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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순간
잠시 후.
싱크홀처럼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소용돌이가 용수암반에서 분출되는 온천처럼 뿜어져 나왔다. 높이가 20m나 되는 물기둥이었다.
그 물기둥의 포말 속에서 하모호가 큰수염고래처럼 솟아올랐다. 잔득 바닷물을 뒤집어 쓴 하모호가, 먹었던 엄청난 양의 바닷물을 토해냈다. 물위로 솟아오른 하모호는 사력을 다해 파도를 뚫고 전진했다. 몰골은 비참했지만 하모호뿐만 아니라 용감한 선원들은 결코, 축구장만한 너울파도와 폭풍우에 탭아웃격투기에서 굴복하는것당할 수 없었다.
갑판위의 포말이 씻겨 나가자 안개 속의 나무들처럼 바닷물에 젖은 선원들이 하나 둘 모습을 나타냈다.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원은 아무도 없었다. 나뒹굴고 엎어지고 넘어진 선원들은 아무도 성한 사람이 없었다. 가까스로 일어난 그들을 또 파도가 덮쳤다.
선원들은 파도에 묻혀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불굴의 투지로 양망작업을 계속했다. 작업하면서 구토 하는 선원은 성한 편이고 부러진 다리를 세일로프돗대를 조정하는 가는 줄로 묶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선원도 있었고, 빗물에 씻겨나간 얼굴에 계속 피가 솟는 선원도 있었다.
조타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모호선장은 키를 붙든 체 거대하게 몰려오는 파도를 보고, 파도를 향해 소리쳤다.
“용왕님! 제발 저 사람들 지켜 주이소! 목숨만 살려 주이소! 지는 하모호하고 죽어도 좋심니더. 저 사람들은 안됩니더. 절대 안됩니더.”
선두에서 하늘을 가리고 굽이쳐 오는 거대한 파도를 마주 본 하모호선장의 얼굴은 바다에서 나고 자란 뱃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공포와 죽음을 눈앞에 둔 좌절과 절망에 체념한 비통한 얼굴이었다.
하모호선장이 마이크를 재빨리 잡았다.
그리고 발악하듯 소리쳤다.
“단망! 단망!”
비바람 속에서 갑판장이 하모호선장의 명령을 들었다. 갑판장이 조타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단망하면 어떡해? 좀 더 해보자구요!”
선장의 권한으로 즉결에 처할 수 있는 항해수칙 1조인 항해 또는 어로중명령불복. 갑판장은 계속되는 하모호선장의 해상명령을 묵살했다. 갑판장이 라이프자켓을 벗어던졌다. 선원들도 하나 둘 라이프자켓을 벗어 던졌다. 선원들이 벗어던진 구명동의는 갑판으로 떨어지지 않고 벗어던지는 순간 비바람에 날아갔다. 바다에서 유일한 생명줄인 라이프자켓을 벗어 던진 것은, 죽음을 예감한 선원들의 행동이 아니었다. 기상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다하겠다는 선원들의 비장한 각오였고 대게를 향한 집념이었다.
허지만, 대게를 더 잡겠다는 욕심만은 아니었다. 물에 젖은 라이프자켓이 상망작업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통발을 단망하면 통발안의 엄청난 대게는 물론, 하모호선장이 엄청난 손실을 입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통발은 하모호선장뿐 아니라 그들과 그들 가족의 연명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모호와 통발이 없으면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모호선장은 에어브러시압축공기로 선박의 윈도를 닦는 원형장치를 통해 데크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접수하고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가서 악을 썼다.
“갑판장! 미쳤어? 단망 안 해? 어서 잘라! 어서!”
갑판장의 계속되는 명령불복에 하모호선장의 명령은 애걸로 바뀌었다. 명령을 무시하고 갑판장과 선원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양망작업에만 몰두하는,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하모호선장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선원들의 목숨이 더 중요한 하모호선장이다.
“갑판장! 제발 잘라라! 제발! 지금 안 자르면 모두 죽는다!”
최대볼륨으로 명령하는 선장의 애절한 목소리는 비바람과 파도소리에 섞여 마치 싸이데리킥 전자음악 같았다. 하모호선장의 명령은 계속됐지만 그들의 귀엔 파도소리도 바람소리도 하모호선장의 애끓는 명령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대게 한 마리라도 더 잡아야 한다는 일념과 통발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뿐이었다.
“양망장! 갑판장 대신 단망해!”
하모호선장의 명령은 갑판장에서 양망장으로, 양망장에서 통발반장에게, 다시 선별장에게 또다시 양망장에게 옮아갔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하모호선장의 명령을 무시했다. 데크에서의 명령은 오로지 갑판장의 권한이기도 하지만 갑판장의 마음과 동일한 한마음이었다.
하모호선장이 울먹이며 호소했다.
“다들 왜 이러는거가? 지금 단망 안하면.”
그때였다.
파도위에 번쩍. 섬광이 복사됐다.
“우르르 콰광 쾅쾅”
뒤따라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이 울었다.
섬광과 천둥의 음향시차로 봤을 때 번개는 하모호에서 불과 1km내외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번쩍번쩍. 콰과캉쾅쾅. 뻔쩍뻔쩍. 쾅쾅쾅쾅.
첫 번째 뇌우가 치고 뒤따라 연속해서 번개가 쳤다.
날이 더 어두워졌다.
남은 통발은 100여m.
모두 최후의 힘을 내고 있었다.
그때 회오리돌풍이 불었다.
가까스로 올라오던 통발이 양망기에 엉켜 걸렸다.
양망기에서 제일 가깝게 일했던 압해도에서 온 중국장강도 출신 선원이 갸프를 들고 엉킨 통발을 끌어당겼다.
갑판장이 황급히 소리질렀다.
“안돼! 갸프 놔!”
갑판장의 눈에 한줄기 아주 강렬한 빛이 스쳤다.
이어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장강도 선원이 뒤로 벌러덩 떨어졌다.
“으악!”
그 상황을 지켜 본 하모호선장이 자동항해장치로 바꾸고 조타실에서 뛰쳐나갔다.
나무토막처럼 뒤로 나가떨어진 장강도 선원을 갑판장이 달려가 얼른 끌어안았다. 단숨에 달려 온 하모호선장이 갑판장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며 소리쳤다.
“야이 자썩아! 사람 목숨보다 대게가 더 중요하나?”
갑판장이 하모호선장의 주먹에 쓰러지며 비바람에 날려 핸드레일에 빨래처럼 걸렸다. 하모호선장이 갑판장을 향해 몸을 날리는 순간 비틀거리며 달려온 통발반장이 하모호선장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선장님 참으이소. 이라몬 안됩니더.”
그 사이 양망장이 갑판장 대신 장강도 선원을 가슴에 끌어안고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을 막았다. 통발반장에게 허리를 잡힌 하모호선장이 갑판장을 향해 악을 썼다.
“야이 자썩아! 모두 죽일래? 퍼뜩 잘라 어서!”
갑판장이 양망장의 가슴에 죽은 듯 안겨 있는 장강도 선원을 쳐다봤다. 비바람과 번개 치는 하늘을 보고 갑판장이 울먹이며 명령했다.
“단망!”
첫댓글 하모오 선원들 인간으로서의 상상이 안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셨죠?
소설이긴하지만 실화일 수도 있습니다
선원들을 이해하려면 바다를 알아야 합니다
같은배 탔다는 말이 있죠?..무슨 뜻일까요?
고운밤 평안하세요
파도가 그렇게 높은데 많은 통발을 일지 않기위해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리고 선장의 말까지 무시하는 선원들 너무 상상을 초월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아무리 소중한들 목숨보다 더할까 걱정스럽슴니다.
아직 안주무셨군요..ㅎ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허지만 배를 탄 선원들 대부분 그렇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 때 극과 극의 일이 있었죠?
승객은 내팽개치고 먼저 살려고 제일먼저 도망쳐 나온 사람도 있고....
자신의 목숨은 던져두고 승객을 먼저 구하고 수장된 여승무원도 있었어요..충분히 살 수 있었는데도.
육지에서는 절대 불가한 이야기가 배를 타면 가능해집니다
책임과 임무라는 두가지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합니다
그것이 바다사람들의 이야기고 용기입니다
실제 저도 완도 앞 창산도에서 경험했구요..물론 낚시배였지만...ㅎ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고운 밤되세요
아무리그런다지만 인명을 구는게 아니고 대계때문에 통발을 끌어 올리기 한 하나의 욕심때문에
죽어가야 한다는것은 선원들의 과다욕심인것 같슴니다.
수십미터의 파도와 잘싸워 주길 바랍니다.
바다사나이들은 원래 의리와 신의가 생명보다 귀중합니다
그래서 한배 탔다 잖아요? 육지배 타는 사람과 완전히 다르지요.ㅋㅋㅋㅋ
거센 풍랑과 싸워 아비귀한 하면서도 직업의식때문에 통발을 짜르지안고 사생결단
파도와 싸우는 모습이 상상하기 힘드네요.. 가슴 조여 가며 잘보았슴니다.
느티나무님의 긴장감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이제 이 소설도 어느듯 중반에 접어 들어가네요
고운날되세요
만선의 꿈이 사라지는것 아닐까 걱정이 됩니다.
글 잘읽었슴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상황이 만만찮아서 글쎄요
제대로 귀항이나 할지 걱정입니다
선원의 의지력과 사명 감이 아니고서는 절대 불가능 할것 같슴니다.
잘보았슴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멋진날 되세요
건강하시구요
하모호가 침몰직전에 이르렀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끝까지투쟁하는 모습이 인간의 본능이
돈때문에 목숨음 버려도 좋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가관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셨죠/ 모나리님.
보통 육지사람은 상상도 못할 이야기입니다 만
바다사람들은 이 보다 더 한 우정과 신뢰 그리고 믿음이 있습니다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죠.
그래서 선장이 혼자 살려고 도망치면 질타를 받죠...특수한 배신행위지만요
오늘도 행복한 새해 둘째날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