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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수선원 원문보기 글쓴이: 無憂手
행복한 감정의 공통점은 좋은 느낌
행복 주체는 ‘나’ 아닌 ‘우리’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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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말뿐이 아닌 참다운 세상의 주인이 되고 만물의 영장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과 행동거지를 가져야 할까요. 그냥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영장이라는 호칭에 상응하는 역할과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들은 부처님께서 주신 가르침에서 그 길을 찾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육도 윤회(六道輪廻)의 사슬을 끊고,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길을 일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한 방편들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윤회가 없는 적멸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행이 필요합니다. 또 수행을 잘 하기 위해서는 수심(修心)과 화합(和合)을 명심해야 합니다. 안으로는 내 마음을 잘 다스려 닦아야 하고 밖으로는 남과 중생, 나아가 삼라만상과 화합을 해야 합니다.
화합은 배려(配慮)의 다른 말입니다. 최근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께서 5대 결사를 말씀하셨는데 그 가운데 ‘나눔’이 있습니다. 나눔은 단순한 재물의 보시도 되겠지만 기도에 동참하는 것도 나눔입니다. 그 나눔을 통해서 서로 화합하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갈 때 이 세상은 아름다워 질 수 있습니다.
서로가 화합을 하지 못하면 불편한 관계가 됩니다. 불편한 관계란 보기 싫은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하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팔고(八苦) 가운데 원증회고(怨憎會苦)입니다. 그래서 수심을 잘하고 화합을 잘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불편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는 작선(作善)을 해야 합니다. 착한 일을 해서 선업(善業)을 많이 지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세상의 주인이 되고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질문이 조금은 생뚱맞지만 우리 모두 항상 하는 질문입니다. 물론 정답은 있을 수 없겠지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정답이 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미 ‘팔정도’를 통해 인생을 말씀하셨습니다. 팔정도란 무엇입니까. 세상을 잘 보고, 잘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바르게 보지 않으면 생각이 바르지 못하게 되고 바른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르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것은 잘 보고 잘 생각하고 잘 말하고 잘 행동하면 나눔이 바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행복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도, 자녀들이 공부를 하는 일도, 돈을 버는 일도 모든 것이 행복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이고득락(離苦得樂), 고통을 여의고 행복을 찾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절절하게 고통을 느껴 본 사람만이 커다란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작은 기쁨에도 크게 감동받는 것은 고통을 겪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 겨울에 매서운 추위를 견뎌낸 매화만이 짙은 향기를 피운다는 말처럼 인내하며 치열하게 고통을 견뎌 낸 사람만이 성공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행복은 또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이 다 다를 겁니다. 남편의 월급이 10만 원이 늘어나면 거기에 행복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들이 학급에서 성적이 오르면 기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은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행복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좋은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불행은 좋지 않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좋은 느낌이라는 것은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가족이나 남편이나 아내에게 또는 아들, 이웃, 친구들에게 얼마나 좋은 느낌을 주면서 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로 인해서 행복해 하는지 아닌지를 잘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이 행복한 지 아닌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족함을 안 이후엔 화합이 중요
긍정적 사고와 끝없는 정진 필요
그렇다면 행복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나’는 맞지 않을 겁니다. 만약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산다고 해봅시다. 행복할까요. 100명이 있는데 99명이 불행하고 1명만 행복할 수 있을까요. 가끔 축원을 할 때 보살님들께서 자신은 필요 없고 자녀에 대한 축원만 해달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내가 잘 된다는 것은 가족이 잘 된다는 뜻입니다. 나라는 말은 맞지 않지만 우리, 우리가족, 우리 모두가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도 우리 모두의 행복 즉 나, 가족, 우리 모두가 행복한 것이 목적이 되어야지 나만 행복해지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이 가장 큰 원수와 가장 큰 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원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은혜로운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생각’입니다. 행복도 불행도 바로 내 생각이 만들어 냅니다. 행복한 생각이 행복을 불러오고 불행한 생각이 불행을 불러 옵니다. 내가 저 사람을 생각으로 미워하고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가장 큰 원수도 생각이 만들어 내고 가장 큰 은혜도 생각이 만들어 냅니다.
‘법구경’에서 전생을 알고자 하면 지금 내 모습을 보라고 했습니다. 지금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전생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미래도 지금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관상도 볼 수 있습니다. “요새 안 좋은 일 있니. 얼굴에 안색이 좋지 않구나.”, “얼굴이 좋아 보이네. 좋은 일 있니.” 이런 표현을 보면 우리는 이미 관상을 볼 줄 알면서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 된다는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는 것은 자신이 없고 능력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 또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입니다.
제가 도심에서 주지 살고 있으면서 가끔 한철씩 선방에 갈 일이 있습니다. 10여 년 동안 계속 빠지지 않고 세 달 씩 안거를 보내는데, 한 번은 동안거로 상원사 가는 길의 신성암 토굴을 빌려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 해는 굉장히 추워서 개울물이 모두 얼어붙었습니다. 물이 귀하다보니 안 씻게 됩니다. 양치만 간단히 하고 설거지 대신 랩을 씌워 그릇을 썼습니다. 삼일 지나니 머리카락과 몸이 가렵습니다. 그런데 십 일이 지나니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렇게 보름마다 상원사에 가서 씻으면서 세 달을 보냈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몸은 더 깨끗해 진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산에 있을 때 매일 매일 씻고 닦고 할 때는 행복을 느낄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안 씻고 있어도 그것이 행복이더군요. 왜 그랬을까요. 그 순간 행복을 경험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그 행복은 ‘지족(知足)’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만족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낍니다. 내가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족할 줄 알고 난 이후에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밖으로는 화합을 잘 해야합니다. 화합이란 무엇입니까. 서로 간의 우호감입니다. 우호감이란 무엇입니까.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일에는 반복이 중요합니다. 단련(鍛鍊)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도 2시간 공연을 위해 하루 8시간씩 8개월 동안 연습을 해서 발표한다고 합니다. 자그마한 대추 한 알이 영그는 데도 많은 시간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하물며 우리가 인생을 일구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진이 필요하겠습니까. 그 노력 없이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부정적인 시각을 지우고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십시오. 안 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그것이 행복해 지는 비결입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원허 스님이 지난 3월 21일 부산불교교육원 여래사에서 봉행된 ‘수행하면 행복해집니다’ 릴레이 초청법회 세번째 법사로 참석해 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원허 스님은
1982년 쌍계사에서 고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해인사 강원, 율원, 선원에서 수행했다. 자운 스님을 계사로 1988년 사미계, 1991년 구족계를 각각 수지한 스님은 지난 2009년 1월 고산 스님으로부터 용성 스님의 계맥을 전수받기도 했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부산 혜원정사 주지를 맡아 포교에 매진해 온 스님은 현재 부산지역 포교 사찰의 모임인 전법도량 의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