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를 찾아서
월요일 아침이 되어 짐을 가지고 호스텔을 나와 이영준씨가 도착할 즈음에 그의 기숙사 방 앞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불쑥 찾아가 그의 방 앞에서 기다린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빨리 짐을 풀러 놓고 시내구경을 나가려는 목적으로 일찍 나가 기다렸다.
한 30여분 기다려 7시가 되자 그가 도착했다. 나는 그를 보고 반가워했으나 그는 나를 보고 반가워하기 보다는 어리둥절해 하였다. 그렇게 일찍 찾아와 기다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의 방에 들어가 그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가 나보다 한 살 위라서 후에 형이라고 부르며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짐을 풀러 놓고 시내지도를 꺼내 보고 오슬로가 참 작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토어봐를 다시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있었던 이야기와 토어봐를 찾겠다는 이야기를 잠시 영준형한테 하니 조금 황당해 하더니 잘 해보라고 했다.
나는 지도에 표시해 둔 목적지를 찾아 그의 방을 나왔다. 전날 예배드렸던 오슬로대교회를 지나 번화가인 카를 요한스 거리, 시청, 오슬로 대학, 2차 대전 당시 독일 게슈타포 본부로 쓰였던 외무부 건물, 프로그네르 공원 등지를 둘러보았다.
목적지를 찾아다니면서 계속 토어봐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녀를 찾을 단서라고 할 것이라고는 그녀가 오슬로에 독일어 시험을 보러 온 베르겐 여대생이라는 것과 이메일 주소였는데, 이메일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오슬로를 떠난 후 확인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베르겐에서 오슬로까지 와서 볼 독일어 시험이면 꽤 큰 시험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슬로 대학 근처에서 만난 대학생들한테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그런 시험에 대해 알지를 못했다.
독일어과를 찾으면 되겠지 싶어 독일어과를 찾았으나 시내의 오슬로 대학에는 그런 과가 없다고 하여 프로그네르 공원에 들른 다음 그 근처의 오슬로 대학의 블린던 캠퍼스를 찾아갔다. 다행히 그날 정해 놓은 목적지 근처에 대학 캠퍼스들이 있어 여행의 기본목적이 위협받지는 않았다.
블린던 켐퍼스에 도착해서 또 여러 학생들한테 물어 알아 본 끝에 독일어과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교수는 푸근한 인상의 중년 여인이었는데 그녀의 방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가 내 이야기를 들어보고는 그런 시험을 어디서 치르는지 알 것 같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과 대화를 잠시 나누던 그녀는 그곳이 맞다며 나와도 통화를 시켜 주었다. 상대방은 시내에 위치한 '괴테'학원(Goethe institute)의 독일어 여선생이었다. 그날 오후 5시 즈음에 전화를 건 탓에 토어봐는 이미 시험을 치르고 그곳을 떠났다고 했다.
그런데 다행히 다음날 아침 9시부터 시작되는 다른 시험에 그녀가 올 것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 그녀의 행방을 찾는 다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며 피곤했던 다리에 갑자기 힘이 솟아올랐고 지구 끝까지라도 달려갈 자신이 있었다.
돌아다닌 보람과 성취감이 느껴졌다. 전화를 마치고 나를 도와준 은인(?)인 여교수한테 고맙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하고서야 그녀의 방을 나왔다. 나는 다음날까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 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