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는..신산회의 대중화를 위해서 山이 아닌 지리산 둘레길 걷기에 나섰다
지리산 둘레길은 우리나라 걷기 열풍의 원조격이다
6년 전 실상사 스님들을 중심으로 '느리게 걸으면서 나를 성찰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길은 옛사람들이 흥얼거리며 오가던 숲길과 고갯길, 강변길, 논둑길, 마실길 등을 찾아 이었다
제5구간은 가장 정겹고 아름다운 길이지만,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을 안고 있는 슬픈 길이기도 하다
시작이다
46명의 회원이 7시 30분에 전주를 출발하여 9시 50분에 경남 함양군 휴천면에 도착하였다
엄천강가에는 거센 바람이 휘몰아쳐서 모자를 꽉 잡지 않으면 날아갈 지경이었다
엄천강을 가로지르는 송문교를 건너서 강가를 따라 조성된 둘레길로 들어섰다
엄천강
엄천강가를 따라 정겹게 이어지는 지리산 둘레길 제4구간의 끄트머리는 상쾌하였다
엄천강은 백무동 맑은 물과 칠선계곡의 시린 물을 받아 산청 쪽으로 흐르다가 경호강으로 합류된다
5월의 푸른 눈빛으로 그대에게 갑니다
함부로 가면 오히려 병이 더 깊어질 것만 같아
生의 마지막 사랑마저 자꾸 더 얕아질 것만 같아
빠르고 높고 넓고 편한 길을 버리고
일부러 숲길 고갯길 강길 들길 옛길을 에둘러
아주 천천히 걷고 또 걸어서 그대에게 갑니다 ........이원규의 詩 <지리산 둘레길> 중에서
운서쉼터
지루한 시멘트길을 한참 걸어 운서마을에 올라서니 아담한 쉼터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아름답게 조성된 운서쉼터에서 물을 마시고 간식을 먹으며 땀을 닦았다
운서(雲西)마을
운서마을은 마을 전체의 1/3 이상이 지리산국립공원 내에 있으며, 농경지가 별로 없는 마을이다
식용작물이 많이 자생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채취되는 산채류들은 살이 찌고 부드러우며 특이한 향과 맛이 있다고 한다
팽나무쉼터
아름드리 팽나무 그늘에 자리잡은 쉼터엔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씻어줄 맑은 바람이 맴돌고 있었다
김종직이 1472년에 기록한 지리산 산행 기록문에는 이곳을 화암(花巖)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표현하였다
동강(洞江)마을
평촌과 점촌 그리고 기암 등 3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동강(洞江)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강과 산이 함께 흐르는 듯한 아름다운 이곳에서 지리산 둘레길 제5구간이 시작된다
신틀바위
방곡마을 입구 다리목 옆에 있는 큰 바위는 짚신을 만들 때 사용하는 틀과 닮아서 신틀바위라 한다
엄천사에서 볼 때 강 건너 바위의 형상은 마치 스님이 엄천사를 떠나가는 형상이라고 한다
사찰의 기운이 약해진다는 풍수적인 의미에서 스님들이 그 바위를 깨어버릴려고 했다는 구전이 있다
실제로 바위 위에 올라가보면 바위를 깨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이 있다는데 확인하지는 못했다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
산청.함양 사건은 1951년 2월 7일, 공비토벌 작전 중 일부 군군 병력이 양민 700여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이 제정되어 합동묘역이 조성되었다
우리 현대사의 슬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추모공원인데, 계단이 너무 높아서 참배는 하지 못했다..죄송
추모공원을 떠나며
추모공원 입구에는 학살당한 민초들의 넋인 양 피빛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모처럼 시간을 맞추어 함께 나온 처제들의 예쁜 미소가 5월의 신록처럼 눈이 부셨다
내가 날아가는 거리 만큼
당신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내가 기다리는 시간 만큼
당신에게도 기다림이 있으면 좋겠다
새가 되고 싶은 나무들이
즈믄의 날갯짓으로 퍼덕여도
저기 어디쯤 당신이 있으면 좋겠다........권혁재의 詩 <솟대> 중에서
숲속의 쉼터
추모공원 앞의 도로를 건너자마자 싱그러운 숲이 나타나고, 숲속엔 쉼터가 조성되어 있었다
마을의 이곳 저곳에서는 지리산 둘레길 걷기의 열풍에 편승하여 여러 채의 펜션이 지어지고 있었다
길, 길, 길..
수철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 국군 제11사단 9연대 3대대 병력들이 빨치산 토벌을 명목으로 지났던 길이다
이 길을 지나온 토벌대에 의해 가현마을, 방곡마을, 점촌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길 아래를 흐르는 물소리는 억울하게 죽어간 이름없는 민초들의 원성인 양 애절한 느낌이 들었다
상사폭포
한 남자가 같은 마을에 사는 한 여인네를 짝사랑 하다가 상사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그 남자가 뱀으로 환생하여 여인의 몸 속으로 들어가려다가 붙잡혀서 매를 맞고 죽고만다
그 뱀이 죽은 자리가 상사(相思)계곡이 되었고, 그후 여인이 죽어서 바위가 되어 폭포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혼자 나오신 요한 형제님이 집에 홀로 남겨진 그 여인을 생각하며 폭포수 앞에 섰다
점심식사
5월이지만 제법 따가운 햇살 속에서 시멘트길을 지루하게 걷다보니 많이 지치게 되었다
햇빛을 가려줄 옹색한 숲속에서 향기로운 봄나물과 갖가지 음료(?)를 마시니 새로운 힘이 솟았다
쌍재
쌍재는 바람재와 고동재 중간에 위치한 고개로 승용차가 다닐 정도로 넓다
쌍재마을은 한때 30가구가 살았던 산촌이었으나 30년 전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폐허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어린시절 마을을 떠났던 석재규(50)씨가 8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왕산(王山)
지리산 둘레길 쌍재 구간은 왕산(924m)의 산허리를 잠시 에두른다
왕산은 고대 가락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의 돌무덤을 품고 있다
김유신의 증조부인 구형왕은 서기 532년에 국운이 다한 가락국을 신라의 법흥왕에게 넘겨줬다
그리고 조상을 볼 면목이 없다는 죄책감으로 돌무덤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한국판 피라미드로 불리는 구형왕의 돌무덤을 보고 싶었으나 1.5km나 되는 산길을 왕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산불감시초소
산불감시초소는 오늘의 지리산 둘레길 제5구간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이곳에 오르면 왼쪽으로는 산청읍내 전체가 보이고, 오른쪽으론 지리산 동북부 능선들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멀리 기버린 대장 일행을 만날 수 없어 뒤에 남은 사람들끼리 깃발을 펼쳐 들었다
고동재
수철리 서북쪽에서 방곡리로 가는 고개로 고동처럼 생겼다 해서 고동재란 이름이 붙여졌다
일설에 의하면 그 옛날 가락국의 군대가 이곳에서 고동을 불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수철리로 내려가는 시멘트길은 지루하기 그지없었지만 길섶의 야생화가 지친 마음을 위로하여 주었다
수철마을
무쇠로 솥이나 농기구를 만들던 철점이 있어서 무쇠점 혹은 수철동이라 불리우던 마을이다
가락국이 마지막으로 쇠를 구웠다는 수철마을은 지리산길의 또 다른 연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회관 앞에 '지리산 둘레길은 자아성찰과 문화체험의 길입니다' 라고 씌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하산주
6시간에 가까운 행군으로 지친 몸은 번암막걸리와 세라피나표 오징어무침으로 달래었다
전라도 음식 냄새에 취한 경상도 아저씨도 함께 앉아서 몇 잔을 들이켰다
첫댓글 오랜만에 동생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행복했고 세라피나가 농사지은 야채와 오징어 무침에 번암막걸리를 마실땐
더욱 행복해씀다 난 왜케 술이 맛있을까?
난 왜케 술 잘 마시는 여인과 결혼했을까?
술 마시고 왔을때 냉수 갖다주고, 재워주고, 이뻐해주기 정말 힘들어~ ㅋㄷㅋㄷ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가고 있지요.
맘속에 있는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덧 해가 기울지요 ~~
이순신표 막걸리 허리에 꿰어차고 팔자걸음으로 상사폭포 오르던 숲길,,물소리,바람결,숲향기 기타등등... 참 좋았습니다.
추모공원에서 마신 막걸리 한잔...꿀맛이었어요. 근데 왜 이순신표일까???
신산회 유사 이래 가장 성황을 이루어 준 둘레길걷기...참 행복했습니다
물과 꽃과 바람과 슬픔과 용서가 공존한 시간,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 좋았지요
tv 1박2일에서 지리산 둘레길을 보며 가고싶었는데 좋은 하루였습니다.
동네의 돌담들이 옛정취에 푹빠져버렸답니다.
엄천강에서 시작해서 오징어 회무침으로 끝나는 5월의 산행 정말 좋았어요.
지금도 눈이 시리도록 푸른 산길이 여운으로 남아요.
함께한 회원님들 모두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직도 뻐어꾹 ~ 뻐억꾹~ 애절하여 억장을 무너뜨리는듯한
소리가 5월의 연초록잎에 녹아나는 듯 합니다.
난~새소리중에 홀딱벗고..홀딱벗고...란 새를 꼭~보고싶어~(월메나 옷을 많이 입었는지??)
참말로 고로코롬 우는 새가 있당감?
그건...벗고싶은 사람의 귀에만 고렇게 들리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