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갓에 도롱이 입고 세우 중에 호미메고
山田을 흩매다가 녹음에 누었으니
목동이 牛洋을 몰아 잠든 나를 깨우도다
* 세우중(細雨中) : 가랑비 속. 흩매다가 : 흩어 매다가
<감상> 지은이도 한 때는 벼슬에 나아간 적이 있었으나, 무
오사화(戊午士禍)에 결국은 희생되었다.
파쟁과 모함, 권모술수 속에서 해가 뜨고 해가 저물던 중세
우리 나라 선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영일(寧日)이 있을 수
없었고, 자기 벼슬에 대한 혐오는 곧잘 초야(草野)에 묻혀
버리는 것으로 웅변되곤 하였다.
권문(權門)을 멀리하고 초야에 묻히면, 생활태도나 사고방식
도 일변하여 시골 농부들과 어울려 그들처럼 생활하였고, 또
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자신을 위한 가장 자유스러운 보신
책(保身策)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가랑비 속에 삿갓과 도롱이를 걸치고 호미를 든 작자의 모습
은 어디를 보나 때묻은 벼슬아치의 모습은 찾아볼 길 없고,
흙 냄새 물신 풍기는 농부 그대로가 아닌가. 거기에 아침 한
나절 산밭을 매다가 한낮이 되어 점심을 치르고, 노곤한 몸
을 풀밭에 뉘인 모습 또한 가식 없는 농군의 모습이요, 생활
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낭만적인 생활에 젖어 있을 때, 거기에는 파쟁도, 모
함도, 권모술수도 있을 수 없으며, 오직 해방된 자유인으로
서의 평화와 안식으로 충만 되어 있을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저만치 목동이 이끌고 다가
오는 소와 염소들의 울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 김굉필(金宏弼) : 조선전기의 학자, 호는 한훤당(寒暄堂).
김 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성리학에 정통했고, 효성이 지
극했음. 1494년 참봉(參奉)에 천거되고 형조좌랑(刑曹佐郞)
이 되었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류되어 사사(賜死)당
함. 시호는 문경공(文敬公).
작자는 어려서는 성격이 호방하고 거리낌이 없어 거리를 돌
아 다니면서 사람들을 매로 치는 일이 많아 그를 보면 몸부
터 피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분발하여 점차 학문에 힘쓰게 되었고 점
필재의 문하에 들어가 <소학>을 배울 때 어느날 스승은
"네가 성학에 뜻을 두었다면 마땅히 이것부터 먼저 시작하라"
하였다 그의 이말은 꿈속에도 잊지 아니하고 평생에 소학으
로 몸을 닦고 옛 성현의 도로써 준칙을 삼아 뜻을 굳게 하고
학문에 전력하며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사대부의 가정에 가훈이 있는 경우가 드문 것을
보고 "가범(家範)"을 지어 자손을 훈계하고 실행하였는데 요
즘의 우리가 말하는 가훈의 선구자인 셈이다.
학문과 교육에 전념하였던 그가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
의 문도로서 분당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유배되었다가 갑자
사화때 드디어는 무오당인이라는 죄목으로 극형을 받게 된다.
그가 극형을 받을 때 목욕 재계한 뒤에 의관을 갖추고 태연
한 안색으로 "신체발부는 이 모두 부모에게서 주신 것이다.
이제 상처를 받게되니 죄스럽기 비할 데 없다"는 말을 남기
고 목에 칼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가 그의 나이 51세였다. 죄없는 선비로 죽음을 당하였으
나, 마지막 순간에도 죽음에 임하는 선비의 의연한 모습을
보였으며, 수염 하나까지 부모를 생각하며 소중히 하는 효행
의 실천을 보여주었다.
후에 그의 억울함이 밝혀져 도승지에 추종되고 개혁정치가
추진되면서 성리학의 기반구축과 인재양성에 끼친 업적이 크
게 부각되었는데 조광조를 비롯한 제자들의 정치적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문하에는 수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
는데 조광조, 이장곤, 김안국, 김정국등이 있다.
20여인에 달하는 그의 문인들은 두차례나 걸친 사화의 소용
돌이 속에서도 크게 타격을 받지 않았는데, 이는 그의 학문적
성향이 치인(治人)보다는 수기(修己)에 편향되어 적극적 능동
적으로 대응하는 자세가 결여된 탓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첫댓글 세도가 정치는 독제자의 정치라고 하는 말이 ~~~~ ^^* 설 명절 즐겁게 보내셨는지요 언제나 건강하세요
전 시조 안좋아해요... ()^^* 월조님 이름생각해내느라 한참 걸렸네요...()^^* 새물내님 정치는 어느나라나 머리 아파요... 설 잘 보내셨나요...??
역사를 돌이켜 보는 것에서 반성을 그리고 교훈이 있을 것 같아 가정살림도 소규모의 정치 형태가 아닌가 요 ^^* 보석님 만나 반갑구요 덕담 또한 감사합니다 님에게도 늘 건강과 행운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일상에 어떤 마음을 갖고 사는가가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에는 내일이 보장되어 있지 않을까요? 새물내님 아직 고향에서 눈밟던 기분에 취해 있습니다.건강하시고 사업 번창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