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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트로피에 & 이테리에 Syntrophiai & Hetaireiai
당대의 다른 세력들과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 역시 많은 수의 용병을 동원했는데, 개중 가장 유명한 예시로 카탈루냐 용병단(Katalanike Hetaireia)이 있다. 당대 베네치아의 기록에 따르면 프랑크인(서유럽인) 치하 그리스나 에게 해의 베네치아 요새들을 지킨 것은 주로 석궁으로 무장한 소규모 용병 수비대였으며, 앙주 가의 알바니아 영지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로마 제국 역시 중앙과 지방 차원에서 점점 더 많은 수의 내-외국인 병력을 고용했으리라고 추론할 수 있으며, 이는 부대(그리스어 Syntrophiai) 단위로 이루어졌다. 이들 중 대부분은 외국인(Xenoi, 제니)이었지만, 로마인(Rhomaioi, 로메이)도 있었는데 앞서 언급한 파라모네(Paramonai)가 대표적이다.
용병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로 나뉘었다. 일부는 바랑기 근위대와 같은 종신 계약 용병이었고, 다른 일부는 임시 보충용으로 사태 해결 뒤 해산되는 자들이었다. 용병(Misthophoroi)의 장점은 시기를 불문하고 언제든지 전투에 동원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필요시에만 고용했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해고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물론 종신 계약의 경우는 예외이다) 황제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매우 적었기 때문에 기록에 남은 용병들 중 종신 복무자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급한 필요나 기회가 생겼을 때에만 고용된 자들이었다. 용병들 중 제국에 장기 복무한 자들은 일반적인 군사원정 참여 외에도 황궁 경비, 금문 요새를 포함한 여러 성채 수비에 활용되었다.
제국이 주로 동원했던 용병들은 황실 근위대인 바랑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라틴인들인데, 라틴인이란 곧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에스파냐 지역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용병들 중 가장 수가 많고 강력하며 존중받는 집단이었다. 예컨대 1341년 디디모티콘에서 요안니스 칸타쿠지노스가 황제로 선포될 당시, 칸타쿠지노스에게 황제의 상징인 자주색 장화를 신겨 준 것은 그의 가장 가까운 혈족들과 가장 저명한 라틴 용병들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이테리에 제도 아래 징집된 유목민 혹은 반유목민 용병들이 있었는데, 트라키아에 토지를 받고 정착한 알란인들이나 독자 부대와 지휘관을 가지고 참전했던 불가르인, 세르비아인 등이다. 카탈루냐인들은 카탈루냐 용병단 사건 이후에도 발칸 반도 각지에서 용병으로 이용되었는데, 로마 제국(칸타쿠지노스가 언급한 바 있다) 외에도 세르비아 등에서 활동했다. 마지막으로 적지 않은 수의 튀르크인 혹은 튀르크 혼혈인들 역시 용병으로 고용되었다. 개중 일부는 소아시아에서 피난해 온 로마계 피난민들이었지만, 그냥 14세기의 혼란기를 틈타 돈 벌러 온 무슬림들도 있었다.
1. 이테리아 톤 바랑곤 Hetaireia ton Varangon
1. 1 엥길로바랑기 Ενγλινοβάραγγοι
링크 참조 - http://cafe.daum.net/shogun/MB5/3546
2. 카탈라니키 이테리아 Katalanike Hetaireia
비잔티움의 카탈루냐 용병 고용은 127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개중 가장 대규모였던 것은 루지에로 드 플로르의 "대 카탈루냐 동지회"로서 1302년 고용될 당시 기병 1,500명, 알무가바르 4,000명, 기타 보병 1,0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동지회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는 드 플로르를 자만심에 빠뜨렸고, 결국 그는 황제에 적대하기 시작했다. 비잔티움은 병력 규모를 3,000명까지 줄이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드 플로르를 암살했고, 남은 부대원들은 무력을 동원해서 쫓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307년 일부 카탈루냐 용병들이 비잔티움 측에 재고용되기도 했다. 그 뒤 이어진 내전 기간(1321-1357) 동안 병력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이에 카탈루냐인들도 용병으로 동원되기 시작했다. 1352년에는 칸타쿠지노스 측에 고용되어 콘스탄티누폴리스의 금문 성채를 지켰던 카탈루냐 용병 수비대의 존재가 확인된다. 사료에 따르면 그 대장인 후안 데 페랄타는 칸타쿠지노스가 세르비아에 있었을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1343년에 두샨을 버리고(혹은 두샨이 보내서) 1350년대까지 칸타쿠지노스 편에 가담했다는 용병들 역시 이 카탈루냐 용병대일지 모른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들은 요안니스 5세의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하는 역할과 동시에 칸타쿠지노스가 도시를 확고히 장악하게 만드는 역할도 담당했다.
2-1. 알무가바르 Almughavars
다른 이름 : 알모가바리 Almogavaroi
알무가바르들은 아라곤 왕국의 군사들 중 가장 유명한 자들이다. 이들은 아라곤과 카탈루냐가 위치한 피레네 산맥의 깊숙한 계곡들에서 태어났으며, 워낙 사나운 전사들이라 "파괴자"라는 뜻의 알무가바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갑옷을 입지 않은 대신 엄청난 민첩성을 자랑했으며, 그 교활함과 대담함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들이 던지는 투창은 가장 좋은 갑옷조차 뚫어버릴 정도로 위력적이었으며, 그 덕에 경무장병임에도 불구하고 큰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알무가바르들의 대표적인 무기는 너무 길어서 근접전에서는 짧게 꺾어서 써야 했을 정도로 긴 창인 "coutell"과 갑옷 입은 사람조차 일격에 죽일 수 있는 2~4개의 강력한 투창이었다. 숙련된 알무가바르는 이 무기들을 써서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주는데, 알무가바르 한 명이 중무장한 적 다섯 명을 해치운 경우도 있을 정도다. 우선 두 명은 투창으로 처리하고, 다른 두 명은 투창과 창으로 말을 찔러서 낙마시키고, 마지막 하나는 돌을 던져 무력화시켰다는 것이다. 비록 얼마 전 카탈루냐인들이 제국에 엄청난 피해를 끼치긴 했지만, 그들의 전사로써의 탁월한 능력은 물론이요 가까운 아테네와 시칠리아 지역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 역시 잊혀지지 않았다. 갑옷 없이 로마식의 투창 두어 개와 찌르는 칼로 무장한 이 병사들은 로마 제국에게 매우 유용한 병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2. 알무가바르 장창병 Almughavar Long Spearmen
알무가바르들은 대개 이베리아의 기독교 왕국들과 무어 왕국들 사이의 산악 변경 지대, 숲, 시골 등지에 살던 농부 혹은 목자 출신이었다. 그들이 살던 곳은 쓸만한 자원이 거의 없는 가장 황량한 산악지대였다. 이들은 자급자족을 위해 강도떼가 되어 무어 영역에 깊숙이 침투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재정복(Reconquista)에 참여하는 전사집단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대규모 군대를 이루었고, 아라곤의 페드로 3세가 시칠리아와 튀니지에서 군사 원정을 벌였을 때 그 휘하에는 15,000명의 알무가바르가 있었다. 시칠리아의 만종으로 벌어진 전쟁 이후 많은 수의 알무가바르들이 용병대를 결성하여 이탈리아의 구엘프 파 군대나 아나톨리아의 비잔티움 군대에 가담했고, 일부는 카탈루냐 동지회를 결성했다. 알무가바르 창병들은 양손으로 잡는 긴 장창을 주로 사용했다. 다른 창병들과는 달리 이들은 기병을 상대할 때 말을 주로 노렸고, 낙마한 상대 기사를 손쉽게 처리했다. 이들은 장창을 사용하며 비슷한 대형을 짜긴 했지만, 후대에 등장하는 장창병(pikemen) 대열처럼 단단한 전열을 이루지는 못했으며 전투가 격화될 경우 진형이 흐트러지곤 했다. 이들은 투창병에 비해서 기동성이 떨어졌으므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슬 갑옷을 입어 방어력을 높였다.
2-3. 알포라트 Catalan Alforrats
알포라트는 카스티야의 히네테(jinete)와 유사한 아라곤 고유의 경기병 부대이다. 이베리아에서 경기병 전술은 무어인의 정복 이후 알려지기 시작했고, 아라곤은 재정복 과정에서 이를 도입했다. 무어인들의 대규모 기병대를 상대하기 위해 형성된 알포라트 기병들은 재정복 전후 시기를 통틀어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알포라트들은 히네테에 비해 한층 더 범용성이 뛰어났는데, 가죽, 사슬, 미늘 갑옷 혹은 더 무거운 갑옷도 사용하는 등 중무장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작은 원형 방패를 들고, 무기로는 랜스나 투창을 썼다. 따라서 적 전열을 교란시키는 경기병 역할 이외에도 중기병을 지원하거나 적 기병을 상대하는 중급 기병(medium cavalry) 역할도 담당할 수 있었다. 알포라트는 주로 이베리아의 아라곤 군대에 많았지만 이탈리아에 있는 시칠리아군, 혹은 로마니아에 있는 아테네 공국 혹은 용병대에서도 볼 수 있었다.
2-4. 카탈루냐 기사대 Catalan Knights
(갑옷 업그레이드)
Cavalls Armats, 즉 아라곤의 카탈루냐 기사들은 프랑스나 다른 서유럽 기사들과 거의 다를 것이 없는 경험 많고 중무장한 기사들이다. 이베리아의 재정복 당시 이 카탈루냐 기사들은 무슬림 타이파들에 대한 공격의 최선봉에 있었다. 1237년 Puig 전투에서는 보병의 지원을 받은 소수의 카탈루냐 기사들이 무슬림 대군을 무찌르고 발렌시아를 정복하기도 했다. 이베리아에서 아라곤의 영역이 확고해지자, 아라곤 군대와 카탈루냐 용병들은 시칠리아의 만종 이후 벌어진 1282년~1302년 사이의 전쟁에도 가담했다. 카탈루냐 기사들은 앙주 군대와 여러 차례 싸웠고, 시칠리아에서 그들을 몰아내고 아라곤이 왕권을 세우는 것을 도왔다. 시칠리아의 전쟁이 끝난 뒤에는 그리스와 소아시아로 이동했고, 경무장한 알무가바르들을 대동한 카탈루냐 기사들은 이번에는 비잔티움을 도와 튀르크인, 십자군 세력들과 싸웠다. 비잔티움으로부터 배신당하자 카탈루냐인들과 아라곤인들은 비잔티움과 싸워 이기고 그리스 남부로 갔다. 1310년 알미로스 전투에서는 소수의 카탈루냐 기사들과 알무가바르들이 중무장한 프랑스 기사들을 격파하기도 했다. 오늘날 카탈루냐 기사들은 아라곤, 시칠리아, 그리고 그리스 남부의 아테네 공국과 네오파트리아 공국에서 볼 수 있다. 단 과거와 마찬가지로 용병대로서의 성격 역시 남아 있기 때문에, 높은 보수를 지불할 수 있다면 로마니아와 지중해 연안 각지에서 이들을 용병으로 고용할 수도 있다.
3. 스키씨키 이테리아 Skythikoi Hetaireia
쿠만인들은 11세기 말기부터 비잔티움 군대에 징집되기 시작했으며, 14세기까지 군대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이들 중 특히 중앙군에 소속된 이들은 "스키씨콘(Skythikon)"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원래 페체네그인 병사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었다. 1241년 요안니스 3세는 최대 10,000명에 달하는 자들을 군사 식민자로 트라키아와 아나톨리아에 정착시켰고, 이들은 1292년 혹은 그 이후까지 유럽 방면의 원정에 동원되었다. 이들은 그 뒤 완전히 그리스화되었는데, 심지어 안드로니코스 2세 시대에는 그리스어를 쓰는 쿠만인이 메가스 도메스티코스의 지위에 오를 정도였다. 1320년대의 쿠만인 용병 부대는 세르비아의 스테판 우로스 2세가 미하일 9세(1294-1320년 사이 공동황제)에게 빌려 준 보조군 부대에서 유래했는데, 안드로니코스 2세와 그의 손자인 안드로니코스 3세 사이에 내전이 임박한 상황에서 매우 유용한 병력이었기 때문에 반환되지 않고 남았다. 이들은 세르비아 측의 반환 요구에도 불구하고 트라키아 지역에 재정착되었는데, 남쪽의 로마령 트라키아와 북쪽의 불가리아인들과 몽골인들 사이에 완충 지대를 형성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안드로니코스는 그들이 몽골인들과 내통하고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고, 1327년 그들을 트라키아에서 렘노스, 타소스, 레스보스 등으로 이주시켰다. 쿠만인들이 "스키씨콘" 병사들의 주류이긴 했지만 다른 종족 병사들도 있었는데, 예컨대 알란인들이 그렇다. 알란인들은 1301년 최대 16,000명 단위로 비잔티움 측에 고용되었는데 그 중 절반이 전사였다. 카탈루냐 동지회 사건 이후 1306년 대부분의 알란인들은 불가리아로 넘어갔지만 일부는 비잔티움에 남기도 했다. 그 외에 불가르인, 세르비아인, 블라흐인, 마자르인 등도 있었다.
3-1. 스키씨키 이포톡소테 Σκυθικοί Ιπποτοξόται
스키씨키 이포톡소테 Skythikoi Hippotoxotai
"스키씨콘" 부대의 기병들은 전원 경무장한 궁기병이었다. 대개 스텝 지역 출신인 이 전사들은 튀르크인 궁기병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위력적인 병력이었으며, 야전군 편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전력이었다. 소위 "스키타이식 활"이라고 불렸던 소형 합성궁을 무기로 썼다.
3-2. 스키씨키 톡소테 Σκυθικοί Τοξόται
스샷 없음ㅋ
"스키씨콘" 부대의 대부분은 기병이었지만, 개중 가난한 일부는 보병으로 참전하기도 했는데 대부분 궁병이었다. 가벼운 사슬 갑옷과 작은 방패, 짧은 칼과 활로 무장했다. 사격전에서는 그리스인 궁병들보다 특별히 나을 것도 없었지만, 그 대신 근접전에서는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었다.
4. 라티니키 이테리아 Latinike Hetaireia
귀족들 사이의 분열, 특히 반복되는 내전과 교회 통합 문제 등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 때문에 황제는 점점 더 외국인 용병과 용병대에 의지하게 되었다. 외국 군인들과 그들에게 둘러싸인 황제는 비잔티움 말기 군대의 기본 요소가 되었다. 서유럽 출신의 라틴 용병대(라티니키 이테리아)는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용병 집단 중 하나였으며 이탈리아인, 독일인, 카탈루냐인, 프랑스인, 에스파냐인 등으로 구성되었다. 라틴인들은 완전히 군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부가 되었으며, 다름아닌 요안니스 칸타쿠지노스 본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을 1341년 디디모티콘의 황제 즉위식에서 알 수 있다. 새 황제에게 자주색 장화를 신기는 상징적인 행사에서 이 역할을 맡은 자들이 바로 황제의 가장 가까운 혈족들과 가장 저명한 라틴 용병들이었던 것이다.
과거에는 라틴인 병사는 거의 없었고 대신 튀르크인 용병(아마도 투르코풀리 Tourkopouloi)이 있었는데, 이들은 1263년 모레아 원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 동안 외국인 용병들의 구성이 상당히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미하일 8세는 군인들을 아끼고 사랑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여기에는 라틴 용병들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의 치세에 라틴 용병들의 중요성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미하일 8세의 후계자인 안드로니코스 2세 역시 1292년 유럽 원정에서 튀르크인과 쿠만인들을 더 선호했으며, 나중에 카탈루냐 용병대를 고용한 것을 보면 그 시점에선 이미 용병으로 고용할 만한 라틴인들이 많이 남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뒤로 내전이 발발하자 국내외의 전쟁을 동시에 감당하기 위해 세르비아인, 불가리아인, 튀르크인 등의 동원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라틴 용병 역시 다시 출현했다. 주로 중장기병이었던 라틴 용병들은 내전에서 서로 대립하는 세력 양측에 모두 고용되었으며, 당대의 정예 병력으로 간주되었다.
4-1. 라티니키 이피스 Λατινικοί Ιππείς
(갑옷 업그레이드)
라티니키 이피스 Latinikoi Hippeis
라티니콘 포싸톤(라틴인 부대)은 최신 판금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랜스, 방패, 장검을 갖추어 공격과 방어 모두 흠잡을 데가 없다. 여기에 튼튼한 마갑까지 갖춘 이들은 제국의 가용 전력 가운데 가장 최신식이고 가장 중무장한 기병대이다.
4-2. 라티니키 페지 Λατινικοί Πεζοί
스샷 없음ㅋ
이 용병들은 시민 혹은 하류 귀족 계급 출신으로, 부유한 귀족들처럼 엄청나게 중무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슬 갑옷에 흉갑, 작은 서구식 삼각 방패에 장검 등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다. 잘 훈련되고 사나운 이 병사들은 공격에 적합하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슬슬 발을 빼려고 할 것이다.
4-3. 라티니키 스코페프테 Λατινικοί Σκοπευταί
(갑옷 업그레이드)
라티니키 스코페프테 Latinikoi Skopeutai
로마 제국은 화약 무기를 상당히 늦게 받아들인 편이다. 서유럽에서 처음으로 전쟁에 화기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1320년대이고, 14세기 중반이 되면 아드리아 해안가의 도시들과 헝가리에서도 화기를 쓰기 시작했다. 세르비아에서는 1386년에 나타났고,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가 되면 남쪽으로 베네치아령 모레아에 이르기까지 아드리아 해 동부의 거의 모든 도시들에서 화기가 쓰였다. 비잔티움 기록에서는 소화기, 특히 머스킷을 가리킬 때 "납 발사기(molybdobolon)"라고 쓰거나, 혹은 이탈리아어 "sclopo", "schioppo", "skopeta(schioppetta, "때리다"라는 동사에서 유래)" 등을 그리스어로 음차해서 표기했다. "touphax"라는 표현도 있었는데, 파이프 모양의 화기를 가리키는 튀르크어 "tufenk"에서 유래한 것이다.
로마인들은 베네치아와 제노아를 통해 이런 소화기들을 구했다. 또 제국의 도시에 사는 몇몇 이탈리아 상인들은 자기 이권을 지키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용병(대개 전직 해군 선원이나 해병)들을 고용하기도 했다. 이 용병들은 대개 가능한 한 최신식 무기를 구해다 썼고, 물론 그 사용법도 잘 알았음이 분명하다. 새로 개발된 핸드건이나 아르퀘부스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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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닛이 정말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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