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Non, Je Ne Regrette Rien
참 희한한 일도 다 있다.
같은 날에 같은 생각을 한 친구가 있었기에 그렇다.
2017년 7월 22일 토요일인 어제의 일로,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이준황 친구가 어제 그 같은 날에 같은 생각을 한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나와 이준황 친구는, 우리 중학교 친구들이 온라인으로 어울리는 인터넷 Daum카페 ‘문중 13회’에서 글쓰기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데, 바로 그 글쓰기와 관련해서 어제 우리 둘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2주 전인 같은 달 10일 월요일의 일이다.
내가 검찰수사관 현직에 있을 때 인연이 되었던 당시 검사님 한 분과 검찰수사관 후배 둘과 저녁을 같이 했었다.
두 검찰수사관 후배 중 하나가 최근에 국가공무원 5급인 검찰사무관으로 승진한 것을 축하해주는 의미에서 마련된 자리여서, 당연히 권커니 잣거니 술잔이 오갔고, 그 술잔과 함께 대화도 참 많이 오갔다.
그 대화의 막판에 화두가 된 말이 있었다.
곧 이 말이었다.
‘욜로 인생’
누가 먼저이고 나중이고는 딱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검찰수사관 후배 둘이 그 화두를 끄집어냈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으니, 당연히 그 이해가 필요했고, 그래서 설명을 부탁했다.
언뜻 짐작에, ‘욜로’라는 말에는 그 어떤 방향성을 담고 있겠거니 했다.
역시 그랬다.
이구동성이다 싶을 정도로, 둘 모두 거의 동시에 그 말에 대한 설명을 하고 나섰다.
최근 들어 20대 30대에서 유행하는 말로, ‘You Only Live Once’라는 영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문장의 각 단어 이니셜 대문자만 따서 ‘YOLO’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욜로’라고 말들 한다는 것인데, 그 영문의 풀이인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그 의미에 무게를 둬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산다는 풍조가 이 시대의 대세라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흔히 ‘오늘을 즐기라’고 인용되는 라틴어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 유사한 표현이었다.
그 설명을 듣는 내내, 나는 우리 막내를 떠올리고 있었다.
대학을 진학하면서 역사를 전공하고 싶어 하던 막내였다.
그러나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법과대학을 보내고 싶어 하는 아비인 나의 우격다짐을 감당해내지 못했고, 끝내 막내의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떠올려지는 노래가 한 곡 있었다.
프랑스의 국민가수 에디뜨 피아프(Edith Piaf)가 부른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라는 상송이었다.
5년 전으로 거슬러 막내가 사법고시를 접을 때쯤 해서, 핸드폰 컬러링으로 담아놓고 있던 노래였다.
그렇게 생각이 이어지면서, 나는 후회의 순간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왜 그때 ‘욜로’(YOLO)라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나 혼자만 모르고 살았을까 하는 후회였다.
바로 이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 딱 먹고 있는데, 이준황 친구가 ‘인생은 한 번뿐, 욜로!’라는 제목으로 김원규 NH투자증권 대표이사의 글을 옮겨와서 게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글은 끝에서 이 시대 젊은이들이 새겨야할 귀한 덕담 한마디를 남겨 놓고 있었다.
다음은 그 글이다.
‘한 번뿐인 인생에는 지금 현재뿐만 아니라 노후도 있다. 한 번 뿐인 노후를 즐기려면 지금 이 순간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이 남아 있다는 것도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욜로! 정말 인생은 한 번뿐이다.’
그날 내게 ‘욜로’의 의미를 설명해준 검찰수사관 후배 둘에게도, 내 딱 그렇게 덕담을 남겼다.
아니, 이 시대 젊은이들을 위한 조언이었다.
다만 분위기가 달랐다.
취기에 까칠함을 보탠 목소리였다.
곧 이랬다.
“욜로? 카르페 디엠? 한 번뿐인 인생이어서, 즐기고 싶은 대로 즐긴다? 그러다 망조 들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요?”
그 밤, 하염없이 비 내리는 밤이었다.
바싹 말랐던 골목길이 젖고 있었다.
우산 속, 내 얼굴도 젖고 있었다.
그 젖음, 닭똥 같이 굵게 흐르는 눈물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