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등장으로 변해버린 지하철 풍속도
J선생님은 이대입구에 살고 있다. 이대입구로 가려면 중앙선을 타고 왕십리 역에서 2호선으로 다시 갈아타야 한다. 덜커덩 거리는 바퀴소리와 찌익~ 브레이크를 잡는 소리가 마음을 산란하게 찢어 놓는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서인지 사람들이 점점 전동차 안을 꽉메운다.
그런데 전동차에 탄 사람들은 젊은이나 노인이나 거의 모두가 손에 스마트 폰을 들고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그리고 귀에는 대부분 이어폰을 켜고 있다. 스마트 폰 시대에 접어들면서 생긴 새로운 풍속도다. 젊은이들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채팅을 하다가 키득키득 웃기도 한다.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던 지하철의 풍속도는 이제 ‘아, 옛날이여!’이다. 그렇게 많던 종이 신문들도 점점 자취를 감춰버렸다.
▲서울지하철 2호선에서 '책읽는지하철' 독서모임 회원들이 책을 읽고 있다. 이들은 지하철 독서가 몰입에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제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희귀종이라고 할 정도로 발견하기 어렵다.
(책읽는지하철 제공)
▲스마트폰 등장으로 변해버린 지하철 풍속도
이제 지하철에서 책을 펴든 사람은 <희귀종>이 되어버릴 정도다. 문체부 조사에 따르면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100명의 한, 두 명 될까 말까라고 한다. 하지만 지하철만큼 책을 읽기에 좋은 장소도 드물다. 나는 지금도 지하철을 탈 때에는 손에 책을 들고 탄다. 흔들리는 전동차 소음속에서 책을 읽으면 저절로 독서에 몰입이 된다. 뭐랄까? 소음속에서도 외부와 차단된 나만의 공간이랄까?
몇 해전 만해도 사람들은 손에손에 인쇄 냄새 물씬 풍기는 공짜 지하철 신문을 들고 읽다가 지하철에서 내릴 때는 선반 위에 툭 던져 놓고 내렸다. 출퇴근 시간이면 지하철 선반에는 종이신문들로 가득 쌓이곤 했다. 그런데 그 많던 종이신문들은 스마트 폰에 밀려 하나둘 사라져 가더니 이제 모두 사라져 버리고 볼 수가 없다.
▲출퇴근 시간이면 선반 쌓였던 신문들이 자취를 감취고 없다.
스마트 폰의 등장은 사람들의 생활습관을 놀라울 정도로 바꿔 놓고 있다. 종이로 만든 신문, 잡지, 티켓 등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그 모든 것들을 스마트 폰에 내장된 전자기능으로 대체되고 있다. 소형 카메라가 사라지고, 집에는 데스크 탑 PC와 일반 전화기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 모든 기능이 스마트 폰에게 밀려나고 있다.
사람들의 손과 눈에서는 스마트 폰이 떠나지를 않는다. 이제 스마트 폰은 몸의 일부나 다름없다. 밥을 먹을 때도, 밤에 잘을 잘 때도 머리맡에 두고 잔다, 길을 걸을 때도 스마트 폰을 보고 걷는 사람들이 많다. 손에 스마트 폰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스마트 폰 증독증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83%은 세계에서 네번째로 높다. 그런 인구대비 스마트폰 보급대수는 세계 1위로 스마프폰 사용자 3천만 명 시대를 훌쩍 넘기고 있다.
스마트폰 과다사용으로 인해 새로운 7가지 건강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것이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보다 더 편하게 느껴지는 <디지털 격리증후군>,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동영상을 많이 하면서 빠르고 강한 것에는 익숙하고 현실 속으 느리고 약한 자극에는 뇌가 반응하지 않게 되는 <팝콘브레인>,
수면장애, 시력저하, 안구건조증, 거북목 증후군(오랜시간 논퐁이보다 아래로 내려다보는 잘못괸 자세로 거북목처럼 C자형 커브의 경추), 손목터널증후군, 감정교감저하 등으로 건강에 많은 문제를 주고 있다.
노인이 젊은이들을 피해가야 하는 세상
젊은이들은 스마트 폰을 보고 걷느라 앞에 노인이 있는지 어린아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걸어간다. 노인들과 어린아이가 그들의 몸에 부딪치고 발에 치이기도 한다. 혼잡한 서울 도심을 걷다가 앞을 잘 살펴 보지도 않고 스마트 폰을 보며 걷는 젊은이들을 피해 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스마트 폰 때문에 이제 젊은이들이 노약자를를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노인이 그들을 피해가야 한다. 이거야 정말~ 이러다가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
아무튼… 도농역은 외곽지역이라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나는 약간 젓갈 냄새가 나는 김치보자기를 안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옥수, 옥수역입니다. 수서나 대화 방향으로 가시는 분은 3호선으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아차, 깜박 잠이 든 사이에 왕십리역을 그만 지나치고 만 것이다.
나는 김치 보자기를 들고 가까스로 사람들을 헤집고 전철 문을 빠져 나왔다. 밖에는 가을비가 내렸지만 빗소리는 들리지 않고 전차바퀴소리만 요란하게 들렸다. 옥수역에서는 3호선을 갈아타고 을지로 3가역에서 2호선으로 다시 갈아야 타야 이대입구로 갈 수 있다. 옥수역에서 3호선을 갈아타기 위해서는 2층으로 올라가 긴 복도를 걸어가야 한다. 긴 복도를 걸어가는데 김치가 든 보자기가 꽤 무겁게 느껴졌다.
3호선을 타고 을지로 3가역에서 내리니 방향감각을 잡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길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환승역은 어디나 북새통을 이룬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방향을 찾았다. 자칫 잘 못 타면 거꾸로 가기 십상이다. 거의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이제 서울 거리는 나에게 낯설기만 하다. 그야말로 촌놈 서울 구경을 하가는 격으로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을지로 3가역도 2호선을 갈아타는 길도 꽤 멀다. 이거야 정말, 머피의 법칙이 철저하게 적용 되는군. 나는 가까스로 2호선으로 갈아타고 마침내 이대입구 역에 도착을 했다. 왕십리역에서 한 번만 갈아타면 될 걸 두 번이나 갈아타고 온 것이다.
“J선생님 여기, 이대입구역이요. 어디로 찾아가면 되지요?”
“에고, 수고 많이 하시네요. 거기서요 2번 출구로 나와 이대 쪽으로 죽 내려오시면 서울치과가 보여요. 그 서울치과 옆 골목으로 내려오시면 시크헤어 건너편에 멕시칸 요리점이 보여요, 바로 그 건물 3층입니다.”
“아이고 복잡하네요. 가다가 모르면 다시 전화할 게요.”
금방 말을 것들을 다 기억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수첩에 메모를 하지 않으면 곧 잊어버린다. 이대 입구는 오래전에 내가 1년간 직장생활을 했던 곳이다. 그런대도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변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젊은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화여자대학이 가깝다 보니 자연히 여대생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2번 출구를 빠져 나오는데 화장 냄새가 확 풍겨온다. 역시 여성분들이 많이 다니는 곳은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이대입구역 풍경
이대입구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다. 천막을 친 노점상들이 길거리에서 음식을 팔고 있었다. 샛노란 은행잎이 가을비에 우수수 부서져 내렸다. 은행잎을 밟는 낭만에 젖어들며 J가 일러 주었던 간판을 찾아보았지만 잘 찾을 수가 없다.
이젠 나도 어쩔 수 업나보다. 나이 들어가는 것을 점점 실감하게 된다. 인정해야해, 나이 들어가면 기억력과 총기가 없어진다는 것을. 나는 다시 J에게 전화를 걸었다. 00헤어 앞이라고 했는데 컴컴해서 그런지, 아니면 헤어숍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헷갈린다.
▲j선생님 집 찾아가는 골목
“서울치과 간판이 보이나요?”
“올리브 영 간판이 보이는데요? 바로 그 밑에 있어요.”
“아이고, 거기서 한 블록 올라오시면 서울치과 간판이 보일 거예요. 그 골목으로 들어오시면 2층에 고현아 헤어 간판이 보이실 거예요. 바로 그 건너 타코 집 3층이에요.”
“아, 찾았어요. 고현아 헤어숍을.”
여자대학 앞이라 그런지 헤어숍 간판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그렇게 해서 J선생님을 만났다. 그녀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나를 맞이했다. 칠십을 넘긴 그녀는 십오 년 전 네팔여행 길에서 만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도서관 사서로 정년을 한 그녀는 배낭여행을 나한테서 전수를 받았는데, 지금은 나보다 더 배낭여행의 고수다.
“찰라, 이렇게 먼 곳을 와 주셔서 고마워요! 더구나 맛있는 김치까지…”
“이 김치를 그냥 택배로 보낼 수도 있지만 다리 부러진 독거노인을 한 번 만나봐야 하지 않겠소? 해서 겸사겸사 왔수다. 크크크.”
“호호, 고마워요. 그런데 각하는 괜찮은가요? 이를 뺐다고 하던데.”
“어금니 두 개를 뺐지만 잘 견디고 있어요. 어금니를 빼다가 그만 으깨져 엄청 고생을 했지만.”
“어이구, 각하니깐 그 고통을 견디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데 홀로 계시면 몸이라도 성해야지. 독거노인을 누가 돌봐 줄 사람도 없는뎅.”
“그러게 말이에요. 이젠 나도 늙었나 봐요.”
“아이고, 그걸 진즉 인정했어야지요. 그 나이에 백두대간이 뭡니까? 평지를 걸어 다닐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요.”
J선생님은 아내가 병원에 입원 했을 때 병문안을 몇 번이나 왔다. 또 그녀와 나는 여러 번 해외여행을 함께 다니기도 했다. 나와 아내가 여행을 간다고 하면 훌쩍 따라 나서는 분이다. 몇 해 전 부탄에도 함께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다.
부탄! 그곳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행복한 가장 핵심은 지금 현재에 만족해 한다는 것이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부자이면 부자인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늘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이웃끼리 항상 도우며 살아간다. 적어도 늙어가면서 외로움이나 고독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면 돌보아주는 것을 당연시 한다. 또한 자신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이웃이 자신을 돌보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외롭지 않다.
몇 해전 부탄을 여행하다가 아내가 부탄 국경도시 푼?링 사원에서 그만 발을 헛디뎌 발목이 삐며 넘어졌다. 지금 J선생님과 독 같은 상황이었다. 그 때 우리 주위에 있던 부탄 사람들이 다 모여 들어 뭔가를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한 노인이 아내의 발목을 잡고 주물러 주는가 하면, 영어를 할 줄 아는 한 아가씨가 가이드 이름을 묻더니 그를 잘 안다며 모바일 폰으로 전화를 해주기도 했다. 다행히 그 아가씨 덕분에 가이드가 즉시 자동차를 가져와 아내를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훈훈한 표정, 남을 도와주고자 하는 진실이 담긴 눈빛을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사람이 나이 들어가면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이 외로움이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일수록 고독함은 더 하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서울만 살펴보아도 그렇다. 아파트 벽을 하나 두고 이웃집에서 누가 아픈지, 무슨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지, 누가 죽어 나가고 지... 사람들은 거의가 무관심이다. 길거리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도 그냥 지나치고 만다.
“내가 저녁을 사고 싶은데 걸을 수 있겠소?”
“가까운 곳은 갈 수 있어요. 1층에 멕시칸 요리 타코를 괜찮게 해요. 제가 저녁을 대접해야지요.”
“하하, 누가 대접을 하던 일단 가지요.”
J는 계단의 난관을 잡고 가까스로 내려왔다. 나는 그 건물 1층에 있는 작은 멕시칸 요리점에서 뜨거운 커피와 타코를 주문했다. 타코 값은 병문안을 온 내가 지불을 했다. 타코 맛이 좋았다.
“집에 있는 목발을 가져왔어야 하는 건데. 목발을 집고 다니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 목발 가져와도 저에게 맞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키가 워낙 작다보니 조카가 가져온 목발도 맞지 않아 사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보험공단에서 목발도 무료로 빌려줘요. 아마 사이즈별로 있을 겁니다.”
“그래요? 공단에 아는 분이 있으니 전화를 한 번 해봐야겠네요.”
“독거노인님, 몸 조리 잘 하세요.”
“고마워요. 김치 잘 먹을 게요.”
▲은행잎이 휘날리는 이대입구 늦가을 풍경
촌 놈 지하철 타기 정말 헷갈리네!
뜨거운 커피에 타코를 맛있게 먹은 후, 나는 J선생님과 해어졌다. 가을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거리를 적시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먼 길을 왔지만 J선생님을 만나고 가는 내 마음이 어쩐지 훈훈해졌다. 나는 가을비에 우수수 떨어지는 은행잎을 밟으며 지하철역으로 갔다. 그리고 왕십리로 가는 2호선을 탔다.
마침 경로석 한 자리가 비어 있어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채팅, 쇼핑, 게임, 드라마.... 변해버린 풍속도는 어쩔 수 없는 풍경이다. 이번에는 졸지 말아야지… 자리에 앉자 주머니 속에 든 스마트 폰에서 “까꿍”하는 들려 스마트 폰을 꺼내들고 잠시 살펴보았다. 미국에 계시는 오영희 선생님이 보낸 카카오스토리였다. 그 카카오스토리를 잠시 읽고 있는데 안내방송이 들렸다.
“합정, 합정역입니다….”
“엇, 합정역이라니… 그럼 또 내가 반대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나?”
나는 황급히 합정역에서 내려 반대방향으로 가서 왕십리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왕십리역에서 가까스로 중앙선으로 갈아타고 남양주 도농역에서 내렸다. 집에 도착을 하니 밤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거야, 정말!
촌 놈 지하철 타기 정말 헷갈리네!
나도 이제 나이 들어감을 확실히 인정을 해야 할 것 같다. 허지만 이제 서울 도심은 어쩐지 낯설은 곳이 되고 말았어. 다음 날 연천 금가락지로 돌아온 나는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해졌다.
첫댓글 아하 3회에 걸쳐 지하철이야기, 김치이야기, 병문안이야기로 세월속에 어울리는
소소한 기쁨으로 갈무리되는 사연을 꼭꼭 짚어 주시니 감사
그 맛있는 김치 잘 먹으며 힘내고 있어요
더불어 부영아파트지역 단풍, 이화여대앞 거리풍경도 즐감 ^O^
어제 옴레스토랑 란이 환장하게 맛이 이었는데
그대가 오지 않아 섭섭했어요^^ㅋㅋ
저도 전에 한국갔을때 지하철 타는데 애를 먹었어요. 외국인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모두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있는 풍경이 아주 어색하더군요. 엘리베이터를 타도 나이를 상관하지않고 모두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있고 여기 저기서 카톡 카톡 하는 소리들이 들리고...저에겐 좀 이상하게 보였어요. 그리고 또 하나 이대앞 풍경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4년을 다닌 곳이니 보면 언제나 반가워요.
ㅎㅎ 어쩐지 호야님의 발자국이 느껴지더라 했더니 ...익숙한 풍경이었군요. 저도 이대입구 은행에서 1년간 근무를 했는데, 예날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어요. 그래서 더 정감이 가더군요. 스테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지요?
@찰라 최오균 네 저희는 잘 지내고 있어요. 스테도 잘 지내고 있고요. 자주 까페에 들리질 못해서 죄송한 마음이에요. 그만큼 바쁘다는 것이니 잘 된 것일 수도 있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