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령구(酒令具)가 출토된 경주 동궁과 월지(안압지雁鴨池, 사적 18호)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복원본,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에서 전시 중.
출토 당시의 각 면 글씨, 소실 전의 마지막 글씨
주령구(酒令具)는 1975년 경주 동궁과 월지(안압지雁鴨池, 사적 18호)에서 출토된 정사각형 면 6개와 점추이 육각형 면 8개로 이루어진 14면체 주사위이다. 각 면에는 다양한 벌칙이 적혀 있어 신라인들의 음주 습관의 풍류를 보여주고 있다.
과거 '기러기와 오리가 노는 연못'이라는 뜻에서 안압지(雁鴨池)라 불리우던 월지(月池)에서 발견된 8세기 이전 통일신라시대 주사위로, 당시 신라인들이 술 게임에서 사용한 놀이용 도구이다. 안압지는 삼국통일 직후에 축조개시하여 A.D 674년 신라 30대 문무왕(文武王) 14년에 완성된 인공연못을 일컷는다. 당시 신라(新羅) 귀족들의 술문화와 풍류를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나라의 경사스러운 일이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의 궁전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 주사위는 안압지의 서쪽 호안 석축의 바닥에서 출토가 되었는데 처음에는 14면체로 독특하게 생긴 이 기구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나중에 면에 새겨진 글씨를 판독한 결과 신라인들이 술자리 연회에서 노는 데 사용한 주사위였음을 알았다. 그래서 '술과 관련된 명령을 내리는 도구'라는 뜻에서 '주령구(酒令具)'라고 이름지었다.
이 주령구는 신라 경덕왕 6년(747)~혜공왕 9년(774)에 작성된 목간(木簡)이 나온 토층보다 훨씬 더 아래에서 발견되었으므로 최소한 8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신라 유물임을 알 수 있다. 애석한 것은 이 주령구 실물은 발굴 후 건조기에서 습기 제거작업을 하다가 레인지 오작동으로 그만 불타 소실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것은 사진자료 등을 바탕으로 재현한 복제품이다.
사실 예스럽게 말해서 연회용 놀이이지 내용을 보면 사실상 주루마불 수준으로 마시는 데에 집중한 술 게임 도구이다. 게다가 이것이 발견된 것이 월지인 것으로 보아, 극단적으로 말해서 고위직이 술판 벌이고 놀았다는 뜻이다. 때문에 이 유물을 신라 말기의 부패한 귀족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원래의 신라 주령구는 참나무로 만들어졌으며, 육각형면(角形面)이 6개, 사각형면(角形面)이 8개로 구성되었다. 직경은 4.7 cm였고 정육면체 모양인 일반적인 주사위와는 달리 긴 변이 2.5 cm, 짧은변이 0.8 cm인 육각면 8개, 가로·세로 각각 2.5 cm인 정사각면 6개, 모두 14면이 서로 정교하게 맞물렸다.
연구 결과 주령구의 육각형의 면적은 6.265 ㎠, 사각형 면적이 6.25 ㎠이기 때문에 거의 비슷하므로 14면 각각의 면이 나올 확률이 1/14로 거의 같았다. 육각형면이 나올 확률은 육각형 개수(8개)만큼인 8/14, 정사각형이 나올 확률도 정사각형 개수만큼인 6/14가 되었던 것이다.
안압지 주령구는 정육면체의 3면과 3변이 한자리에 만나는 꼭지점을 일부로 변의 절반보다 6 mm가량 더 깊게 잘라서 만들었다. 만약에 변의 절반을 정확히 잡아 자른다면 똑같이 사각면 6개와 사각면 8개로 이루어진 14면체(육팔면체)가 나온다. 하지만 사각면과 삼각면의 넓이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만들면 주령구를 던져서 나오는 경우의 수가 면적이 더 넓은 쪽으로 편중된다. 따라서 이 주령구는 정육면체의 꼭지점을 변의 절반보다 깊게 잘라서 사람이 던져서 얻는 경우의 수가 고르게 나오도록 철저히 계산하여 만든 것이다.
주령구(酒令具)
☆ 주령구(酒令具)에 새겨진 벌칙의 명문과 해석은 아래와 같다.
※ 4각형인 여섯 면의 벌칙
1. 금성작무 (禁聲作舞)- 노래없이 춤 추기(무반주 댄스)
2. 중인타비 (衆人打鼻)- 여러사람 코 두드리기. 여러 사람 코 때리기
3. 음진대소 (飮盡大笑)- 술잔 한번에 다 마시고 크게 웃기(원샷)
4. 삼잔일거 (三盞一去)- 한번에 술 석 잔 마시기
5. 유범공과 (有犯空過)-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참고 가만히 있기
6. 자창자음 (自唱自飮)- 스스로 노래 부르고 마시기
※ 6각형인 여덟 면의 벌칙
7. 곡비즉진 (曲臂則盡)- 팔뚝을 구부려 다 마시기
8. 농면공과 (弄面孔過)- 얼굴 간지러움을 태워도(놀려도) 참기
9. 임의청가 (任意請歌)- 누구에게나 마음대로 노래시키기
10. 월경일곡 (月鏡一曲)- '월경' 노래 한 곡 부르기
11. 공영시과 (空詠詩過)- 시 한수 읊기
12. 양잔즉방 (兩盞則放)- 술 두 잔이 있으면 즉시 쏟아버리기
13. 추물막방 (醜物莫放)- 더러운 물건을 버리지 않기
14. 자창괴래만 (自唱怪來晩)- 스스로 괴래만을 부르기((...이 뭐지?;, 도깨비 부르기) / 늦게 왔다고 탓하며 스스로 노래 부르기 : 怪는 중국어에서 탓하다 또는 나무라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출처: 명문과 해석의 출처는 국립경주박물관 주령구(酒令具) 복제본/ 사진과 글: 이영일
첫댓글 고봉산 정현욱 님
흔히 어색하고 딱딱한 술자리 분위기를 깨기 위한 게임은 지금도 전래되고 있지만 그옛날 신라시대에도 이런 게임이 있었나보군요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것으로 보아 권력층이 즐기든 놀이지 서민층에 널리 유행한 놀이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酒令具라는 이름은 출토후에 지은것 같은데 주령구 각 면에 새겨진 명문이 참 재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