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야 한낱 남루襤樓에 지나지 않는다.
----서정주, [無等을 보며] 부분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그 남루 앞에서 언제, 어느 때나 더욱더 의연하고 당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정주는 기회주의자의 화신이며, 변절자의 이상적인 모델이다. 그는 그의 애국심을 ‘친일’로 더럽혔고, 또한 그는 일본천황을 우러러 모셨던 충정심으로,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어졌던 독재정권을 받들어 모셨다. 그는 언제, 어느 때나 가난을 멀리하고, 끝끝내는 카멜레온처럼 우리 한국인들을 기만했다.
서정주의 [자화상], [화사], [입맞춤] 등의 몇몇 시들을 제외하고는 그는 수준 미달의 얼치기 삼류 시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대한민국의 제일급의 시인이 된 것은 정통성이 없는 독재정권 아래서, 그가 모든 문화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친일파의 화신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더러운 짓도 마다하지 않았던 미당 서정주에 의해서 우리 한국인들의 정체성은 더욱더 크게 훼손되었던 것이다.
내가 이 ‘명구산책’에 그의 시를 수록하고자 한 것은 그의 삶의 족적과 역사 의식을 덮어두고, 그의 시적 문맥내에서만 그의 시를 가치평가하고자 했었기 때문이었다.
진리와 진실은 한 인간의 삶의 족적과는 전혀 무관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경환 명구산책 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