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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다해 11월8일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수원] 소통에도 밑천이 필요하다. -
수원 교구 오산 성당 전 삼용 요셉 신부
† 제1독서 : 로마 15, 14 - 21
† 복음 : 루카 16, 1 - 8
★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은 사제직을 수행하는 일이며, 모든
민족들을 거룩하게 하는 명예로운 일이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는 ‘약은 집사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신다. 약은 집사는 세속적인 논리로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최선을 다한다. 빛의 자녀인 우리는
복음적인 논리로 구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복음).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의 약은 집사는 주인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내어 그들의 빚을
조금씩 덜어 주었습니다. 설사 그가 집사 자리에서 쫓겨난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인심을 사서 생계를 이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집사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것들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받은 가정,
공동체, 사회, 자연 등을 우리의 것으로 삼아 보살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맡기신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소홀히 여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복음에 나오는 집사처럼 우리도 쫓겨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도 약은 집사처럼 우리에게 빚진 이들의 빚을
조금씩이라도 덜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의 죄를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죄’를 ‘빚’이라는 뜻으로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마태 6,12 참조).
곧 우리가 하느님께 저지른 죄는 곧 그분께 빚을 진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집사의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먼저 우리 자신이
다른 이들의 빚을 덜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오늘의
비유처럼 우리도 하느님께 인정받아 집사의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부족하고 많은 죄를 지으며 사는지 아시면서도
기꺼이 우리에게 집사의 자리를 맡겨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우리 또한 다른 이들에게 관대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지혜로운 삶을 축복하소서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신부님
2013년 다해 11월8일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 루카 16,1-8
지혜로운 삶을 축복하소서.
앞날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현명합니다. 재물에 투자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배려한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온갖 정성을
쏟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늘의 영광을 헤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얻는 것입니다. 내일을 준비하되 약속된 미래, 영생을
생각하면서 지혜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어떤 부자집 집사가 결국은 주인으로부터‘해고 통지’
를 받았습니다. 그는 고민하다가 자신의 장래를 보장 받기 위한
부정을 또 저질렀습니다.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다가
빚을 탕감해 주고 훗날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그것을 보고 그를
칭찬하였습니다. 세속적인 사람이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려 애쓰는
모습은 칭찬할 만합니다. 그러나 방법이 잘못되었으니 결국
세속적입니다.
어쩌면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현세적인 이득이나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 자녀교육이나 재산의 축적과 같은 일을
위해서는 위장전입이나 탈법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을
오히려 잘나가는 사람으로 생각하니 말입니다. 아파트 청약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소문난 좋은 유치원에 등록하기 위해 길바닥에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동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세상일에는 정말 많은 수고와 땀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자녀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할 짓 못할 짓을 다합니다.
세상일에도 이렇게 정성을 쏟거늘 하물며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노력은 얼마나 더 해야 하겠습니까? 세속의 자녀도 막다른 골목에서
돈을 팔아 사람을 사거늘 마지막 날 주님의 대전에서 서게 됨을 알고
있다면 그 준비를 미리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빛의 자녀들은 영혼의
이익을 위해서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은 행복합니다(루가12,43).
그리고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입니다’(루가12,47).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혜로운 덕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땅히 행할 바가 무엇이며, 마땅히 피할 바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성 아우구스띠노).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의
눈은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고정되어 있습니다. 빛 속에 거니는 사람이
어둠을 전혀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님께 시선을 고정시킨 사람은
시선을 헛된 것에다 둘 수 없습니다”(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따라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을 잘 이용하여 미래를 대비해야 하겠습니다.
사실“많은 일을 해도 해야 될 일을 안 한 사람은 적게 일한 것이고,
적게 일한 것처럼 보여도 해야 될 것을 한 사람은 많이 일한 것입니다.
말만 앞서거나 부산함만 피우지 마십시오”(성 요한보스코). 세속 일도
중요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한 일,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않길 희망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는
만큼 큰 수고와 정성으로 복된 날 만드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주님으로부터 칭찬받을 수 있는 길은 바로 ‘나눔’뿐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우표 수집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우표 수집에
온 힘을 다 쏟았던 것 같습니다. 새 우표가 나오면 꼭두새벽부터 우체국
앞에 줄을 서서 우표를 구입했고, 우표를 가지고서 스토리를 만들어
보관하기도 했지요. 얼마 전에 당시에 모았던 우표들 중의 일부를
어머니께서 주셨습니다. 집을 정리하다가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우표들, 이 우표 중에 한 장만 없어져도 화를
내고 그 우표를 찾다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요? 내 삶을 바꾸는데 별 문제도 되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괜히 쓸데없는 힘을 쏟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것에 온 힘을 쏟곤 합니다. 특별히
소유하고 있는 재물을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재물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지요. 알몸으로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주님께로 돌아갈 때에는 내가 벌었던 재물들을 가지고 갈까요?
아닙니다. 알몸으로 왔듯이, 다시 알몸으로 주님께로 돌아갈 뿐입니다.
그렇다면 재물이란 내 것일까요? 아니면 내 것이 아닐까요?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내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욕심을
갖고 나누지 않습니다. 이 모습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집사가
주인에게 혼나는 이유입니다. 즉, 재물이란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으로만 생각하고 함부로 낭비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주인의 말을 들은 집사는 곧바로 바뀌지요.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고서
나누기 시작한 것입니다. 잠시 주인의 것을 관리하는 것뿐임을 깨닫고
자신에게 맡겨진 재산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합니다. 그때서야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합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은 잠시 내게
맡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성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재물이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 백배로 보상받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빌려 주신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말씀을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도 하셨지요.
“무릇 재물을 비밀스럽게 간직하는 방법은 베풂 만한 것이 없다.
내 재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될 재물이
받는 사람의 마음과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다. 그럼
그 재물은 변치 않는 보석이 된다.”
재물을 벌기만 하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은 ‘화폐수집가’가 될 뿐입니다.
세상에는 이 화폐수집가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과연 주인이신 주님께 칭찬받을까요? 주님으로부터 칭찬받을 수
있는 길은 바로 ‘나눔’뿐입니다.
어제 살았던 방식이 오늘의 삶을 결정하는 거야. 하지만 내일의
삶은 바로 오늘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렸어. 매일매일이 ‘새로운
기회’가 되는 거야(마샤 그래드).
제가 고등학교 때까지 모은 우표의 일부. 이렇게 정성을 들였는데...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산 사람
미국 역사상 최고 부자라고 손꼽히는 인물이었고, 또한 미국의
석유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를 아십니까?
그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에 미국의 최대 부자가
53세에 세계 최대 갑부가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55세에 그는 불치병으로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최후 검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갈 때, 병원 로비에 실린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
이 글을 보는 순간, 커다란 깨달음을 얻게 되었지요.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병원 입원비 문제로 다투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즉, 병원에서는
병원비가 없어 입원이 안 된다고 하고, 환자의 어머니는 제발 입원을
시켜 달라고 울며 사정하는 장면이었지요. 록펠러는 비서를 시켜서
병원비를 대신 지불하게 하고 그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했답니다.
얼마 뒤, 몰래 도운 그 소녀가 기적적으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큰 기쁨을 얻게 되어서 후에 쓴 자서전에 이렇게 남겼지요.
“저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철저하게 나눔의 삶을 삽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불치병이 깨끗하게 사라진
것입니다. 그는 98세로 이 세상을 마감할 때까지 나눔에 힘쓰며
살았지요. 돌아가시기 직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인생의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과연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까요? 내 것도 아닌 재물을 잠시 맡고
있으면서,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못하기에 쫓기며 사는 것이 아닐까요?
행복한 삶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 명연 마태오 신부 -
◈ [기타] 잘 쓰다가 잘 돌려 드려야 합니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잘 쓰다가 잘 돌려드려야 합니다.'
2013년 다해 11월8일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복음묵상
“옳지, 이렇게 하자. 내가 집사 자리에서 밀려나면 사람들이
나를 저희 집으로 맞아들이게 해야지.”(루카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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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청지기(집사)의 비유이다.
그런데 잘 알려진 비유임에도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예수님께서 맡은 일에 충실하지 못했던 청지기의 약삭빠른
행동을 칭찬하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청지기란 남의 것을 대신 맡아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 역시 그런 의미에서 청지기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며, 소중하게 잘 관리하다가
좋은 열매를 맺어 다시 돌아오라 하시며 이 세상에 우리를 보내셨다.
우리의 몸도, 마음도 그리고 그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나가는 삶도
하느님께서 맡기신 것임에 분명하다.
결국 언젠가는 돌려드려야 할 것들이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몸과 마음을 우리는 얼마나 소중하게 관리하고 사용하고 있는가?
우리의 삶이 그분께서 원하시는 바대로 얼마나 제대로 움직여지고 있는 것일까?
“최선을 다했다”라는 자신 있는 대답을 준비한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비유 말씀의 청지기와 같은 처지일 수 있다.
청지기처럼 우리도 어떤 일을 계기로 제대로 못 살아온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두려움 섞인 한숨을 내뱉을 때가있다. 정말 필요한 신호이다.
“주인이 내게서 집사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어떻게 하지? 땅을
파자니 힘에 부치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다.”
약은 청지기의 행동을 보속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해보자.
청지기는 두려움에 그저 주저 앉는 것이 아니라, 회복할 수 있는
길, 즉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한다.
주인에게 빚진 이들의 빚을 줄여준다. 그렇다.
우리 역시 자신을 관리하지 못한 죄의 결과를 두려워하는
머무르지 말고, 무엇인가 움직여야 한다.
하느님께 빚을 지지 않은 이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죄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하느님께 진 빚이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
은총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하느님께 진 빚이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다.
하느님께 빚진 이들을 돕는 거다.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가능하면 보속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거다. 우리의 허물이 용서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 거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자주 말씀하시던 사랑이라는 것 역시 결국 남을
살리는 일이 아니겠는가?
최소한 이러한 셈법에는 둔해져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청지기의
비유에 들어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서울]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2013년 다해 11월8일
어제는 수학능력 시험이 있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생각했던 것
보다 점수가 잘 나왔을 것입니다. 어떤 친구는 그동안 준비했던
것에 비해서 점수가 낮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평소와
비슷한 점수가 나왔을 것입니다. 결과를 대하는 친구들의 태도도
다양할 수 있습니다. 어떤 친구는 낙담하고, 실망할 것입니다.
어떤 친구는 겸손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입니다. 어떤 친구는 희망을 가지고 기다릴 것입니다. 같은
결과라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다를 수 있습니다.
좋은 결실을 맺은 친구들에게는 축하를 드립니다. 생각보다
결과가 좋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격려와 위로를 드립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험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성적이 나빴던 친구가 행복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성적이 좋았던 친구가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결국 삶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합니다.
사제들도 그렇습니다. 대부분은 본당에서 사목을 하지만 어떤
분들은 멀리 해외에 나가서 선교를 하기도 합니다. 도시빈민을
위한 사목, 교정사목, 직장인을 위한 사목을 하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사목은 잘 드러나지 않고, 결과를 쉽게 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목을 스스로 자원해서 하는 신부님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어떤 사제들은 관리와
행정을 맡아서 사목을 합니다. 교구는 재정규모가 작지 않습니다.
‘병원, 신문, 방송, 학교, 상조, 식당, 건설’ 등과 같은 분야에서
사목을 하는 신부님들도 있습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상당히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쪽으로는 재능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본당의 예산 10억 정도를 관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병원, 학교, 방송, 신문과 같은 분야는 그
재정규모가 저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습니다.
자동차는 바퀴가 균형이 맞아야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새는
좌, 우의 날개가 있어야 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구의 일도
선교를 해야 하는 분야도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지원하고 관리할
수 있는 분야도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재정을 관리하는
제자를 따로 두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도 부제들을 뽑아서 음식을
나누고, 재정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교구 사무처에서는
본당 신부님을 대상으로 ‘노무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앞으로는
특수사목을 하는 사제들에게도 ‘노무교육’을 할 거라고 합니다.
이것 또한 필요한 것이라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보다 더 정직하지
못하다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순수하지 못하다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인내하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보다 더 나누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님이 전해 주신 기쁜소식을 전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말을 하면 좋겠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모르지만
여러분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습니다. 여러분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하겠습니다.’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신앙 작동이 잘 되라는 것
2013년 다해 11월8일 연중 제 31주간 금요일
신앙 작동이 잘 되라는 것
세상에서 영리하다는 사람들이 세상의 칭찬을 받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칭찬이 그대로 하늘로 전달되는 칭찬은 아닐 겁니다.
첫째가 꼴지가 되고 꼴지가 첫째가 될지 모를 하늘나라이니까요.
하늘나라의 소프트웨어가 잘 작동되는 인간의 영리함은 다를걸요?
정치인들 재벌들 부자들 모두 하늘의 소프트웨어가 작동되면
좋겠습니다.
신앙인들이 각자 자기의 영역에서 신앙 작동이 잘 되라는 거지요.
“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 16,8)”
-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소통에도 밑천이 필요하다.
2013년 다해 11월8일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 부정한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
복음 : 루카 16,1-8
< 소통에도 밑천이 있어야한다. >
‘포프리쇼’의 김창옥 교수의 아버지는 청각장애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그것을 매우 부끄럽게 여겼다고 합니다. 돈은
절대 집에 안 가져다주고 술과 도박으로 사회에 환원하시는
분이셨고, 그래서 어머니와 자주 다투셨는데 폭력도 사용하셨습니다.
김창옥 교수는 아버지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이 앉아있으면
어색해서 먼저 자리를 뜨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자신도 아버지와 소통을 하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김 교수 강의 주제는 ‘소통’이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전화를 드려도 귀가 잘 안 들리시니, “어, 그래 창옥이냐?
끊어라. 전화세 많이 나온다.”라는 말씀이 전부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말씀이, “그래 전화 해 주어서 고맙고, 너나 건강해라.
우리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라는 말씀으로 들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색한 관계가 편안해지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리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집에 갈 때마다 용돈을
드리니 너무 기뻐하시더랍니다. 어느 날은 공항까지 배웅 나오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 일은 생전 처음 겪어본다고 하였습니다. 예전엔
그렇게 크고 무서워보이던 아버지의 작은 체구와 쳐진 어깨를 보며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용돈을 드리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떠나시지 않고 자신을 바라본다는 생각에 자신도 뒤를
돌아보셨다고 합니다. 그 때 아버지는 아들은 보지 않고 봉투에서
돈을 꺼내어 세고 계셨습니다.
저도 이것을 조금은 이해합니다. 저희 아버지도 제가 신학교 가는
것을 그렇게 반대하셨습니다. 지금은 사제로 사는 저의 모습을 매우
좋아하십니다. 왜냐하면 용돈을 드리기 때문입니다. 돈이란 것이
내가 가지고만 있으면 죽음의 약이 될 수도 있지만, 남에게 베풀
때는 소통의 약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김창옥 교수의 어머니도 말로는 “너 쓸 돈도 없을 텐데 왜 자꾸
이런 돈을 붙이냐?”라고 하시지만, 전화를 끊고는 딸들에게 전화해서,
“야, 이것들아. 창옥이는 이렇게 용돈 자주 주는데 너희들은 뭐하는
거냐?”하며 자랑하신다고 합니다.
모든 관계에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을 마련해야합니다. 부모님을 위해서는 용돈을, 조상들을
위해서는 제사상을, 애인을 위해서는 신상 핸드백을, 내 자신을
위해서는 맛있는 음식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약삭빠른 청지기를 칭찬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도 청지기처럼 주인의 재산을 유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와 같이 살면 안 된다는 말씀일까요?
오늘 복음을 잘 이해하려면 오늘 복음 다음 구절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그러니까 주인을 속이더라도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재산이 부정한
재산이라도 그것을 이용하여 친구를 사귀라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한데 그것이 부정한 돈이라도
상관없다는 말씀입니다. 더러운 돈으로라도 친구를 사귀라고 하신다면
하늘나라에서 나를 맞이할 친구를 사귀어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를 아실 것입니다.
독일군 점령지인 폴란드의 크라코프. 기회주의자인 오스카 쉰들러
(Oskar Schindler: 리암니슨 분)는 폴란드계 유태인이 경영하는
그릇 공장을 인수하러 도착합니다. 그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나찌
당원이 되어 SS요원들에게 여자, 술, 담배 등을 뇌물로 바치며 갖은
수단을 동원하게 됩니다. 인건비 한 푼 안들이고 유태인을 이용하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합니다.
그러나 쉰들러도 자신의 눈을 통해 나치의 살인 행위들을 직시하게
됩니다. 그러한 쉰들러의 현실 직시는 마침내 그의 양심을 움직이고
유태인을 강제 노동 수용소로부터 구해내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들 일명 '쉰들러의 유태인들'을 어떻게 구해낼 것인가였는데 노동수용소
장교에게 뇌물을 주고 구해내기로 계획을 잡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독일군 점령지인 크라코프로부터 탈출시켜 쉰들러의 고향으로 옮길
계획을 하고, 스턴과 함께 유태인 명단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한 모든
계획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마침내 1,100명의 유태인을 폴란드로부터
구해내게 됩니다.
그는 적어도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았건, 또는 나라의 법을 어겨가며
사람의 생명을 구했건 하늘나라에는 좋은 일을 한 것은 잊히지 않고
남아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이태인들이 그를 하늘나라에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이 그를 지옥에 보내려도 해도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간청하여 그가 지옥에 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가 저희가 어렸을 때 부대 철창 밑으로 들어가 부대
철거를 하고 사용하던 카페트 쌓아놓은 것을 빼내어 그것을 팔아
저희에게 자장면을 사 준 기억이 납니다. 부정한 돈임을 그 나이에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장면 하나 사 줄 수 없는 가난한 형편에
미군들이 쓰던 중고 카페트를 철창 밑으로 빼내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저희를 위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물론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되겠지만, 혹 그런 돈이
있더라도 친구를 사귀는데 사용합시다. 많은 친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 우리는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산 성당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ca-osan
- 수원 교구 오산 성당 전 삼용 요셉 신부 -
◈ [수도회] 나에게 영혼을 달라
2013년 다해 11월8일 연중제31주간 금요일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루카 16,1-8
나에게 영혼을 달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약은 청지기(집사)’의 비유는
잘 새겨듣지 않으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상당한 비유입니다.
약은 청지기에 대한 비유말씀을 아무 생각 없이 읽다보면 예수님께서
공금횡령을 한 불의한 집사를 두둔하고 칭찬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도대체 이 비유가 주장하는 바가 뭘까, 궁금증이 가시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이 비유 말씀을 들은 재무담당자들이 약은 청지기의 불의한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해서 초대형 금융 사고를 터트리면 어떻게 되나
걱정도 됩니다.
그래서 이 비유 말씀은 소나 말이 먹이를 천천히 되새김질하듯이
진지하고 신중하게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곱씹고 또 곱씹는
묵상을 되풀이해야 할 것입니다.
비유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세상의 자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듯이 빛의 자녀들 역시 자신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교훈입니다.
자신의 영혼은 물론이고 돌보고 있던 수많은 청소년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목숨 바쳐 일했던 돈보스코께서 살아생전 입에 달고 다녔던
말씀입니다.
“나에게 영혼을 달라. 나머지는 다 가져가라!” 라틴어로 이렇습니다.
“Da Mihi Animas Cetera Tolle!”
“저는 한 아이의 영혼을 구하는 일이라면 악마에게 절까지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우위성을 인정하는 일, 우리 영혼 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일, 하느님께 우선권을 두는 일, 이것이 약은 청지기
비유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삶의 우선권을 어디에 두느냐는 것은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결정입니다. 물론 건강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마땅합니다.
건강해야 사람 구실도 하고 가족들도 부양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전공 분야에 경지에
올라 인류와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이슬만 먹고
살수는 없지 않습니까? 열심히 그러나 정당한 방법으로 재산 증식을
위해 신경 쓰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중요한 대상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최 우선권’을 둬서는
안 됩니다. 그 아무리 대단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느님 위에 위치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건강관리를 잘 한다 해도 90, 100 넘어가면 다 소용없습니다.
자연스럽게 소멸되어가는 것이 불변의 진리이자 우주의 명확한
이치입니다. 차지하기 위해 그토록 기를 썼던 자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앉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누군가가 자리를 비워주기를 서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물 역시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남들 다 가는
단풍놀이 한번 가지 않고 재물을 쌓아놓았는데 거울을 바라보니 어느새
인생의 끝에 서 있습니다. 그거 아까워서 어떡합니까?
결국 아무 대상에게나 우선권을 둘 일이 아니군요.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기반, 불멸의 존재, 하느님만이 우선권을 드릴 대상입니다. 하느님
안에 영원히 함께 살아갈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해 삶의 보다 많은
에너지를 투여할 일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 부 관구장 양승국 시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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