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 우리가 원하는 축구를 자신 있게 하고 싶어요. 제 생애 가장 뜨거운 6월을 만들고 싶습니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축구 대표팀 미드필더 구자철(25·볼프스부르크)은 첫 월드컵 출전에 대한 희망과 브라질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을 담담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는 긍정적인 성격이다. 구자철은 지난해 10월 15일 말리와의 대표팀 평가전에서 오른쪽 발목을 다친 이후 최근 분데스리가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두 달 가까운 결장이었지만 초조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구자철은 "부상을 비롯해 모든 일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체력적인 부분만 꾸준히 잘 보완해 나간다면 다른 부분은 문제없다"고 말했다.
◇4년 전 월드컵의 아픔을 뒤로하고
구자철은 2010 남아공월드컵 당시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쓸쓸히 짐을 쌌다. 그는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월드컵 대표팀의 최종 전지훈련지였던 오스트리아에서 마지막 점검을 받았지만 월드컵 개막을 열흘 앞두고 최종 엔트리 23명에서 탈락해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한국에 도착해 입국장을 빠져나가려는데 전화가 한 통 걸려 왔어요. 홍명보 감독님이셨죠. '넌 우리나라 최고가 될 수 있으니까 실망하지 마라'고 하신 말씀에 용기를 가지고 아시안게임(2010년 11월 광저우)과 아시안컵(2011년 1월 카타르)을 잘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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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국가대표팀 미드필더 구자철(볼프스부르크)은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대표팀의 공격을 진두지휘할‘중원의 사령관’이다. 지난해 10월 15일 말리와의 평가전에서 발목을 다쳐 두 달 가까이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그는“체력적 부분만 끌어올린다면 문제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사진은 지난 29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홍명보 자선 풋살 경기에 참가한 구자철이 슈팅을 시도하는 모습. /김경민 기자
구자철은 2011 아시안컵에서 득점왕(5골)을 차지하며 축구 인생의 전기(轉機)를 맞았다. 그리고 이젠 대표팀의 주축으로 브라질월드컵을 기다리고 있다.
구자철은 지난달 독일 볼프스부르크 자신의 집에서 조 추첨을 지켜봤다. "월드컵 조 추첨을 생중계로 본 건 처음인데 정말 스릴 넘치더라고요. 8개 조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H조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정말 이뤄져서 놀랐어요."
구자철은 "객관적으로 만족스러운 조 편성"이라면서도 '원조 붉은 악마' 벨기에를 H조에서 가장 두려운 상대로 지목했다. 구자철은 "마루앙 펠라이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빈센트 콤파니(맨체스터 시티), 에당 아자르(첼시) 등은 세계 최고라 불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상위권을 달리는 팀의 주전 선수"라며 "이들이 월드컵 경험은 없지만 큰 무대에서 뛰어봤기 때문에 조직력만 잘 갖춰진다면 엄청난 힘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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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 4년차2011년 2월 분데스리가로 진출한 구자철은 4년째 독일 무대에서 뛰고 있다. 처음엔 독일의 날씨, 음식 등 모든 것이 싫었지만 이젠 독일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한다.
두 시즌(2011~2013) 연속 아우크스부르크를 강등권에서 구해낸 활약으로 이번 시즌 다시 원소속팀인 볼프스부르크의 부름을 받았다. "이젠 3년 전과는 많이 달라요. 볼프스부르크 구단주와 감독도 바뀌었고, 선수들도 많이 바뀌었죠. 제 독일어 실력도 늘었고요."
독일 진출 후 '언어 장벽'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는 구자철은 간단한 독일어 문장들을 통째로 외워가며 공부했다. 동료를 자주 집에 초대해 한국 음식을 대접해가며 독일어로 대화하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인 언어 장벽을 해결하니까 적응이 수월해지더라고요. 팀 동료와 대화도 많이 하는 만큼 시즌 후반기엔 더 좋은 모습 보여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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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카낭에서 애국가 듣고 싶어요"설레는 마음으로 브라질월드컵을 기다린다는 구자철은 동갑내기 친구인 기성용에게도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기성용은 최근 프리미어리그 선덜랜드의 주축으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최근 둘은 가끔 전화 통화를 하며 "런던올림픽 때처럼 올 6월에도 좋은 일을 만들어보자고 다짐한다"고 했다.
구자철의 올해 목표는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다. "새해 소원은 브라질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동료와 애국가 한번 들어보는 거예요. 2009 이집트 U-20 월드컵에서 8강에 올랐고,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3~4위전도 경험해봤잖아요? 결승전 무대는 어떤 느낌인지 정말 꼭 느껴보고 싶어요."
대부분 16강을 목표로 삼는 축구 팬들에게 구자철의 목표는 허황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학창 시절 제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국가대표가 되겠다'고 했을 때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2012 런던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좋은 생각을 하다 보면 늘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이번 월드컵도 그렇게 될 겁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모든 걸 걸겠다는 구자철의 브라질월드컵 각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