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신학생 때 신학을 공부하는 즈음이었는데 누군지 모르겠는데 그 신학 책 서문에서 그런 표현을 썼습니다.그 신학자가 독일 신학자인데 내가 주님께 가면 꼭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다.하느님 왜 당신은 그토록 인간을 사랑하십니까?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신학자의 물음이 제 머릿속에 남습니다.그 신학자는 내가 주님께 가거든 내가 꼭 이것만큼은 주님께 여쭤봐야 되겠다.하느님 당신은 왜 사람을 이토록 사랑하십니까?
그래서 그것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질문을 할까? 내가 하느님께 갔을 때
내가 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질문한다는 게 좀 어렵고, 내가 그러면 하느님께 듣고 싶은 말은 뭐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느님께 가셨을 때 하느님께 여쭙고 싶은 거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하느님께 갔을 때 하느님께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이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죠?
아니 이 웃음은 또 무엇을 의미합니까?우리 성가대에서 누가 용기 있게 내가 하느님께 듣고 싶은 말이 있다.무엇을 듣고 싶다라고 얘기할 분? 성가대마저.
그리고 저는 그 이후에 사제 서품을 받아가지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오늘 우리가 복음에서 들었던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이 말 하느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이런 다짐을 하면서 지금까지 생활해 왔습니다.
지난 우리 1대리구 송년을 하면서 그때 우리 성복동 공동체가 선교 최우수 본당으로 선정되는 그런 기쁨을 누렸었죠.그랬더니 우리 총회장님 말씀이 저보고 그랬다고 그러던데 내년에는 선교 최최 우수 분당이 되십시오라고 했는데 기억이 안 납니다.이제 웃자고 하는 얘기인데, 목소리 작게 해서 못 알아들으셨어요.그리고 여러분들이 지금 온라인 성경 이어쓰기 그다음에 성경 잔치에서 성경 욥기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고, 참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여러분들에게 축하의 말씀드리고 단지 우리가 그런 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 여러분들은 수원교구에서 최우수 선교 본당이 되어야 합니다.더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 선교의 핵심이 무엇이었을까요?예비자들을 많이 데리고 와서, 아니면 냉담하는 교우들을 많이 데리고 와서,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사회 안에서 정말 살고 있는 것입니다.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사는 우리가 남들이 볼 때 너무나 행복한 모습, 너무나 기쁜 모습으로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여줄 때 그들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우리 수원교구의 어느 본당보다도 그러한 기쁨과 함께하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요.또 수원교구를 떠난다고 생각하니까, 그 마산교구 입장에서 이렇게 여러분들을 보면 너무 부러운 거예요.그래서 여러분들은 수원교구의 최우수 본당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한국 천주교회의 최우수 본당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이것이 가톨릭입니다. 어찌 보면 교황 프란치스코께서 우리에게 더 이상 가톨릭이 어떤 종교가 아닙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감동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존경의 시선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경멸하고 멸시하고 조롱하기까지 합니다.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우리가 이대로 주저앉아야 하겠습니까? 라고 우리에게 반문하십니다.그러면서 교황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정말 우리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데서 만족하지 말고 이 사회에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어떻게 하면 우리가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정말 복음 정신으로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가 될 때 우리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서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꼭 그러한 감동이 전해져야 우리가 성공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러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새롭게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본당 신부님, 보좌 신부님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저에게는 이별의 자리였습니다.이제 우리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자리 제 맞은편에 원로 신부님이 계셨는데 신부님이 눈물을 흘리시는 거예요.그러시면서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것 같다. 그런 표현을 쓰시더라고요.그래서 그때부터 제가 ‘아 내가 시집 가는 거로구나’ 생각을 하고 여러분들도 다 시집 가봤잖아요. 그렇죠 시집 갈 때 뭘 제일 관심을 두시나요? 친정에서 뭐 더 가지고 갈까 이거 눈이 뻘개지지 않아요? 제가 그렇더라고요.그래서 어떻게 하면 내가 친정인 우리 수원교구에서 무엇을 좀 많이 가져갈까 제가 발견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첫째가 감사입니다. 감사의 보물을 가지고 가야 되겠다.
사실 40년 정도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공부해 왔는데요.그중에서 제가 이해 못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착한 양이 있는 곳에 착한 목자가 있다. 착한 양들이 착한 목자를 만들기 때문이다. 착한 목자를 누가 만든다고요? 착한 양들이. 제 말이 아니고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입니다.저는 그 말을 이해를 못하겠는 거예요. 착한 목자가 우리 주님인데 우리가 착한 양이라고 그래서 어떻게 우리가 주님을 만드느냐? 왜 이 말씀을 하셨지? 제가 여러분들과 같이 하면서 어느 순간에 깨달음이 왔어요.정말 내가 착한 목자라면 저 착한 양들이 나를 만들었구나.내가 뭘 잘해서가 아니로구나. 이러한 일깨움을 주신 수원교구 우리 신자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제가 가져갈 첫 번째 보물은 감사, 두 번째는 기도, 세 번째는 정말 우리 신자분들이 그러한 모습을 보여줬고 그 신자들의 덕분에 신부님들도 그런 모습을 저에게 보여주셔서 세 번째가 겸손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갑작스럽게 마산 쪽으로 가라 그럴 때 1초도 주저하지 않고 내라고 기쁘게 제가 받아들인 이유는 그러한 신부님들이 여러분들 덕분에 저에게 보여주었던 그 순명의 자세, 그것이 아니었나 생각을 합니다.그래서 이 겸손, 감사, 기도를 내가 마산교구에 우리 친정의 보물이다. 라고 내가 이렇게 내세우려고 그럽니다.그래서 이제 그 신부님이 눈물을 흘리시는데 눈물을 좀 닦아드린다고 옆에 계신 신부님이 그분도 원로 신부님이신데 결코 눈물을 닦아드리는 발언은 아니었는데 그 마산교구가 우리 수원교구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강력하게 보여줘야 됩니다. 라고 얘기를 하는데 제가 볼 때는 염장 지르는 것 같아요.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도 정말 그렇구나. 우리가 강력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여러분들이 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여러분이 더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여러분이 더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원교구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마산교구에 내가 친정이 수원교구야 그리고 마지막 미사를 성복동 본당에서 했어. 이런 말할 때 여러분들이 네 하고 응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성부 아버님으로부터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라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성령을 통해서 정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느님의 그 은밀한 사랑, 그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될 그 사랑입니다.그 사랑을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사랑이 이루어지는 가장 큰 힘이, 절대 단순한 사랑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을 합니다.가만히 보면 우리의 사랑이 부족할 때 우리 자신을 살펴보면 우리가 복잡합니다.우리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근데 우리가 사랑할 때 이렇게 보면 단순합니다.우리 신앙이 우리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내가 복잡하게 만듭니다.하느님께서 우리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복잡하게 만듭니다.다시 한 번 오늘 주님 세례 대축일에 그 하느님의 단순한 절대 단순한 사랑을 우리 삶에서 본받을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은총을 청하도록 하십시다.
평화의 성부님, 성 가정의 성 마리아와 성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