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즈와 함께한 스미스 )
1980년 10월 28일 잉글랜드 리즈 로스웰(리즈 요크셔 지역) 에서
20 년후 이 고장 제일의 축구팀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하며 최고의 영웅으로 떠오른
'악동'이 태어났다. 앨런 스미스
단지 축구를 좋아하는 한명의 아이였던 그는 '10살'의 나이에 리즈와 계약하면서
잉글랜드 16세 대표팀에 발탁된다.
물론 아직 어린 그는 경기에 직접 출장하지는 못했지만
잉글랜드에서 신동으로 한동안 주목을 받은적이 있었다.



( 리즈 유스시절 스미스 )
그리고 그 신동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질 무렵인 1997년,
사우스햄튼 유스팀과의 19 세이하 경기에서 16세의 나이로 출전한 스미스는
두골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끈다.
이것이 약 8년동안 계속된 스미스의 리즈에서의 생활의 첫번째 데뷔골이었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그해 9월 1일 드디어 리즈와 '프로'의 계약을 맺으면서 앨런로드에서 활약할 기회를 얻게된다.
여느 아이와 다름없이 축구를 좋아하던 그는
이제 자신이 태어난곳을 대표하는 팀의 '기대주'로서 일약 스타가 된것이다.

그러나 유스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활약을 보였더라도 이제 겨우 17세가 된 스미스로서는
성인들의 경기가 부담스러울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드디어 이듬해인 1998년 출전의 기회를 얻는다.
첫출장이 리버풀과의 앤필드 경기라는건 아직 어린 그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올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주눅들지 않은 플레이를 펼치며
첫경기에서 리즈유나이티드의 '공식' 데뷔골을 터뜨린다.
0-1로 뒤지던 상황에서 동점골을 터뜨린 스미스는 팀의 3-1 역전승을 도우며,
리즈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의 '신동'으로 다시끔 부활한다.

첫번째 시즌동안 그는 무려 아홉골이나 터뜨리며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가 되었고,
잉글랜드는 당분간 이 신동선수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스미스가 '악동'으로 불리는 이유를 여기서 잠시 설명하겠다. 몸싸움과 시비걸기를 좋아하는 스미스는 볼때마다 카드를 받는다 싶을 정도로 상대 선수들과의 심한 마찰이 있었다.
첫시즌에 무려 7개의 옐로우카드를 받은것을 비롯해, 다음시즌에 4경기 연속 옐로우카드를 받는가 하면, 리즈에서 7시즌동안 총 55골을 넣으면서 카드를 무려 61개나 받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카드캡터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이 별명은 국내에서만 사용하는 별명이며 그의 애칭은 스미시(smithy)이다.)
첫시즌 이후, 3년간의 단기계약을 약속했던 리즈는
그에게 다시 5년간의 장기계약을 맺는데 성공한다.
이 무렵, 데이빗 올리어리가 지휘하던 리즈는
비두카, 키웰, 보이어, 다쿠르, 페르디난드, 우드게이트 같은
'젊고 뛰어난' 선수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었고,
특히 키웰과 비두카라는 희대의 재능을 지닌 '사커루' 들이 팀을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팬들은 리즈 토박이인 '스미스'를 우상시 하며 그를 키웰 못지않게 사랑하고 있었다.
1999년. 잉글랜드 21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된 그는
덴마크와의 일전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자신의 스코어를 잉글랜드를 위해 기록하였다.
그리고 2000년, 시즌이 개막 되자마자 무서운 기세로 4경기에서 5골을 몰아넣은 그는
드디어 처음으로 프랑스 대표팀을 상대하게 될 잉글랜드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물론 게임에서 직접 필드를 밟지 못했지만 이것의 그의 첫 대표팀 발탁이었다.


( 잉글랜드 청소년 대표팀 시절 )
그리고 00/01시즌,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팀에서 활약하며
안더레흐트, 레알 마드리드, 데포르티보등을 상대로 계속하여 골을 성공시키면서
팀의 4강진출을 도왔다.
하지만 발렌시아와의 준결승에서 레드카드를 받으면서 한동안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 시즌에 그는 리즈에서 총 18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기록을 수립하였다.


( 리즈의 00~01 챔피언스리그 4강 신화 )
물론 11개의 옐로우카드와 2개의 레드카드를 모으면서 카드캡터로의 취미도 잊지 않았다.
(ㅋㅋㅋ -_-;;)
시즌 종료후, 스미스는 다시 5년의 추가계약을 맺으며
자신이 태어난 고장에서 자신의 선수생활을 계속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그 이듬해,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대표로 첫 풀타임 경기를 가졌고,
리즈사람들이 직접 수여하는 '리즈의 영 플레이어'상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고장에서 자신에게 준 이 상을
프리미어쉽 올해의 선수상과도 비교할수 없을만큼
크나큰 값어치가 있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2002년, 포르투갈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유니폼을 입은 그는
드디어 대표팀 데뷔골을 터뜨리며 드디어 '전성기'로의 힘찬 출발을 알린다.
이때 그의 나이는 아직 21세.
아직 어린나이에 그는 10년전에는 꿈도꾸지 못해왔던 화려한 커리어를 축적하고 있었다.

( 2002 잉글랜드 v 포르투갈 친선전에서 헤딩골을 성공시킨 스미스 )
하지만 팀의 재정 악화로 인하여 커다란 위기가 찾아왔다.
리즈 유나이티드의 총체적인 부도위험으로 인하여 팀 자체가 붕괴할 커다란 위기였다.
리즈라는 클럽은 그에게 있어 인생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절친했던 팀 동료들
ㅡ 페르디난드, 보이어, 우드게이트, 다쿠르 등 ㅡ 들이 팀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어수선한 분위기로 리즈는 02/03 시즌을 맞이하였다.
모든 선수들이 떠나간 리즈는 순식간에 하위로 주저앉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스미스와, 그리고 NO.10 키웰은 클럽의 생존을 위하여 힘겨운 사투를 벌였고,
가까스로 팀을 프리미어쉽에 잔류시키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다시한번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그를 이끌어주던 10번 키웰마저 드디어 리즈를 뒤로하고 리버풀로 떠나게 되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비두카와 로빈슨, 하트와 같은 출중한 선수들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리즈의 재정상황 또한 좋아질줄을 몰랐고,
또다른 절친한 동료인 비두카도 시즌내내 온갖 이적설을 뿌리며 클럽에 암운을 드리웠다.
그리고 결국 03/04시즌, 볼튼전을 끝으로 리즈의 프리미어쉽 잔류를 위한 사투를 막을 내렸다.
스미스역시 드디어는 팀을 떠나게 되었고,
이제 그 8년동안 함께했던 많은 선수들과, 정든 구장과 이별을 고하게 되었다.

▲ 스미스 생애 최고의 골 5
1. 역시 사람들은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첫키스를 잊지 못한다.
스미스의 생애 최고의 골은 1998년 11월 14일 리버풀과의 앤필드 경기에서 가진
데뷔경기에서 터뜨린 '데뷔골'이다.
2. 역시 이번에도 첫골이다.
스미스가 꼽은 생애 최고의 골 두번째는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터뜨린 잉글랜드 대표팀 데뷔골이다.
3. 세번째로 기억에 남는 골은 시원스런 대승을 거둔 경기에서의 골이었다.
그가 꼽은 세번째 골은 4-1로 안더레흐트를 대파할때 기록한 골이다.
4. 네번째골은 역시 챔피언스 리그에서이다.
라치오와의 경기에서 1-0승리를 결정지은 후반 40분의 결승골이다.
5. 마지막 다섯번째 골은 레알마드리드를 상대한 경기에서 터뜨린 골이다.
물론 리즈는 2-3으로 석패하긴 했지만 역시 세계최대의 클럽을 상대로 터뜨린 골이라 꼽았다고 말한다.

첫댓글 취미 ㅋㅋㅋㅋ 플랑님 반갑~ T_T
^^;; 라이언누나 앗냥~
어흥~리즈~ ㅠ 정말 눈물나는 클럽이군요(플랑님이 예전에 얘기해주신 리즈의 저주가 생각나네요.그냥 웃어넘기기엔 무언가 씁쓸한...)글구,,강등될때 스밋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ㅠㅠ아.키웰아자씨도 참...불쌍.이적이후에 날라다니는것도 아니구..앗.그래서 키웰 호주등번이 10번이었나..자신이 젤 아끼는번호라서?ㅜ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아... 눈물나요-_ㅠ 잘 읽었습니다~
진짜 눈물나.....ㅜㅜ 리즈 꼭 프리미어리그에서 볼수있기를!!!!!
잘 읽었습니다. ^^
티비화면봄서 ..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포즈가 영 요염하네요 ㅋㅋㅋ
공격수일때가좋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우리 스밋! 스트라이커로 ㅠㅠ 리즈일때가 짱이었는데 ㅠㅠ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맨유로 와서 애칭이 smudge로 바뀐건가..ㅋㅋ
스미스 정말 멋지3
퍼갈게요^^
카드캡터 스미시 ㅋㅋㅋㅋㅋㅋㅋㅋ
잘생겼따~ 예쁘장하게 생겻따~ 닮고싶따~
스미스~~
간지나는 앨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