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연령(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에서 위령 기도 소리가 울렸다.
천주교 의정부교구는 11월 8일 오전 경기도 파주에 있는 이 추모공원과 북한군 묘지에서 민족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고, 양측 희생자를 위한 기도 시간을 마련했다.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민화위)와 교구 제8지구에 속한 본당들이 함께 마련한 이날 행사에는 신자 130여 명과 사제 10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에서 위령 기도를 바친 데 이어, 도로로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일명 '적군 묘지'인 북한군 묘지에서 위령 미사를 봉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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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8일 오전 의정부교구 신자들이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북한군 묘역 앞에서 위령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강한 기자 |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은 1951년 4월, 서울로 향하기 위해 적성, 연천 지역으로 밀려온 대규모 중공군에 맞서 저지한 영국군의 큰 희생을 기념하는 공원이다.
의정부교구 민화위원장 이은형 신부는, 그동안 교회가 호국 영령이나 파병 군인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는 있었지만 이처럼 ‘적군 묘지’나 한국전쟁 관련 장소에서 적국 군인의 영혼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은 처음일 것이라고 8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이날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에서 위령기도를 이끈 금촌2동성당 연령회장 윤병칠 씨(65)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매년 정례적으로 화해와 평화를 위령 기도와 미사를 드릴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 씨도 적성면의 북한군 묘지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김인석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이곳에 안장돼 있는 북한군 시신은 718구라고 소개했다. 김 신부는 “이들이 우리 편은 아니었을지라도 전쟁의 희생자인 셈”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8지구장 겸 교구 정의평화위원장이다.
이곳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무명 북한군뿐 아니라 1968년 1.21 사태 당시 청와대 습격을 시도하다 사살된 공비 등도 묻혀 있다.
김 신부는 이 묘지가 재정비된 것이 연평도 포격 사건 2년 뒤인 2012년이라고 언급하며, “말끔하게 단장된 적군 묘지는 남한이 북한보다는 여러 면에서 살기 좋은 곳이라는 간접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총을 겨눴던 적들의 시체를 수습해 줄 여유가 있는 사회라는 걸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제네바 협약과 인도적 차원에서 1996년에 전국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북한군, 중국군 묘지를 모아 파주에 적군묘지를 조성했다. 지난 3월 29일에는 이곳에 묻혀 있던 중국군 유해 437구가 중국에 인도됐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