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이형우(시몬 베드로) 아빠스께서 2016년 11월 27일(일) 오전 6시 25분 급환으로 70세(수도서원 45년, 사제서품 39주년)를 일기로 선종하셨습니다.
장례미사 : 2017년 11월 29일 화요일 오후 2시
장 소 : 왜관수도원 대성전
장 지 : 왜관수도원 묘지
이형우(시몬 베드로) 아빠스 약력
1946년 9월 30일 |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 출생 |
1965년 3월 1일 | 왜관 수도원 입회 |
1971년 2월 15일 | 첫 서원 |
1974년 2월 15일 | 종신서원 |
1974년 5월 | 로마유학 |
1977년 7월 11일 | 사제서품 |
1984년 3월 | 교황청립 성 아우구스티노 대학 교부학 박사학위 취득 |
1984년 8월 3일 | 수도원 역사 편찬 책임 및 청지원장 지도 |
1985년 10월 18일 | 구미 원평 성당 주임 |
1986년 7월 | 대명동 성당 주임 |
1988년 8월 20일 | 본원. 수련장 |
1994년 1월 20일 | 왜관 피정의 집 책임 |
1997년 7월 5일 | 본원 부원장 |
1998년 6월 | 수도원 봉헌회 책임 |
1999년 6월 1일 | 왜관 피정의 집 책임 |
2001년 8월 23일 | 왜관수도원 제4대 수도원장 피선 |
2001년 9월 11일 | 아빠스 축복 |
2005년 11월 21일 | 덕원자치 수도원구 자치구장 서리 |
2013년 4월 1일 | 수도원장 사임 |
2013년 10월 7일 | 마산 트라피스트 수녀원 지도 |
2016년 11월 27일 | 선 종 |
이형우(시몬 베드로) 아빠스님은 1946년 황해도 재령 출생으로 1946년에 서울대교구 재령본당에서 양 신부님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1965년 3월 1일 왜관 수도원에 입회와 동시에 대건신학대학에 입학하였고, 1970년 2월 14일 수련착복, 이듬해 1971년 2월 15일 첫서원을 발하였고 같은 해 3월 2일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편입하였습니다.
이후 1974년 2월 15일에 종신서원을 했고 같은 달 서울 신학교를 졸업하고, 5월에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1975년 6월 성 안셀모 대학을 졸업, 10월에 성 아우구스티노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1977년 7월 11일에 왜관 본원에서 사제서품을 받았고,
다시 로마에 위치한 성 아우구스티노 대학교로 돌아가 교부학을 공부하여 1978년 6월에 “떼르뚤리아노의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에 대한 논문으로 교부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1984년에 “성 베네딕도 규칙서와 이전의 규칙서들에 나오는 형제적 교정”에 대한 논문으로 교부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1984년 8월에 본원으로 돌아오신 이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은 수도원 역사 편찬 책임과 청지원자 책임을 맡으면서 수도 공동체에 일하시다가 1985년부터 대구대교구 원평 본당, 1986년에는 대명동 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빠스님은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수도원 양성을 담당하는 수련장을 역임하셨고
1994년부터 1997년 1월까지 왜관 피정의 집 책임을 맡으시면서 그동안 수도영성과 신학을 공부하신 것을 토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사랑을 전파하는 사도적 역할을 하셨습니다.
이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은 1997년 수도 공동체가 관리 원장 체제에 있을 때 부원장의 직책을 맡았고, 1998년에는 재속회의 성격을 띤 봉헌회 책임을 맡으시면서 그리스도와 사부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을 열정적으로 전파하셨습니다.
이후 1999년에 부원장직을 내려 놓고 왜관 피정의 집 책임을 맡으시면서 찾아오는 피정객들과 대구관구 대신학원에서 신학생들에게 교부학 강의를 하시면서 풍부한 지식과 삶이 아우러진 영성적 가르침을 선사하셨습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아빠스좌 수도원이었지만 1995년부터 2001년까지는 관리 원장 체제로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1년 8월 23일 공동체 형제들은 이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을 제4대 수도원장으로 선출하였고, 9월 11일에 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주례로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이후 2005년에 덕원자치수도원구 자치구장 서리를 겸하게 되었습니다.
이형우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은 수도원장직을 맡으면서 “서로 섬기자”(Serviamus invicem) 라는 모토로 공동체를 위해서 형제들과 함께 협력하고 헌신하였습니다.
특별히 2007년 수도원에 대형 화재가 났을 때 슬픔과 어려움 속에서도 재건을 위해서 힘을 보태면서 오늘의 수도원이 있기까지 많은 헌신을 하셨습니다.
아빠스님 스스로 기도생활과 영적인 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수도 형제들과 신자들에게 모범을 보이셨고, 학식을 겸비한 가르침은 많은 신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덕원자치수도원구 자치구장 서리와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의장을 역임하시면서 한국 교회와 수도회 발전에 많은 헌신을 하셨습니다.
약 12년 동안 수도원장직을 수행하시면서 건강이 조금씩 나빠지기 시작하셨지만 묵묵하게 십자가를 진다는 생각으로 공동체와 한국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다가 2013년 4월에 아빠스직을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사임 이후 창원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의 지도 신부로 계시면서 조용히 기도와 묵상, 그리고 그 공동체에 많은 영적인 가르침을 남기셨지만, 수도원장직을 수행하시면서 나빠졌던 건강이 늘 아빠스님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다 2016년 11월 27일 주일 미사에 참석하시려 수녀원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쓰러지셨고 결국 미사 시작 전인 오전 6시 25분에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현재 이형우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의 모친인 김봉덕 아가다 여사님이 생존해 계시며, 여동생 이현숙 안나 마리 수녀(부산 올리베따노 수녀원)가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트라피스트 수녀원과 저희 공동체는 많은 슬픔과 충격에 사로잡혔지만 이 역시 하느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이형우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을 위해서 기도를 요청합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자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