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1.21 14:06 | 수정 : 2014.01.21 21:55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이 21일 '민영화 괴담: 장난인가, 장사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홍성기 아주대 교수, 김철균 전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등이 참석해 철도파업 와중에 발생한 '민영화 괴담'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김철균 전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의 토론 발제문 ‘나의 말은 사실, 너의 말은 괴담’ 발췌 요약>
오늘 논의되는 괴담의 문제점은 결국 이 변화 속에서 책임 있는 그리고 정확한 정보가 국민들 개개인에게 원활히 소통되지 못하면 사실이 아니어도 그럴 듯한, 있을 수 있는, 그리고 약자가 억울하게 당한, 강자가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다고 공감되는 이야기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현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서태지·이지아 이혼 소송 사건은 청와대 작품?”
먼저 제가 보았던 두 가지 사례를 살펴봅니다.
① 청와대 근무 당시 사례
2011년,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가 위자료 및 재산분할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 오후 2시 27분 보도되기 시작했다. 서태지가 결혼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깜짝 놀랄 일인데 상대가 이지아였고, 이혼에 이어 재산분할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은 가히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 스캔들이란 말이 돌 정도의 핫 이슈였다. 공교롭게도 서태지ㆍ이지아 소송 기사가 공개되기 13분 전 BBK 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건의 판결 기사가 발표됐다. 이지아와 BBK수사팀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이 같은 곳(바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음모론이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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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담의 나라
"서태지·이지아 이혼 소송 사건은 이명박 대통령의 BBK 사건을 덮기 위해서 청와대와 국정원이 일부러 흘린 것"이라는.
그러나 그날 나온 판결은 BBK사건 수사팀이 어느 주간지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는 내용으로 이명박 대통령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이었다. 작년에는 서태지, 이은성의 재혼 발표가 윤창중 사건의 확산 보도를 막기 위함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당시의 기사 제목들 중 일부를 소개하면
'서태지·이지아'사건, BBK덮기용? 누리꾼 의혹제기
서태지-이지아 위자료 청구 소송, BBK 사건 무마용?
서태지-이지아 이혼소송·자녀 루머, ‘BBK 특검’ 덮으려?
올해도 서태지에 주진우 구속영장이 묻혔다
이 루머에 대해서는 대응의 주체가 없기 때문에 어떤 대응도 없었고 지금도 이와 유사한 기사는 계속 나오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30대의 48%가 이 루머를 사실이라고 믿는다고 응답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종교단체인 신천지에 연루됐다?”② 대선캠프 근무 당시 사례
대선 나흘 전 인터넷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종교단체인 ‘신천지’와 연루됐다는 흑색선전이 떠돌기 시작했다. “박근혜 후보가 '신천지'라는 종교의 교주를 특별당원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새누리를 한자로 쓰면 '신천지'가 된다”
그러자 '나는 꼼수다'의 김용민이 이를 트위터를 통해 확산시켰다. 다른 나꼼수 멤버들도 '박근혜 굿판 의혹’을 부추긴다. 이 의혹 제기는 어떠한 확인 과정도 없이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화 되고 포털을 통해 편집되어 대량 확산된다. 그러나 박 후보가 교주에게 보냈다는 편지 사진은 합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굿판 의혹도 매년 해왔던 고 육영수여사의 탄신제 공식 행사 사진을 교묘하게 편집해서 만들어낸 의혹이다.
이에 대한 대응은 적극적이었다. 대통령후보가 직접 '흑색 선전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허위사실 유포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연관설이 사실무근'이라는 기자회견을 하고 캠프는 이를 수십만 카카오톡 친구들에게 전송했다.
스마트 소통 시대, 소셜네트워크 시대가 열리며 사람들은 자기와 성향이 비슷한 SNS 친구들이 추천하는, 자기가 좋아하는 성향의 포털을 통해 유통되는 자기가 좋아하는 매체의 뉴스를 보고, 자기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모이는 사이트에서 공감하는 나만의 순환구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는 그 사실 여부나 과학적 근거와 관계없이 내 주변의 모두가 공감하는 일이라고 믿게 되고 이 믿음의 순환구조가 뭉치고 강화되어 진영의 순환구조를 만들면 자기와 다른 진영의 견해는 권력의 음모라던가 괴담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순환구조를 이용해 특정한 개인이나 세력이 괴담을 만들면 이를 확산하려는 뉴스메이커가 개인의 SNS를 통해 이슈화시키고, 단지 클릭수를 좀 더 유도하려는 일부 언론이 취재 없이 의혹만을 자극적인 제목으로 기사화하고, (최근 보도에 따르면 등록된 인터넷 언론사만 40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언론의 보도라는 명목으로 그 내용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포털이 눈에 띄게 편집을 해 대량유통되고, 다시 이 자극적 제목 때문에 이미 집단 지성이 아닌 집단 감성 상태에 빠진 네티즌들의 SNS를 통해 무차별 확산되었다는 경험입니다.
이런 독립된 순환구조를 깨고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 제일 좋은 방법은 발제 내용에도 나와 있듯이 정부가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특히나 신뢰를 소중한 가치로 평가 받고 있는 현 정부에서는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만 그 길은 너무나 멀고 어려운 길입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권위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방법입니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께 보였던 국민들의 기대같은 것이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홍성기 아주대 교수 발제문 ‘민주주의 허무는 괴담 비즈니스’ 발췌 요약>괴담이나 정치적 음모론 등은 사실을 새롭게 조직하고, 필요하면 적절하게 거짓이나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추가하여 새로운 스토리를 만든다. 예를 들어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 미국산 쇠고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증명하는 근거로 아래와 같은 사실들이 제시되었다.
광우병 관련 괴담들-특정 사실들로 잘못된 결론 유도① 미국에서 광우병소가 발견되었다.
② 미국은 전체 도축소의 0.1%만 검사한다.
③ 30개월 미만의 소에서도 광우병이 발견되었으며, 한국은 30개월 이상도 수입하고자 한다.
④ 살코기에도 광우병 원인물질인 변형 프리온이 들어 있다.
⑤ 광우병 발병에 필요한 변형프리온의 최소량은 열려 있다.(매우 적은 양으로도 소는 감염된다.)
⑥ 인간광우병환자는 100% M/M형이고 한국인의 95%가 M/M형 유전자를 갖고 있다.
⑦ 인간광우병의 잠복기는 최대 50년까지 예상된다.
⑧ 유럽의 특정위험물질 규정이 미국보다 엄격하다.
⑨ 유럽은 미국의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고 있다.
⑩ 광우병과 인간광우병에 대해서는 아직 과학적으로 모르는 것이 상당히 있다.
위에 열거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아마 일반인은 위의 사실로부터 미국산 쇠고기가 매우 위험하다는 결론을 자연스럽게 내릴 것이다. 그러나 위의 사실들의 맥락과 배경을 모두 살펴보면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결론은 결코 도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유럽과 미국은 쇠고기 전쟁을 벌였는데, 그것은 성장호르몬의 사용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때 유럽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았는데 이 싸움에서 WTO는 미국의 손을 들어 주었다. 나머지 사실들도 모든 이런 종류의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에 자칭 전문가들은 이런 배경을 제거하고 위의 사실들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을 특정한 방향으로 재조직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한 ‘과학적 확신’을 갖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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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6월 28일 밤 서울 태평로에서 벌어진 광우병 대책회의 시위에서 시위대가 소방호스를 끌어와 경찰의 물대포에 맞대응 하고있다.
이처럼 국민들의 시각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여 재조직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도록 하는 방법은 정확하게 심리전의 방법과 일치한다. 이런 수법은 과거 대선 당시 김대업의 이회창 후보 아들 병역면제 의혹, 타진요, 천안함 등등 수많은 흑색선전과 괴담, 정치적 편집증과 음모론에 사용되었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사실 수많은 허구가 인터넷에 돌아다니지만, 이들이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와 같이 개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아니면 선거기간 중에 특정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 광우병 촛불시위처럼 이념과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특정 세력에 의해 이용되는 괴담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이 되어버린 나경원 1억 피부과 사건문제는 괴담 비즈니스, 즉 허구를 이용하여 대중의 여론을 움직이려는 시도를 막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두 개의 규범, 즉 도덕과 법에서 전자의 측면이 더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시에 시민단체, 정당, 언론 그리고 자칭 전문가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과장・선동하였을 때에 이것을 정부가 막을 방법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는 사실상 없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제기된 ‘나경원 1억 피부과 사건’과 같은 흑색선전의 경우 <시사 인>이라는 잡지가 작성자였고 경찰이 명예훼손 사건으로 수사하였으나 사실상 뾰족한 대처 방안 없이 흑색선전의 목적은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설사 이런 사건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가능하더라도 이미 선거가 끝난 후가 되어, 만일 피해자가 선거에 당선이 되면, BBK 정봉주 사건처럼, 정치보복으로 비판 받고, 선거에 지게 되면 사실상 의미가 없게 된다.
게다가 이런 흑색선전에 대한 언론의 보도 역시 정치적 성향에 따라 지극히 편향되고 이들을 퍼나르는 인터넷 블로그나 한국판 위키와 같은 곳에는 그 내용이 그대로 남아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인 흑색선전인지 파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나경원 1억 피부과 사건’에 대해서도 이 여성 정치인을 극히 적대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한국판 위키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나경원이 강남의 고가 피부클리닉에 출입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시사인의 보도에 의하면 (…) 처음 취재에 나섰을 때 원장이 기자에게 연회비가 1억이라고 했던 것은 사실이며 다른 회원 중에도 1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만 논란이 확산된 이후에는 원장과 나경원측에서 1억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고 나경원이 지불한 치료비의 정확한 액수는 연간 500만원에서 한 번에 500만원 등으로 일치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철도공사 민영화 괴담과 이철 전 사장의 오류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철도공사 민영화 괴담’, ‘의료 민영화 괴담’ 역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정당이나 이해관계가 있는 단체가 이용하고 있지만, 이런 괴담 비지니스를 강제로 규제할 방법이 없다. 그것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질의 정치문화와 이념투쟁의 전위부대 수준의 시민단체, 이해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지식인의 허영, 사실 확인과 전달보다 정파적 운동권으로 스스로를 이해하고 있는 언론인의 태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런 저질의 괴담 비즈니스를 용인하고 즐기는 국민의 수준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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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 전 코레일 사장
주목할 점은 이런 괴담 비즈니스에서 지식인과 전문가의 역할이다. 철도공사 불법파업 시에 노조를 지지한 이철 전 코레일사장의 주장은 ‘영리화=민영화’라는 사적(私敵) 정의의 오류이고, 그의 주장이 옳다면 ‘생산성이 떨어지거나 적자 사기업은 모두 공기업’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명백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이철 전 사장의 주장은 국민에게는 불편부당한 전문가의 견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또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시에도 몇 명의 대학교수, 수의사, 변호사 등 자칭 광우병 전문가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극도로 과장하였다. 이들은 몇 년간 지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이런 주장을 하면서, 한국정부의 공식기관인 식약청의 판단과 권위를 무너뜨리고, 국제수역기관의 전문가 판단 역시 미국정부의 압력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정부가 공적 기관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일은 곧 괴담이 자라는 환경을 정부가 나서서 조성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한국의 경우 심혈을 다해 공적 기관의 신뢰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입김에 좌우되며, 심지어 공적 기관 자체가 스스로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일이 있다.
‘쓰레기 만두’ 사건-언론과 식약청이 파장 키워2004년 있었던 이른바 ‘쓰레기 만두 사건’은 자극적인 언론 보도와 함께 식약청이 여론의 압력에 ‘불량만두 제조업체 명단’을 공개하여 사건의 파장을 더 키웠다. 결과는 5천억원 이상의 피해와 제조업자 줄도산과 CEO의 자살이었다. 그러나 사법부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 만두제조 업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2008년 광우병 사건의 전초전(前哨戰)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한국의 정부 기관도 언론도 국민도 이 사건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다.
괴담 비즈니스의 동력을 정부 기관이 제공한 것은 ‘쓰레기 만두 사건’의 경우만이 아니다. 2014년 1월 말 아직 1심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상황만을 놓고 볼 때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매우 빈약하다. 국정원의 인터넷 활동과 관련하여 정치개입과 선거개입의 기준도 없고, 선거개입으로 간주될 수 있는 인터넷 활동 기간에 대한 정당화도 없으며, 트위터 글의 경우 누가 그런 트윗을 보냈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도 없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과 검찰의 과욕”검찰은 ‘이런 저런 상황에서 발송된 트윗은 국정원 직원의 소행일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런 조건을 만족하면서도 국정원 직원의 계정이 명백히 아닌 경우가 있음을 변호인이 증명하였다. 국정원장의 선거개입 지시에 대한 증거가 없고, 그렇다고 불과 몇 개의 명백한 선거개입을 문제 삼자니 국정원 직원의 개인적 일탈임 가능성을 반박할 수도 없기 때문에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의 많은 증거를 검찰은 제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트위터의 경우 계정 소유자의 신원을 밝혀주지 않으니, 이처럼 국정원 소유계정의 조건을 가설적(假說的)으로 제시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재판장은 검찰에게 여러 번 증거의 미약함을 지적하였지만, 검찰은 2014년 1월 중순에 열린 재판에서 3주의 시간을 더 주면 증거에 대한 모든 의혹을 불식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검찰의 이런 약속은 지켜지기 어렵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트위터 계정에 대한 국정원 직원 소유의 조건이 모든 의혹을 불식시키려면 실제로 소유자를 확인해야 하지만 그것은 120만개나 되는 계정 수로 인해 불가능하고, 소유자를 확인하지 못할 경우에는, 설사 변호인이 반박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더라도, 검찰의 주장은 가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실제 증거가 아니라 증거일 것이라는 믿음에 의존하는 해괴한 기소를 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서 검찰은 광우병 촛불시위 시에 자칭 전문가들이 행한 태도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법무부 장관의 이견(異見)이나 상사의 수사 지휘를 정치적 음모론의 시각에서 보는 태도, 증거에 대한 편향된 시각,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는 오만, 언젠가 확실한 증거가 나올 것이라는 믿음 역시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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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9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정원대선개입 규탄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국정원 대선개입을 규탄하며 박근혜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이진한기자/magnum91@
검찰이 제시한 국정원 선거개입의 증거가 매우 허약하다는 지적이 숱하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초기부터 야당 대표가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기정사실화하고 폭염 하에서 100일이나 ‘자학적 저항’을 하였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놀랄 일이 아니기도 하다. 괴담 비즈니스가 각종 선거운동과 한진 중공업 희망버스, 제주 강정 해군기지건설 반대 등 각종 투쟁의 기본기가 된 우리사회에서 정치적 먹거리가 산처럼 쌓인 국정원 댓글사건이라는 호재를 놓칠 리 없기 때문이다.
놀랍지만 놀랄 수 없는 또 다른 점은 광우병 촛불 시위 때와 마찬가지로 야당, 시민단체, 종교계 등이 검찰 수사를 계기로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주장하여 왔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극도로 분노한 시민들이 분신자살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허구를 전파하면서 ‘민주주의의 후퇴’, ‘민주주의의 파괴’를 비판하는 것은 자기모순을 넘어서는 파괴적 행동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란 ‘국민의 지배’라는 뜻과 함께,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때 필요한 의사결정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결정과정에서 허구를 퍼뜨리고 허구에 의존하여 선동을 하는 경우, 국민의 의사결정이 심각하게 왜곡되고 심지어 민주주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그것은 왕정체제에서 주권자인 왕의 판단을 흐릴 경우 왕조가 무너지고 백성이 피해를 보듯이, 민주정에서 국민의 판단을 왜곡할 경우 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국민이 피해를 보는 것은 마찬가지 이치이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발제문 ‘보수의 북한 콤플렉스와 진보의 시장 콤플렉스가 괴담을 만든다’ 발췌 요약>철도 사태는 진보 진영에 만연한 시장에 대한 피해의식, 게으른 실사구시, 악의적 선동과 정공법 보다 편법을 즐겨 써온 정부의 정책 추진 행태가 부딪힌 부끄러운 갈등이다.
사실 정부가 철도의 전부 혹은 확실히 돈 되는 일부 노선을 민간 회사에게 팔아버리겠다고 한다면, 이는 명명백백한 특혜이기에, 노조의 결사 항전은 설명하기 쉽다. 진보진영과 시민단체의 격렬한 반발도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정부는 민영화할 의사가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소유(지분) 구조도 코레일 41%, 공공기관(자금) 59%다. 정관에서도 민간에 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 노조는 이를 믿지 않고 민영화의 전초단계라며, 총파업에 돌입했다. '민영화 전초단계론'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이철 전 코레일 사장과 오건호씨는 공공자금 59%가 들어온 것 자체가 민영화라고 하였다. 민영화는 자명한 악으로 간주하였다. 물론 설득력이 생길 리 없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진보 성향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요금 폭등, 적자 노선 폐지 등 민영화 괴담이 유포되었다. 한편 경제학 원론 정도를 공부한, 노조 투쟁 지지, 성원자들은 일부의 철도 민영화 실패 사례(?)와 자연독점 산업인 망산업(철도, 가스, 전력 등) 민영화의 부당성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정부는 재벌대기업과 외국자본에게 특혜를 주지 못해 안달하는 사악한 존재로도 되었고, 국가독점보다 더 나쁜 민간독점의 패악도 모르는 바보도 되었다. 그래서 상식을 가진 사람에게 이 갈등을 설명하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철도 사태와 다시 창궐한 민영화 괴담을 통해 극심한 불신과 피해의식과 악의적 선동의 회오리가 또다시 불어 닥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것은 진보 지식사회의 게으른 실사구시 기풍과 함께 격렬하고도 소모적인 갈등을 낳는 수원지라는 것은 불문가지! 민영화 괴담으로 집약된불신과 피해의식은 기본적으로 정권, 정부와 시장, 기업을 향한다. 요지는 정권 및 정부가 돈벌이에 혈안이 된 대기업과 외국자본에게, 과거 한국이동통신을 선경(SK)그룹에 넘길 때처럼 명백한 특혜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철도나 의료 등에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정책 혹은 일부 가치생산사슬을 민간 기업으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는 정책은 정권과 기업이 공모한 국민재산약탈로 비칠 수밖에 없다.
무지, 착각, 피해의식, 악의적 선동이 결합해 괴물로피해의식과 악의적 선동은 논리 문제가 아니기에 접어두자. 꽤 이성적인 진보 인사조차도 민영화를 자명한 악으로 간주하는 것은, 외환위기, 양극화 심화, 일자리 부족, 경쟁 격화, 비정규직 폭증 등의 원인을 대처, 레이건이 확산하고 미국 유학파 학자들과 관료들이 수용한 신자유주의에서 찾기 때문이다. 사실 이 프레임으로 바라보면 변화부침이 극심한 글로벌 시장환경에서 자본(기업)의 생존=이윤추구를 위한 몸부림 자체가 일종의 ‘악덕’으로 된다. 쌍용차, 한진중공업 등 산업기업의 구조조정도, 고용임금유연화=합리화 정책도, 각종 개방화(FTA) 정책도, 공공부문에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모든 정책들도 하나같이 자본운동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된다. 이런 사고방식의 이면에는 세상을 자본과 노동의 대립투쟁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낡은 사고습관이 작동하고 있다.
이렇듯, 낡은 프레임과 1980년대 이후 시대의 대세가 된 세계화, 자유화, 시장화, 개방화, 민주화 흐름에 대한 무지, 착각이 결합하고, 피해의식과 악의적 선동까지 가세하면서, 상식에 한참 어긋나는 이념과 정서라는 괴물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 경제와 사회의 활력을 억누르고 있는 국가관료와 이익집단이 합작한 기득권 과보호용 규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덮여 버렸다. 한국 노조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슈퍼갑’과 ‘갑’ 기업의 독과점거래와 불공정거래도 덮여 버렸다. 절실히 필요한 개혁 담론이나 생산적인 논쟁들이 몽땅 괴담 회오리에 빨려가서 자취를 감추었다.
보수 여론 주도층도 정신적 장애 있는 듯돌아보면 한국 보수 여론의 주도층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 두 정부가 대한민국을 북한에 팔아먹는다고 난리였다. 진보 여론의 주도층은 한미FTA 협정에 대해, 한미쇠고기 협정에 대해 미국에 나라를 팔아먹는다고, 광우병 쇠고기로 '뇌송송 구멍 탁' 어쩌구 하며 난리였다. 지금은 재벌대기업과 외국자본에 자연 독점 산업인 철도를 팔아먹는다고 난리다. 그런데 과연 이게 의심할 만한 일인가? 그런 점에서 한국의 보수, 진보의 여론 주도층은 어떤 심각한 정신적, 사상적 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는 실사구시 기풍과 세련된 정책 추진으로 풀 수밖에 없다. 인내와 설득은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