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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빛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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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향기,생활글 낭만을 깨는 이설 혹은 아름다움을 깨는 억측 2
왕 머저리 추천 0 조회 154 14.01.08 15:40 댓글 2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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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1.08 16:52

    첫댓글 아이고~ 왕님 왜 이리 사랑타령이시래요? 난 그사람을 모르지만 그사람은 받는 것 보다 주는것이 더 좋다며 그냥 글재주가 많으니 맨날 취미로 쓴 것이 아닐까요? 하나의 습관이나 버릇처럼...맨날 그런 글만 받는 다면 내 입장에서는 행복은 츰에는 모를까 시시해 질 것 같고 무덤덤했을 듯 허요.사랑이란 그냥 눈빛으로 맴으로
    주고 받으며 믿음으로 묵묵히 지켜 보는게 더 진하지 않을까요? 맨날 종이에 써 서 붙이고 것도 나이 들어서 까지 아이 낯 간지러워라. 참 재주가 많은 것은 사실같구만이라

  • 작성자 14.01.09 06:14

    괜히 질투나서 물 흐리고 있는 깁니다.
    무책임한 여인 편력이 용서되고 심지어 추앙까지 받는 아이러니에 부러움 반, 시샘 반으로 한번 긁어 보는 기지요
    아 근데 지도 인자 다 되었나? 양기가 손구락으로 올라오고있나?
    왜 이리 자판에 사랑 타령만 허고 있나?
    밖으로 나가야 눈 삔 뇨자라도 얻어 걸릴텐데....

  • 14.01.08 19:04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인 쿠사는 이순간을 놓칠새라 ~~ 열심히 사랑하겠습니다 ㅎㅎ ^^

  • 작성자 14.01.10 05:31

    그려 그려요,
    청마도 사실 연애 편지만 쓴 게 아니라 무슨 일로 이영도 시인집을 방문한 어떤 문인이 그 집에서 청마와 마주쳐 무척 어색했노라고... ㅎㅎ

  • 14.01.08 20:01

    제가 학창시절부터 제일 좋아했던 시가 유치환님의 행복이란 시였는데 그분에게 그런 사연들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네요.
    언젠가 저도 예쁜 사랑 시집 한 권 내었으면 하는 게 소망이었거든요.
    말도 못했던 짝사랑의 경험 누구나 있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글로서만 풀어낸 적이 있었거든요.
    저라는 걸 밝히지도 못한 채 매일 한 편의 시를 써서 보냈던 때가 있었더랬어요. 그게 22살 시절이었는데 아련한 추억입니다.^^*
    그리고 그후 전 아무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요.

  • 14.01.08 20:41

    짝사랑...
    외 사랑은 깊은 고뇌에 빠지고
    사계절과 보이는것들이 ...
    나로 말미암아 있는것 같은 착각속에
    시인이 되는것 같습니다.
    감성을 엿 볼 수 있어 좋으네요.

  • 작성자 14.01.09 09:18

    청마는 짝사랑을 한게 아닙니다 ㅎㅎ
    부인 권여사와 주일학교에서 만나 연서를 쉽없이 발송한 결과 연애로 발전되었고 결혼 후엔 가사선생이던 과부 이영도 시인을 연서로 무던히 유혹했지요.
    그 와중에서도 14년 연하의 직장 동료 반선생과의 연서도 사망시까지 8년동안 350통의 편지를 보낼 정도로 왕성했고 또 강릉의 모 여인. 또 어디의 모 여인등 연서 사건에 등장하는 여인만도 부인 빼고 4명 입니다
    그는 동시다발적 멀티적 능력을 가진 여성 마음을 훔치는덴 프로급의 킬러였어요 ㅎㅎ
    그러나 청마의 자유분망한 연애는 누구도 거론치않고 여전히 그 냥반은 순정파 시인으로 남아 있어요 ㅎㅎ

  • 14.01.08 21:14

    @이레 계절의 바뀜에 따라 피고 지는 꽃을 보며 때로는 저의 상상 속에서
    글이 되어 풀어질 때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 14.01.08 21:33

    @왕 머저리 네 그분은 짝사랑이 아니죠.
    사람들은 열렬히 연서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그분을 부러워하면서 순정파 시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네요.
    그분이 8년 동안 350통이라...
    전 일 년도 안 되어서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을 노래하며 시를 200편이 넘게 썼는 걸요. 뭐 시라고 하기보다 끄적거렸다는 게 맞겠지만요...

  • 14.01.08 20:33

    현재 제가 사랑하는 건 하늘이고, 바다고, 산이고, 나무고, 꽃이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게 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주지 아니하고 가정파괴범도 되지 아니하고요...
    사랑하다가 한쪽의 마음만 정리하면 되는 사랑을 하잖아요.^^*
    지난 봄 전 제가 키우는 수선화를 사랑했더랬어요. 근데 수선화가 시들자, 저도 시름시름 앓다가 병원 신세까지 졌어요.
    그런 부작용도 있었지만, 뭐 그래도 사랑하며 살래요.^^* 제가 사랑하던 수선화의 팔팔했을 때의 모습 사진으로 공개합니다.
    그대는 갔습니다. 사랑하는 그대는 갔지만,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

  • 14.01.08 20:38

    아름다운 마음 입니다.
    사물을 어여쁘게 보고
    느끼고 사랑 함은 감성 또한
    아름답고 맑고...
    다시 말 하면 영혼이 아름답습니다.
    행복한 여인 입니다.

  • 14.01.08 21:13

    @이레 마음 한 자락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영혼에 참 많은 것을 전해주며 떠났던 수선화였습니다.
    그 후로는... 너무 마음 주지는 말아야지 싶었지요.
    청초하고 너무나 강한 느낌을 주며 다가왔던 꽃이라
    봄이 되면 다시 키우고도 싶지만 그러지 못할 것 같아요.
    그 꽃에게 말을 걸었던 때를 생각하며 썼던 글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꽃에게 말을 걸다'로 시작해서...
    예쁘게 봐 주셔요. 감사합니다. 늘 행복한 날들 되세요~

  • 작성자 14.01.08 21:18

    비꽃님 마음이 고요하고 착하군요
    아름답고 순수합니다
    괜히 지난 시간의 사람들을 거론하며 왈가왈부하는 것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합니다

  • 14.01.08 21:45

    아니에요. 저도 새로운 사실을 알아서 좋습니다. 제가 학창시절부터 그렇게도 좋아했던 그분의 시였거든요,
    그분의 자유분망한 사랑은 이해를 할 수는 없지만, 그냥 전 시 한 편만 기억할래요.
    다른 걸 떠나서 그냥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며 살아갑시다요. 마음으로만요...
    또 다른 이야기들 언제든 풀어놓아 주세요. 문학의 또 다른 면을 알 수 있는 공부의 장이 되잖아요.
    감사합니다.

  • 14.01.08 23:27

    청마에게 시를 쓰게 한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사랑이었겠지요.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예전에 짝사랑하면서 많이 써먹었는데~ㅋㅋ

  • 작성자 14.01.09 06:27

    그게 이영도 시인에게 3년간이나 일방적으로 끈질기게 연서를 보내던 시절에 답답한 외사랑의 한을 그렇게 표현했던 파도란시 이지요 그 3년이 지난 후 그녀도 드디어 마음을 열고 이후 십몇년간 서로 5000 통의 연서를 주고 받았지요.부인 권여사가 운영하던 유치원을 지나면 우체국이 있었는데 부인과 함께 있다가 연서를 부치러 매일 나갔던 저 남성의 이야길 숭고한 플라토닉 러브라고 받들고 우체통 옆에 기념물을 세워 행복이란 시를 새겨넣고...
    연서의 대상 인물도 밝혀진 인물만 넷인데
    솔직히 일반인이 했으면 그 행동이 용서가 될까요? ㅎㅎ

  • 14.01.09 09:34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이 청마와 똑같지 않을까요
    다만 우리는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청마는 행동으로 옮겼고....
    청마가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본인의 성격도 있었겠지만
    주변에 있는 여인들이 일조를 했겠죠
    왕님도 여기까지는 이해를 하신다구요 ㅎㅎㅎ

    어차피 유명한 예술가들은 미화하기 마련인것 같습니다
    문학뿐만이 아니라 음악도 미술도...
    좋은글 감사합니다 왕님,

  • 작성자 14.01.09 17:17

    청마의 연서 사건이 순수와는 거리가 먼 변종 바람둥이 연애란 건 많은 문인들이 알고 있죠
    근데 그들은 굳이 그걸 들춰내서 청마를 깍아 내리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자기들의 주위에도 자기를 해바라기 하는 연인들이 많으니까...
    설사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시인에 대한 아름다운 전설이 어렵게 시인이란 계관을 쓴 자신들의 위상을 높여주는 보조장치 일 수도 있는데 굳이 파헤치고 바로잡을 필요는 못 느끼겠지요
    근데 엉뚱한데서 청마의 위상을 깍아내리는 일이 발생했지요
    청마가 만주로 간 것은 일제강점하의 질곡으로부터 벗어 나려한 몸부림이였다고 생각하고 청마의 멀티연예에는 애써 눈감고 청마가 수천통의 편지를 보냈던

  • 작성자 14.01.10 06:15

    통영중앙우쳬국을 청마우체국으로 개명하자고 지역 문인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고 추진하여 거의 성사단계에 왔는데 우연히 당시 경남 소재 지방 신문에 청마가 기고한 글이 발견되었어요. '황국신민의 의무를 다하자' 뭐 이런 류의 글이였는데 일제의 강압으로 억지로 쓴 글이 겠지요.
    그 글 발견 후 청마의 다중 연애사건을 낭만 가득한 사건으로 띄워주던 사람들이 매섭게 변했죠
    현재 통영은 청마를 친일 문인으로 찍어 청마우체국 개명 건은 물 건너 가려고 하고있고 다른 청마 추모 사업도 제동이 걸리는 상태입니다
    좌든 우든 이념에 걸리면 국물도 없읍니다 ㅎㅎ
    거기다 이젠 청마의 여성편력도 재해석 될지 모릅니다ㅎㅎㅎ

  • 14.01.10 00:08

    @왕 머저리 하하하하 읽어 보니 무지 잼나네요~~~ㅋㅋㅋ 난 시에는 (문학) 도통 깡통이라 관심 없고 개뿔도 모르고 다만, 그 시인 아자씨가 과부, 한참아래 유부녀등 뇨자를 홀리는데 시를 활용하여 엄청 도술을 잘 부린다는데 10표 줍니다.. 하하하하.

    유부남이 과부 홀리는 것은 참말로 쉽지가 않은 일인디 ~~ 글구 진짜 찐한 성인 남,녀간의 사랑은 운우지정 - 즉 쎅스가 동반되어야 멋진 사랑이라고 책에서 읽었는디 ㅋㅋㅋ 그 아자씨 심도 쎄구먼~~~~

  • 14.01.09 14:16

    문학적, 예술적 이바구는 잠시 접어두고..^^
    전 청마를 생각하면 언뜻 바람꾼이 생각나네요ㅋ
    그시절엔 일부다처가 허용됐던 시절이긴 했어도
    본처에겐 꽤나 속 썩었을수도~ㅋ
    요즘같았다면 어땟을까 디게궁금하고 ,
    유명한 시인이라는 이유로 그 사랑(그언어가 지니는 개념이 타락해서 부득이 순수한이란단어를 사용해서)이 용서되어버리는 아이러니컬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냥 예술적 문학적으로만 보면 되는데도 말입니다 ~~^^

  • 작성자 14.01.09 17:14

    차라리 남편이 한,두번 바람피우다 돌아오는게 낫지 이 여자 저 여자에게 평생을 연애 편지를 써 보내고 답장을 받고 하는 꼴을 보는 게 낫겠읍니까?
    청마가 일방적으로 보낸 게 아니라 편지 내용들을 보면 서로 주고 받았다는 게 분명하다는데 매일 집으로 이 년,저 년, 요 지집애 조 지집년이 편지를 보내오고 매일 답신을 쓰는 꼬라지를 평생을 본 부인 권희재 여사 맘은 어땟을까요?
    그녀도 당시엔 상당한 인테리 신식 여성이였는데...
    청마는 낭만시인이 아니라 마누라를 평생 고문한 잔인한 놈이라고도 볼 수 있는거지요
    차라리 바람 피우다 돌아 온 탕자같은 남자가 훨씬 인간적 입니다

  • 14.01.10 00:43

    @왕 머저리 하하하하 마눌님이 그 서방을 아예 지 마음에서 제명 하였겠지요. 너는 나에게 그냥 호적상 서류상 서방이고 ,,, 그 당시 여러 주변 사회 환경에서 이혼서류 도장 찍기는 그레도 명분이 있는 교육자 나리인데 이름있는 명사라 쪽 팔리니 그레 니 팔자는 유부녀 꼬시고 과부 홀리는게 니 일이니 니 맘데로 살다 가라고 ~ 아 예 포기하지 않았을까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네유. 지금의 잣대로 30,40,50년대 배꼽아래 사항을 자세히 깊히 알 수가 없으니
    ㅋㅋ<< 이거 또 괸사리 시비꺼리 되는거 아닌가 몰러 이미 망자가 된 고인에 대하여 뭐 명예가 어떠니 , 저떠니 그양반 가족, 친척들이 보면 기분 나뿔 텐데유 ...에고 골아퍼 이상 끝

  • 14.01.10 07:22

    사랑이 뭔지 왜..집에 부인을 두고 한눈을 파는지 원.....
    정력이 남아도나.ㅎㅎㅎ
    시절을 잘 만나서 그랬을지도.. 요즘같으면 바로그냥 이혼이 아닐까요.ㅎㅎㅎ
    하기사...남의말 할것도 없구먼유...우리집 옆지기도 한때는 바람많이 피웠는데..
    그래도 버리지못하고 살아요.ㅎㅎㅎ

  • 작성자 14.01.10 07:35

    ㅎㅎ 이옥자님이 심덕이 크시구먼유.
    그때 뻥~~찻으몬 지금 매일 석고대죄하면서 용서를 빌텐디유
    ㅎㅎ
    옛날엔 여인들이 남정네의 과실에 대해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너그럽고 인내심이 강했지요

  • 14.01.11 06:19

    @왕 머저리 그때 바로 알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저도 알수없지요
    다 정리하고 난다음 한참 뒤에야 알았으니 어쩌겠어요 지난일인데.ㅎㅎㅎ
    지은죄가있으니 요즘은 내 눈치만 보고 그러누만요...
    남자들은 늙으면 기가 죽나봐요... 어떨땐 축은하기까지 .ㅎㅎㅎㅎ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01.10 22:58

  • 작성자 14.01.10 15:26

    '사랑하는 정운..'. '당신의 마'
    이런식으로 편지글의 서두와 끝말이 ... 내용도 참 그렇고...
    반 여사는 아예 '청하'라고 호를 지어주고 '나의 사랑 청하' 운운하며 편지가 시작 되었지요
    그리고 청마는 편지만주고 받은게 아니라 그 여인 집에도 빈번히 찾아 갔읍니다
    그건 이제 누가 새삼 뭐라 할 사항은 아니지만 실상을 애써 외면하고 전설로 승격시킨 걸 한번 시비 걸어 보았읍니다
    실로 무익하고 웃기는 시비입죠
    이성에 대한 관심은 본능인데 보통은 그걸 드러내지 않죠.
    그 행위가 자랑스러운건 아닐테고 보통은 부인과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랫으면 시빗거리가 될 수 없을텐데...
    그게 낭만의 전범은 절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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