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주일(연중 32주일)
평신도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으로서,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크게 부각하면서,
평신도를 통하여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지금은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단체 협의회’)를 결성하고
해마다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지내기로 하였다.
그 뒤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연중 마지막 전 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하면서
2017년부터 한 주 앞당겨 지내고 있다.
그리스어로 ‘하기오스’, ‘크리스티아노스’라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는 평신도라는 말은
‘거룩한 백성’, ‘하느님께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자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받은 신자’(로마 1,7),
‘아버지 하느님께 복받을 사람들’(마태 25,34),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로마 1,6) 등
신앙 안에서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평신도에 대한 정의 가운데 진정한 의미 하나를 선택한다면,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1테살 5,6-8)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평신도들은 대체로 주일에 성당에 모여 미사를 봉헌하고 흩어져
한 주간을 세상 속에서 사회인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올바른 평신도의 삶은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미사가 끝나고 서로 흩어진 후에 각자의 생활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어진 사명의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평신도 사명의 3중직무
1. 예언직(복음전교)
가정과 사회의 일상 생활 가운데서 복음의 힘이 빛나도록
말씀과 뜻을 마음에 담아서 다른이에게 전해야되는것이다.
남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복음화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복음이 진정 기쁜 소식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하느님 나라를 위해 철저히 투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의 삶을 통해 살아 계신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는 것이다.
복음 전파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사는 사람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복음을 사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복음은 복음을 사는 사람들에 의해 전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오늘 복음을 산다면
나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2. 사제직
"그들의 모든 일, 기도, 사도적 활동, 결혼생활, 가정생활,
일상의 노동, 심신의 휴식 등을 성령 안에서 행하며,
더욱이 생활의 어려움과 고통들을 인내로이 참아 받는다면,
이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드리는 영적 제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성찬례를 통해 평신도들의 사제적 희생제물은
하느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예배로서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에 참여하게될 것이다.
1) 하느님께 예배 드리기
2) 기도 드리기
3) 거룩한 생활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3. 왕직
(하느님께 봉사하고 이웃에게 봉사하는것)
모든 피조물의 참된 의미와 가치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하느님 찬미와 관계가 되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일상의 일과 업무에서조차
보다 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도와야할 것이다.
그로써 세상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젖을 것이며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누리며
스스로의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성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가난한 과부는 생활비를 모두 헌금한 것이다.
연중 32주일 11월 7일
(마르 12,38-44)
¶ 예수님께서는 가진 것을 모두 하느님께 봉헌한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신다.
가난한 과부는 생활비를 모두 헌금한 것이다.
이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복음).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아낌없는 마음을 헤아리셨습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헌금은 액수의 많고 적음보다
그 헌금에 담겨진 마음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물의 양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조건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는 것은 비단 돈만이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과 시간 등
우리가 봉헌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가난을 돈으로만 논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부족한 것도 가난입니다.
늘 일상에 쫓겨 사는 이들도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바치는 것도 헌금이 됩니다.
‘자투리 시간’이 아니라 ‘알짜배기 시간’을 바치는 정성입니다.
‘주일’에 제일 중요한 일로 ‘미사 참여’를 정하고
만사에 앞서 실천한다면 복음의 여인을 닮는 것이 됩니다.
봉헌은 아니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헌금을 보고 계십니다.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어떤 ‘정성으로’ 바치는지 보고 계십니다.
적게 가졌기 때문에 하느님께 드릴 것이 궁핍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궁핍하기 때문에 드릴 것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마음의 지향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한 주간 겪었던 억울함과 아픔도 함께 바친다면
봉헌의 깊이는 더해집니다.
첫댓글 예언직.왕직.사제직의 3중 직무를 명심해야 겠네요 새롭게 각인 시켜 주심 감사!!!
감사합니다.
편안한 저녁 보내세요.