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몽학의 대동사회는 이몽학이 칼로써 직접집권하여 자신이 원하는 나라를 세우고 하였다. 2. 동인 : 동인은 신진사림이다. 척신정치 개혁에 적극적인 경향을 띄었으며,서인은 기성사림이었다. 척신정치 개혁에 소극적인 경향을 띄었다. 즉, 동인은 진보적인 사림, 서인은 보수적인 사림이였다. 3. 정처(正妻)가 아닌 첩에게서 난 자손을 지칭하는 말이다. 조선시대의 중기에 접어들면서 사림이 등장하고 성리학에의 집중이 심해지면서 이러한 윤행 및 균등상속은깨지기 시작한다. 서서히 장자를 우대하는 풍조가 생기기 시작하였고, 장자가 모든 제사를 맡는 형태로 바뀌면서 서자의 자리도 좁아지며 차별이 심해 제사참여도 어려웠다.
1.자신의 야망과으로인해 스승과 동료를 죽였지만 원래 추구하던 대동사회는 모두가 잘사는 평등사회였다. 2.동인과 서인이 나뉘는 이유는 '그 동안의 훈구 정치를 어떻게 척산 할 것인가' 또 '양반수는 느는데 관직수는 한정되어있는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인해 나뉘고 이에 서인은 그 간의 훈구 정치를 천천히 바꿔 나가자라는 입장이었고 동인은 천천히 할 이유가 있는가 빨리 바꾸자 라는 입장이었습니다.또한 이조 전랑직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대립되는것입니다. 3. '서자'란 정실부인이 아닌 첩의 자식으로써 양반이 아닌 어머니에게서 나 양반취급을 받지못하여 아버지도 아버지라 부르지못하고 형도 도련님이라고 부르는등
10 이소연 1.이몽학은 대동사회를 핑계 삼아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였기때문에 평등사회는 이루어 질 수없었다, 2.동인은 김효원을 지지하는 신진사림이었습니다. 척신정치 개혁에 적극적인 경향을 띄었구요. 학문계승으로는 이황, 조식, 서경덕 문인 중심이었습니다. 반대로 서인은 심의겸을 지지하는 기성사림이었습니다. 척신정치 개혁에 소극적인 경향을 띄었구요. 학문계승으로는 이이, 성혼 문인 중심이었습니다. 3.서자는 기생의 아들이였다. 그렇기때문에 조선시대에서는 신분제도가 있었기때문에 제사 참석도 어려웠으며 다른것에서도 많은 제약이있었다,
1. 이몽학의 대동세계가 지향한 것은 처음엔 왜놈들을 물리치기 위함이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부패한 조정에 대항해야했다. 결국 이몽학은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는 상황까지 가버렸다. 2. 동인 : 조선 중기의 정파. 선조 즉위 후 훈구파들이 물러나고 중앙 정계를 장악한 사림파들 가운데서 신진 관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당파이다. 서인 : 15세기 말 이후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훈구파의 심한 탄압을 이겨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중앙정계를 장악한 사림파이다. 3.영화에서 나온 양반집안의 서자 한견자는 조상의 제사에 술도 못올릴만큼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시대와 상황이 서자를 매우 낮게 여겼다.
제일 생각나는 부분은 서자인 한견자가 모든 가족들이 죽임을 당하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위해 이몽학을 찾아 떠났을 때 만난 백지가 넌 꿈이 없다고 말했을 때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꿈꿔보지도 못하는 서자였다. 그 만큼 서자가 하는 모든 행동과 생각에는 한계가 있었다.
1.대동세계는 원래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직이었지만, 이몽학은 자신이 왕이 되어 정권을 잡고 부와 권력을 누릴 욕심으로 변질되었다. 2. 동인과 서인 둘다 사림이라는 점에서 척신정치를 하자는 뜻은 같지만 척신정치를 빠르게 하자는 급진적인성격의 동인과 여태까지의 훈구정치를 천천히 바꾸자는 진보적인성격의 서인으로 나뉘어 졌다. 3.서자는 본처가 아닌 첩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뜻하며, 이 영화에서도 한견자는 본처가 아닌 기생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기 때문에 서자라 불리며 당시 홍길동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양반취급도 못받고 제사상도 못 올리는 등의 한계를 지닌 불쌍한 존재였다
대체적으로 영화는 재미가 없었다. 영화의 정체성이 부족했으며 너무 많은 생각을 전하느라 기준이 되는 주제가 없었던것으로 생각된다. 이몽학은 자신의 생각대로 대동사회를 이루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냉정한 인물이였다. 동인은 김효원을 지지하는 신진사림이였다. 척신정치 개혁에 적극적인 경향을 띄었다. 반대로 서인은 심의겸을 지지하는 기성사림이였다. 척신정치 개혁에는 소극적인 경향을 띄었다. 조선시대에는 서자출신은 양반들의 대동사회에 함께할 수 없는 존재였던것으로 보인다. 양반 그들만의 그들이 해석하고 싶은 대로의 사서삼경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것은 서자가 양반들에게 맞으며 말한 부분에서 알수 있다.
1. 조선시대 이몽학이 생각한 대동 사회는 아마 자신이 왕이 되어 부패된 정치를 다 바꾸고 왜군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백성들을 위한 평등사회가 아닌 단지 이몽학의 욕망이 만들어 낸 사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2. 동인은 훈구정치를 빨리 바꾸라는 입장이고, 서인은 천천히 바꾸자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서로 이조 전랑 직을 차지하기 위해 대립했다. 3. 조선시대 서자 출신은 제사뿐만 아니라 호칭, 서열, 배움, 혼인에 있어서도 많은 제한과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다른 형제와는 다르게 차별이 많았을 것이다.
1. 이몽학이 지향햇던 대동사회라기 보다는 대동사회라는 것을 이용해 자신이 왕이 되기위한 하나의 수단이였다. 2. 동인은 이황 조식, 서경덕의 학문을 계승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신진 세력들이 참여 하여 처음으로 붕당의 형세를 이룬 것이고, 이에 반해 서인은 이이와 성혼의 문인들이 가담함으로써 또 하나의 붕당의 모습이 갖추어졌습니다. 쉽게말해 사상의 대립때문에 나뉘어 진것 같습니다. 3. 정처(正妻)가 아닌 첩에게서 난 자손을 지칭하는 말로 조선시대 서얼은 하나의 특수한 신분층으로서 법적으로 차별을 받았다.
대동세계를 위해 설립된 대동계는 평등한 세상을 지향하고 왜를 물리치려고 만든 단체이지만 고유한 정신이 흐려지고 이몽학은 이 대동계를 통해 왕이 되려는 야망을 품게 된다. 혜화동에 거주하던 김효원의 당을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동인' 상대적으로 서쪽에 거주하던 심의겸을 지지하던 기존사림들의 당을 '서인'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왜가 쳐들어오고 있는 순간까지도 동인과 서인은 자신들의 권위와 명예를 위해 싸우는 모습이 웃겼지만 그 뒤에는 모를 씁쓸함이 있었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영화를 보면서 또한 알 수 있었다.
이몽학이 추구했던 대동사회는 외를 물리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려던 순수한 단체였지만 점차 이몽학의 개인적인 수단으로 이용돼 점차 변질되고있다. 동인은 진보적인 사림, 서인은 보수적인 사림이다 서자는 정실부인이아닌 첩이나 다른여자와의 관계에서 생겨난 자식을 뜻한다 대부분의 서자는 정통성이없다며 천대받고 무시받던 시대였으며 이러한 계급이 존재함으로서 서자라는 이유만으로 왕이되지못하거나 양반집에서조차 제대로 대접받지못했다
무역학과 1062058 이효림 이몽학은 외적으로는 왜구를 물리치자는 명분으로 대동세상을지지하지만 자신이 왕이 되기위한수단으로 이용했다. 개혁에 적극적성향을가진 동인세력과 개혁에 보수적인성향을가진 서인세력이 서로 대립을이루는데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서로 개혁에 대해 무리를 이루고 주장들을하고 있지만 이몽학이 대동계를 자신이 왕이 되기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한것처럼 동인들과 서인들도 각각 개인의 이익을 더 챙기기위한 명분이 아니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1.이몽학이 자신의 스승인 정여립을 죽이고 대동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반란을 감행했다. 본래는 외적을 무찌르기 위한 모임이었으나 이목학이 스승을 죽임으로써 조직을 장악하여 왕이되고자 함 2.이조전랑이후 붕당이 되어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어 졌다 동인은 진보적성향 서인은 보수적성향으로 김효원의 당을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인 서쪽에 거주하던 심의겸을 지지하던 당을 서인이라 부르게 되었다 3.양반과 기생사이에 낳은 자식으로 서자는 조선 신분제도에서 양반이 아님으로 집안사람으로 인정받기 힘들었다 더욱이 조선시대에 사회질서로 제사는 집안에 큰 행사로써 양반이 아닌 서자가 제사에 참여하는것은 있을수 없었다
경제학과 07학번 이형찬 1.이몽학은 썩어빠진 조정을 개척하기위해 대동계를 구성했지만 자신의 야망을 위해 대동계의 본래 다짐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점을보이게된다 2.동인은 조선중기의 정파 ,서인은 조선시대 붕당정치 초기의 당파이다. 이조전랑 자리를 둘러싸고 분열이 생겼는데 기성사류를 지지하는 파를 서인 신진사류를 지지하는 파를 동인이라한다. 3.서자출신은 모든면에서 혜택을 받지못했기때문에 제사에 참여하는것은 당연히 안되는 일이었고 영화에서는 열자취급의 예이다
중국학과 09학번 김다경 1. 이몽학은 부폐하고 망가진 조정을 바꾸고 대동세계(일종의 이상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2. 동인 : 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훈구파들이 물러나고 중앙 정계를 장악한 사림파들 가운데서 신진 관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당파. 서인 : 15세기 말 이후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훈구파의 심한 탄압을 이겨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중앙정계를 장악한 사림파. 3. 아직까지도 드라마같은것을 보게되면 서자출신은 무조건 무시당하는데 제사에 참여하는것자체는 서자 출신에게는 법적으로 차별 받기에 꿈도 못 꾸는일이다.
국어국문학과 04학번 손성국 1. 혁명은 좋았지요. 하지만 이몽학은 모든걸 버리고 오로지 대동만을 추구했기에 실패했습니다. 대동의 본질을 잊은게지요. 2. 당파싸움이 한창 치열했던 때였습니다. 이이가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음에도 당파 싸움때문에 실행되지 못했죠. 3. 그렇죠. 그 당시 서자는 있으나 마나였으니까요. 재산상속뿐 아니라 모든면에서 서자는 불리한 계급이었습니다. 심지어 관직에도 나갈수 없었죠.
정보컨설팅학과 08학번 김해인 1. 썪어빠진 사회를 뒤엎어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조정대신 왜구와 맞써싸워 나라를 지키려 했다.
2. 동인:조선 중기의 정파.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훈구파들이 물러나고 중앙 정계를 장악한 사림파(士林派)들 가운데서 신진 관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당파이다. 서인:15세기 말 이후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훈구파(勳舊派)의 심한 탄압을 이겨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중앙정계를 장악한 사림파.
3. 서자출신은 조선시대뿐아니라 아직까지 현대사회에도 공평하지 못한 대우를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보컨설팅학과 08학번 김형규 1. 망가진 조정을 개척하기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2. 동인은 진보적 성향 서인은 보수적성향 동인 : 조선 중기의 정파. 선조 즉위 후 훈구파들이 물러나고 중앙 정계를 장악한 사림파들 가운데서 신진 관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당파이다. 서인 : 15세기 말 이후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훈구파의 심한 탄압을 이겨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중앙정계를 장악한 사림파이다. 3. 서자는 첩의 아들을 말하는것으로 조선시대 신분계급에 의하면 서자는 집안 제사에 참여하기 어려웠다
광고홍보언론학과 10학번 조희영 1.대동은 본래 왜구를 무찌르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데 목적을 두어 먼저는 조정에 대한 개혁을 강행하였으나 나중에 이몽학이 정여립을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고자 하였다. 2.동인 : 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훈구파들이 물러나고 중앙 정계를 장악한 사림파들 가운데서 신진 관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당파. 서인 : 15세기 말 이후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훈구파의 심한 탄압을 이겨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중앙정계를 장악한 사림파.
3.서자는 그 출신성분이 비천하다 여겨, 신분계급상으로 제사에 참여 하기 어려운것으로 보임
3. 조선은 법제적으로 일부일처제의 국가로서 첩의 신분은 보장되지 않았으며, 첩의 소생또한 정처의 자식과는 차별을 두었는데, 이런 차별은 일반 양반가 뿐만 아니라 왕가와 종친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1. 이몽학의 대동사회는 이몽학이 칼로써 직접집권하여 자신이 원하는 나라를 세우고 하였다.
2. 동인 : 동인은 신진사림이다. 척신정치 개혁에 적극적인 경향을 띄었으며,서인은 기성사림이었다. 척신정치 개혁에 소극적인 경향을 띄었다. 즉, 동인은 진보적인 사림, 서인은 보수적인 사림이였다.
3. 정처(正妻)가 아닌 첩에게서 난 자손을 지칭하는 말이다. 조선시대의 중기에 접어들면서 사림이 등장하고 성리학에의 집중이 심해지면서 이러한 윤행 및 균등상속은깨지기 시작한다. 서서히 장자를 우대하는 풍조가 생기기 시작하였고, 장자가 모든 제사를 맡는 형태로 바뀌면서 서자의 자리도 좁아지며 차별이 심해 제사참여도 어려웠다.
1.자신의 야망과으로인해 스승과 동료를 죽였지만 원래 추구하던 대동사회는 모두가 잘사는 평등사회였다.
2.동인과 서인이 나뉘는 이유는 '그 동안의 훈구 정치를 어떻게 척산 할 것인가' 또 '양반수는 느는데 관직수는 한정되어있는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인해 나뉘고
이에 서인은 그 간의 훈구 정치를 천천히 바꿔 나가자라는 입장이었고 동인은 천천히 할 이유가 있는가 빨리 바꾸자 라는 입장이었습니다.또한 이조 전랑직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대립되는것입니다.
3. '서자'란 정실부인이 아닌 첩의 자식으로써 양반이 아닌 어머니에게서 나 양반취급을 받지못하여 아버지도 아버지라 부르지못하고 형도 도련님이라고 부르는등
많은 제약이 있었고,과거에도 응시하지 못하고 제사도 한단 아래서 지내야 했다.
1. 역사적으로 이몽학이란 인물을 배워본적이 없기 때문에 영화, 즉 픽션적으로 판단할때 이몽학의 대동세계가 지향한점은 백성들의 안위라고 생각됬다.
말그대로 대동세계...평등사회라고 생각된다.
2. 중고등학교때 배운 지식으로 설명을 하자면 사림이 선조초에 동인과 서인으로 분당이 되었고, 동인은 선조말에 다시 북인과 남인으로 서인은 숙종초에 노론과 소론으로 붕당이 되었다. 동인은 진보적성향, 서인은 보수적성향으로 생각하면 맞다고 생각한다.
3. 조선시대에는 반상제도가 확고하여 서자는 제사에 참여하기 어려웠다고 생각하며, 자료를 조사하면서도 몇몇 사례를 볼수 있었으나 참여도 가능하였다는 자료도 있었다.
10 이소연
1.이몽학은 대동사회를 핑계 삼아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였기때문에 평등사회는 이루어 질 수없었다,
2.동인은 김효원을 지지하는 신진사림이었습니다.
척신정치 개혁에 적극적인 경향을 띄었구요.
학문계승으로는 이황, 조식, 서경덕 문인 중심이었습니다.
반대로 서인은 심의겸을 지지하는 기성사림이었습니다.
척신정치 개혁에 소극적인 경향을 띄었구요.
학문계승으로는 이이, 성혼 문인 중심이었습니다.
3.서자는 기생의 아들이였다. 그렇기때문에 조선시대에서는 신분제도가 있었기때문에 제사 참석도 어려웠으며 다른것에서도 많은 제약이있었다,
1. 이몽학의 대동세계가 지향한 것은 처음엔 왜놈들을 물리치기 위함이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부패한 조정에 대항해야했다. 결국 이몽학은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는 상황까지 가버렸다.
2. 동인 : 조선 중기의 정파. 선조 즉위 후 훈구파들이 물러나고 중앙 정계를 장악한 사림파들 가운데서 신진 관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당파이다.
서인 : 15세기 말 이후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훈구파의 심한 탄압을 이겨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중앙정계를 장악한 사림파이다.
3.영화에서 나온 양반집안의 서자 한견자는 조상의 제사에 술도 못올릴만큼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시대와 상황이 서자를 매우 낮게 여겼다.
제일 생각나는 부분은 서자인 한견자가 모든 가족들이 죽임을 당하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위해 이몽학을 찾아 떠났을 때 만난 백지가 넌 꿈이 없다고 말했을 때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꿈꿔보지도 못하는 서자였다. 그 만큼 서자가 하는 모든 행동과 생각에는 한계가 있었다.
1.대동세계는 원래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직이었지만, 이몽학은 자신이 왕이 되어 정권을 잡고 부와 권력을 누릴 욕심으로 변질되었다.
2. 동인과 서인 둘다 사림이라는 점에서 척신정치를 하자는 뜻은 같지만 척신정치를 빠르게 하자는 급진적인성격의 동인과 여태까지의 훈구정치를 천천히 바꾸자는 진보적인성격의 서인으로 나뉘어 졌다.
3.서자는 본처가 아닌 첩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뜻하며, 이 영화에서도 한견자는 본처가 아닌 기생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기 때문에 서자라 불리며 당시 홍길동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양반취급도 못받고 제사상도 못 올리는 등의 한계를 지닌 불쌍한 존재였다
대체적으로 영화는 재미가 없었다. 영화의 정체성이 부족했으며 너무 많은 생각을 전하느라 기준이 되는 주제가 없었던것으로 생각된다.
이몽학은 자신의 생각대로 대동사회를 이루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냉정한 인물이였다.
동인은 김효원을 지지하는 신진사림이였다. 척신정치 개혁에 적극적인 경향을 띄었다. 반대로 서인은 심의겸을 지지하는 기성사림이였다.
척신정치 개혁에는 소극적인 경향을 띄었다.
조선시대에는 서자출신은 양반들의 대동사회에 함께할 수 없는 존재였던것으로 보인다.
양반 그들만의 그들이 해석하고 싶은 대로의 사서삼경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것은 서자가 양반들에게 맞으며 말한 부분에서 알수 있다.
1. 조선시대 이몽학이 생각한 대동 사회는 아마 자신이 왕이 되어 부패된 정치를 다 바꾸고 왜군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백성들을 위한 평등사회가 아닌 단지 이몽학의 욕망이 만들어 낸 사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2. 동인은 훈구정치를 빨리 바꾸라는 입장이고, 서인은 천천히 바꾸자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서로 이조 전랑 직을 차지하기 위해 대립했다.
3. 조선시대 서자 출신은 제사뿐만 아니라 호칭, 서열, 배움, 혼인에 있어서도 많은 제한과 제약이 따른다. 그래서 다른 형제와는 다르게 차별이 많았을 것이다.
1. 이몽학이 지향햇던 대동사회라기 보다는 대동사회라는 것을 이용해 자신이 왕이 되기위한 하나의 수단이였다.
2. 동인은 이황 조식, 서경덕의 학문을 계승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신진 세력들이 참여 하여 처음으로 붕당의 형세를 이룬 것이고, 이에 반해 서인은 이이와 성혼의 문인들이 가담함으로써 또 하나의 붕당의 모습이 갖추어졌습니다.
쉽게말해 사상의 대립때문에 나뉘어 진것 같습니다.
3. 정처(正妻)가 아닌 첩에게서 난 자손을 지칭하는 말로 조선시대 서얼은 하나의 특수한 신분층으로서 법적으로 차별을 받았다.
대동세계를 위해 설립된 대동계는 평등한 세상을 지향하고 왜를 물리치려고 만든 단체이지만 고유한 정신이 흐려지고 이몽학은 이 대동계를 통해 왕이 되려는 야망을 품게 된다. 혜화동에 거주하던 김효원의 당을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동인' 상대적으로 서쪽에 거주하던 심의겸을 지지하던 기존사림들의 당을 '서인'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왜가 쳐들어오고 있는 순간까지도 동인과 서인은 자신들의 권위와 명예를 위해 싸우는 모습이 웃겼지만 그 뒤에는 모를 씁쓸함이 있었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영화를 보면서 또한 알 수 있었다.
이몽학이 추구했던 대동사회는 외를 물리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려던 순수한 단체였지만 점차 이몽학의 개인적인 수단으로 이용돼 점차 변질되고있다.
동인은 진보적인 사림, 서인은 보수적인 사림이다
서자는 정실부인이아닌 첩이나 다른여자와의 관계에서 생겨난 자식을 뜻한다 대부분의 서자는 정통성이없다며 천대받고 무시받던 시대였으며 이러한 계급이 존재함으로서 서자라는 이유만으로 왕이되지못하거나 양반집에서조차 제대로 대접받지못했다
무역학과 1062058 이효림
이몽학은 외적으로는 왜구를 물리치자는 명분으로 대동세상을지지하지만 자신이 왕이 되기위한수단으로 이용했다.
개혁에 적극적성향을가진 동인세력과 개혁에 보수적인성향을가진 서인세력이 서로 대립을이루는데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서로 개혁에 대해 무리를 이루고 주장들을하고 있지만 이몽학이 대동계를 자신이 왕이 되기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려한것처럼 동인들과 서인들도 각각 개인의 이익을 더 챙기기위한 명분이 아니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1.이몽학이 자신의 스승인 정여립을 죽이고 대동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반란을 감행했다.
본래는 외적을 무찌르기 위한 모임이었으나 이목학이 스승을 죽임으로써 조직을 장악하여 왕이되고자 함
2.이조전랑이후 붕당이 되어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어 졌다 동인은 진보적성향 서인은 보수적성향으로 김효원의 당을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인 서쪽에 거주하던 심의겸을 지지하던 당을 서인이라 부르게 되었다
3.양반과 기생사이에 낳은 자식으로 서자는 조선 신분제도에서 양반이 아님으로 집안사람으로 인정받기 힘들었다 더욱이 조선시대에 사회질서로 제사는 집안에 큰 행사로써 양반이 아닌 서자가 제사에 참여하는것은 있을수 없었다
경제학과 07학번 이형찬
1.이몽학은 썩어빠진 조정을 개척하기위해 대동계를 구성했지만 자신의 야망을 위해 대동계의 본래 다짐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점을보이게된다
2.동인은 조선중기의 정파 ,서인은 조선시대 붕당정치 초기의 당파이다. 이조전랑 자리를 둘러싸고 분열이 생겼는데 기성사류를 지지하는 파를 서인 신진사류를 지지하는 파를 동인이라한다.
3.서자출신은 모든면에서 혜택을 받지못했기때문에 제사에 참여하는것은 당연히 안되는 일이었고 영화에서는 열자취급의 예이다
중국학과 09학번 김다경
1. 이몽학은 부폐하고 망가진 조정을 바꾸고 대동세계(일종의 이상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2. 동인 : 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훈구파들이 물러나고 중앙 정계를 장악한 사림파들 가운데서 신진 관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당파.
서인 : 15세기 말 이후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훈구파의 심한 탄압을 이겨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중앙정계를 장악한 사림파.
3. 아직까지도 드라마같은것을 보게되면 서자출신은 무조건 무시당하는데 제사에 참여하는것자체는 서자 출신에게는 법적으로 차별 받기에 꿈도 못 꾸는일이다.
국어국문학과 04학번 손성국
1. 혁명은 좋았지요. 하지만 이몽학은 모든걸 버리고 오로지 대동만을 추구했기에 실패했습니다. 대동의 본질을 잊은게지요.
2. 당파싸움이 한창 치열했던 때였습니다. 이이가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음에도 당파 싸움때문에 실행되지 못했죠.
3. 그렇죠. 그 당시 서자는 있으나 마나였으니까요. 재산상속뿐 아니라 모든면에서 서자는 불리한 계급이었습니다. 심지어 관직에도 나갈수 없었죠.
정보컨설팅학과 08학번 김해인
1. 썪어빠진 사회를 뒤엎어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조정대신 왜구와 맞써싸워 나라를 지키려 했다.
2. 동인:조선 중기의 정파.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훈구파들이 물러나고 중앙 정계를 장악한 사림파(士林派)들 가운데서 신진 관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당파이다.
서인:15세기 말 이후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훈구파(勳舊派)의 심한 탄압을 이겨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중앙정계를 장악한 사림파.
3. 서자출신은 조선시대뿐아니라 아직까지 현대사회에도 공평하지 못한 대우를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보컨설팅학과 08학번 김형규
1. 망가진 조정을 개척하기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2. 동인은 진보적 성향 서인은 보수적성향 동인 : 조선 중기의 정파. 선조 즉위 후 훈구파들이 물러나고 중앙 정계를 장악한 사림파들 가운데서 신진 관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당파이다.
서인 : 15세기 말 이후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훈구파의 심한 탄압을 이겨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중앙정계를 장악한 사림파이다.
3. 서자는 첩의 아들을 말하는것으로 조선시대 신분계급에 의하면 서자는 집안 제사에 참여하기 어려웠다
광고홍보언론학과 10학번 조희영
1.대동은 본래 왜구를 무찌르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데 목적을 두어 먼저는 조정에 대한 개혁을 강행하였으나 나중에 이몽학이 정여립을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고자 하였다.
2.동인 : 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훈구파들이 물러나고 중앙 정계를 장악한 사림파들 가운데서 신진 관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당파.
서인 : 15세기 말 이후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훈구파의 심한 탄압을 이겨내고 16세기 중엽 선조 즉위 후 중앙정계를 장악한 사림파.
3.서자는 그 출신성분이 비천하다 여겨, 신분계급상으로 제사에 참여 하기 어려운것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