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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의 내셔널 몰(National Mall)은 미국 국가 정치의 상징으로 읽힌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오벨리스크 형태의 워싱턴 모뉴먼트와 국회의사당인 캐피탈 힐을 양끝으로 길게 잔디밭이 조성돼 있고, 이 둘의 중간 지점보다 살짝 바깥쪽으로 백악관이 자리하고 있다. 내셔널 몰 인근은 국가 행정을 담당하는 각 부처가 자리한다.
그러나 연간 2,500만 명이 방문하는 내셔널 몰은 또한 박물관과 미술관의 집합소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의 문화예술과학 교육기관인 스미스 소니언재단도 이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재단 산하 20개 미술관과 박물관 중 17개가 이곳 워싱턴DC에 있고, 그중 11개가 내셔널 몰에 몰려 있다.
그리고 미국이 가장 자랑하는 컬렉션을 소유한 국립미술관도 이 내셔널 몰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바로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다.
내셔널 갤러리는 긴 잔디광장을 사이로 허쉬혼 미술관과 마주보고 있다. 허쉬혼 미술관이 모던·컨템포러리 미술을 주로 소개한다면, 내셔널 갤러리는 그보다 시대가 앞선다. 유럽 고대, 근대미술을 중심으로 현대미술까지 확장한 컬렉션을 소유하고 있다. 짧은 일정으로 워싱턴DC를 방문한다면 허쉬혼보다는 내셔널 갤러리를 우선 찾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컬렉션 규모가 약 15만점으로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내셔널 갤러리는 크게 서관, 동관, 조각 정원으로 나뉘는데 연대를 기준으로 20세기 초반 작품까지 서관에, 이후 작품이 동관에 모여있다.
서관은 파르테논 신전 스타일의 고전건축물로, 잘 생긴 파사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길게 날개를 뻗은 모양새다. 긴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들어선 방들은 모두 전시장으로 활용되는데, 압도적인 전시 공간과 소장품 덕에 미술관의 핵심으로 꼽힌다. 존 러셀 포프(1874~1937)가 설계한 건물로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대리석 건물이었다. 안타깝게도 포프는 건물이 완공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 직접 보지는 못했다.
서관이 들어선 자리는 원래 볼티모어 앤 포토맥 기차역이었다. 1872년부터 1907년까지 볼티모어와 워싱턴DC를 잇는 열차가 다녀, 미국 수도의 교통 중심지로 작동했다. 그러나 워싱턴DC 재건축을 꿈꿨던 ‘맥밀란 플랜’(1902년 발표)으로 기차역이 북쪽으로 이전한다. 해당 자리엔 원래 조지 워싱턴 기념관이 들어설 계획이었으나 두 차례 세계 전쟁으로 1918년부터 1921년까지 임시 전쟁 건물로 쓰였다. 이후 대공황으로 경제가 어려워져 계속 방치됐다가 1937년 국립미술관 부지로 확정된다.
미술관 부지로 낙점된 지 4년 만인 1941년 서관은 완공됐지만, 동관은 이보다 약40여 년 늦은 1978년에야 개관한다. 중국계 건축가 아이오밍 페이(1917~2019)가 건축을 맡았다. 동관은 서관과 달리 철조구조물과 유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조각 정원은 가장 늦은 1999년 완성됐다. 정원까지 친다면 62년 만에 미술관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게 됐다. 시계를 좀 더 과거로 돌리면, 미국 수도인 워싱턴DC를 계획한 ‘랑팡 플랜’(1791년)이 시작한지 200여 년이 지나서야 마침표를 찍게 된 셈이다.
서관은 규모도 규모지만, 소장품 측면에서도 미술관의 핵심으로 꼽힌다. 미술관의 최대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지네브라 데 벤치’도 이곳에 있다. 아메리카 대륙을 통틀어 딱 한 점 있는 다빈치의 작품으로, 내셔널 갤러리는 1967년 5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이는 당시 내셔널 갤러리가 사들인 가장 비싼 작품으로, 현재는 그 가치를 헤아리기 어렵다. 다빈치 작품이 시장에 잘 나오지 않을뿐더러, 진위가 확실한 작품은 이미 글로벌 미술관들이 소장하고 있어서다. 다만 가장 최근 공개적으로 거래된 다빈치 작품(으로 강력하게 추정되는 것)으로는 ‘살바토르 문디’가 있다. 2017년 크리스티 뉴욕에서 4억 5천30만 달러(약 6천24억 원)에 낙찰됐다. 당시 한국 미술시장의 한 해 거래액이 5,000억 원에 채 못 미치는 상황이었으니, 작품 한 점이 한국 미술시장 전체보다 비쌌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