊은 산속에 두견새 소리만 소쩍소쩍한다 이 말이야. 그렇게 하고서는 그만 앵금 소리를 “당~” 하고 그치는데 앵금 줄이 탁 끊어져버리거든.
앵금 줄 끊어지는 소리에 그냥 맹상군이 통곡을 했답니다.
그렇게 말하자면 萬般將不去요. 만 가지를 가져갈 수가 없다 이 말입니다.
●自財도 無戀志어든 他物에 有何心이리요.
자기 재물도 생각는 뜻이 없을 것인데 다른 이의 물건에 무슨 마음이 있을까보냐? 내한테 있는 물건도 아무 애착할 것이 하나도 없는데 남의 물건에 무슨 애착을 가질까보냐?
●萬般將不去요 唯有業隨身이니라.
만 가지를 다 가지고, 가질 장, 만반준비 다 했다 그러쟎아? 가지고 가지 못함이요, 오직 업이 있어서 몸을 따를 뿐이니라. 업만이 몸을 따른다. 그 업이 바로 생사근본이고 바로 무명이거든요. 그것이 바로 근본번뇌다 이 말이야.
깨달음의 광명을 등졌기 때문에 그것을 무명이라고 그러고... 그 근본적인 어둠. 마음의 어둠 때문에 말하자면 가치 판단이 흐려져 가지고 거기에서 업을 짓게 되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것을 “제 8아뢰야식”이라고 그래요. 아뢰야식이라는 말은 種子識이라는 말입니다. 종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제 1식은 眼識이고 ▮제 2식은 耳識이고 귀 ▮제 3식은 코고 ▮제 4식은 舌
▮제 5식은 身 ▮제 6식은 意識이거든요.
▮제 7식은 말라식이라고 하는 겁니다. 말라식이라는 것은 연결식이라고 그러는데 원래 자체가 없고, 반은 6식에 합하고 반은 8식에 합한대. 7식이 이라는 것이 반은 6식에 합하고 반은 8식에 합하고 쉽게 말해서 “연결시켜주는 다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붙었다가 저기에 붙었다가 한다고 해서 姦婦識이라고도 합니다. 갈보같이 여기에 붙었다가 저기에 붙었다가 제 7식은 말라식 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뜻입니다. 연결식이라고 그러고 간부식이라고 합니다. 자체가 없다는 겁니다. 자체가 있기는 있지만 있으면서도 여기에 붙었으니 이것이고, 저기에 붙었으니 저것이고 있기는 있고 그런 것이지.
▮제 8식이라는 것은 그것이 無明識입니다. 8식이 종자입니다.
그러니까 종자가 갓 씨인지 배추씨인지 갖다 놓으면 얼른 잘 모르잖아. 그리고 갓이라도 흰 갓인지 붉은 갓인지 알 수가 없잖아. 그렇지만 분명히 거기에 있거든. 그것이 불분명하지만, 불분명하니까 무명이지. 무명이라는 소리는 불분명하다는 소리입니다. 분명하지 못하니까 무명인데... 이것이 종자가 돼가지고 날 적에는 먼저오고, 갈 적에는 늦게 간답니다.
▮날 적에는 먼저오기 때문에 아주 갓난아기 때는 분별식이 없어. 분별심이 없어. 아무것도 몰라. 덮어놓고 “어 어 어” 할 뿐이지 아무것도 몰라. 좋고 궂은 것을 전혀 모르거든... 차차차차 신체가 발달하면서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 6식이 생긴다. 이 말입니다.
▮그러고 죽을 적에는 6식이 먼저 가버려. 그래서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 동작이 사람도 못 알아보고 들을 줄도 모르고 냄새 맡을 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서 6식이 먼저 몸뚱이 송장이 돼버린다 말입니다. 그런데 8식만은 그냥 가만히 있어. 멀뚱멀뚱 식물인간처럼 멀뚱히 있거든. 왜 그러냐? 평생 6식이 지은 업을 다 거두어가지고 보따리에 똘똘 싸가지고 종자를 만드느라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 8식이 종자입니다. 배추씨라 하더라도 종자가 여러 가지잖아. 지가 평생 지은 업을 똘똘 뭉쳐가지고 가는 것이 8식업입니다. 업만이 따라 갈 뿐이다 이겁니다. 8식만이 따라가지 다른 것은 다~~ 6식 까지도 못 따라 갑니다.
萬般將不去요, 만 가지를 다 가지고 가지 못함이요. 唯有業隨身이니라. 오직 업만이 몸을 따를 뿐이니라. 업이 따라 갈 뿐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三日修心은 千載寶요 百年貪物은 一朝塵이니라.
삼일동안 마음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가 되고, 백년 탐물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니라. 이것은 유명한 말이지. 이 소리를 세상 사람들이 많이 써 먹지... 이 소리를!
그러니까 말하자면 주와 객이 나눠지기 전, 이것인지 저것인지 나눠지기 전의 최초의 일념이 무명(明?)인데, 그 ▮一心眞如라고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허망한 마음이 일어난 것. 그것이 ▮無明이다 이 말입니다.
三日修心은 千載寶요, 百年貪物은 一朝塵이니라. 우리가 한평생 산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산다한들 몇 백년이나 살더란 말이냐? 쑥대머리 노래가 있잖아. 그러듯이 인생일세가 얼마냐? 이 말입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겁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가운데 잠자고 놀고 먹고 병 앓고 근심하고 걱정하고 속 썩이고... 이것 다 제하고 나면 편안한 날이 며칠이나 된지 모른다! 이겁니다. 편안한 날이 잠시라 이겁니다. 그러니까 百年貪物은 一朝塵이지요.
어떤 사람이 애끼고, 애끼고 돈 모아놓고 재산도 모아놓고 했는데... 49재 지내고 나니까 식구들 전부 모여가지고 보따리 다 갖다놓고, 척 하니 옷 보따리를 먼저 방에다 수북하니 갖다놓고 챙기는데 “아이고 저것은 환갑 때 우리가 해온 것이다” 이쪽 것 챙기고, “저것은 6순 때 우리가 해온 것인데...” 하고 저쪽 것도 챙기고 전부 챙겨가는 것입니다.
식구들이 죽은 할아버지 옷을 다 챙겨가는 그것을 보니까 百年貪物一朝塵이라 하더니만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구나! 싶더군. 그럴 겁니다. 제가 죽고 나면 옷 보따리는 없지만 다 흩어져 버릴 랑가?
큰 절 박물관 지으면 싹 기증 해가지고, 전부 여기다 설명서 붙여가지고 좋은 것만 설명서 붙여가지고 해놓으면 좋을 텐데... 대흥사에 가니까 제 것을 갖다 놓은 것이 서너 개 있더군. 그래서 말하자면 寡欲過慾하라. 과욕을 지키고 과욕을 버리라. 그런 말이 있어요. 寡欲하고, 욕심을 적게 하고 // 過慾을 금하라, 지나친 욕심을 갖지 말라. 금해라. 頌曰 노래를 하여 가로대
●三途苦本因何起오?
삼악도의 고통이 본래 무엇을 인하여 일어났는가?
只是多生貪愛情이로다.
다만 다생 겁래에 탐심과 애정... 탐하고 애착하는 그 생각 때문이로다.
我佛衣盂 生理足커늘
우리 부처님께서 내려 주신 가사와 발우떼. 이것이 새의 두 날개와 같아서 우리 生理에 만족하다! 이 말입니다. 그만하면 살아가는데 이치에 만족하더라.
如何蓄積長無明고
어찌하여 쌓고 모아가지고, 모으고 쌓아서 무명만 기르는가?
생사근본만 자꾸 더 키울까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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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탐욕심을 가져도 세상에 權不十年이요 勢不三年이라. 권세를 쥐어도 10년을 가지 못하고, 세도를 되게 피는 것도 3년을 못 간대요.
慳財는 二代로다. 재물을 아껴서 억지로 쌓아 모아 놓은 것도 2대를 넘어가기가 어렵답니다. 저~ 박 태성이가 7년성을 쌓고 시온산업을 만들어가지고 전도관 만들어서 아주 떠들썩하더니 지 죽기 전에 실근실근 거의 다 망했지? 그 아들이 나쁜 짓 해가지고 다 망해버렸는데, 문 선명 저것도 그렇지 싶어. 아직까지는 용을 좀 쓰는데 모르지. 얼마나 갈 것인가? 2대를 갈 것인가? 박보희... 모르지요. 당대에 망하기 쉬울 것 같아.
탐욕심을 갖고 암만 그렇다고 해도 탐욕심 가진 사람이 대개 ▮부자로 살고, 탐욕심 없는 사람이 대개 ▮가난하게 산다고 남들이 그러는데 이것은, 三生의 因果라는 것이 있어요. 삼생인과라는 것은 순현. 순생. 순후보인데
▮順現報라는 것은 현세에 순한다 그 말입니다. 지금 짓고 지금 받는 것을 순현보라고 그럽니다. 금생에 짓고 금생에 받는 것을 순현보라고 그래요. 그 다음에
▮順生報라고 그러는데 순생보는 전생에 짓고 금생에 받든가, 금생에 지어서 내생에 받는 것이 순생보입니다. 생을 한 번 걸러서 받는다 이 말입니다. 그 다음에 ▮順後報가 있어요. 금생에 지어서 몇 생 만에 나타나는 수도 있고, 내생 말고 다음 생에 나타나는 수도 있고, 다음 다음 생에 나타나는 수도 있고요. 인삼 씨는 뿌리면 3년 만에 난다고 하던가? 금방 뿌리면 금방 안 난다고 하던 대. 심어서 금방 나는 씨도 있지만, 상치 같은 것은 금방 나서 뜯어먹고 몇 달 만에 치워 버리지만, 보약 되는 인삼은 씨 뿌리면 금년에 안 나고 잠을 푹 자고 있다가 몇 년 만에 싹이 나서 몇 년 크면 보약 되잖아요.
송아지 같은 것은 금방 나면 금방 뛰어가잖아. 사람은 뛰려면 10살 되어도 옳게 뛰나? 20살이 돼야 선수 될 수 있지? 그렇게 다르듯이 순후보라는 것이 있다... 이 말입니다. 성급하게 “엣따, 암만해도 靈驗 없더라” 이러지만, 順現ㆍ順生ㆍ順後報. 이렇게 삼세인연이 있는 것입니다.
업ㆍ업보사상ㆍ인과론. 이것은 말이 틀리지만 내용은 같은 것입니다.
인과 = 업보입니다. 인과응보라고 하기도 인과업보라고 하기도합니다.
인→ 연→ 업→ 과. 그러지.
어떤 책에 그런 소리 있더군요. 부처님당시에 감인이라고 하는 스님이 부처님한테 묻기를, “부처님 神力으로 우리가 죄를 지었어도 전부 다 천당극락으로 가도록 좀 해 주실 수 없습니까?” 이렇게 물으니까
“네가 밥을 먹고 다른 사람이 똥을 눌 수 있겠느냐?” “안 되지요”
“네가 먹은 것은 네가 눠야 하듯이 선한 일만 많이 한 사람한테 지옥을 가라고 하면 말이 되겠느냐?” “안 되지요”
“악한 일만 많이 한 사람한테 천당을 가라고 하면 되겠느냐?” “안 되지요”
“그러니까 자기가 지은 것 자기가 그대로 받는 것이지, 인연업과는 변경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은 自財를 不悋하고 他物을 莫求어다.
三途苦上에 이것은 붙여도 되고 떼어도 됩니다. 貪業이 在初니라.
六度門中에 行檀이 居首니라.
慳貪은 能防善道요. 능히 선도를 막는 것이요. 능히 막는다 선한 길을...
慈施는 必禦惡徑이니라. 반드시 막는다 악한 길을. 반드시 악한 길을 막느니라. 如有貧人이 來求乞이어든, 가난한 사람이 있어서 구걸하거든. 와서 구걸하거든... 雖在窮乏이라도 無悋惜하리라. 비록 궁핍함에 있더라도, 있더라도는 아니해도 괜찮아. 내가 궁핍하더라도 그래 버리면 됩니다. 無悋惜하리라. 아끼고 아까워함이 없어야 하리라. 있는 대로 주라 이 말입니다.
일타스님 自警文 8 강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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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