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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4월 12일 주일
[(백) 부활 제2주일 곧, 하느님의 자비 주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대희년인 2000년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이 매우 깊었던 폴란드 출신의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였다. 그 자리에서 교황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특별히 하느님의 자비를 기릴 것을 당부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2001년부터 해마다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다.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에 감사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교회는 오늘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정하여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기리는 날로 삼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내려 주시며 죄를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자비로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이 자비를 깨달을 때마다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체험합니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하며 기쁜 마음으로 이 미사에 참여합시다.
말씀의 초대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한다(제1독서). 베드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그리스도의 부활로 생생한 희망을 주셨으니, 얼마 동안은 시련을 겪겠지만 즐거워하라고 한다(제2독서).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가 놓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시고, 여드레 뒤에는 믿지 못하는 토마스에게 나타나시어,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42-47
형제들은 42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43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44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45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46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47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습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4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상속 재산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5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준비가 되어 있는 구원을 얻도록,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힘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6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8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9 여러분의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31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토마스 사도의 모습은 사실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의심과 확신 사이를 오가며 흔들리는 모습입니다. 토마스 사도의 말은 단순한 불신의 표현이라기보다 정말로 부활을 믿고 싶다는 간절한 절규이며 하느님의 현존을 직접 체험하고 싶다는 갈망의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던 제자들 한가운데로 오십니다. 그리고 부활의 증거로 당신의 상처를 보여 주십니다. 제자들은 그 상처 안에서, 인간의 미움과 폭력까지 떠안으신 하느님,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봅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라고 하신 말씀처럼 죽음까지 이겨 낸 사랑의 증거로서 상처를 본 것입니다. 이 상처를 통하여 부활을 만난 제자들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이 그들을 고립과 두려움에서 끌어내어 새로운 삶으로 이끈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은 지금도 교회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살아 있습니다. 상처 없고 문제없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의 상처와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아파하는 공동체,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알아볼 때, 우리는 부활의 힘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인 오늘, 사랑의 하느님, 그 사랑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는 하느님을 깊이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간, 말과 행동으로 기쁘게 부활을 고백하며, 사도들의 이 신앙 고백이 우리 삶으로 울려 퍼지기를 희망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20,28)(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강렬한 신비 체험이나 은총 체험들은 평생 지속되지 않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후, 그동안 떠도는 소문에 대해 긴가민가했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빵도 드시고 물고기도 드시는 모습을 뵌 사도들의 마음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간 지니고 있었던 의혹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을 것입니다.
반대로 잠깐 다른 볼일 보러 나갔다가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던 토마스 사도는 얼마나 아쉽고 답답하고 억울했겠습니까? 토마스 사도는 그 답답함과 억울함을 이렇게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
신앙의 성장에 있어서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있던 토마스 사도였습니다. 제가 예수님 같았으면 불같이 화를 내며 ‘왜 그리 믿음이 약하냐? 언제까지 그 따위로 살거냐?’며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발현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나 자상하고 따뜻합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27)
복음서 내에 토마스 사도가 자신의 손가락을 구멍 뚫린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넣어봤다는 표현은 없지만, 그의 성격상 끝까지 세심하게 확인해봤을 것입니다. 자신의 손가락을 구멍 뚫린 예수님의 옆구리에 직접 넣어봤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이런 신앙 고백을 하게 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
토마스 사도의 늦었지만 장엄한 신앙 고백 앞에 예수님께서는 각별한 말씀 한마디를 덧붙이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사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옛날 토마스 사도를 위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가운데 단 한 명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그분께서 주신 믿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믿음 하나 단단히 붙들고 우리 앞에 펼쳐지는 희미한 안갯속 같은 신앙 여정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목격한 사도들의 기쁨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확인한 주님 부활의 그 기쁨을 가슴에 안고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의 삶으로 나아갔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신앙 여정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종종 체험하는 강렬한 신비 체험이나 은총 체험들은 평생 지속되지 않습니다. 일생에 단 한 번 혹은 두세 번뿐입니다. 그 은혜로운 체험을 가슴에 안고 믿음의 삶,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의 삶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아침에 사과를 먹을 때가 있습니다. 사과는 껍질까지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과 껍질을 깎아서 먹는 편입니다. 사과 껍질을 깎다 보면 늘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일 사과에 껍질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과에 껍질이 없다면 며칠 지나지 않아 금방 변질될 것입니다. 오래 보관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벌레가 생기고 상처가 나면서 금세 썩어버릴 것입니다. 사과의 껍질은 단순한 겉모습이 아닙니다. 사과의 맛을 보존하고 사과를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부님, 사과는 껍질째 먹어야 건강에 좋습니다.” 그래서 저도 가끔 껍질째 먹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먹으려고 하면 또 껍질을 깎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는 건강보다는 편한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도 가끔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알지만, 때로는 편한 길을 선택할 때가 있습니다.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에도 껍질이 있습니다. 특히 수백 년, 천 년을 사는 나무들을 보면 껍질이 매우 단단합니다. 나무의 껍질은 병충해를 막아주고 비와 바람을 막아주며 나무의 생명을 보호해 줍니다. 껍질이 없다면 나무는 오래 살 수 없습니다. 동물 중에도 껍질과 같은 보호막을 가진 동물들이 있습니다. 악어나 거북이를 보면 몸을 덮고 있는 껍질이 매우 두껍습니다. 그런 껍질이 있기에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조금 다릅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들처럼 몸을 보호하는 털이나 단단한 껍질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옷은 인간의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몸을 지켜 줍니다. 최근 국제 뉴스를 보면 또 하나의 보호막을 생각하게 됩니다.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방공망입니다. 방공망이 무너지면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없습니다. 어떤 나라는 방공망이 약해서 쉽게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반대로 어떤 나라는 강력한 방공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공격을 상당 부분 막아 냅니다.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 같은 방공 시스템이 그 예입니다. 하늘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여 피해를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전쟁에서 방공망이 중요한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보호막이 필요합니다. 신앙인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몸을 보호하는 껍질은 없지만 영혼을 보호하는 껍질, 다시 말하면 신앙의 방공망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보호막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의 유혹과 악의 공격에 쉽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로 신을 신고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며 성령의 칼, 곧 하느님의 비유 말씀을 받아 드십시오.” 바오로 사도는 신앙인의 삶을 전쟁터에 나가는 군사에 비유합니다. 군사가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전쟁터에 나간다면 금방 상처를 입고 쓰러질 것입니다. 그래서 군사는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고 투구를 씁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보호 장비를 영적인 보호 장비로 설명합니다. 진리는 허리를 동이는 띠가 되고, 의로움은 갑옷이 되고, 믿음은 방패가 되고, 구원은 투구가 되고, 하느님의 말씀은 성령의 칼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영혼을 보호하는 영적인 껍질, 신앙의 방공망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토마스 사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토마스는 예수님을 직접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신앙인의 삶에서 가장 강력한 영적인 보호막은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보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의 영혼을 지켜 주는 가장 강력한 방공망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면 초대 교회의 모습이 나옵니다. 신자들은 서로 가진 것을 나누었고,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공동체 안에는 기쁨이 있었고 평화가 있었습니다. 이 공동체도 하나의 영적인 보호막입니다. 혼자 있으면 쉽게 흔들리지만, 함께 기도하고 서로 도와주면 공동체는 우리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됩니다.
사과가 껍질로 보호받듯이, 나무가 껍질로 오래 살아가듯이, 전쟁에서 방공망이 나라를 지켜 주듯이, 신앙인에게도 영적인 보호막이 필요합니다. 그 보호막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믿음이며,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입니다. 믿음이 약해질 때 악의 세력은 쉽게 침입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굳건하면 악은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사과는 껍질이 있어서 오래 보존됩니다. 나무는 껍질이 있어서 천 년을 살아갑니다. 이 믿음이 우리의 영혼을 지켜 주는 신앙의 껍질이 되고 이 믿음이 우리의 삶을 지켜 주는 신앙의 방공망이 될 것입니다. 굳건한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은총을 청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는 평화입니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19,19.21.26)
벗을 품으니
내가
평화입니다
벗을 바라보니
눈이
평화입니다
벗에게 들으니
귀가
평화입니다
벗에게 말하니
입이
평화입니다
벗에게 내미니
손이
평화입니다
벗에게 다가가니
발이
평화입니다
벗을 그리니
마음이
평화입니다
벗과 함께하니
삶이
평화입니다
벗을 있게 하니
살림이
평화입니다
벗을 품어
나는
평화이어야 합니다
벗을 품어
나는
평화이고 싶습니다
벗을 품어
나는
평화입니다
오늘의 성인
성 요셉 모스카티(Joseph Moscati)
신분 : 의사, 과학자
활동지역 : 나폴리(Napoli)
활동연도 : 1880-1927년
같은이름 : 모스까띠, 모스카띠,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성 요셉 모스카티(Josephus Moscati)는 1880년 7월 25일 이탈리아 베네벤토(Benevento)에서 판사인 아버지 프란치스코와 어머니 로사 사이의 아홉 자녀 중 일곱째로 태어나 6일 만에 유아세례를 받았으며 1884년에 나폴리로 이사하여, 1888년에 첫영성체를 하였다. 1897년 나폴리 대학에 들어가 의학을 공부하던 모스카티는 어려서부터 깊은 신앙과 친절한 성품을 지녔는데, 대학 시절에도 학업에 열중하면서 기도에 충실하여 매일미사 참례를 하였다.
1903년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의사로서 바쁘고 고된 생활을 시작한 그는 정성껏 환자들을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돌보는 데에도 깊은 관심을 가짐으로써 교회를 떠나 있던 많은 사람들을 신앙생활로 다시 돌아오게 하였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었는데, 이들을 무료로 진료하였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이들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나폴리의 중심가에 자리 잡은 그의 진료소에는 그에게서 진료와 마음을 위안을 받으려는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이처럼 과중한 활동 중에도 모스카티는 의학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아 32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1911년에는 나폴리 대학의 화학생리학 주임교수로 임명되었고, 또 빈(Wien)과 에든버러(Edinburgh)에서 개최된 국제 생리학 회의에 이탈리아 대표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한편, 1906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였을 때는 즉시 피해 지역으로 달려가 위험을 무릅쓰고 인근 병원의 환자들을 옮기는 작업을 거들었으며, 1911년 콜레라가 창궐하였을 때에는 이 전염병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병원의 책임자로도 활약하였다.
1919년 40세도 안된 나이에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의 책임자 중 한 사람으로 임명된 모스카티는, 1927년 4월 12일 병원에서의 오전 진료를 마치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오후에 자신의 집에서 환자를 진료하던 중 갑작스런 발병으로 사망하였다.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나폴리 각계각층의 시민들은 달려와 “의사 성인, 쥬세페 모스카티가 죽었다”고 애도하였으며, 그를 추모하고 그의 전구를 비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제주 누오보(Giesu Nuovo) 성당에 안치된 그의 무덤은 항상 꽃으로 덮였다.
그로부터 4년 뒤 모스카티의 뛰어난 덕행과 전구를 통한 기적적 치료에 대한 증거와 증언을 수집하기 위한 교구 차원의 조사가 시작되었고, 성년(聖年)인 1975년 11월에 교황 복자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식이 거행되었고, 1987년 10월 25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제노 (Zeno)
활동년도 : +371년
신분 : 주교, 순교자
지역 : 베로나(Verona)
같은 이름 :
성 제노의 생애는 자세히 알 수 없고 다만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의 "대화집" 속에 나타나는 자료로 그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성 그레고리우스에 의하면 그는 베로나의 주교로서 순교했다고 하나, 그와 동시대 사람인 밀라노(Milano)의 주교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는 그의 편지에서 성 제노가 증거자로서 선종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는 북아프리카 사람이며 그의 라틴어 저술이나 인용문들을 살펴볼 때 훌륭한 지식의 소유자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그는 매년 수많은 이교도들을 개종시켰고, 특히 아리우스(Arius) 이단에 대해 강경했으며, 고트족의 침략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팔렸을 때 속량금을 지불하여 그들을 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 제노 자신은 극히 가난한 삶을 살았다. 또 성 암브로시우스에 의하면 그의 지도를 받고 일생을 하느님께 바친 동정녀들이 많았다고 한다. 또한 성 제노는 아가페(Agape)의 남용을 비난했고, 장례 때에 큰 소리로 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371년 예수 부활 대축일경에 선종하였다고 한다.
성 사바 (Sabas)
활동년도 : +372년
신분 : 순교자
지역
같은 이름 : 사바스, 싸바스
젊은 시절에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한 성 사바 고트인(Sabas the Goth)은 오늘날 루마니아에 속한 타르고비스테(Targoviste) 교회의 지도자였다. 그는 이방의 신들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사실을 변명하던 신자들을 공식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이 사건으로 그는 그 도시에서 쫓겨났으나 나중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그리스도교 박해 때 성 사바는 용감하게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했으나,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으로 분류되어 무사하였다. 세 번째 박해 때에는 아타리두스(Atharidus) 휘하의 고트인 군인들이 그를 체포하여 타르고비스테와 가까운 무소보(Mussovo) 강물에 수장시켜버렸다. 그 당시 50여 명의 다른 신자들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처형되어 순교하였다.
복자 안젤로(Angelus)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키바소(Chivasso)
활동연도 : 1411-1495년
같은이름 : 안겔로, 안겔루스, 안젤루스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 지방 키바소에서 태어난 안젤루스 카를레티(Angelus Carletti, 또는 안젤로)의 양친은 피에몬테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볼로냐(Bologna) 대학에서 수학하여 민법과 교회법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고향에 돌아와서 주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안젤루스는 모친이 사망하자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형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제노바(Genova)의 작은 형제회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안젤루스의 장상은 즉시 그가 선교열이 대단하며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감지하고 그를 훌륭한 인물로 양성하였다. 그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온정을 베풀었고, 환자들을 돌보면서 탁발 생활을 계속하였다.
제노바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9월 15일)도 그에게 늘 자문을 구하였고, 사보이아(Savoia)의 공작 카를로 1세는 자신의 고해신부로 그를 모셨다. 그는 소위 “숨마 안젤리카”(Summa Angelica)라는 윤리 신학서를 저술하였다.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의 임기 중 모슬렘의 침공이 있었을 때 작은 형제회는 위험에 처한 지역 국민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 안젤루스는 언제나 제일 위험한 지역에서 신자들을 돌보았다.
1491년 80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선교단의 책임을 맡을 정도였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Innocentius VIII)가 그를 주교로 승품시키려 하자 그는 끝내 거절하였다. 그는 항상 겸손하였다.
여든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구걸하였다. 그는 마지막 2년을 쿠네오(Cuneo)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84세의 일기로 운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승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