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중국에 유학오고
머지않아 들리지않은 팅리로 들었던 조국소식들 몇가지 있었습니다.
성수대교 붕괴소식
삼풍백화점 붕괴소식
나중에는 항공기사고소식까지....
세월이 많이 지나갔지만 다시는 일어나지말아야할 끔찍한 대형사고들이었습니다.
우연히 본 그때그시절 사건이라 올라온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사진 1, 1994.10.21 성수대교 붕괴사고 현장>
1994년 연말, 믿을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성수대교의 5번과 6번 교각 사이의 다리 상판이 그대로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사고 부분에 있던 자동차 다섯 대가 그대로 물속에 빠졌고, 뒷바퀴 가 사고 부분에 걸쳐있던 버스 한 대는 뒤집혀서 떨어지다가 다리 상판에 부딪혀 찌그러졌습니다. 이 사고로 무려 서른두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말았지요.
<사진 2, 1995.07.02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8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더욱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합니다. 건국 이래 최악의 사고로 손꼽히는, 무려 5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900여 명이 부상을 입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입니다.
<사진 3, 1995.07.01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을 찾은 김영삼 전 대통령>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 건물에서 균열이 시작됐습니다. 당시 백화점 내부에는 500여 명의 직원들을 포함해 1500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백화점 측은 영업을 강행했고, 5시 50분이 되어서야 비상벨을 울렸습니다. 비상벨을 들은 사람들은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가기 위해 출구로 몰리기 시작했고, 불과 2분만인 5시 52분, 백화점 건물 한 동이 말 그대로 ‘폭삭’ 내려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던 5층짜리 백화점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 20초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진 4, 1995.06.30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책 관계장관 회의>
우리나라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꼭 따라붙는 말이 바로 ‘안전불감증’과 ‘인재’라는 말입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역시 이 두 가지 비난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건물은 지어질 당시부터 붕괴의 위험을 끌어안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붕괴 이후 드러난 바에 따르면 건물 기둥의 두께는 설계도면 상의 2/3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본래 4층으로 설계되었던 건물은 짓는 과정에서 5층으로 증축되었고, 거기에 설계 당시에는 계획돼 있지도 않던 옥상 냉각탑 추가로 건물이 견뎌내야 하는 하중은 그만큼 늘어났습니다. 사고 2년 전인 1993년에는 옥상에 설치돼 있던 에어컨 실외기와 환풍기를 반대편으로 옮겼는데, 크레인 이용 비용을 줄인다는 이유로 굴림대를 이용해 옮기는 최악의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무거운 환풍기를 바닥에 끌어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옥상 바닥 일부가 깨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진 5, 1995.07.02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
백화점 붕괴 조짐은 수 년에 걸쳐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고 합니다. 건물 곳곳에서 균열이 발견되었고, 심지어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붕괴 직전에는 천장에서 물이 새고 바닥이 내려앉는 등의 문제도 곳곳에서 나타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백화점 측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영업을 강행했고, 심지어 붕괴 직전 비상벨을 울리기 전에 경영진만 먼저 대피했던 것으로 드러나 더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사진 6, 1995.07.02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
5층짜리 백화점 건물 한 동이 통째로 무너져 내린 유례 없는 사고에, 사고 현장이 크고 넓은데다 피해자 숫자 또한 많아 사고 수습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특히 생존자 탐색과 구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탰고, 초능력자로 알려진 외국인들이 도움을 주겠다며 입국했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던 실종자 가족들에겐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어려운 지옥 같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사고 3일 만에 추가 붕괴 위험으로 인해 생존자 수색 작업이 중단되어 실종자 가족들이 시위에 나서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진 7, 1995.07.02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
사고 후 열흘이 지난 이후에 구조된 생존자는 모두 세 명입니다. 11일 만에 구조된 최명석씨, 13일 만에 구조된 유지환씨, 그리고 17일만에 구조된 박승현씨입니다. 이들은 사고 당시 모두 10대였는데요.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각각 콜라와 냉커피, 아이스크림이라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살아났다’는 기쁨을 솔직하게 표현한 이들로 인해 당시 언론에는 ‘신세대들이 기성세대에게 문화 충격을 주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사진 8, 1995.07.02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단일 사고로는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502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6명은 끝내 발견되지 않아 실종 처리되었습니다. 백화점 내부에 있던 사람들뿐 아니라 주변을 지나다가 건물 파편에 맞아 다친 사람들의 숫자는 거의 1000명에 달합니다. 10대 생존자들을 포함한 생존자들은 아직도 그 날의 사고로 인한 정신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첫댓글 다시는 있어서도 않되고 기억하고 싶지않은 과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