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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저마다 문화를 말한다. 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많고,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도시도 많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지역 문화도시와 국제 문화도시는 과연 무엇이 다른가? 이름만 놓고 보면 규모의 차이처럼 보인다. 지역 문화도시는 우리 지역을 위한 문화도시이고, 국제 문화도시는 세계를 향한 문화도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필자의 견해는 다르다.
국제 문화도시는 지역문화를 제대로 품은 도시에서 시작된다. 지역문화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 지역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아오며 만들어 온 이야기다. 골목의 풍경이고, 시장의 냄새이며, 오래된 장인의 손끝이다. 할머니가 담그던 장맛도 문화이며, 마을 귀퉁이 당산나무도 문화이며, 어릴 적 뛰놀던 골목도 문화다.
지역의 역사와 사람, 생활과 기억이 쌓여 문화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법정 문화도시를 만들면서 자꾸 밖을 바라본다. 유명한 축제를 만들고, 큰 공연장을 짓고, 세계적인 작가를 초청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오면 국제 문화도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시 안에 지역만의 향토 이야기가 없는데, 어떻게 세계에 들려줄 이야기가 있겠는가.
문화도시의 출발점은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다. 먼저 그 도시만의 것을 찾아야 한다. 다른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역사,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사람, 그곳에서만 만들어지는 음식, 그곳에서만 전해지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지역의 콘텐츠가 다른 지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마침내 국경을 넘어갈 때 비로소 국제문화가 된다.
한옥이 세계적인 건축문화가 될 수 있는 것도 한옥이 우리 삶 속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김치가 세계인의 음식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어느 날 갑자기 국제화를 선언했기 때문이 아니다. 지역에서 오래 살아남은 것이 세계로 나갈 때 힘을 갖는다. 그래서 문화도시 정책도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을 발견하고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보다 오래된 공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입히는 것. 아까운 시민의 세금으로 차별성도 없는 새로운 축제를 만드는 것보다 지역에 이미 존재하는 작은 축제와 풍습을 키우는 것. 외부의 유명 예술가를 초청하는 것보다 지역의 예술가와 장인을 먼저 무대에 세우는 것.그것이 문화도시의 기초가 아닐까.
국제 문화도시는 공항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동네에서 시작된다.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시작되고, 한 장인의 손끝에서 시작되고, 한 골목의 기억에서 시작된다. 그 작은 이야기가 콘텐츠가 되고, 콘텐츠가 도시의 정체성이 되고, 정체성이 세계와 만날 때 그 도시는 비로소 국제 문화도시가 된다.
지역문화가 깊어질수록 국제문화의 문은 넓어진다. 지역을 버리고 세계를 바라보는 도시가 아니라, 지역을 깊이 들여다본 뒤 세계를 바라보는 도시. 그런 도시라야 세계인이 찾아왔을 때 보여줄 것이 있다.
국제 문화도시는 세계의 것을 가져온 도시가 아니라, 자기 것을 제대로 발견해 세계와 나눌 줄 아는 도시다. 문화도시의 경쟁력은 얼마나 크게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기다운가에 달려 있다.
결국 세계는 `세계적인 도시`보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진 도시`에 끌린다. 이제 문화도시의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예산을 썼는가가 아니라 우리의 무엇을 남겼는가를 물어야 한다. 얼마나 큰 축제를 열었는가가 아니라 그 축제가 시민의 삶 속에 무엇을 남겼는가를 물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외부 관광객을 불러왔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 도시에서 무엇을 보고 기억하고 돌아갔는가를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도시를 행정이 만드는 도시로 착각하지 않는 것이다. 행정은 기반을 만들 수 있지만 문화를 만들 수는 없다. 예산은 투입할 수 있지만 감동까지 예산으로 살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