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천사
목고개
길게 늘어뜨린 겨울의 문턱
아장아장 걸어 나온 달님을 밑천 삼아
후미진 골목 길 모퉁이에 앉아
모아온 폐지를 구르마에 싣고 있는 부부의
손길은 빨라만 지고 있었는데요
"빨리 빨리 쫌 혀...그러다 밤샐껴? "
“거 쫌 보채지 마슈...”
“약은 먹고 온겨?"
약 한 봉지 털어 넣은 힘으로
이렇게라도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하며
박스를 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할아버지는
별따라 핀 눈물을
몰래 손등으로 훔쳐내고서
“내일부턴
나 혼자 할터이까네 나오지 말어"
들리는 말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 하나로 버텨온 노부부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며
한평생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안 되겠구먼
얼른 얼렁 구르마에 타여“
서투른 하루에 몸을 추스릴 새도 없이
깍아지른 아침을 뒤로하고
할머니를 동네 길가에 있는 병원으로
싣고 온 할아버진
“아이쿠... 의사 선생님
울 할멈이 전에 다시 다친 데가
또 도졌나 봐유"
한참을 지나 발목에 깁스를 한 채 병원을
나온 할머니를 태우고 시장 입구에 있는
국밥집 앞에 구르마를 세운 할아버지는
“여기...
곰국 이만 원 어치만 줘유"
마디마디 심어놓은 가난에
한 끼에 만 원씩이나 하는 곰국을
덜렁 사가지고 높이 날던 햇살 따라
집으로 온 할아버지를 보며
“,아니....
이 비싼 걸 왜 쌌데유?"
“비싸봤자
그놈이 만원 빼끼 더하더란가"
“만원이 어느 집 개 이름이유?"
“그럼 임자가 만 원어치도 안된다는거유
뭐유?"
속정 깊은 할아버지의 마음을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고마움이 잎따라 핀 눈물 꽃이 되어
밤바람에 젖어가다 멈춰선 어느날
“깔딱고개 넘어가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닌데
지나가는 사람 있으면 밀어달라고
하지 그랬슈“
"아녀...
어찌 된건지 요즘은
임자 없이도 거뜬히 잘도 넘어가는 걸“
“거짓말 마슈”
젖 먹든 힘까지 써도 넘어가기 힘든
고갠걸 알고 있었던 할머니는
꽃처럼 고운 날 어디 가고
손에 쥔 거라고는 먼지 뿐인 삶앞에
담담한 하루 끝 자락에 젖어오는 넋두리는
오늘 밤이 새도록 이어질 것만 같습니다
까만 어둠이
분칠해놓은 새벽과 함께
같은 일상으로 마주한 아침밥을
꾸역꾸역 드시고 계신 할아버지가
구겨진 날들을 벗삼아
폐지를 주으러 나가는 뒷모습에
아련함이 함께 매달려 가고 있는 걸
채워주지 못하는 미안함까지
얹어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였는지
그날 밤 구르마를 끌고 종이들의 종착역인
고물상으로 가기 위해 높다란 깔딱
고갯길을 혼자 넘어가야 할 할아버지가
안쓰러웠던 할머니는
눈빛으로 남겨둔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목발을 한 채 멀어진 그림자를 따라
길을 나서고 있었는데요
“저기 앉아있구먼...”
깔딱고개 밑에서
숨 고르기를 하며 기운을 모으고 있는
인생을 눈물로 숨겨온 할아버지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할머니는 바래봅니다
젊음도
계절처럼 다시 돌아왔으면...
도와줄 수도 없는 자신을 원망해 보면서
달빛 그늘진 자리에 서서 지켜보던
할머니 눈에
“아니 누가 저렇게...”
가방을 멘 젊은이가
그림자처럼 스미듯 나타나
움직이는 구르마의 뒤에서 힘껏 밀어주고
있는 걸 보고 있던 할머니의 두 눈동자는
커져만 가고 있었고
언덕을
다 오른 할아버지가 멈춰서서
숨을 고르며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는 사이
스치듯 멀어지는 젊은이의 뒷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오늘
달빛 천사를 보았습니다
라고...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