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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는 글은 스마트폰 📸 와이드(WIDE) 화면으로 볼 수 있게 조정하였습니다. 반석을 치라 출애굽기 17장 1-7절 / 이홍열목사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창조주}의 명령에 따라 신 광야에서 떠나 자기들의 여정대로 이동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거기에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으므로 2. 백성이 모세와 다투며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우리가 마시게 하라,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창조주}를 시험하느냐? 하니라. 3. 거기서 백성이 목말라 물을 찾으며 백성이 모세에게 불평하여 이르되, 어찌하여 당신이 이처럼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와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하니 4. 모세가 {창조주}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까? 그들이 곧 내게 돌을 던지려 하나이다. 하매 5. {창조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데리고 가라. 네가 강을 칠 때 쓰던 네 막대기를 네 손에 잡고 가라. 6. 보라, 내가 거기서 호렙에 있는 반석 위에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 반석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하시매 모세가 이스라엘의 장로들 눈앞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곳의 이름을 맛사와 므리바라 하였으니 그 까닭은 이스라엘 자손의 다툼 때문이요, 또한 그들이 {창조주}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창조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아니 계신가? 하였기 때문이더라.”(KJV) 사람이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끊임없는 문제의 연속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인생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위기 상황의 지속이라는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삶에 부닥쳐 오는 위기 상황을 도피하려고 애를 씁니다. 나라의 위기가 닥쳐올 때에 이민이라고 하는 도피수단을 생각하고 정신적인 위기가 닥쳐올 때에 술과 오락 속으로 도피하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가정적인 위기가 닥쳐올 때는 이혼이라고 하는 법적조처 속으로 모든 것을 도피시키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요 견해요 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닥쳐오는 문제와 삶의 위기 속에서 그것을 피해서 도망가고 도피하려고 하는 사람들, 소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전체 인생에 있어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입니다. 우리의 삶은 도피하려고 하는, 문제와 위기를 피하려고 하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오히려 삶 속에 부딪쳐오는 위기 상황과 문제의식 속에서 그것을 이기고 정복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라고 하는 자기 인생 절대절명(絶代絶命)의 위기상황을 도피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당하게 십자가를 지심으로 부활의 영광으로 사망권세를 지배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사망을 정복하신 것입니다. 돌이켜 보건대 인류 역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 그리고 민족들 그리고 교회들은 결코 부딪치는 문제나 위기상황에 있어서 도피자가 아니라 그것과 맞서서 싸웠던 사람인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닥쳐온 위기는 목마름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17장을 보겠습니다. 민족적인 위기상황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의 신앙의 거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세 번의 큰 민족적인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전부 60만이나 되는 모든 민족이 이집트 군대에게 몰살당하느냐? 아니면 홍해를 건너 살아남느냐? 하는 생존의 위기였습니다. 그런가하면 둘째 위기는 신 광야에서 닥쳐왔는데 이것은 굶주림, 배고픔이라고 하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넓고 넓은 그런 사막 속에 먹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60만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먹어야 합니다. 굶어 죽느냐 아니면 살아남느냐? 하는 생존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이제 셋째 민족적인 위기가 다가오는데 바로 오늘 우리들이 살펴보려고 하는 르비딤에서 겪은 민족의 위기입니다. 홍해를 무사히 건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고픔을 채웠는데 이제 무엇이 문제였는가 하면 마실 물이 없어서 위기였습니다. 홍해나 굶주림이나 갈증이나 이러한 모든 이스라엘이 겪은 위기는 인간 본능적인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상황입니다. 절대적인 위기입니다. 여기서는 잘살고 못살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많이 먹고 적게 먹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살아남느냐 아니면 죽느냐 하는 생존과 전멸의 절대 위기 상황입니다. 여기를 다시 보겠습니다. 지금 여기는 광야입니다. 가까스로 만나와 메추라기로 식량문제를 해결을 했더니 마실 물이 없어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증 때문에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사막, 광야에서 60만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목이 말라 아우성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목마른 것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밥을 안 먹으면 한 달은 살아도 물을 안 먹으면 열흘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이 커다란 전멸이냐 생존이냐 하는 절대적인 민족적 위기 상황 앞에서 우리는 두 가지 태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 광야의 상황 속에서 도피하려고 했습니다.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불평했습니다. 과거의 이집트의 기억 속으로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향해서 왜 우리를 이집트 탈출 시켜서 여기서 목말라 죽게 만드느냐 하면서 도피하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둘째 위기 상황을 맞이하는 신앙의 거인 모세를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백성들에게 물을 먹게 해 주던지 아니면 죽음을 맞게 하던지 양자택일의 길밖에는 없습니다. 여기는 지금 사막입니다. 광야입니다. 물 한 방울도 없습니다. 아마 몸이 달아도 모세처럼 몸 달았던 사람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위기상황을 피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벡성을 피하여 혼자 숨으려고 하지 아니하고 백성들 앞에 당당하게 나섰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느냐 먹을 것을 주신 하나님께서 마실 물을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민족적인 위기와 정면으로 맞부딪쳐 싸우고 있습니다. 가축들이 쓰러져 갑니다. 어린 갓난아기가 숨을 헐떡이면서 먹을 물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과연 모세는 르비딤에서의 민족적인 위기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 1절로 7절을 자세히 상고하면 삶의 문제와 위기 앞에 선 신앙의 거인 모세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이 위기를 대처하는 모세를 통해서 우리의 삶과 신앙 속에 부딪쳐 오는 수많은 문제를 대처하는 신앙의 지혜를 오늘 아침 배우고자 원하는 것입니다. 1. 첫째로 삶 속에 부딪치는 문제와 위기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백성 앞을 지나가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5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5. {창조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데리고 가라. 네가 강을 칠 때 쓰던 네 막대기를 네 손에 잡고 가라.” 백성들 앞을 지나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백성입니까? 출애굽기 17장4절을 봅니다. ➤“4. 모세가 {창조주}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까? 그들이 곧 내게 돌을 던지려 하나이다. 하매” “왜 우리를 이집트를 탈출시켜서 고생시키느냐?” 모세를 향해서 돌질을 해서 때려죽이려고 돌멩이를 높이 쳐들고 있는 그런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서 목말라 애타하는 이러한 르비딤의 위기상황 속에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 앞을 지나가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오히려 백성을 피해서 딴 곳으로 가든지 도망을 가든지 아니면 숨든지 해야지 모세를 때려죽이려고 돌멩이를 들고 서 있는 백성들 앞을 모세를 보고 하나님은 지나가라고 명령하십니다. 2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려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위기 상황 앞에서 그 상황을 피해서 도망가려는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라 하는 것입니다. 모세를 향해서 백성들이 돌질하려고 하는 그 문제와 위기상황을 피하려 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서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싸우라 하는 것입니다. 피한다고 하는 것은 패배를 자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아니 우리교회 앞에 이 민족의 사회 앞에 그 어떠한 위기상황, 그 어떠한 문제꺼리가 닥쳐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피해서 도망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문제 앞에, 위기 앞에 당당하게 버텨 서시기 바랍니다. 백성 앞을 지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위기를 극복하는 실마리가 찾아지는 것입니다. 백성 앞을 지나가라 는 말은 다른 말로 두 번째로 바꾸어 말한다면 자신감을 가지라 하는 말입니다. 물을 달라고 아우성인 백성 앞에 물이 없는 광야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나섰습니다. 모세가 백성 앞을 지나갈 수 있는 그 원동력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 신앙에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믿음을 가지고 그 어떠한 위기상황, 문제 앞에서도 주눅이 들거나 아니면 피하려는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맞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이 있습니다. 한번은 한참 현대건설이 막 키워가지고 한국의 재벌 그룹으로 부상할 때에 울산 현대공장 노동자들이 임금 파업을 했습니다. 임금을 올려 달라고 총 스트라이크를 일으켰습니다. 아주 그냥 이 노동자들이 분이 하늘 끝까지 올랐고 막 노동자들이 흥분상태에 놓여있었습니다. 이때에 많은 참모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재벌 회사의 총수인 정주영 회장이 노동자들과 맞부딪쳐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부하 직원이 말렸지만 돌멩이가 막 날아오는 그러한 살벌한 파업 현장에 정주영 회장이 나타났습니다. 자신 만만하게 섰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향해서 얘기를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오일 쇼크를 당해서 경기가 침체되어 있다. 지금 당장은 당신들이 아무리 돌멩이를 던지고 스트라이크를 일으키고 파업을 해도 나는 한 푼도 월급을 인상시켜 줄 수가 없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말을 할 수가 있다. 이 정주영이를 믿어 달라. 경기가 호전되면 임금을 올려주겠다. 그러나 그 시기가 어느 때 인지 나는 모른다. 임금을 당장 올려달라고 하는 노동자들을 한 푼도 월급을 올려주지 않고서 파업을 수습했습니다. 아마 그 파업했을 당시에 정주영 회장이 도망을 갔다면 오늘날의 현대그룹은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위기상황을 피하려고 해서만 안 됩니다. 당당하게 그 앞을 지나가야 됩니다. 삶과 신앙의 위기 앞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믿음을 가지고 자신을 데모 또는 항의 하시기를 바랍니다. 백성 앞에 지나간다고 하는 것은 위기상황의 극복을 위해서는 작은 불평과 비난에도 초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지금 목이 말라서 애타는 이스라엘 벡성 앞을 지나갈 때에 모세가 무슨 소릴 안 들었겠습니까? 왜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느냐? 욕을 했을 겁니다. 원망했을 겁니다. 비난했을 겁니다. 모세가 자기 잘난 척하려고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사는 우리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어 이 고생을 시킨다고 원망했을 것입니다. 모세에게 달걀 정도가 아니라 돌멩이를 던지고 욕을 하고 많은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을 겁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삶과 우리의 신앙 앞에 부딪쳐오는 문제를 극복하고 위기를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 앞에 부딪치는 많은 비난과 조롱과 조소를 이길 수 있는 든든한 마음의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얘깁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여의도의 조용기 목사님이 목회하는 과정 속에서 많은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그 분에게 닥쳐오는 위기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면 너무나 한 목회자가 거목처럼 커 나가니까 그를 비판하고 조롱하고 욕하는 세력들이 생겼습니다. 공개적으로 예배 시간에 안수를 하고 신유의 능력을 행해서 병자를 고치니까 주위의 다른 목사님들이 교회가 병원이냐 하고 비아냥거렸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강조하니까 기복신앙이다 두드려 팼습니다. 삼박자 구원이라고 하는 것을 얘기 하니까 그것은 크리스챤적인 샤머니즘이라 하면서 매도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두려워했더라면 이러한 비난과 조롱에 신경을 썼더라면 오늘날 몇 백억을 들여서 근로자 복지타운을 세우는 여의도순복음 교회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는 성장을 지향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교회를 성장시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교회 만들어 보자고 하는 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소원이고 하나님의 한 맺힌 바람이십니다. 우리들이 교회성장을 지속시켜 나가는데 있어서 성장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가지는 그러한 무리들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자라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이 교회를 성장시켜서 많은 영혼이 이 제단 통해서 구원을 얻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새로운 소망을 얻게 된다면 그것이 우리의 보람이고 소망인 것입니다. 위기 앞에 서서 비난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조롱을 겁내서는 안 됩니다.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야 됩니다. 자신 있게 떳떳하게 배짱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백성 앞을 지나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위기상황 앞에서 자기 자신에게 데모하고 항의 하라는 말입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타협하려 하지 말고 당당하게 버티어 서십시오. 이것이 여러분 앞에 닥쳐오는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요 비결인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과 흥정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지고 자기를 향해서 돌을 던지는 백성 앞을 지나갔습니다. 피하려고 하지 맙시다. 자신감을 가집시다. 섣불리 타협하려 하지 맙시다. 비난을 겁내지 맙시다. 우리가 피하지 아니하면 위기상황 crisis 가 우리를 피해 갑니다. 2. 둘째로 삶과 신앙 속에 부딪치는 문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장로들을 데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17장5절 다시 봅니다. ➤“5. {창조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데리고 가라. 네가 강을 칠 때 쓰던 네 막대기를 네 손에 잡고 가라.”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데리고 장로들과 함께 가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이 없어 야단인데 이스라엘의 장로, 이 장로라고 하는 것은 오늘 우리 교회에서 의미하는 장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중간 지도자입니다. 모세와 백성 사이를 잇는 그러한 일반 지도자들을 의미하는데 이 지도자들과 함께 백성 앞을 지나가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명령을 하신 것은 모세가 백성 앞에 맞아 죽을까봐 보디가드로 장로들을 데리고 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장로들을 데리고 가라는데는 2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기도의 동지와 함께 위기상황을 해결하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함께 기도하고 함께 간구하라는 말입니다. 모세 혼자 백성 앞을 지나가서는 안 됩니다. 장로들을 데리고 함께 지나가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는 겁니다. 힘을 합하는 겁니다. 뜻을 모으는 겁니다. 기도는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최단 코스입니다. 삶의 위기라고 하는 풍랑을 만나게 될 때에 우리는 다른 길로 나갈 것이 아니라 곧바로 기도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뜻을 모아야 합니다. 장로들과 함께 나아가서 위기상황을 극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어서 노예해방운동을 주관하는데 그 백악관 장관들 중에도 노예해방 운동을 반대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하루는 장관들 몇이 우르르 대통령 집무실로 몰려오더니만 대통령 앞에 봉투를 하나 내놓습니다. 무언가 했더니 사표입니다. “각하! 각하께서 이처럼 남부에서 반대하는 노예해방 운동을 계속적으로 추진하신다면 저희들은 부득이 장관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관들이 5-6명이 한꺼번에 노예해방 운동을 반대하기 때문에 사임한다고 하는 대통령으로서는 커다란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자기의 정치적인 최대 위기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때 링컨 대통령이 한 것은 무엇입니까? 대통령 자문위원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장관들을 설득하려고 그냥 설득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표를 들고서 곧바로 대통령 집무실 옆에 있는 기도하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백성이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까?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이 아닙니까? 왜 흑인들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게 합니까? 하나님 제가 확신하기는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에게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신 줄 믿습니다. 지금 제가 이 노예해방 운동에 최대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장관들이 더 이상 함께 못하겠다고 이렇게 사표를 써들고 왔습니다. 하나님 힘을 주시옵소서.” 기도의 장소로 나아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튿날 아침에 링컨 대통령은 전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무슨 내용인가 하면? 자유와 노예가 함께 하는 국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 누가 무엇이라 해도 노예 해방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겁니다. 그는 노예를 해방시키는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다른 길로 가지 아니하고 장로들과 함께 기도의 길로 스트레이트 어웨이 곧바로 나아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이 장로를 데리고 가라고 하는 말씀은 모든 일에 있어서 신앙하는 일에 있어서 공개적으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물이 없어서 목말라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뒤에서 술수 쓰지 말고 증인 앞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위대한 역사를 믿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우리가 교회적으로 적용시킨다면 교회의 모든 행사도 모든 재정도 모든 행정도 공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짖 궂은 질문이지만 목사님들이 이렇게 만나면 ‘당신 월급 얼마 받소? 하고 가끔가다 농담 삼아 묻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목사님들이 먹고 살만큼 받습니다. 하면서 정확한 액수를 발표하기를 주저합니다. 가만히 그 심리를 캐보니까 물론 조금 받는다고 부끄럽다거나 많이 받는다고 자랑스러워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들이 받는 생활비 공개하기를 꺼려합니다. 나중에 나이 들어가지고 쓸려고 저축도 해야 됩니다. 또는 굶어 죽어가는 안타까운 교인들이 있는데 그것보다는 다른 어떤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 쓰니까 그 얼마 받는데 아 목사님이 한 달에 십 만원 받는데 쓰는 것을 보면 7-8만원이 어디로 도망가는 것을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에 아마 그런 의미에서 목사님들이 생활비를 밝히기를 꺼리지 않는가?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저는 부끄러움이 없게 사용하고 있고 또 그렇게 사용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장로들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공개적으로 기도해야 됩니다. 공개적으로 믿어야 됩니다. 위기의 극복은 어두운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밝고 떳떳한 자신 있는 신앙 속에서 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3. 셋째로 지팡이를 들고 가라는 겁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 속에 부딪치는 문제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팡이를 들고 가라 하는 것입니다. 17장 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5 {창조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데리고 가라. 네가 강을 칠 때 쓰던 네 막대기를 네 손에 잡고 가라.” 여러분! 한번 생각을 해 봅시다. 식수가 없어서 폭발직전의 민족적인 위기상황을 해결하려면 지팡이를 들고 가서야 쓰겠습니까? 삽을 가져가서 광야 모래밭을 파 보던지 아니면 곡괭이나 아니 정 없으면 호미를 가지고 가서 땅을 파던지 해야 물을 얻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삽으로 광야를 파내는 것이 이것이 합리적이요 이것이 상식적이요 이것이 과학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삽을 가지고 가서 땅을 파라는 말씀을 한 것이 아니라 지팡이를 들고 가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상식과 과학과 이성적인 사고의 영역을 넘어서옵니다. 물을 얻기 위해서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지팡이를 들고 가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모세가 물을 얻기 위해서 들고 갔던 이 지팡이는 어떤 지팡이입니까? 하수를 치던 지팡이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던 지팡이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던 지팡이입니다. 10가지 재앙을 내렸던 지팡입니다. 뱀이 되었던 지팡이입니다. 홍해를 갈랐던 지팡이입니다. 이 지팡이는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믿음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할 때 지팡이를 지고 가라고 하는 것은 그것으로 땅을 파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하는 위기상황을 극복해 주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백성들 앞에 나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위기의 해결은 삽이나 곡괭이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데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시골에서 몹시도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농사는 짓지 못하고 벼는 말라 타들어 갑니다. 너무나 안타까웠던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광고를 했습니다. “‘여러분! 다음 주일날은 우리가 이 땅에 비가 오기를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신앙적 기우제를 드리자는 말입니다. 모두 비가 오도록 기도를 하면 우리가 기도하고 나면 비가 올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다음 주일날 오실 때는 맑은 하늘이더라도 우산을 꼭 준비해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일날이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를 갈려고 아침에 하늘을 쳐다보니까 구름 한점 없이 청천하늘입니다. 바람이 살살 부는 것이 도저히 비가 올 것 같지 않습니다. 비가 오도록 기도를 해 보았지만 비가 올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산을 다 팽개치고 빈손으로 성경찬송 들고 교회를 왔습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비가 오도록 기도를 하였습니다. 모두 기도를 끝마치고 나가는데 아무도 우산을 가지고 온 사람이 없으니까 우산을 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마한 주일학교 1학명쯤 된 그럼 꼬마가 갑자기 우산을 펴 들더니만 우산을 쓰고 갑니다. 부모가 말립니다. “애야 창피하게. 비도 안 오는데 우산은 무슨 우산이냐?” 꼬마가 말합니다. “엄마!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하시지? 우리가 기도한 것은 반드시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지” “그럼 그렇고말고 그런데 목사님께서 비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지? 엄마도 오늘 예배드릴 때 비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지?” “기도했지!” “비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면 비가 올 것을 믿어야지 왜 엄마는 믿지 못해요.” “나는 비올 것을 믿기 때문에 우산을 쓰고 가지요.”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어린아이만큼도 믿음을 갖지 못했던 많은 교인들이 부끄러움을 당했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4. 넷째,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지팡이! 믿음의 지팡이를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 오게 해달라고 기도해 놓고도 비가 안 올 것을 믿기 때문에 우산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비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고는 비 올 것을 믿고 우산을 준비한 어린아이와 같은 이 순진한 믿음, 이것이 있을 때에 위기는 극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의 위기는 돈이나 인간관계의 해결에 시발이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해결이 있습니다. 기도의 지팡이를 들고 가야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하나님이 우리 교회와 이 민족과 함께 하신다고 하는 위대한 믿음의 지팡이, 이것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오른손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는 믿음의 지팡이를 잡았다면 이미 우리 앞에 닥친 위기는 해결되기 시작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 앞에 닥친 위기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석을 치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7장 5-6절입니다. “5. {창조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데리고 가라. 네가 강을 칠 때 쓰던 네 막대기를 네 손에 잡고 가라. 6. 보라, 내가 거기서 호렙에 있는 반석 위에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 반석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하시매 모세가 이스라엘의 장로들 눈앞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위기상황을 극복한 비결은 단순한데 있습니다. 반석을 치면 됩니다. 반석을 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어쩌면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믿음의 테스트였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우물을 파던지 물 있는 곳으로 가던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산위에 반석을 치라고 명령하십니다. 반석은 상식적으로 물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여기 반석을 치라고 하시는 데는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고 시키는 대로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곳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현 위치에서 해결하라는 말씀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기적적 역사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 그 믿음가지고 불가능에 도전하라는 말씀입니다. 과감한 결단력을 보이라는 뜻입니다. 물이 나올까? 안 나올까? 하는 하나님께 맡기고 너는 단지 반석을 치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반석을 치는 공간은 사막입니다. 사막은 물이 없는 곳입니다. 더구나 반석은 물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절대 불가능의 상징이 반석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지팡이를 높이 들었습니다. 내려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바위가 갈라졌습니다. 불가능이 무너졌습니다. 민족적 위기상황이 해소되었습니다. 모세의 믿음앞에 모든 위기도 불가능도 원망도 사라졌습니다. 5.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남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승리만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마음으로 여러분 앞에 놓인 불가능의 반석을 내려치시기 바랍니다. 위기상황이라는 반석을 내려치시기 바랍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태산처럼 버티고 선 반석은 갈라지고 생수는 솟아 날 것입니다. 끊임없이 부닥쳐 오는 삶의 문제들! 어쩔 수 없이 막다른 골목처럼 느껴지는 인생의 위기상황! 그것을 피해 도망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겁먹고 절망해서도 안 됩니다. 마가복음 4장 35-41절까지 읽고 마무리하겠습니다. ➤“35. 바로 그 날 저녁이 되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라. 36. 그들이 무리를 보내고 그분을 배 안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작은 배들도 그분과 함께하더라. 37. 큰 폭풍이 일어나고 파도가 배 안에 들이쳐서 이제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었으되 38. 그분께서는 배 뒤쪽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라. 그들이 그분을 깨우며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매 39. 그분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에게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신즉 바람이 그치고 매우 고요하게 되거늘 40.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렇게 두려워하느냐? 어찌 너희가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며 서로 이르되,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심지어 바람과 바다도 그분께 순종하는가? 하더라.” 호수도 잠잠하게 하시는 예수님과 같이 호수를 건너는 어부들인 제자들조차 감당할 수 없는 큰 풍랑이 일어났고, 배에는 물이 넘치고 흔들렸을 때 예수님은 어떻게 이런 환경 속에서 주무실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너무 피곤하셨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런 상황 속에서 제자들의 반응과 대처하는 과정을 보기 위해서 자는 척 누워계셨을 것 같습니다. 큰 풍랑으로 불안과 공포의 상황이겠지만 주님은 내가 제자들과 함께 있으니, 그래도 나를 믿고 의지하지 않을까? 믿음을 시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제자들의 믿음은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더 알게 되었을 것이고, 믿음은 더 커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종종 하나님은 우리의 곁에 계시면서도 마치 없으신 것처럼, 우리의 상황에 무관심하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처럼 보통 두려움으로 주님을 흔들어 깨우고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모르냐? 라고 다급하게 소리칩니다. 그러나 한 번은 마치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태평하게 기다려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급하게 일어나서 우리에게 닥치는 위험을 먼저 막으시도록. 그러면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믿음'은 위험한데? 주님을 움직이게 할 것인가? 주님이 움직이시도록 믿음을 발휘할 것인가?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있나요? 주님이 다급하여 일어나게 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여러분 편입니다.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일어나셨습니다. 믿음의 지팡이를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불가능의 반석을 내펼치시기 바랍니다. 삶의 위기는 해소됩니다. 사막같이 목마른 이 세상의 삶속에서 반석에서 솟아나는 환희의 생수를 맛보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가능의 반석위에 믿음의 지팡이를 내려침으로 열리는 복, 이 기쁨, 이 소망을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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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감사드립니다 .
사랑하는 님이시여 안녕하세요? 오늘은 토요일입니다. 성일을 준비하는 복된 하루 되시고 좋은 주말 되소서 ... ...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잠언24장6절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