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첨연(柳燂然) 묘표(墓表) - 송시열(宋時烈)
공주(公州) 장척면(長尺面) 대강(大江)의 북쪽에 기이한 선비가 있었는데, 유첨연(柳燂然)군으로, 자(字)는 중명(仲明)이다. 성질이 질탕(跌宕)하고 몸집이 뚱뚱하고 크며, 행동을 절제하되 작은 예절에 구애받지 않았다. 남과 더불어 말할 때에는 해학(諧謔)을 섞어서 말하므로 듣는 사람들이 때때로 혹은 포복 절도(抱腹絶倒)하였다.
그러나 친구와 교제할 때에는 반드시 그 사람을 골라서 하였고, 향리(鄕里)에서 선(善)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보기를 마치 자신을 더럽힐 것처럼 하였으며, 인륜(人倫)을 가장 아껴서 사람들 가운데 효제(孝悌)와 행실(行實)이 있는 자가 있다고 들으면 마치 자기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기뻐하였다. 사람들이 간혹 그에게 벼슬하기를 권하면 다만 농담으로써 이에 대답하였을 뿐이고, 또한 모나고 이상한 말을 하지 않았다.
나와는 운치(韻致)와 기질이 서로 같지는 아니하였으나, 또한 능히 서로 배척하지도 않았다. 내가 일찍이 죄를 얻어 북쪽 지방에 유배되었을 때, 군이 서로 따라서 한강(漢江)을 건너고 철령(鐵嶺)을 넘어서 덕원(德源)까지 이르러, 서로 1개월 동안 머물다 돌아갔는데, 이별할 때에 임하여 군은 또한 위로하는 말 한마디 없었다.
내가 죄를 용서받고 돌아와서 화양동(華陽洞)에 들어가서 두문 불출(杜門不出)하고 일상 거주할 때에 군이 또 찾아와서 서로 지켜 주면서 밤과 낮이 다하도록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옷깃을 여미고 말하기를,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격언(格言)을 얻어들으면, 일찍이 이것을 알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합니다.” 하였다. 이때부터 왕래가 끊이지 않았는데, 비록 생식하고 산골짜기 물을 마시더라도 또한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 지금 그가 죽었으니, 어디에서 그런 사람을 얻을 것인가?
군은 만력(萬曆) 기미년(己未年, 1619, 광해군 11)에 태어나서 숭정(崇禎) 후(後) 병인년(丙寅年, 1686, 숙종 12)에 몰(歿)하였는데, 득년(得年)은 68세이다. 공주(公州)의 동쪽에 있는 명학동(鳴鶴洞) 선영(先塋)에 장사지냈다.
군은 진주(晉州) 사람인데, 시조는 문화(文化) 사람 대승(大丞) 유차달(柳車達)로서 고려조(高麗朝)에 명신(名臣)이 되었고, 그 후손인 유언침(柳彦沈)이 훈공(勳功)으로써 진주에 옮겨서 봉(封)해졌다.
조선조에 유진동(柳辰仝)은 공조 판서(工曹判書)를 지냈고, 유용(柳溶)은 경원 부사(慶源府使)를 지냈는데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증직(贈職)되었고, 유형(柳珩)은 삼도 수군 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지냈는데, 영의정(領議政)ㆍ부원군(府院君)에 추증(追贈)되었고, 유충걸(柳忠傑)은 익위사 익위(翊衛司翊衛)를 지내고 참판에 증직되었는데, 이분들이 군의 고조부(高祖父)ㆍ증조부(曾祖父)ㆍ조부(祖父)ㆍ아버지가 된다. 어머니 구씨(具氏)는 능해군(綾海君) 구성(具宬)의 딸이고, 계비(繼妣) 이씨(李氏)는 그 아버지가 직장(直長) 이원영(李元英)이다. 군은 계비(繼妣)의 소출이다.
부인 이씨(李氏)는 전주(全州)에 본관을 둔 지평(持平) 이수함(李守諴)의 딸인데, 공의 묘소에 부장(祔葬)하였다. 아들은 유성채(柳星彩)ㆍ유성징(柳星徵)ㆍ유성진(柳星晉)인데, 유성채는 부사(府使)를 지냈다. 딸은 4녀인데, 사위는 현감(縣監) 이의조(李儀朝), 봉사(奉事) 조의한(趙儀漢), 무과(武科)에 급제한 정준(鄭濬), 사인(士人) 백시면(白時勉)이다. 내외 손자(孫子)와 증손자(曾孫子)가 많아서 일일이 다 기록할 수가 없다.
아! 군은 남보다 뛰어난 재주로써 문필(文筆)은 속세(俗世)를 벗어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장차 할 일이 있을 줄 알았는데, 끝내 어둠에 잠겨서 몰(歿)하고 말았으니, 어찌 안타까움을 이길 수가 있겠는가? 군이 벗한 바는 이상숙(李相)ㆍ이중우(李仲羽) 형제(兄弟)라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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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國朝人物考四十二 / 士子
유첨연柳燂然 墓表[宋時烈]
公州長尺面大江之北, 有奇士焉, 曰柳君燂然, 字仲明。 跌宕恢偉, 制行不拘小節, 與人言, 間以諧謔, 聞者時或絶倒。 然遊從必擇其人, 鄕里有不善者, 視之若浼。 最愛人倫, 聞人有孝悌實行者, 若己有之。 人或勸之仕, 則只以戲語答之, 亦不爲崖異之言。 與余韻氣不同, 而亦不能相捨。 余嘗得罪竄北, 君相隨渡漢江, 踰鐵嶺, 至于德源, 相留一月而歸, 臨別亦無愍勞語。 余赦還入華陽洞, 杜門端居, 君又尋到相守, 窮日夜談話, 忽斂衽曰: “得聞程、朱格言, 恨不早知也。” 自是來往不絶, 雖木食澗飮, 亦不見其厭色也。 嗚呼! 今其死矣, 何處得來?
君生於萬曆己未, 沒于崇禎後丙寅, 得年六十八。 葬于州東鳴鶴洞之先兆。 君晉州人, 始祖文化大丞車達, 爲麗朝名臣。 其後彦𤤌, 以功移封于晉。 本朝辰同, 判書: 溶, 府使, 贈判書: 珩, 統制使, 贈議政、府院君: 忠傑, 翊衛, 贈參判, 是君高、曾、祖、考也。 妣具氏, 綾海君宬之女: 繼妣李氏, 其考直長元英。 君繼妣出也。 配李氏, 籍全州, 持平守諴之女, 祔葬焉。 男星彩、星徵、星晉。 星彩, 府使。 四女: 婿縣監李儀朝、奉事趙儀漢、武科鄭濬、士人白時勉也。 內外孫曾, 多不能盡錄。
嗚呼! 君以傑然之才, 文筆亦脫俗驚人, 若將有爲, 而竟沈晦以沒, 可勝惜哉? 君所友, 李相䎘、仲羽兄弟云。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