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인이 지나가면...' 여주에 떠도는 아름다운 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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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사성 성벽, 기존 성벽이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사진 중앙에 연인소나무가 보인다. |
여주 파사산 정상에 있는 파사성(사적 제251호)은 연대가 꽤 오래된 옛 성터다. 그에 비해 성벽이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이곳에서 바라다보는 풍경이 장관이어서, 산 정상에 높이 올려 쌓은 성터인데도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성벽 위에 서서 남한강을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곤 한다.
파사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을 쌓은 주체가 신라라는 말도 있고 백제라는 말도 있다. 정확하지 않다. 다만 신라 파사왕 때 쌓았다는 설과 먼 옛날 이 지역에 파사국이라는 고대국가가 있어서 그때 쌓았다는 설 등이 힘을 받고 있다. 지금은 파사산 정상에 성벽과 일부 건물터만 남아 과거 이곳이 돌로 쌓은 석축산성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줄 뿐이다.
파사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강 상류와 하류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우리나라 성곽 역사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파사성은 적들이 공격하기 힘든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벽 아래로 사면이 매우 가팔라 적의 공격으로부터 성을 수비하는 데 매우 유리했을 것이다.
성벽 아래로 한강과 들판이 훤히 내려다 보여 적의 동태를 파악하는 데도 더 없이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파사성이 과거에는 한강의 길목을 지키는 군사 요지로 이용됐지만, 지금은 산 정상에서 한강을 조망하는 여행지로 탈바꿈했다. 산 위를 구불구불 돌아가는 웅장한 산성과 산 밑을 이리저리 휘감아도는 남한강이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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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사성 오르는 길, 한쪽에서 성벽을 보수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
가파른 산길을 끝까지 오르게 하는 힘
파사성은 사진 애호가들의 출사지로도 유명하다. 한낮에 바라보는 풍경뿐만 아니라, 해가 진 뒤 파사성 성벽에 비치는 달빛도 아름답다. 이곳에서 바라다보는 풍경을 우리나라 산성에서 볼 수 있는 풍경 중 최고로 꼽는다. 여주8경 중에 '파사과우(婆娑過雨)'가 있다. 파사과우는 여름철 파사성에 소나기가 퍼붓는 풍경을 묘사한 말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데는 상당한 수고가 필요하다. 파사성까지 오르는 산길이 의외로 가파르다. 파사산 정상은 해발 230.4m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산이 낮다고 얕보면 안 된다. 산 정상까지 가파른 산길을 약 860m를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적잖은 수고를 들여 성벽을 오르는 데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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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사성 성벽 위, 연인소나무 아래서 바라본 풍경. |
성벽 위를 걷다 보면, 그 위에서 소나무 두 그루가 서로 마주보며 자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연인소나무'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소나무들이다. 젊은 연인들 사이에 '이 소나무 사이로 지나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풍문이 떠돈다. 파사성을 올라가 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풍문이 단지 헛소리일 뿐이라고 웃어넘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풍문은 실제 이곳을 다녀간 연인들이 겪은 현실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높다. 남녀 한 쌍이 함께 파사성을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곳의 산길은 남녀가 아무 애정 없이 오르기 힘들다. 따라서 한 쌍의 연인이 사파성을 끝까지 올라갔다면, 그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이루어질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것들
파사성은 삼국시대 이후 한때 버려진 성이 되었다가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는다. 선조가 승려 의엄으로 하여금 파사성을 다시 고쳐 쌓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의엄은 수하의 승군을 이끌고 성을 쌓았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대부분은 그때 쌓은 것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성의 쓸모가 미약해져 폐성으로 남는다.
현재 파사성은 일부 구간에서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성벽의 규모는 둘레가 약 1800m, 높이는 최대 6.5m이다. 면적은 약 6만 4천m²에 달한다. 복원공사가 마무리되면, 현재보다 더 웅장한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 이곳 안내문을 보면, '성 내부에는 동문터와 남문터, 수구지, 우물터, 각종 건물터가 남아 있다', '저수지 모양의 우물터에는 지금도 물이 고여 있다'고 적혀 있다.
파사성 정상에서 한강을 내려가 보면, 알 모양의 조형물 7개를 얹은 구조물이 보인다. 4대강사업을 하면서 만든 이포보다. 이 이포보를 4대강 16개 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로 꼽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삼각형 모양의 돛을 단 정체 불명의 전망대와 보 주변으로 사람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수변 공원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만은 않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포보는 여주8경에 포함되지 않았다. 유유히 흘러야 할 강물을 막아 기존의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주변 경관을 해치면서까지 대규모 보를 건설해야 했던 이유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어렵다. 파사성에서, 인간이 아무리 잘 만든 건축물이라고 해도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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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사성 성벽 위, 사마귀가 앞발을 치켜든 채 성벽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을 위협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