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30 火/ 연중 제 17주간 화요일,
또는 <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주교 학자>기념.
-평일, 또는 <기념>미사.
① 예레 14,17ㄴ-22 ㉥ 마태 13,36-43
* 오늘의 성인('24.07.30)
마르타 동정녀 여, 베아트릭스 순교자 남, 세라피나 성부인 여, 세라피아 동정/순교 여, 파우스티노 순교자 남, 플로라 동정/순교 여.
ㅡㅡTㅡ묵 상ㅡTㅡㅡ
♧ 연중 제 17주간 화요일- 구별과 차별을 하는 것이 가라지다. ♧
ㅁ
오늘 복음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우리 공동체를 보면 가라지가 꼭 밀 가운데 섞여 있는데,
그 가라지들을 우리가 뽑으려고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비유에서는 가라지를 잘 솎아낼 능력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오늘 저는 다른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까 합니다.
지금 나는 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를 밀이라고 생각하는가? 가라지라고 생각하는가?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자기를 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라지입니다.
자기를 가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밀이고
다른 사람을 가라지라고 생각하고 솎아내려는 사람이 실은 가라지입니다.
오늘은 이 짧은 묵상 나누기만 하겠습니다.
이것이 지난 토요일 저의 나눔이었습니다.
오늘의 나눔은 이것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가라지는 구별과 차별하는 것이 가라지입니다.
이것을 뒤집으면 구별하지 않는 것,
특히 차별하지 않는 것이 밀입니다.
불교에서 구별은 부처가 할 짓이 아니고,
그러니 깨닫지 못한 자가 하는 짓입니다.
인간의 모든 고통과 불행은 이 구별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악이라는 것 또는 가라지라는 것은 선에서 시작되지요.
이것이 선이라고 하는 순간은 이것이 아닌 것이 악이잖습니까?
이것만이 선이라고 하는 순간 이것이 아닌 것이 악이잖습니까?
양단의 개념이란 것이 다 이렇습니다.
흑백논리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것을 백이 아니면 다 흑이라고 보는 것은 위험하고,
그 이전에 흑과 백을 나누고 구별하는 것 자체가 나쁩니다.
구별이 이렇게 나쁘면 차별은 더 나쁩니다.
구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일 뿐인데 악한 것이라고 하고,
오늘 비유에서 가라지를 뽑아내려 하는 것처럼
악한 것이기에 없애야 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늦잠을 잔 관계로 여기까지만 나누기 하려고 하는데
위의 나눔에서 악이란 죄의 악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존재(선)를 파괴하는 죄악까지
괜찮다고 하거나 그런 죄악을 우리가 없애려고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한국관구//
서울오류동공동체/서울신사동수도원분원//
평의원/여기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국가영적보조/재속프란치스코회 위원장"
(ofs/정릉 아타나시오 韓 옮김)
ㅡㅡTㅡ복 음ㅡTㅡㅡ
◈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36-43
그때에 36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7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38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40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41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42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3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적독서 후에 잠시 묵상합니다>
<묵상 후 사도신경을 바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