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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가평의 잣나무 숲으로 향하는 길 |
지금 생각해 보면 국가나 학계 또는 조경업자들이 만들어 낸 좁은 의미로서 나무와 식물에 대한 기준 틀 이외의 숲에 대한 실상은 상상하기 조차 힘들었다. 일반인들은 그저 값비싼 소나무류나 희귀식물, 변이종 등이 돈이 된다니까 관심을 두는 정도다.
말하자면 국가나 국민이 숲에 두는 관심사는 오직 돈이 되는 나무뿐 이였다. 참고로 몇 해 전인가 내부순환도로를 공사할 때 북한산 밑 개인이 운영하는 자비식물원이 있었는데 토지보상 중 나무이외의 야생화들이나 희귀식물에 대한 보상체계가 전무하다 하여 안타까워했던 적이 있다.
이렇듯 현대의 과학적 조림은 군대의 열병식(종횡의 격자식)을 연상하는 산림관리체계가 전부다. 수종(樹種)도 당장에 돈 되는 단일수종으로 통일된다. 이는 예전에 숲에서 이루어졌던 채집, 방목, 어로, 목탄제조 등 다양함이 사라졌고, 숲에 담겨 있던 흥미진진한 의미들이 사라진 것이다. 어느새 숲이 나무 공장이 돼버린 것이다.
여기서 숲의 서비스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유럽연합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Ecosystems and Biodiversity : TEEB)'연구 그룹의 자료를 보면 흥미롭다. 숲은 식량, 물, 원자재, 유전자원, 의약자원 등의 자원제공 서비스, 공기 정화, 기후조절, 수자원 조절, 폐기물 처리와 정수, 침식방지 등의 조절 서비스, 휴양과 관광기회를 제공하는 문화 서비스까지 다양하다. 숲의 가치를 우리 돈으로 환산해보면 1ha당 11,488,210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단다.
▲ 산 위로 난 길을 걷다보면 마음에 평화가 온다 |
매월 둘째 네째주가 되면 생태적 삶을 그리워하는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서 북동쪽으로 약 45km에 위치해 있는 가평군 하면 대보리(大報里)의 잣나무 숲으로 달려간다. 집이 있는 남양주시 진접에서는 자동차로 20분 정도면 닿는 곳이다.
이곳 인근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잣나무 유림지인 경기도 가평군 상면 임초리와 행연리가 있다. 임초리는 예로부터 숲과 풀로 유명한 곳이다. 임초리(林草里)란 숲 풀이의 뜻글자로 숲으로 덮여 있다는 뜻으로 숲과 풀이 무성하여 임초라 부르던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 숲은 생태계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일터이자 인간에게는 무한한 서비스를 제공 |
아무튼 대보리가 속해있는 곳의 남쪽에는 조종천이 흐르고, 북쪽으로는 대금산이 30여 년 전에 심은 울창한 잣나무 숲과 함께 펼쳐져 있다. 자연마을로 가평막, 건너말, 다부산, 버섭구지, 아랫하곡 등이 있고, 대금이는 이 마을이 대금산 밑에 자리 잡고 있다는데서 유래된 곳이다.
가평의 잣나무 숲은 독특한 기후 덕분에 깊은 향과 맛을 내는 ‘잣’을 생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와 더불어 산수(山水)도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기에 축령산휴양림은 물론 아침고요수목원, 꽃무지풀무지수목원 등이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주말마다 가평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나들이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 자연과 온전히 만나기 위한 5월 잣나무 숲에서의 1박2일 캠핑 |
이곳 아지트가 위치한 곳은 아직까지 개발에서 빗겨나 있는 한적한 곳이라 좋다. 차제에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자연생태계를 지켜가면서 최소한의 자급자족을 산림자원을 통하여 이루고 청정이나 적정기술을 활용한 생태순환마을을 꿈꾼다.
마을 주민들은 도시의 삶을 접고 내려와 자신의 공간을 작고 소박한 생태건축으로 짓되, 산림자원을 연구 개발하는 일터와 삶터를 동시에 두는 것이다. 당연히 이곳 주민들은 농업이 아닌 산림업으로 사회적인 기업을 영농조합이든 산림조합 형태로 엮어 나가는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당일 매회 모임장소로 쓰이던 창고공간을 탈피하여 해발 450미터 높이에 위치한 잣나무 숲으로 들어가 하룻밤(1박2일)을 온전한 휴식과 치유의 시간으로 보내고 돌아왔다.
▲ 잣나무 숲으로 오르는 중간 쯤 만난 금낭화 |
아무도 찾지 않는 숲 속에 자리를 잡고는 지인과 함께 텐트를 치고 합심하여 집도 짓고 저녁밥으로는 지천에 널려있는 연하디 연한 야생화와 뽕나무 잎으로 샤브샤브를 즐겼다. 이후 진한 커피향을 내 뿜으며 캠핑의 멋스러운 밤을 맞았다. 그날 밤, 텃새를 부리는 멧돼지들의 고함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으면서 잠이들었다.
새벽녘 잠시 체중감량을 하면서 느끼게 된 사실은 안개 낀 대금산의 밤은 잣나무에서 내뿜는 맛있는 공기로 인해 황홀했다는 것, 바람소리도 없는 고요한 밤이 지나고 이른아침이 되자 산새들은 일제히 지저귐으로 단잠을 깨운다.
날씨가 참말이지 좋다. 이곳 드넓은 초원에는 연두와 연두를 벗어난 초록, 초록을 벗어나려고 하는 녹색들이 어우러진 풀잎과 나뭇잎들로 장관이다. 더우기 허리께까지 자란 기름나물의 흰꽃은 그 어떤 수목원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한 없이 평화로운 아침, 지인은 하룻밤을 보낸 소감을 넌지시 풀어냈다. 그날 밤, 온갖 짐승들과 새들의 울음소리를 갑자기 멈춰 세운 무시무시한 짐승(?)의 외마디에 놀랐다며 리얼리티한 새벽 3시 상황을 설명했다.
▲ 깍아지른 암벽 밑 뭇 짐승의 자연호텔... 뒤로 연두빛 풍경이 장관 |
우리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싱그러운 연두빛 아침을 즐기면서 잣나무 숲으로 들어가 무궁무진한 잣 향기를 마시며 산속으로 산속으로 깊숙이 깊숙이 들어갔다. 깍아지른 암벽을 오르고 내린 곳에 아불싸 이곳의 터줏 대감의 것으로 보이는 호텔을 발견했다.
인적이 접근하기 어려운 커다란 신선바위 밑에 제법 커다란 짐승의 것으로 여겨지는 주거공간은 완전한 생태주택이었다. 잠시 그곳의 신선바위를 벗 삼아 명상에 잠기어 본다....거대한 숲의 바다를 바라보면서 가평의 허파를 넘어 수도권의 허파, 대한민국의 허파, 지구의 허파인 숲을 파괴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야생초 군락지와 숲 속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대금산 정상에 올랐다.
대금산 정상은 녹색의 태평양을 연상시키 듯 온통 초록과 연두의 스펙트럼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숲의 중앙에 잣나무 숲이 주는 색감과 외곾의 활엽수들이 주는 느낌이 멋지다. 눈을 들어 산등성이를 바라보니 멀리 서쪽으로 축령산과 그 옆으로 북한산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운악산과 명지산, 동쪽으로는 호명산과 불기산, 남쪽으로는 죽음산과 철마산 등이 산맥을 따라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 대금산 북쪽 신선바위에서 바라다본 연두와 초록의 숲 풍경 |
소담한 옛 마을과 어우러진 나무와 풀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숲의 진풍경이 연출되는 대금산 정상을 뒤로하고는 잣나무 숲 길을 찾아 조심조심 내려왔다.
누구나 울창한 숲 속을 거닐면 상쾌한 느낌이 든다. 이유 중 하나는 휘발성 방향성분인 피톤치드가 발산되기 때문이다. 이 물질은 사람의 인체에 매우 건강한 작용을 한다. 나무와 식물이 해충이나 곰팡이에 저항하려고 스스로 만들어내는 물질로 각종 감염질환과 아토피 피부염 치료에도 효능이 있다.
최근 국립산림과학원과 서울백병원의 공동 연구결과에 따르면 1개월 동안 산림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한 우울증 환자 9명의 HRSD(우울증 척도)가 평균 13점에서 5점으로 낮아지는 회복을 보였다고 한다.이는 숲이 몸은 물론 마음의 병까지 치유한다는 연구결과다.
▲ 잣나무 숲을 품어주는 대금산 정상에서 인증샷 |
▲ 대금산 하산길, 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숲으로 가자 ! |
산림욕이란 이러한 피톤치드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건강 보전법이다. 피톤치드는 산 위나 아래 보다 잣나무 숲의 가장자리에서 100미터 이상 들어간 산중턱 쯤이 효과적이다. 여기서 잣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는 스트레스를 최대 50%까지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밖에 편백 60%, 소나무 25%로 나타났다. 특이한 것은 전남의 축령산에는 편백 숲을 최고로 치고, 경기 축령산에는 잣나무 숲을 최고로 친다는 것이다.
특히 잣나무는 잎과 열매로 구분되는데 열매를 옛부터 신선들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불렀다. 잎이 5개씩 모여나는 소나무 종류를 합쳐 잣나무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잣나무의 종류가 눈잣나무, 섬잣나무, 스트로브잣나무, 희말라야잣나무 등 4종류가 있다.
▲ 대금산 잣나무 숲이 주는 싱그러움과 넉넉함 그리고 평안함 |
잣나무는 양평이북(한대림)에 심은 것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위해 송진을 많이 가지고 있어 홍송이라부르고 목재로서도 가치가 있다. 하지만 따뜻한 남쪽(아열대)에 심은 잣나무는 살기가 편해서인지 잣 열매는 잘 열리지 않고 나무만 굵게 자랄 뿐이다.
잣나무의 열매는 매년 8월에서 다음해 2월까지 수확한다. 수확시 올해의 열매와 다음해의 열매까지 자라고 있기에 수확시에는 주위가 요망된다. 이때 열매가 아닌 가지를 잘라버리면 다음해의 수확은 물론 잣나무의 수형까지도 엉망이 된다.
▲ 대금산 잣나무 숲은 기름나물의 흰꽃으로 축제의 장 |
앞으로 잣나무 숲은 잣 열매만을 수확하기 위한 숲이 아니라 휴식과 치유의 공간으로까지 그 영역을 넓혀야 한다. 사람에게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타민 등 우리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로 중요하지만 인간의 삶을 더 건강하고 활기차게 해주는 활성성분이 나무와 풀이 존재하는 숲에 있다는 생각을 명심해야 겠다.
아직까지 인류는 건강한 숲 다양성의 가치를 올바르게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더우기 우리나라는 활엽수와 침엽수가 우겨진 산림에 대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대로 평가하지도 받지도 못하고 있음에 마구 훼손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 대금산 정상에서 잣나무 숲으로 내려오는 길목 풍경 |
▲ 잣나무 숲 속에서 만난 뱀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