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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그늘에서 사는 자녀들
부모가 꼭 유명인이어야만 자녀들이
부모의 그늘에 가려 사는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 주변에 흔하며,
자녀가 성인이 돼서도 그 영향은 이어진다.
라이언(25)은 자신의 뒤를 따라 의사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뜻을 뒤로 하고 특수교육 교사가 됐다
라이언(25)은 과거 교육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자신의 결정에 아버지가 실망하리라는 걸 알았다.
현재 미 메릴랜드주에서 특수교육 관련 일을 하는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아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변화를 이뤄내고 싶었다.
그러나 이민자 출신으로 미국에서 의사로 성공한
아버지는 아들 라이언 또한 의대에 진학하길 원했다.
아버지는 자녀들이 미국에서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열심히 일했고,
아이들이 미국에서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길 원했다.
실제로 라이언 또한 언젠가
아버지의 뒤를 따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진학해 과학을 공부해보니
의학은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러나 이를 아버지에게 말씀드리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다.
라이언은 당시 "아버지는 정말 실망하셨다"고 회상했다.
한편 '부모의 그늘에서 사는 아이들'이라는 말을 들으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의 자녀가 떠오르곤 한다.
예를 들어 유명 배우인 윌 스미스와
제이다 핑킷 스미스 부부의 딸로 현재 가수로 활동하는
윌로 스미스는 유명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은
"정말로, 미친 듯이 끔찍하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또 다른 유명 배우인 톰 행크스의 아들로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콜린 행크스 또한
자기 자신만의 정체성을 성립하기 쉽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또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의 딸로 작가로 활동하는 첼시 클린턴은
어느 토크쇼에 출연해
"어린 시절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드시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을 부모로 두지 않았을지라도,
라이언처럼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다.
설령 유명하진 않은 부모이지만
자녀의 삶에 큰 그림자를 드리운다.
물론 모든 아이들은 자라나면서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팟캐스트 '더 베리웰 마인드'의 진행자이자
책 '정신적으로 강한 부모가 하지 않는 13가지'의
작가이기도 한 미국 플로리다주 심리치료사 에이미 모린은
아이들은 일찍부터 생존을 위해 양육자에게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부모에 의존하는 성향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더 많은 관심과 애정과 인정"을 얻기 위해
때론 자신만의 행동이나 성격적 특성을 억누른다.
존재감이 큰 양육자 밑에서 자란 아이들에겐 이러한
암묵적 및 비 암묵적 압력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부유한 부모, 유명한 부모,
성공한 부모, 개성 강한 부모 등 부모 유형을 막론하고
수많은 이들이 부모의 영향력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자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예를 들어 유명인을 부모로 둔 사람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찾기 어려울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부모 앞에 선 자녀들은
부모의 기대와 상관없이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다.
또한 개성 강한 부모 밑에서 자라다 보면
자아의식을 함양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공인이나 유명인의 자녀만이 부모의 그늘에서 살아간다고
느끼는 건 아니며, 이러한 성장배경은 부모 자녀 간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 Getty Images
부모의 그늘에서 자란다는 것은
한편 치료사들에 따르면 부모의 그늘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정말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어떤 아이들은 자신을 개별적인 존재라기보다는
부모의 연장선상으로 느낀다.
이들은 "진정한 주체성과 자기 통제력, 존재감"을 찾기
대단히 어려워한다는 게 뉴욕시에서 심리치료사 및
관계 전문가로 활동하는 알렉스 레프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유명하거나 매우 성공한 사람들의 자녀들은
자신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 아니라
'누구의 딸(아들)'로 알려진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모린은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가 자녀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질랜드 출신으로 현재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브랜드 분석가로 일하는 로즈(29)가 바로 이러한 경우였다.
로즈의 어머니는 뉴질랜드 요식업계에서 유명한 인물로,
길에서 마주친 낯선 이들조차 어머니에게 찬사를 보냈다고 했다.
로즈는 "슈퍼마켓에만 가도 사람들은
나와 어머니에게 나타나 알은체하곤 했다"면서
"고등학교 파티에서도 로즈의 어머니가 누군지 알게 된 이들은
'정말? 그분이 네 어머니구나!'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이에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야겠다고 느낀 로즈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뉴질랜드를 떠나 호주와 프랑스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전 세계 여행을 다녔다.
"(뉴질랜드를) 떠나 한동안
나만의 일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레프는 야망이 큰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의 경우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라이언의 아버지는 고국에서도 의사였으며 미국에 건너와서도
외국어로 공부해 시험을 통과해 다시 의사가 됐다.
그런 아버지는 아들 또한 의사가 되길
바란다는 기대를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라이언은 이러한 아버지의 기대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면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언가 자율적으로 결정하기란 힘들었다.
만약 이러한 결정이 성공한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라이언은 "내가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마다
아버지는 속상해하시며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이셨다.
자신인 내가 아버지 본인인 것처럼 말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유명인이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커다란 성취를 이룬 부모 밑에서 자라야만
아이들이 부모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엔 개성 있고 복잡한 성격을 지닌 부모 또한
자녀만의 고유한 기질 발달을 위협할 수 있다.
모린은 외향적이거나 자발적으로 나서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녀들도 자신의 그러한 모습과
비슷하게 살길 바란다면서
"개성이 뚜렷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언제나
개성 넘치게 살라고 가르칠 것"이라는 예를 들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식품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알리(29)가 바로 이러한 경우였다.
알리는 재미있고 외향적이었던 어머니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고 기억했다.
알리의 어머니는 매우 사교적이었으며,
끊임없이 모험을 추구하는 여성이었다.
여행도 자주 다니고, 콘서트에 가는 것도 즐겼으며
종종 친구들을 초대해 대접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줍음 많던 소녀였던 알리는 어머니의 그늘에 가려져
자신은 기질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탐구해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또한 알리는 어머니가 언제나 "흥미롭고 반짝이는
다음번 관심사를 쫓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선 연기를 해야 한다고 느꼈다.
'제가 기회를 거저 얻은 게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어요'
한편 레프는 부모의 그림자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레프는 유명하거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몇몇 부모들의 자녀들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녀들은 삶에 대한 불만을 극복하기 위해
완벽주의나 큰 성취감에 끌리거나
불안감을 호소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알리 또한 성공을 갈망하는 자기 모습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알리의 회사가 만든 제품은
미국 전역의 식료품 가게에 납품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의 유명 리얼리티 TV 쇼인
'샤크 탱크'에 출현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사업체를 키우는 일 외에도 알리는
식품 및 웰니스 분야의 인플루언서로도 활동하고 있다.
어머니의 관심을 얻기 위해 몇 년간 노력했던 알리는
"현재 자신의 커리어와 삶이
결코 완전한 행복이 될 수 없다"고 의심하고 있다.
모린은 이와 마찬가지로 성공한 부모의 자녀들은
자신도 성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성공한 부모와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는 로즈의 상황과 비슷하다.
로즈는 언제나 요리사가 되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도움을 받는 대신
자신만의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 혼자 일하기로 했다.
그러다 로즈는 자신이 기회를 낭비하고 있다고 느꼈고,
결국 2018년 프로젝트를 맡아 어머니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로즈는 가장 먼저 회사에 출근하며
대부분 업무를 직접 처리한다고 한다.
"기회를 거저 얻은 낙하산이 아니라는 것을
팀원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100%가 아닌 400%의 노력을 다한다"는 로즈는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이를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 Getty Images
한편 고압적인 부모의 그늘에서 자란 자녀들 또한
인정받기 위해 부모의 성공을 모방하려 할 수도 있다.
글로벌 채용 플랫폼 잡리스트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가 결국 부모가 원하는 직업이나 산업군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레프는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간에,
부모의 이러한 (진로에 대한) 압박은
"자녀가 성인이 돼 진정으로 좋아하거나 원하는 것을
고르려고 할 때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은 진로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나 외모"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또한 레프는 부모의 기대에 반대되는 일을 하며
반항하는 등 정반대의 반응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유명하거나 성공한 부모로부터 분리된 정체성"을
개발하기 위한 또 다른 수단 혹은 분노를 표출하기 위한
수단 등으로 "성공한 역할 모델을 거부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라이언의 경우 아버지의 기대에서 점차 벗어나는 삶을 택했다.
라이언은 고교 졸업 후 의대 진학 대신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 후 가족들이 못마땅해하는 사람과 연인이 됐다.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성장배경을 돌이켜보며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라이언은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마음 한편엔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갈망이 남아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갈망이 제 삶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대단한 역할 모델을 둔 장점
이처럼 존재감이 큰 부모 밑에서의 성장은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유익할 수도 있다.
자녀들은 부모와 부모의 삶에서 영감을 얻을 수도 있으며
직업적으로 흔치 않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으며,
자신의 가치관을 정의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레프 또한 성공한 부모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으며,
모린 또한 직업적으로 성공한 부모를 옆에서
지켜본 자녀들은 자신감을 얻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혜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 조지타운 대학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유명하거나 성공한 부모 밑에서 유복하게 자란 자녀들은
미국에서 학업적으로 성공한 성인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또한 미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2015년도 연구에 따르면,
일하는 어머니를 둔 딸들은
관리직을 맡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수백 년간 성공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때론 부모가 일군 기업을 물려받거나
인맥을 얻는 등 도움을 받아왔다.
이는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로즈 또한 이제 어머니와의 동업이
얼마나 큰 특권이었는지 안다.
로즈는 "어머니는 평생에 걸쳐 일하시며
내게 없는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얻으셨다"면서
이러한 배경 덕에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모린은 부모의 삶에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모습을
발견해보는 것도 자신만의 가치를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로즈는 어머니의 주목받는 삶을 지켜본 끝에
자신은 유명해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유명세는 자신이 원하는 가치가 아님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고압적인 태도를 곁에서 겪었던 라이언은
자신의 견해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라이언은 "평가하는 듯한 태도로 사랑하는 이들을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물론 부모의 그림자가 평생 따라다니는 이들도 있다.
이들이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떨쳐버리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레프는 부모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이를 위해선 어릴 때부터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부모에서 떨어져 혼자 오롯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거나,
느낀 감정을 직접 말하고 해결점을 찾는 용기가 필요할 수도 있다.
알리의 경우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어린 시절 경험을
어머니에게 비난하지 않고도 전달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알리는 "정말 좋은 대화였다"면서
"어머니와 나 모두 열린 마음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알리는 어머니의 활발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를 보며 자신 또한 일뿐만 아니라
더 많은 재미를 찾고 놀아야 한다는 점을 기억한다고 한다.
포르투갈에 살고 있는 로즈는 뉴질랜드에 사는 어머니와 함께하는
프로젝트에서 서로가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자주 이야기한다.
이제 로즈 모녀는 서로를 각각의 개인으로 확실히 인정한다.
"자신감을 느낀다"는 로즈는
"(어머니도 나도) 정말 사랑하는 곳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라이언 부자의 갈등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라이언은 아버지가 노골적이진 않지만 여전히
자신의 직업과 연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런 라이언에겐 아버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줄이는 것만이
아버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조금 어색하다"는 라이언은
"그러나 (함께하는 시간을 줄인 지금) 관계가 더
건강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라이언, 로즈, 알리의 성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BBC News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