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신라김씨(凡 新羅金氏)는 씨족의 근원을 신라초기 태보공(太輔公) 김알지(金謁智)가 서라벌의 시림(始林)에서 탄강(誕降)한 시점으로 하여 경순왕(敬順王)까지 28代를 계승(繼承)하였으며 려조 이조(麗朝 李朝)를 거쳐 250여 종파로 분관(分貫)되어 오늘에 이른다.
신라김씨는 만백성의 선두에 서서 신라 천년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창조, 발전시키고 삼국통일(三國統一)의 위업(偉業)을 달성케한 씨족(氏族)이다.
선산김씨는 신라왕실의 후손(後孫)으로 경순왕(敬順王)의 제8자(子)이며 고려태조(高麗太祖)의 외손자(外孫子)인 상서령, 일선군(尙書令, 一善君) 김추(金錘)를 시조(始祖)로 하고 관향(貫鄕)을 선산(善山)으로 삼았다. 그리고 후대에 삼척(三陟), 온양(溫陽), 희천(熙川), 진주(晉州), 원주(原州)로 분관(分貫)하여 계승(繼承)한다.
고려시대 선산김씨는 크게 성창(盛昌)한 명문사족(名門士族)이다. 많은 분이 봉군(封君)되고 시호(諡號)를 받은 것을 비롯하여 수많은 공경 장상(公卿 將相)을 배출하여 뭉문대가의 반열에 올랐고 그 후예(後裔)들은 개경(開京)을 중심으로 세거(世居)하면서 고려의 융성(隆盛) 발전에 지도적 역할(指導的 役割)을 다하여 크게 공헌(貢獻)하였다.
고려말엽에 검교중랑장(檢校中郞將)을 지낸 16세(世) 김문(金文)은 슬하(膝下)에 4형제를 두었는데 이로부터 선산김씨는 4대 계파(系派)를 이룬다.
장자(長子)인 김성원(金成元)은 서운관정(書雲觀正)을 지내고 중서령(中書令)으로 중서령공파(中書令公派) 파조(派祖)가 되었고 그 아들 김기(金起)는 정순대부 광주목사(正順大夫 廣州牧使)를 지내고 나라에 공(功)을 세워 화의군(和義君)에 봉(封)하여졌으나 조선(朝鮮)이 개국(開國)되자 벼슬을 버리고 선산(善山)으로 내려가 고려의 유신(遺臣)으로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節義)를 지켜 은거 종신(隱居 終身)하였다.
화의군(和義君)의 현손(玄孫)으로 김광필(匡弼), 광보(匡輔), 광좌(匡佐) 3형제분을 두었는데 장자(長子)에 부사직공 김광필(副司直公 金匡弼)의 후손은 고향에서 제주로도 갈 목적으로 전라도로 떠났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을 뿐 그 후로 소식이 없고 중(仲)에 충순위공 김광보(忠順衛公 金匡輔)는 슬하에 현(俔), 질(侄), 위(偉), 신(信)의 4형제를 두어 향지(鄕地)와 충청, 전라 등지에 산거(散居)하며 충순위공파종(忠順衛公派宗)을 이루고 계(季)에 참판공 김광좌(參判公 金匡佐)는 슬하에 여섯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세인의 추중(推重)을 받았으며 6파(派)로 나뉘어져 현재에이른다.
이를 기점(起點)으로 화의군(和義君) 자손(子孫)들은 선산(善山)을 중심으로 세거 번성(世居 繁盛)하며 후손들의 유행(儒行)을 닦고 절의(節義)를 숭상(崇尙)하고 수많은 자손(子孫)들이 문무(文武) 대소(大小)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하여 고위관직(高位官職)에 등용(登用)되었으며 사대부(士大夫)의 명문(名門)으로 경향(京鄕)에 그 명성(名聲)을 떨쳤다.
둘째 아들인 판서공파조 김성부(判書公派祖 金成富)는 고려조 전의부정(典醫副正)을 지내고 조선개국 원종공신(願從公臣)에 책봉(冊封)되어 벼슬은 호조판서(戶曹判書)에 이르렀다. 태조(太祖)가 왕위(王位)를 정종(定宗)에게 물려주고 함흥(咸興)으로 이거(移去)할 때 호종(扈從)하였다가 태조(太祖)가 환도(還都)할 때 복귀(復歸)하지 않고 함경도 길주(咸鏡道 吉州)에 정착(定着)하였다. 그 아들인 김경도(金敬道)는 조산대부 밀양교수(朝散大夫 密陽敎授)를 지내고그 후손들은 함경도 단천 고읍(端川 古邑)을 중심으로 길주(吉州), 성진(城津), 이천(利川), 풍산(豊山), 북청(北靑), 홍원(洪原) 등(等)에 산거(散居)하며 많은 자손들이 관직(官職)에 나아가 문중(門中)을 빛냈다.
광복(光復)이후 국토의 분단으로 연락이 두절(杜絶)되고 남하(南下)한 이만여 종인(二萬餘 宗人)만 남종(南宗)과 연락(連絡)되어 대동종친회(大同宗親會)를 중심으로 종사(宗事)를 같이 수행(遂行)하고 있다.
셋째 아들인 좌의정공파조 김성룡(左議正公派祖 金成龍)은 려말(麗末) 산원동정(散員同正)을 지냈고 조선개국원종공신(朝鮮開國願從功臣)에 책봉(冊封)되어 벼슬은 대광보국 숭록대부 좌의정(大匡輔國 崇綠大夫 左議政)에 이르고 화의부원군(和義府院君)에 봉(封)하여졌다.
그의 아들 김탁(金
)은 통정대부 병조참의(通政大夫 兵曹參議)를 지냈으며 후손들이 벼슬에 나아가 가계(家系)를 유지계승(維持繼承)하고 경기도 이천(京畿道 利川)을 중심으로 산거(散居)하고 있다.
넷째 아들인 별장공파조 김성여(別將公派祖 金成呂)는 려말(麗末) 별장동정(別將同正)에 이르고 그 자손은 평안도(平安道)에 세거(世居)하며 그 아들 김선(金選), 손자 김요신, 순신(金堯臣, 舜臣)이 있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 행적(行蹟)은 알지 못하고 있다.
하나의 조상(祖上), 같은 자손(子孫)이라 하루 속히 연락(連絡)이 닿기를 기대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