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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2024, 11, 24)
제목 : 베냐민 지파의 땅 분배
성경 : 수 18 : 11-28
오늘 본문은 베냐민 지파의 땅 분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어떤 지파일까요?
먼저 베냐민 지파는 선조는 베냐민입니다.
베냐민은 야곱이 라헬에게서 낳은 막내 아들입니다.(창35:18)
그리고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친동생이기도 합니다.
라헬은 베냐민을 난산 끝에 낳고 죽습니다.
라헬은 죽으면서 이름을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의 베노니라고 지었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그 이름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의 베냐민이라는 이름으로 고쳤습니다.(창38:18) 베냐민은 막내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버지 야곱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그의 친형 요셉의 사랑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베냐민이 베냐민 지파가 된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베냐민 후손 중에는 사사 시대에 왼손잡이 사사 에훗(삿3:15-30)이 있습니다.
성경은 에훗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3장 1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에훗은 당시 이스라엘 민족을 18년 동안이나 압제했던 모합 왕 에글론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구원합니다.
그 외에도 베냐민 지파의 주요 인물로는 이스라엘 초대 왕이 되었던 사울 왕이 있습니다.(삼상9:1)
또 죽으면 죽으리라(에3:16)고 말하며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죽이려고 했던 대적 하만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에스더가 있습니다. 신약의 위대한 사도 바울 역시 베냐민 지파 사람입니다.(롬11:1, 빌3;5)
베냐민 지파는 사사 시대에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오점도 남겼는데 베냐민 땅인 기브아에서 레위인의 첩을 능욕함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거의 전멸하다시피 됩니다.
그래서 겨우 600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사무엘 선지자가 베냐민 지파인 사울에게 찾아와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려고 할 때 사울의 대답이 이것입니다.
삼상9:21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이렇게 베냐민 지파는 한 때, 가장 작은 비파요, 가장 미약한 지파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가장 작고, 가장 미약한 지파에서 왕을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작은 자, 약한 자를 들어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부족해도, 약해도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두 부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1절에서 20절까지는 베냐민 지파가 분배받은 땅의 경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1절에서 28절까지는 베냐민 지파가 분배받은 성읍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냐민 지파가 차지한 성읍들 중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셨던 유서 깊은 장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성읍들은 여리고, 벧엘, 기브온, 예루살렘 등입니다.
여리고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가나안 땅의 첫 관문입니다.(21)
가나안 정복 전쟁 당시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번씩 돌고 칠일째 되는 날은 일곱 번 돌았습니다. 그리고 일제히 외치자 와르르 무너졌던 성입니다. 여리고 성에 살고 있던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숨겨주었으므로 그의 가족들과 함께 살아 남았습니다.
또 벧엘이 있습니다.(22)
벧엘은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여 첫 번째 제단을 쌓았던 곳입니다.(창12:8)
또 벧엘은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으로 집으로 도망가다가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입니다.
벧엘의 원래 이름은 루스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그곳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의 벧엘로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또 기브온이 있습니다.(25)
기브온은 여호수아가 예루살렘 왕을 비롯한 세 왕의 연합군과 싸울 때 해와 달이 멈춘 장소이기도 합니다.
수10:12-13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또 여부스 곧 예루살렘이 있습니다.(28)
예루살렘은 후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는 거룩한 장소가 됩니다.
지금까지 베냐민 지파가 차지한 주요 성읍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첫째는 우리 삶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섭리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가 차지한 땅은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의 중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비를 뽑아 그 땅을 분배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배후에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이기도 한 것입니다.
야곱이 열 두 아들을 축복하였는데 그 중에서 베냐민에게는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창49:27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여러분 베냐민 지파가 기업으로 분배받은 땅은 지리적으로 북방 메소포타미아와 남방 애굽을 잇는 주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이후에 베냐민 지파의 땅은 북방 정책을 추진하는 남 유다와 남방 정책을 추진하는 북이스라엘이 충돌하는 격전장이 되었습니다.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베냐민 지파는 매우 호전적인 지파가 된 것입니다.(사5:14, 20:16)
또 한편으로 모세는 베냐민 지파에 대해 이렇게 축복하며 예언했습니다.
신33:12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마치도록 보호하시고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
이 말씀에 보면 베냐민을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살리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를 자기 어깨 사이에 있게 하시리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졌습니다.
베냐민 지파가 장차 성전이 세워질 예루살렘 땅을 차지하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곁에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베냐민 지파의 땅 분배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 수 입니다.
이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내가 사는 것 같아도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삶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저와 여러분의 삶을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섭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풍성하게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시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렘10;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잠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그러므로 여러분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두 번째는 삶의 경계를 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베냐민 지파에게 땅의 경계를 주셨습니다.
12절에 보면 북방 경계가 나옵니다.
14절에는 서쪽 경계가 나오고, 15절에는 남쪽 경계가 나옵니다.
그리고 20절에는 동쪽 경계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땅의 경계를 주신 이유는 경계를 넘지 말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을 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22:28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잠23:10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이것을 우리 삶에 적용해 보면 삶의 경계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각자에게는 삶의 경계가 있습니다.
가정에도 경계가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경계가 있습니다.
부모 자식간에도 경계가 있습니다.
이웃 간에도 경계가 있습니다.
그 경계를 넘지 말아야 합니다.
일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일탈을 낭만으로 미화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탈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닙니다.
가정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 부모자식간의 문제, 이웃 간의 문제는 주로 일탈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을 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왜 신앙생활을 잘하던 사람들이 이단에 빠집니까?
신앙의 경계를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2000년 동안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믿고 고백했던 신앙의 경계를 벗어나서 뭔가 특별한 것이 있나 찾다가 이단에 빠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2000년 동안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믿고 고백했던 신앙이 참이요, 진리인 것입니다.
바울이 신앙의 경계를 넘어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딤전 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유튜브에 보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은사나 눈에 보이는 외적 현상들을 쫓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말세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세의 특징으로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24: 23-24 그 때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은사나 눈에 보이는 외적 현상들을 쫓는 것은 말씀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은사나 예언이나 눈에 보이는 외적 현상들을 말씀보다 우위에 놓는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말씀에서 벗어나서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절대로 말씀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삶의 경계, 신앙의 경계, 말씀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경계들을 잘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성도들은 삶의 질서가 있고 안전하고 평안한 것입니다.
이런 성도들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세 번째는 하나님이 주신 삶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가 분배받은 땅에는 여러 종류의 땅이 있었습니다.
넵 도아 물 근원도 있었습니다.(15)
반면 벧아웬 황무지도 있었습니다.(12)
평지도 있고, 힌 놈의 아들 골짜기도 있었고(16), 비탈도 있었고, 산도 있었고, 강도 있었고, 올라가는 곳(12)도 있었고 내려가는 곳(13,16,17,18)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베냐민 지파에게 허락하신 땅들인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베냐민 지파에게 주신 땅들을 보면서 우리 삶과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삶을 보면 평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우리 삶을 보면 황무지도 있고, 골짜기도 있고, 비탈도 있는 것입니다.
산도 있고, 강도 있는 것입니다.
삶이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에는 굴곡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리에게 풍성하게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삼상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전3:1-4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전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것들이 오히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번 목회자 독서목임에서 선정된 도서가 한 때 베스트 셀러였던 김수현 작가의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라>였습니다. 그 책에서 인상 깊었던 말이 ‘맑은 날만 계속되면 사막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도 와야 하고 태풍도 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옥한 땅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최근에 역시 베스트 셀러인 양귀자님이 쓴 모순이라는 소설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결혼 적령기에 있는 안진진이라는 20대 중반의 여자입니다.
그녀에게는 쌍둥이인 엄마와 이모가 있습니다.
엄마와 이모는 얼굴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똑같이 생겼습니다.
결혼도 같은 날에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의 삶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엄마는 폭력과 가출을 일삼는 남편을 만났기 때문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억척스럽게 두 남매를 기릅니다.
반면 이모는 돈 잘 버는 건축사 남편을 만나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엄마는 삶이 고되지만 그 속에서 삶의 의미와 행복을 느끼며 삽니다.
그러나 이모는 부족함이 없는 삶이 오히려 무료하고 심심하여 결국 자살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굴곡이 있는 삶이 오히려 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분명한 것은 물 근원도 허락하신 하나님이 황무지와 골짜기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 황무지와 골짜기와 같은 삶이 있을지라도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들이 오히려 저와 여러분을 더욱더 성숙하게 만들고, 풍요롭게 만들고, 유익 되게 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