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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Q9arfM2RhSQ?si=ZFUe8Ag0oozUk6Td
(욘4:1~11)요나의 편협함과 하나님의 긍휼
성내는 요나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박 넝쿨 교훈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 4:1~11, 개역개정)
*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11절) ‘왼쪽과 오른쪽도 구별하지 못하는 자’라는 뜻으로,
사리 분별을 제대로 못 하는 아이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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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요나는 니느웨에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께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며 화를 냅니다.
요나가 성 밖 동쪽에 초막을 짓고 돌아가는 형편을 지켜보자, 하나님은 박 넝쿨을 통해 요나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니느웨를 아끼시는 것은 그 안에 수많은 사람과 가축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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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선지자 요나 4장 1~4절
1 그러나 요나는 몹시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는 화가 났습니다.
2 그는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이것이 내가 고향에 있을 때 내가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까? 이래서 내가 서둘러 다시스로 도망간 것입니다. 주께서는 은혜롭고 동정심이 많은 하나님이시고 진노하는 데 더디시고 사랑은 충만하시며 재앙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신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습니다.
3 여호와여, 이제 제발 내 목숨을 가져가십시오. 내가 사는 것보다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
4 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화내는 것이 옳으냐?”
- 요나는 니느웨가 회개하고 용서받은 것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은혜가 니느웨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더 앞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라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요나뿐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질문입니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긍휼보다 자신의 기준을 더 붙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특정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 적은 없습니까?
내 분노는 하나님의 뜻 때문입니까, 아니면 나의 상처와 기준 때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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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 요나 4장 5~11절
5 요나가 성읍 밖으로 나가 그 성읍 동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곳에서 초막을 짓고서 그늘 아래서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때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6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넝쿨을 준비하셔서 그것이 요나 위로 자라나 요나의 머리에 그늘이 되게 하셨으며 그의 불쾌함을 없애 주셨습니다. 요나는 넝쿨 때문에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7 그러나 다음 날 새벽에 하나님께서는 벌레를 보내 그 벌레가 넝쿨을 씹어 먹게 하시니 넝쿨이 시들어 버렸습니다.
8 해가 뜨자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동쪽 바람을 준비하셨습니다. 해가 요나의 머리 위를 따갑게 내리쬐어 그는 힘이 빠졌습니다. 그는 죽기를 원했습니다. 요나는 말했습니다. “내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9 그러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 넝쿨 때문에 화내는 게 옳으냐?”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화가 나서 죽을 지경입니다.”
10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가꾸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은 넝쿨도 너는 아꼈다. 하룻밤 사이에 자라나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렸는데도 말이다.
11 그런데 왼쪽과 오른쪽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12만 명이나 있고 가축도 많이 있는 이 큰 성읍 니느웨를 내가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느냐?”
- 하나님은 박넝쿨을 통해 요나를 가르치십니다. 요나는 자신에게 유익을 준 박넝쿨이 사라지자 몹시 아까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루 만에 났다가 사라진 식물도 아까워하면서, 십이만 명이 넘는 니느웨 사람들과 많은 짐승들은 어찌 아끼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는 한 영혼의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요나는 심판을 기대했지만 하나님은 회복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죄인을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살게 하는 데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긍휼을 배우며 사랑의 경계를 넓혀 가야 합니다.
내가 외면하거나 포기한 사람 중 하나님께서 여전히 사랑하시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는 사람을 판단하는 데 익숙합니까, 아니면 품고 기도하는 데 익숙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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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예수님의 마음으로
“나는 한눈에 보면 그 사람 압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게 교만이고 죄 중의 죄입니다. 하나님 외에 누가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한 사람은 그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관계의 합이고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의 생각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분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분별을 뛰어넘는 분별입니다. 비판은 사랑이 없는 판단입니다. 이 비판은 인간의 한계와 죄성에서 자라난 독초입니다. 그 독은 나를 먼저 파괴하고, 관계를 시들게 하고, 결국 파탄이 나게 합니다. 누구를 비판하는 마음이 생기면, 우리가 비판하는 그 사람을 도우라는 하나님 뜻으로 생각하고 그를 품고 기도하면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의 기도 제목으로 여기고 기도하면 됩니다. 저도 사실 기독교를 비판하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위선적인 교회와 크리스천으로 인해 예수님이 싸구려 취급을 당하시는 게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해서, 교회를 품고 기도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그러면 모든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십시오.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면 주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 내면, 반드시 주님은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 한 절 묵상
4장 10~11절 | 하나님의 긍휼은 사람의 이해를 넘어섭니다. 회개한 니느웨에 심판이 거두어졌을 때, 요나는 기쁨보다 깊은 분노를 드러냈습니다(1절). 요나가 쏟아 낸 분노의 정체는 ‘하나님이 틀리셨다’는 반발입니다. 박 넝쿨 교훈은 ‘요나가 틀렸다’는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모든 민족을 아끼십니다. 그러나 편견에 갇힌 요나는 끝내 하나님의 긍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무지와 오만과 편견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선하신 통치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제가 자기중심적 편협함으로 하나님 뜻에 맞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지치지 않는 긍휼로 저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저도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하소서. 한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의 구원을 열망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게 하소서
요나 4장 1~11절에서 니느웨가 회개하자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기뻐하기보다 크게 화를 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알고 있었지만, 그 자비가 자신이 미워하던 이방 민족에게 베풀어지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그의 분노가 정당한지 질문하십니다. 이후 하나님은 박넝쿨과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통해 요나를 가르치십니다. 요나는 자신을 시원하게 해 주던 박넝쿨이 사라지자 아까워했지만, 하나님은 수많은 영혼이 살아 있는 니느웨를 더욱 아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관심이 심판보다 구원에 있으며, 성도 역시 하나님의 긍휼을 품고 살아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요나 4:11)
요나는 니느웨보다 박넝쿨을 더 아까워했습니다.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소중히 여기면서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영혼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지막까지 요나를 가르치십니다.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보여 줍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평가하고 구분합니다. 용서받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고, 사랑받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포기한 사람까지도 품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위해 선지자를 보내셨고, 회개의 기회를 주셨으며, 끝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무엇을 아끼고 있느냐?" 내 유익보다 영혼을 더 소중히 여기고, 심판보다 회복을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 4:9)
요나는 니느웨의 회복보다 자신의 감정에 더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박넝쿨 아래에서 시원한 그늘을 누릴 때는 크게 기뻐했지만, 그것이 사라지자 죽고 싶다고 할 만큼 분노합니다. 니느웨의 수많은 생명보다 자신의 불편함이 더 크게 느꼈던 것입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저 또한 요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허락하신 수많은 은혜는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내가 잃어버린 것 하나에는 오래 마음을 빼앗깁니다. 건강, 관계, 재물, 자리와 같은 것들이 마치 영원히 내 것인 양 붙들고 있다가 조금만 흔들려도 불평하고 낙심합니다.
그러나 박넝쿨은 원래 요나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내 삶의 모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은혜는 잊고 소유에 집착하게 되면 감사는 사라지고 불평만 남게 됩니다.
.“정말 네가 화내는 것이 옳으냐?” 며 제게도 묻는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한 방식으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의 크신 뜻보다 내 작은 만족에 더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언제나 한 영혼을 향해 있습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작은 박넝쿨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2026년 6월 24일 오늘의 말씀 명언 요나 4장 1~11절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사랑할 만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베풀어진다. - 어거스틴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그의 원수였던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 마틴 루터
우리의 시선이 사람의 죄에 머물 때 정죄가 시작되고, 하나님의 사랑에 머물 때 긍휼이 시작된다. - A. W. 토저
사랑은 가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다. - C. S. 루이스
그리스도인은 심판자가 되라고 부름받지 않았고 사랑의 통로가 되라고 부름받았다. - 빌리 그레이엄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사람은 타인의 실패를 쉽게 정죄할 수 없다. - 존 뉴턴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인을 찾으신다. - 존 웨슬리
한 영혼의 가치는 세상의 모든 것보다 크다. - 허드슨 테일러
1
요나4:1-11절
본문은 요나서의 마지막장입니다
요나의 니느웨엔 하나님의 자비가 있으면 안된다는 편협함을 깨뜨리시고
그리고 하나님은 요나가 용서 받아선 안된다는 사람을 사랑하시는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요나의 니느웨는 하나님의 자비가 없으면
안된다는 편협함을 깨뜨리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니느웨에 대한 자비를 악으로 생각했습니다
1절입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하나님은 악한 니느웨를 용서하시려고 하는데
요나는 그런 하나님이 니느웨를 용서하시는 것은 악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요나에게 여전히 니느웨는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요나는 하나님이 자비로우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니느웨는 용서받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요나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신 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돌아가신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용서 받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나는 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이러한 생각을 박넝쿨과 벌레와 동품을 통해 깨뜨립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읍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려고 초막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초막에 박넝쿨로 요나의 머리를 시원하게 했습니다
요나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벌레가 박넝쿨을 먹게 하셨고 해가 내리찔때에 이번엔 동풍이 불어
박넝쿨이 죽어 버렸습니다 조금전 요나는 박넝쿨로 기분이 좋았는데
이번에는 하나님께 죽는게 낫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요나를 찾아오셨고 물으십니다
박넝쿨로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는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다고 대답합니다
요나가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요나를 부드럽게 대하십니다
하나님이 요나에게 물으십니다 너가 박넝쿨을 그렇게 아끼는데
니느웨에는 12만명의 사람과 가축들이 있다
11절 하반절에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라고 요나서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요나에게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던지시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도무지 용서하면 안된다는
니느웨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많은 경우 요나처럼 내 신앙에 갇혀 신앙생활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안됩니다 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나에게 말씀합니다
왜 안되느냐? 그 사람은 박넝쿨보다 다 귀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하면 좋겠습니다
나의 잣대로 판단하는게 아니라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 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
✔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까?
➲ 편견을 버리고, 사랑으로 생명을 살려야 합니다(1~4절).
요나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좋겠다며, 하나님의 결정에 대해 매우 싫어하고 성을 냅니다(1,3절). 요나는 단순히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극렬한 분노의 감정을 발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토로합니다. ‘...나는 고국에 있을 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내가 급히 다시스로 도망쳤던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습니다. 나는 주께서 자비롭고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께서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사랑이 많으시기 때문에, 그들을 심판하시기보다 용서해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2절,쉬운성경)... 그는 그가 우려했던 것이 현실화 되었다며 하나님께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네가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 과연 옳으냐?’(4절)라고 책망하십니다.
요나는 물고기에 의해서 구원받은 사건을 체험하고 나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절대 순복해야 한다는 것은 깨달았지만 니느웨를 향한 그의 적대적 감정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목회자로서 내 안에 있는 편견이나 선입관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지 못해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알고 있는 대로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이유가 혹 내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차별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기억하여, 생명을 아끼고 사랑으로 생명을 살리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교만을 버리고, 순종으로 생명을 살려야 합니다(5~9절).
요나는 니느웨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기 위해서 성읍 동쪽에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늘에 앉았습니다(5절). 요나는 니느웨가 내려다보이는 그곳에서 니느웨 성읍의 멸망을 학수고대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의 참 회개를 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계획한 심판을 철회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요나는 자신이 전파한 대로 니느웨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박 넝쿨(6~8절)을 통해 생명의 귀중함을 일깨워 주심으로 니느웨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결국 하나님의 의도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당면한 현실 그 자체가 가져다주는 고통에 대해서만 강한 불만을 나타냅니다(9절).
요나는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고, 인간적인 편견과 아집, 그리고 배타적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우연함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하나님의 잣대로 우리를 평가하셨다면 우리는 이미 심판을 받았을 터인데, 오늘도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잊고 살아가는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을 내 스스로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시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요나의 행동 속에서 내 자신의 연약함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당면한 현실의 문제를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인 구원을 이루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여 생명을 살리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불의를 버리고, 복음으로 생명을 살려야 합니다(10~11절).
요나가 하찮은 박 넝쿨을 아꼈던 것은 지극히 자신의 이기심에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니느웨 사람들을 아끼신 것은 그들도 선민 이스라엘과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 넝쿨보다 더 귀한 니느웨 사람 십이만 명보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그곳에 있는 피조물들을 심판하시는 것보다 구원하는 것을 더 기뻐하셨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세상 사람과 우리의 차이는 우리가 좀 더 일찍 은혜를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그 은혜를 전해야 하는 사명을 먼저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먼저 자녀 삼아 주신 것은 그 은혜의 목적을 기억하고 이웃을 향해 복음을 전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나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도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요나의 마음이 있다면 내려놓고, 한 생명이라도 구원하기 위해 힘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편협한 신앙관에 갇혀 불신자들을 정죄하고, 판단하지 말고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품으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한 생명이라고 더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욘 4:1~11절)...
3
오늘의 말씀해설
요나의 불만 (4:1~3)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 원한다면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속한 앗수르가 이스라엘의 적국이라는 이유로 멸망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니느웨의 심판을 철회하시자, 그는 매우 싫어하면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겠다며 성을 냈습니다.
자신은 불순종을 회개하고 용서받았으면서, 니느웨의 악독이 용서받는 것에는 인색했습니다.
용서보다 심판을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품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대와 반대로 일하신다면, 화가 나고 심지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만족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 때일수록 하나님의 주권에 겸손히 순복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 니느웨에 심판이 아닌 용서가 임하자 요나의 마음은 어떠했나요?
하나님이 내 기대와 다르게 역사하실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교훈 (4:4~11)
열방을 향한 하나님 사랑을 아는 것이 모든 사역의 시작입니다.
요나는 선민의식과 편견으로 모든 사람을 품지 못했습니다. 우상 숭배자요,
이스라엘을 괴롭힌 악한 이방인을 멸망하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웃(형제)을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태도를 참으시고 박 넝쿨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 주십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그분이 지으신
모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모든 영혼이 구원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영적 무지와 죄악에 빠진 영혼을 그분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 하나님이 박 넝쿨을 통해 요나에게 깨닫게 하시려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내가 사랑과 긍휼의 마음으로 품어야 할 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오늘의 기도
입술로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면서도,
실제로는 제게 유익을 주는 작은 물건보다도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본질을 보지 못하는 저의 눈을 열어 주소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저를 깨우치시고 제 마음을 넓혀 주소서.
4
니느웨에 내릴 심판을 철회하신 하나님의 조치에 화가 난
요나의 투정과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요나의 이중잣대
사흘 길 갈만한 성읍 니느웨에 겨우 하루 길을 다니며 건성으로 말씀을
전한 요나는 언덕에 올라 니느웨를 지켜보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용서하시자 치를 떠는 분노를 표출합니다.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회개하면 용서하실 게 뻔한데
왜 말씀을 전하라고 시켰냐는 것이지요.
이스라엘은 선민이라 우상숭배를 해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이 당연하고
니느웨는 악한 이방인이라 용서받으면 안 된다는 이중잣대를 가진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내로남불과 같은 이중적 잣대는 없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박넝쿨의 은혜
요나는 언덕 위에 초막을 짓고 니느웨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하나님이 박넝쿨을 준비해서 햇볕을 가리게 하다 벌레를 보내 갉아먹음으로
그늘과 더위를 모두 경험하게 하십니다.
박넝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데 요나는 박넝쿨 그늘로 인해
기뻐하다가 잎이 시들자 불평합니다.
우리는 박넝쿨 같은 환경 때문에 감정이 요동하지는 않습니까?
박넝쿨을 키우시는 하나님을 주목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질문
마치 이른 아침부터 들어가서 일하던 사람이 오후 늦게 와서 일한 사람과 동일한
노임을 받는다고 불평하던 포도원 일꾼처럼 화내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질문하십니다.
내가 니느웨를 용서한다고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그리고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나 되는 큰 성읍
니느웨를 아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의 사랑에는 차별이 없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요나와 같은 마음을 고쳐야 합니다.
편협한 신앙관에 갇혀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그들의 멸망을 고대하는 완악함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성숙한 신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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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자, 요나가 분노하며 죽기를 청하였습니다 요나가 보기에 마땅히 죽어야 할 자들인데 하나님께서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요나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누구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자들이라고 분노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소견의 정의를 따라 바울은 마땅히 죽어야 할 자라고 판단했습니다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행22:22~23)
사울 왕도 다윗이 마땅히 죽어야 할 자라고 판단했습니다 "죽어야 할 자이니라"(삼상20:31)
그러나 정말로 죽어야 할 자일까요? 하나님은 악인이라도 살기를 바라시는데, 감히 사람이 누구를 마땅히 죽을 자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겔33:11)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마5:43~48)
그래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욘4:4)
그러나 요나는 대답하기를 거절하고, 초막을 짓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보려고 했습니다 이방 죄인들이 온전히 회개했을리 만무하니, 하나님께서 다시 진노를 내리실지도 모른다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이 박넝쿨을 예비하사 그늘이 지게 하시니, 요나가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새벽에 벌레로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고, 뜨거운 동풍이 불게 하시니, 요나가 다시 죽기를 구했습니다(욘4:5~8) 이에 다시 물으셨습니다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옳으냐"(욘4:9)
요나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욘4:9) 그러나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4:10~11)
나단이 다윗에게 어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한 마리 뿐인 딸처럼 여기는 암양 새끼를 빼앗았다고 하자, 분노했습니다 "마땅히 죽을 자라"(삼하12:1~5)
그러나 그 마땅히 죽을 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약1:20~22)
남을 판단하는 것은 자기를 판단하는 것입니다(롬2:1~5) 남을 판단하는 것은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는 것입니다(고후10:12)
그러므로 이 증오와 혐오의 시대에 우리가 오직 관용하며, 온유하며, 덕을 세우는 자 되기 원합니다 우리가 자기야말로 마땅히 죽을 자였음을 잊지 않고, 오직 그 모든 정죄에서 해방하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영예를 선포하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그 영예를 선포하게하려 하심이라"(시102:20~21)
2026년 6월 24일 기도문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요나의 모습을 통해 제 안에 있는 편협함과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까지도 주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시고,
판단하기보다 품고 기도하게 하옵소서.
제 유익과 감정보다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더 소중히 여기게 하시고,
회복과 구원을 기뻐하는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자비를 받은 사람답게 긍휼과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을 살게 하시고,
어디서든 주님의 마음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 삶에 베풀어 주신 수많은 은혜를 잊은 채,
잃어버린 것과 부족한 것만 바라보며 불평했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잠시 맡겨주신 것들을 제 것이라 여기며 집착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제 기준과 판단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과 상황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작은 불편함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이미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제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게 하시고,
나의 작은 박넝쿨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영혼들을 더욱 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