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제 영주장날 원당로 장터는 종일 붐볐습니다.
온갖 제수용품이 그득했으니 대목장을 보려는 소비자들이 몰릴 밖에요.
점신 때가 조금 지나서 서울 사는 둘째네 식구들이 몰려왔습니다.
연휴가 길다면서 설 전에 다녀간다네요.
아내는 외손자들과 윷놀이를 하면서 과일과 식혜를 내어 대접(?)했습니다.
유학자 탁와 정기연(1877~1952) 선생이 창안한 것으로 알려진 습례국(習禮局)이라는 놀이판이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아이들이) 예를 배우는 판’인데, 노는 방식은 윷놀이와 비슷합니다.
바둑판처럼 네모난 판 위에 선을 그어 여러 구역을 만들어 놓고,
6각의 막대를 굴려 나오는 숫자에 따라 각 구역으로 말을 움직이면서
자연스레 차례상이나 제사상 차리는 법을 익히도록 했다는데요.
탁와 선생은 도설(圖說·설명서)을 따로 남겼는데,
거기에 차례상에 조율시이(棗栗枾梨), 즉 대추·밤·감·배 놓는 법이 명기돼 있습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조율시이를 순서대로 차리고,
이어 잡과(雜果) 한 종류와 조과(造果) 한 종류를 올린다’는 것이지요.
대추·밤·감·배가 차례상과 제사상 차릴 때 기본 과일임은 여러 문헌에 나오지만,
그 진설법을 밝힌 건 습례국 도설 외에는 아직 찾아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흔히 아는 〈가례〉에도 보이지 않고요.
그렇다면 왜 하필 조율시이일까요?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실학자 유형원(1622~1673)의 〈반계수록〉에
‘묘목을 심을 때는 뽕나무를 비롯해 대추·밤·감·배나무를 심는다’는 구절이 그것인데요.
대추·밤·감·배는 우리 조상들에게 가장 흔했던 과일이었습니다.
네 과일 중 대추는 으뜸으로 여겨졌으니, 씨가 하나뿐이라 왕이나 성현을 상징했기 때문이랍니다.
그에 비해 밤은 한 송이에 세 알이 들어 있어서 삼정승을 상징했으며,
감은 씨가 여섯 개로 육판서를, 배는 씨가 여덟 개여서 팔도 관찰사를 각각 상징했는군요.
모두 후손이 잘 되기를 바라는 의미지만, 그중에서도 차등을 둔 것이로 보입니다.
차례상·제사상에 올리는 과일을 지칭하는 말로 삼실과(三實果)도 있습니다.
대추, 밤, 감이 것으로 배는 빠집니다.
차례상·제사상에 생과일을 올릴 형편이 못 되면 말린 과일을 사용해도 된다고 했는데,
다른 세 과일과는 달리 배는 말려 사용하기 힘들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물가에 설 차례상을 준비하는 비용이 역대 최고치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차례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방법은 각자 형편대로 차리면 되겠지요.
단지 조상을 기억하고 후손의 안녕을 기원하는 그 의미만 잊지 않으면 되니까요.
조율시이! 좋지 아니한가. 그조차 어렵다면 말린 대추와 밤, 곶감만으로도 충분하니...
곶감도 부담된다면 과감히 빼면 된다.
걸핏하면 탄핵 운운하는 대표나 성현, 최소한 삼정승은 바라봐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게 우리 옛 규범이 전하는 차례와 제사의 요체일러니...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