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막바지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되는 논쟁중 하나가 MVP에 관한 것이다. 타이틀 홀더에게 주어지는 개인상은 논란이 될 소지가 없다. 한해동안 거둔 성적을 토대로 가장 좋은 기록을 작성한 선수가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MVP(Most Valuable Person)수상의 공정성에 관해선 매년 논란이 되풀이 된다. "누가 가장 가치있는 선수인가?" 라는 다분히 주관적인 물음에 정형화된 객관적인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가장 가치있는 선수가 누구냐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야구를 팀스포츠로서 이해하는 사람들은 팀에서 선수가 차지하는 위상이나 선수가 팀에 공헌한 정도, 팀에 미치는 영향력을 중요한 요소로 생각할 것이고 개인적인 스포츠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선수가 가진 탁월한 기량이나 개인 기록을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자료로 삼으려 할 것이다.
역대 메이저리그 MVP수상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좋은 팀성적을 기록한 팀에서 배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팀성적이 MVP수상자의 중요한 전제조건임을 빼놓을 수 없다는 얘기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하위팀에서 MVP가 배출된 것은 지난 87년 시카고 컵스의 안드레 도슨이 유일한 경우였으며 승률 5할 이하 팀에서 MVP가 나온 것도 도슨을 포함해 4번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이를 잘 입증해준다. 팀스포츠인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팀의 승리이므로 좋은 성적을 거둔팀에서 가장 높은 공헌을 한 선수가 MVP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한팀의 구성원이 톱니바퀴처럼 조화를 이뤄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야구경기에서 개인이 아무리 걸출한 활약을 하더라도 팀성적에 미치는 영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므로 선수가 보여준 능력이나 기량이 무엇보다 가장 주요한 기준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선수가 작성한 한시즌의 기록은 이를 평가하는 좋은 기준이 되며 기록상으로 뛰어난 성적을 보인 선수들은 팀성적이 좋은 팀에서도 최고의 공헌도를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해 AL MVP는 오클랜드 어슬레텍스의 미겔 테하다(34홈런-131타점-타율 0.308)가 수상했다. 그리고 지난 해에도 예외없이 그가 MVP수상 적격자인가를 놓고 치열한 격론이 오고갔다. 외형적인 기록상으론 양대리그 홈런, 타점왕(57홈런-142타점-타율 0.300)을 차지한 텍사스 레인저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테하다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후반기 오클랜드의 20연승 돌풍을 이끌며 강한 인상을 남긴 테하다의 팀 공헌도가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화려한 기록보다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와는 반대의 경우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 경우도 있다. 1987년 컵스의 안드레 도슨은 49홈런-137타점의 성적으로 리그 홈런, 타점왕을 차지했지만 소속팀 시카고 컵스는 지구 꼴찌에 머물렀다. 반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아지 스미스는 신기에 가까운 유격수 수비외에도 타율 0.303-104득점-43도루의 성적으로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팀공헌도를 고려하자면 아지 스미스가 수상자로 적격이었지만 기자들은 도슨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다면 팀공헌도와 뛰어난 성적만이 MVP를 수상할 수 있는 충분조건일까? 그렇지도 않다. 지난 91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칼 립켄 주니어는 팀성적과 개인기록 모두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세실 필더에 뒤쳐졌음에도 불구하고 MVP를 수상했다. 필더는 44홈런과 132타점으로 리그 홈런, 타점왕을 차지하면서 34홈런 114타점의 칼 립켄 주니어에 비해 나은 성적을 올렸다. 립켄 역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긴 했지만 말이다. 팀성적에서도 지구 공동 2위를 기록한 디트로이트의 성적이 간신히 최하위를 모면한 볼티모어에 비해 월등했다.
95년 MVP역시 비슷한 케이스로 논란을 야기했다. 50홈런-126타점-타율 0.317로 리그 홈런, 타점왕을 차지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알버트 벨이 39홈런-126타점-타율 0.300을 기록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모 본에 근소한 차로 MVP수상에서 고배를 마셨다. 양팀 모두 지구 우승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룬데다 클리블랜드는 전체 최고 승률을 올렸기에 팀성적에서도 벨이 뒤질 이유가 없었다.
칼 립켄 주니어는 기자나 팬들이 가장 선호하는 선수이고 알버트 벨은 괴팍한 성격때문에 기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점이 득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기자들의 투표로 선정되는 수상인 만큼 기량이나 성적외에도 선수들의 인간성과 기자들과의 관계역시 MVP수상의 적지않은 요소로 작용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올해도 MVP수상의 적격자가 누군인지를 놓고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 시즌이 한달이상이나 남았지만 NL에선 배리 본즈와 앨버트 푸홀스의 2파전 양상으로 압축된 느낌이다. 두선수 모두 기록상으로 수상 가시권에 있는 선수들이다. 본즈의 소속팀 샌프란시스코는 이미 플레이오프 진출이 유력하지만 푸홀스의 소속팀 세인트루이 카디널스는 치열한 지구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만약 양팀이 모두 지구 우승을 차지한다면 어떤 선수가 더 가치를 인정받게 될까? AL에선 카를로스 델가도가 객관적인 기록상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팀성적의 열세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반면 플레이오프 진출권에 있는 팀에선 기록상으로 델가도에 견줄만한 후보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AL MVP는 팀성적이 우선인가, 개인 성적이 우선인가에 관한 논란이 올해도 재현될 소지가 있다. 과연 기자들은 어떤 선수의 손을 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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