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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아이를 안 낳는 ‘진짜’ 이유]②“우리 뇌가 ‘한국은 아이 키우기 좋지 않다’ 인식…공동체 신뢰 회복이 우선”
“출산율 집착 의미 없어…개인이 아이 낳도록 선택 유도해야”
“옛날에는 대가족이 아이 돌봐줬지만 지금은 도와줄 사람 無”
“기업이 자녀 양육 지원하면 충성심 높아지고 성과도 좋아져”
홍다영 기자
입력 2023.07.28 06:01
한국의 출산율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지난 3월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중요한 국가 어젠다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은 대체로 보조비 지급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비단 경제적 부담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힘들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 문화심리적 요인도 출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조선비즈는 이제껏 다뤄지지 않은 저출산의 숨은 이유들을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예나 지금이나 아이가 태어나면 기쁨을 준다. 옛날에는 먹고 살기 어려워도 아이를 많이 낳았다. 그런데 요즘은 상대적으로 먹고 살만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최진영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사회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통적인 대가족 사회에서는 부모가 바빠도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사촌에게 아이와 놀아달라고 맡기면 됐다. 그런데 핵가족화가 이뤄지며 아이를 돌보는 것은 온전히 부모의 몫이 됐다. 아이를 키우다가 힘들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 환경이 변하자 아이를 낳고 키워도 된다는 믿음이 깨졌고, 개인이 출생을 기피하기 시작했다는 게 최 교수의 진단이다.
최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키워도 된다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회복돼야 한다”고 했다. 아이를 공동체가 키우도록 환경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으로, 결국 이것이 공동체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최 교수 설명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을 도와주면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충성도가 높아지고 업무 성과도 좋아진다는 의미다.
최 교수는 임상신경과학을 연구하며 현재 한국심리학회장을 맡고 있다. 조선비즈는 지난 21일 서울대에서 최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최진영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지난 21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태경기자
─한국인이 아이를 낳지 않는 심리적 원인은 무엇인가.
“전통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고 대가족을 이루는 게 중요했다. 아이가 부모의 노후도 책임지고 일종의 사회보험 같은 역할을 했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옛날 부모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다가 힘들면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 사촌 등 친지들이 품앗이처럼 도와줬다. 그런데 산업화가 진행되며 핵가족화가 이뤄졌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아이를 키우다가 힘들 때 조부모나 친지의 도움을 받기 어려워졌다. 하다못해 과거에는 바쁜 일이 있으면 아이를 잠깐 옆집에 맡기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부모에게 온전히 책임이 돌아간다.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직장까지 다니면서 어떻게 아이를 키우나. 지금은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친화적인 사회가 아니다.”
ㅡ아이를 낳는 일이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어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사회가 변하면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한국이 아이를 키우기에 우호적인 환경이 아니라는 것을 뇌가 인식하게 됐다. 동시에 염증 반응도 올라오고 있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국가의 어젠다가 될 수 있지만, 개인 입장에서는 ‘내가 왜 국가를 위해 출산을 선택해야 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한국은 1960~1970년대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해서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다. 기성 세대는 산아제한을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여겼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국가를 위해 협조해야 하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공적인 영역이 아니라 사적인 선택일 뿐이라고 여긴다. 무조건 낳으라고 할 게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줘야 하는 이유다. 행동 과학적으로 개인의 선택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면 아이를 키우기에 우호적인 환경은 어떻게 만들 수 있나.
“우선 출산율에 집착하지 말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국가는 개인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고 선택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면 선택을 어떻게 유도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대답은 아이를 낳고 키워도 된다는 믿음, 공동체에 대한 신뢰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 출산율을 이야기하기 전에 공동체에 대한 투자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젊은 여성은 교육을 받고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뒤 조직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있다. 평생 커리어를 쌓아왔는데 이렇게 되면 아이를 낳는 것을 피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선택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럴 때 기업이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을 도와줘야 한다. 물론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는 곳이다. 개인의 성과를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기업이 가족 친화적인 문화를 주도할 때, 직원이 회사에 충성심과 애사심을 갖고 성과를 창출한다는 연구가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도 마초 문화가 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기고 가족 친화적인 분위기를 지향하고 있다.
어느 조직이든 마찬가지다. 대학원 실험실에 있던 학생이 출산 휴가를 사용한 적이 있다. 출산 후 돌아와서 더 열심히 하고 잘 하더라. ‘이 조직은 내가 힘들 때 도와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든 삶에는 발달 과업이 있다. 그런 걸 존중해줘야 조직의 결과가 좋아진다. 나에게 배려해주고 대접해준 만큼 나도 돌려주고 싶기 마련이다.”
지난해 5월 4일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가족문화축제 '하우펀8' 행사를 하루 앞두고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현장학습 온 유치원생들이 마스크를 하늘에 날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조선DB
ㅡ한국은 주로 아이를 낳으면 비용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외에 필요한 저출생 정책은 무엇이 있을까.
“육아를 가족이 해야 된다는 인식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 공동체에서 같이 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때 북유럽 국가 대부분은 직장을 셧다운(봉쇄)했지만 학교 문은 쉽게 닫지 않았다. 학교 문을 닫으면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공동체가 아이를 돌보는데 도움을 줘야 한다.
공교육도 중요하다. 돌봄 공백이 없도록 육아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캐나다처럼 복지가 잘 된 국가를 보면 지역 사회에서 학교가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은 학교가 입시나 사회적인 지위를 획득하는 수단으로 귀결되는데, 아이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지역 사회의 자원이 되도록 발전해야 한다.”
ㅡ지난해 초·중·고등학생 사교육비는 26조원으로 역대 최고였다. 과도한 교육비가 저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있다.
“사교육비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교육을 없앨 수는 없다. 북유럽 국가들은 사실 사교육이 많지는 않다. 공교육을 믿고 이용한다. 우리는 자원 없이 성장한 국가기 때문에 사교육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공교육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ㅡ한국은 주로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 가족’ 위주로 육아 정책이 이뤄진다.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지 않아도 아이들이 잘 살 수 있는 다채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유교 문화가 남아있어서 그렇다. 한국은 아직까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아이는 모두가 똑같이 소중하다.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만 귀한 게 아니다. 싱글맘, 싱글대디도 혼자서 충분히 아이를 잘 성장시킬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주는 게 중요하다.
한국의 출산율이 낮은 것은 단순히 개인이 아이를 안 낳는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사회가 아니라는 뜻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개인에게 저출생의 책임을 돌려봤자 해결되는 것은 없다. 아이를 낳고 키워도 된다는 환경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출산율은 높아지기 어렵다.”
홍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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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인
2023.07.28 07:26:39
좋은 말씀이네요. 이런 분이 나경원이 맏았던 저출산고령화 대책위원회를 맏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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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
2023.07.28 07:22:05
아이를 놓고 키우는 비용이 너무 든다. 사교육비 부담이라도 줄여야 할것 같다
답글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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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리 아지매
2023.07.28 07:43:53
남편하고 살기도 힘들어요 평생 살 자신도 없고 그리고 자식 낳아서 키우고 싶지가 안고 내자신을 감당 하기도 어려운데 괜히 빈민층 하나 양산 하는거 죄스럽게 생각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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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보라
2023.07.28 07:57:11
유대인처럼, 불행한 역사로 전 세계 흩어진 우리 민족 후손들을 이제 다시 끌어 모우자!! 7천만 인구를 만들어야 한다!! 해외 영토를 구매하는 방안은 없나!! 러시아, 마국, 멍골 오지에 대한민국 영토로 활용방안은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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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28 08:59:56
세금 낭비를 줄이고, 선진국을 보라. 유아원 유치원 학교 학비와 병원비를 줄여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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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4more
2023.07.28 08:58:06
멍멍멍. 기업이 살아남기도 힘든데 자녀 양육을 지원? 차라리 하늘이 자녀 양육을 지원해야 한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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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10
2023.07.28 08:49:51
서울대 다니니까 모두 다 세금으로 호의호식하는 줄아네.. 기업이? 얼마나 많은 기업이 그럴수 있을까? 그리고 대다수 자영업자및 무직자는 ? 오로지 세금으로 흥청 먹고사는 집단만 혜택보고 나머지는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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